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256)
마법소녀 아저씨 256화(256/671)
256. 혼돈의 여왕
“음. 분명 난 설명을 다 했던 것 같은데 말이지, 혹시, 조그만 머리로는 이해하기 힘든 건가?”
미동조차 하지 않는 그녀의 손.
그것에는 어떤 반응도 없었다.
피부 아래에 있어야 할 혈관과 근육의 움직임도.
맞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나 냉기도.
그저, 거기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이 존재하는.
무의미한 손.
그것이, 이 존재의 본질.
그렇기에.
“아니, 다 생각하고 한 거야.”
이 좁쌀만 한 머리로 말이지.
“난 분명 선택하라고 했을 텐데?”
“그래…. 선택하라고 했지.”
죽어감에도 불구하고, 내 정신을 말을 내뱉으며 점차 또렷해졌다.
“그런데…. 하나만 선택하라곤 안 했잖아?”
“네가 말해도 억지란 거 알지?”
당연히 알지.
그렇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이 방법밖에 없다.
“넌… 아까. 예상했다고 했었지.”
내가, 운호를 버리고. 정보를 택할 거라는 예상을. 그러한 시나리오를.
무언가를 버리며, 달려온 내가.
여기서 또다시 무언가를 잘라낼 거라는.
그렇지만.
생각해 보면, 이상한 점이 있었다.
이들은, 이상하리만큼 마열차에 대해 반응하지 않는다.
그리고 거기에 있었던 사건도.
난, 담(淡)을 안다.
그리고, 그 결과로써 만난.
푸른 바다도 알고 있다.
내가 버림으로써 만들어낸. 누군가와의 대화를.
내가 어떤 것을 버려 왔는지, 다시 돌아보게 한 바다를.
그에, 다시 생각할 수 있다.
운호를 버릴 수 있는가에 대한. 스스로에 대한 질문을.
그리고, 나는 답을 얻었다.
설령 나 자신을 버리더라도. 운호를 버릴 수는 없다고.
어쩌면.
정말. 작은 가능성이지만.
“이것도…. 사실 다 네 시나리오 아니냐? 마(魔).”
“너무 확대 해석이야.”
움찔.
그녀의 손이. 움직였다.
단순한 착각으로 치부할 만큼, 작은 움직임이.
그래.
지금 내 앞에 있는 그녀는.
온전한 끝이 아니다.
이지를 초월한.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니다.
나와 대화하기 위해. 스스로 필멸의 존재. 끝의 말단으로 내려온 자.
그렇기에. 인간이 할 실수를 범하는 것이다.
“운호를. 포기하고. 정보를 얻은 내 미래는 어떤 미래였지? 파멸하고. 스스로 무너져 내리는 미래였나? 네가 좋아하는. 작은 것이 절망에 빠져 울부짖으며 무너져 내리는 파멸의 미래? 내 예상이지만. 그럴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 마(麽)?”
손에. 반응은 없다.
마치, 같은 실수를 두 번 하는 일은 없다는 듯.
그렇지만,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미끼를. 던지는 일.
“흐음. 어디, 계속해 봐.”
그리고, 그녀가 미끼를 물었다.
“넌, 아까 말했지. 본래 시나리오는 지루한 감이 있다고. 폭거도 있어야 한다고.”
아마, 우그러져 가는 뇌에서.
실만큼 가느다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뻗어 나온다.
“그럼. 이게 새로운 시나리오다. 네가 생각하는 미래는 없어. 나는. 둘 모두를 가지고, 네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를 보여 줄 거다.”
나는, 무슨 짓을 해도 그녀가 줄 수 있는 것을 대체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힘으로 억누르지 못한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그녀가 나에게 맞춰 준.
대화라는 수단을 통한.
설득.
쾌락 중독자에게 이쪽이 더 재미난 이야기를 보여 줄 수 있다는.
나름, 자신 있는 답을 내뱉고.
여왕의 말을 기다렸지만.
“…이상한데. 내 예상으론, 너는 절대 이런 짓을 하지 않아. 어느 세계에서건, 너는 희생에 익숙하니까.”
여왕은.
싸늘한 얼굴로 옥좌에서 일어났다.
“뭔가, 계기가 있을 거야. 내가 참조하지 못한, 무언가가.”
그녀는 내 손을 뿌리치지 않은 채.
나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위에서 아래로.
그림자를 드리우며.
“심이계인가? 끝에 대항하는 존재들을 만났나? 어느 쪽이건, 내 시야를 벗어나 뭔가를 접한 거 같은데.”
그녀가 속삭여 온다.
사특한 뱀의 목소리로.
내 정신을 파고들며.
“좋아…. 네 제안도 꽤 흥미롭긴 해. 그럼, 여기서 거래를 하자.”
그녀가, 내 손을 뿌리친 후, 내 손을 붙잡았다.
무의미하고, 잔혹한 손이. 내 손을 덮어씌웠다.
“네, 그 경험을 줘. 그러면, 네 선택을 존중해 주지.”
쉬릭.
그런 소리가 들린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뭔가가 무너져 내리는 듯한 소리도.
저울이 움직인다.
마열차.
운호.
정보.
둘이 올려진 저울에.
말도 안 되는 것을 올린 저울 받침이. 새로이 생겨났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알았다.
별의 종족이 만든 방주는.
제 역할을 하고 있다.
끝조차도, 내부의 인원이 직접 자신을 호출하는.
이레귤러성 사태가 아닌 한, 그 존재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데미우르고스.
제 이름대로, 거짓된 신의 이름으로. 끝에 있는 절대자의 간섭을 뿌리치고 있다는 것을.
그런 장소를.
눈앞의 존재에게. 알려주면. 어떻게 되는 걸까.
파멸을 갈구하는.
마(麽)에게 알려 준다면.
“왜? 대답 안 해? 네 말대로 해주는 거잖아. 운호도 살려 주고, 정보도 주겠다니까?”
공허한, 무한한 얼굴이 내 앞에 가까워진다.
조금씩. 조금씩.
…이것도, 여왕의 시나리오인가?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서부터가 거짓이고.
어디서부터가 진실이지.
언제부터, 나는.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거지?
나는. 대체.
어떻게 해야.
이 눈앞의 존재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거지?
“머리가 복잡한 것 같은데. 이제 선택지는 셋이야. 하나. 정보. 둘. 운호. 셋. 정보와 운호. 대신, 대가를 치러야 해.”
말도, 안 된다.
이건, 선택할 수 없는 선택지다.
무엇을 선택하건.
언젠간 저 하늘에 닿음을 믿으며.
계속해서 시체를 쌓는 행위를 반복하던 나는.
나는 그저 내가 쌓아온 시체 위에, 또 다른 시체를 던질 뿐이다.
“아, 선택지는 하나 더 있네. 넷. 이제 곧 닥쳐올 온전한 소멸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공허로 돌아간다.”
“….”
이게 끝인가.
같은 장소에 마주해있어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일어나도.
모든 것을 끝으로 몰아넣는 존재.
모든 선택지를 잘라 내고.
파멸을 향해 나아가도록 인도하는.
마(麽).
직접적인 전투가 아님에도.
모든 것에 패배했음을 직감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이 여왕이 짜둔 시나리오인지 알지도 못한 채.
점차 스러져 가는, 시야 속에서.
오른팔에 반짝이는 뭔가 보였다.
그러고 보니…. 담(淡) 때도 오른팔에 뭔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리 스러지며, 반짝이는 빛에 정신을 집중하였다.
그것이, 너무나도 아늑했기에.
“네 번째야? 그것도 나쁘지 않지. 뭐, 이번엔 여기까지인가 보네.”
이조차 하나의 즐거움이라는 듯.
기쁨이 느껴지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의 모든 것이.
아득한 저편으로 향했다.
* * *
쾅.
“실례합니다. 여왕님.”
어쩐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방에 불을 끄고 뭘 하고 계십니까. 수호대도 몰아내고, 제가 몇 번이나 말씀드렸지만. 끝의 본질을 드러내심은, 중요한 일이 아닌 한 끝을 끌어오는 비효율적인 행위이기에, 가급적 하시지 말라고 충언을 드렸습니다만. 여전하시군요.”
그리고, 이상하리만큼 현실미가 느껴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뭐지?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검은 공간을 평범하게 날아오는 한 요정이 보였다.
…아프?
쟤가 왜 여기 있어?
그 이상함을 인지한 순간.
갑자기, 모든 것이 평온해졌다.
“어? 아프 대장? 내가 널 불렀던가? 왜?”
갑자기 감정을 보이는 여왕이, 횡설수설 말하기 시작했기 때문일까.
“제가 오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제 직위상. 언제든 제가 원할 때 여왕님과 면담할 특권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
여왕의 말에도, 아프 대장은 평소처럼 무덤덤한 목소리로, 정말 원리 원칙적인 말을 되돌렸다.
“그래도, 때와 장소란 게 있지 않을까? 아프 대장?”
“때와 장소 말입니까? 지금은 갓 정오가 지난 보편적인 근무 시간인 데다가, 이 장소는 여왕님을 마주하는 알현실이군요. 둘 모두 큰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아니, 그게 아니고. 하….”
너무나도 원리 원칙적이기 때문일까, 그 여왕이 머리를 부여잡는 진귀한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이게 대체 뭐야.
“혹시, 그 때와 장소라는 게 여왕님의 사디스틱한 취향을 드러내는 사생활 말씀이신가요?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그러한 취향을 충족시키는 것은 근무 시간이 끝나고 개인적인 공간에서 하시길 조언드립니다.”
“빨리 볼일 보고 돌아가 주면 안 될까 아프 대장? 지금 바쁘거든…?”
…정말로 이게 대체 뭐지.
아프를 배려하기라도 한 것인지, 여왕이 화신체로 돌아왔기 때문일까.
여전히 온몸이 쑤시긴 했지만.
점차 재생되는 것이 느껴졌기에.
지금 눈앞의 진귀한 광경을 지켜보고자. 심장을 감싸 안으며 벽에 몸을 뉘었다.
“흠. 바쁘시다고 하시니, 이번 조언은 이것으로 끝내고, 제가 찾아온 이유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제발….”
혹시 여왕은 원리 원칙주의자에 약한가?
그런 잡생각이 들 정도로, 연약한 여왕을 흥미진진하게 관전했다.
“제가 여왕님을 알현한 것은, 중앙 선거 위원회 측에 민원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민원?”
“예, 민원을 제출한 이는, 운호 준장의 선거 사무소 사무원. 알’셸이었습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해당 인원이 제출한 내용에 대해 제가 확인 작업을 거쳤고, 그 내용이 타당하다고 여겨져, 여왕님의 승인을 받고자 합니다.”
그리 말한 아프는 품 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여왕 앞에 내밀었다.
“언제나처럼 읽지 않으실 것 같아, 요약 내용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후보자 운호 준장이 사망한 사건은, 정당한 규칙에 따른, 비살상 전투였으나. 수호대는 전투에서 제 관리 책임을 다하지 않았으며 이에 후보 중 하나인 운호 준장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것이 사고가 아님을 사무원 알’셸이 수호대 리나에게서 증언을 얻어 냈으며, 이에 따라. 여왕님이 직접 운호 준장을 부활시켜줘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잠깐, 뭐? 아니, 부활시켜줘야 한다는 그런 규칙은 없었는데?”
“예, 법률적으로는, 동등한 가치를 지닌. 예를 들어 가해자 파벌이 사망자 숫자 이상의 자리를 일정 기간 내어 준다거나 하는, 가치 판단적 배상 책임이 발생합니다. 그렇지만, 이 경우. 여왕님 스스로가 운호 준장의 부활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떠들고 계신 것을 제가 방금 확인했습니다. 그러니, 동등한 가치를 지닌 부활이면 되겠군요.”
정신 나간 원리 원칙 효율주의자는 무섭구나.
그 여왕이 찍소리도 못하고 아프 대장에게 두들겨 맞고 있네.
…왠지 재미있는데.
“아니, 그…. 아프 대장? 이런 말 하면 안 되는 건 알지만, 내가 그거 관련해서. 중요한 걸 하고 있거든?”
“그 중요하시다는 것이. 다른 세계에서 온 손님을 협박하는 것이라면, 제 위치상 눈감아드릴 수는 있겠습니다만, 솔직하게 말해 썩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군요.”
그리 말하며, 아프 대장은 서류를 조금 더 앞으로 밀었다.
“포기하시고, 사인하시길.”
“…진짜 이러기야?”
“저는 원칙대로 행할 뿐입니다. 정 마음에 들지 않으시다면, 새로이 담당자를 뽑아 주시길. 그게 더 귀찮으실 것 같습니다만.”
아프 대장의 마지막 일격.
그것을 받은 여왕은 제 하얀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발광을 시작했고.
곧 모든 것을 포기했는지.
손가락 끝에서 검은 잉크를 뿜어내 서류에 사인을 마쳤다.
“서명 확인했습니다. 그럼, 부활 처리는 빠른 시일 내에 부탁드립니다.”
아프 대장은 서명란을 빠르게 훑고 서류를 챙긴 후.
옥좌의 방에 왔을 때처럼 신속하게 퇴장했다.
그리고.
방에는 침묵이 흘렀다.
약 5분 정도.
그렇게 시간이 흘러.
다 죽어가던 내 몸도 어느 정도 움직일 순 있게 회복되었고.
기다리는 것도 지루했기에.
“어…. 그럼 선택은 어떻게 되는 거지?”
내가 입을 열었다.
“…운호는 살려 주고. 정보는 일부만 줄게. 이걸로 만족해.”
다 주면 좋겠는데.
아니, 배부른 소리는 그만두자.
이 뜬금없는 승리는 내가 해낸 것이 아니니까.
알’셸. 고맙다.
나 혼자선 절대 못 했어.
어디 갔나 보이지도 않았더니만, 수호대와 아프 대장을 붙잡아 담판을 지을 줄이야.
내가 선택을 조금 빨리했거나.
아프 대장이 오는 게 조금 늦어졌다면, 모든 것이 일그러졌을 터.
그보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생겼다.
“하나 물어봐도 될까?”
“…어떤 거 말이지?”
“네가 마음대로 나나 운호를 휘두른 것처럼, 아프를 휘두르거나, 저 법을 무효로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럼, 난 꼼짝없이 패배했을 텐데.
아니면, 그 끔찍한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거나.
“나도 나름대로 이 세계에 애착이 있거든. 마(魔)로서. 나도 나 자신이 이해가 안 되지만 내 양면성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
그래.
“개성을 가진 지성체란 중요한 거야. 아프 대장을 마음대로 다루면, 본래 있던 아프 대장이 아니게 되지. 끝이라도 완벽히 같은 존재. 완벽히 같은 상황은 못 만들어. 그게 아니면, 상황을 완벽히 통제해야 하는데, 적어도 난 내 세계가 꼭두각시 인형처럼 되는 건 보기 싫거든?”
알았다니까. 변명 안 해도 돼.
처음으로 여왕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마치, 제 자식들에게 시달리는 부모처럼 느껴져서.
말도 안 되는 착각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