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266)
마법소녀 아저씨 266화(266/671)
266. 온전한 귀환.
잠깐의 의식 상실.
그리고, 곧 의식을 되찾았다.
물론, 정말로 의식을 잃은 시간이 길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있는 장소가 흘러간 시간을 알 수 없는 검은 장소라면 더더욱.
…이계인가.
온통 어두운 것도 아니고, 뭔가 있다는 것조차 알기 힘든 공허라면, 아마 이계가 확실할 것이다.
그걸 알아차리고, 멍하니 좌우를 둘러보자, 아직 깨어나지 못한 문어와 페럿이 보였다.
어째 내가 맨날 늦게 깨어나더니만, 먼저 깨어나는 건 처음이네.
잠에서 깨어났으니 뭔가 하고 싶지만, 나 혼자선 이계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어, 멍하니 갑자기 가려워진 머리를 긁적이고 있자.
갑작스레, 중요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럼 누가 보호막을 치고 있는 거지?
나는 아예 방법을 모르고.
문어는 맛이 가서 촉수를 늘어트리며 쓰러져 있고.
운호는 전신 마비라도 걸렸는지 팔다리를 하늘로 꼿꼿이 향한 채 쓰러져있고.
…어 그럼 망한 거 아닌가?
그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내가 곧바로 일어났고, 아직 이계에 휩쓸리지 않았을 거라는 판단에.
이 방법이 먹힐지는 알 수 없지만, 동료 둘을 양손으로 붙잡고, 눈을 감은 채 뭔가가 일어날 때를 대비했으나.
10초.
30초.
1분.
내 체내 시간이 그리 흘렀음에도.
무언가 변하는 느낌이 들지 않아, 조용히 눈을 떴다.
그리고, 정말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음을 알아차렸다.
손에는 기절한 두 바보가 있고.
아마, 나도 뭔가를 잃어버리지 않았다.
이계의 특징상 뭔가를 잃어버렸다는 것 자체를 잊어버릴 가능성이 있지만.
일단은.
뭐지?
그에, 주변을 둘러보자.
뭔가가 눈에 띄었다.
우리 주변을 회전하는 흰 실선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새겨진, 가만 보면 이계의 공허와는 미묘하게 다른 색을 가진 검정.
흰색과 검정이라. 누가 생각나는 색 배합인데….
설마, 여왕의 보호막인가?
애프터 서비스?
하긴, 이런 거 없이 그냥 보내 버렸다면 자기가 주장하던 안전한 귀환은 아니게 되니까.
여왕은 이상하리만큼 자기가 한 말이나 규칙을 지키려는 성격인 것 같으니 말이지.
다만, 그 성격이 반드시 까지는 아니고 그냥 자기가 아니다 싶으면 때려치우는 것 같지만.
그럼, 애들을 깨워 볼까.
일어날 때까지 놔둬도 되겠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이 보호막이 길게 유지된다는 보장이 없으니 말이다.
그 여왕이 내어준 보호막이다.
보호막 어딘가에 여왕의 성격처럼 뒤틀림이나 함정이 없으리라고 누가 보장할까.
“야. 일어나.”
그렇기에, 잘 먹은 탓인지, 피부가 질척이는 알’셸을 두들겨 팼다.
아프진 않을 정도로 힘을 조절한, 좌우 싸대기 반복.
“쿠억. 컥. 쿠액”
따귀를 때릴 때마다, 기묘한 소리와 함께 여러 색의 점액이 뿜어져 나왔다.
역겹긴 하지만, 몇 번 때리다 보니, 곧 점액이 내게 튀지 않도록 하는 때리는 각도와 힘을 찾았다.
그렇기에, 때리는 속도가 더욱더 빨라졌고.
생각지도 못할 이득을 얻을 수 있었으니.
의외로 찰지네 이거.
잘 먹은 탓인지, 피부의 점액이 끈적거리는 게 아니라, 마치 향유처럼 부드럽게 흘러내린다.
그 탓에 무언가의 피부를 때리면서 느껴지는 꺼슬꺼슬함과 불쾌감보다, 글러브를 차고 샌드백을 때리는 기분 좋음만이 남았으니.
“쿠억. 아니 잠깐. 무슨. 컥.”
점차 그 행위에 몰두하며, 문어가 깨어나길 기다렸다.
때리는 것은 손이오.
돌아오는 것은, 타격의 기쁨과 손맛.
그리고 문어의 아름다운 비명이니.
어찌 이 행동이 즐겁지 않으랴.
그렇게 조금씩 따귀를 때리는 속도가 빨라지고.
반복의 기쁨에 눈을 뜨며, 나를 위해 그를 반복하자.
“아니, 컥. 하실 말이 있으면, 좀. 투핵, 말로. 쿠악.”
뭔가, 들려오는 소리가 변했다.
아마, 내가 템포를 올린 탓에 악기의 소리가 변한 게 아닐까.
그렇다면, 더 빠르게 치면 어떻게 될까.
그런 생각에, 더욱 집중하여 황홀경에 빠지려는 순간.
탁.
강한 힘으로 손이 잡히는 듯한 느낌과 함께.
“일어. 났습. 니다.”
볼이 탱탱 부은, 분노로 피부가 붉게 변한 알’셸이 나를 바라보았다.
“아, 일어났냐? 왜 이렇게 안 일어나나 했지.”
“이미 한참 전에 일어났… 아뇨, 관둡시다.”
‘어차피 또 인정 안 하실 텐데요.’
흠, 저 혼잣말이 신경 쓰이지만, 그런가 보다 해야지.
“그래, 일어났으면 주변 상황 체크하고. 난 운호 좀 깨우마.”
“무슨 상황인지 설명은… 음. 아닙니다. 대충 알았으니.”
…저럴 거면 그냥 말을 하지 말든가.
그런 의미를 지닌 눈길로 살짝 째려보았으나.
알’셸은 이미 나로부터 등을 돌린 채, 허공에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한 지 오래였다.
하는 수 없지, 운호나 깨우자.
그렇게 손발을 뻗은, 기묘한 자세로 기절한 운호에게 다가가.
목 뒤의 가죽을 붙잡아 들어 올렸다.
부드러운 가죽과 남아도는 살이 아래로 쭈욱 늘어나며,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렸고.
“우웅. 과일육….”
아무래도, 기절한 게 아니라 자고 있었던 것인지.
괴상한 잠꼬대를 내뱉는 운호.
음, 생각보다 다들 오래 기절해있었나?
어쩌면 운호는 한 번 일어났다가 곧바로 다시 잠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신경 줄을 보유한 태평한 녀석이니 말이다.
내 예상이 맞다고 한들, 뭐라 할 생각은 없지만.
아무튼, 운호를 깨우고자 행동을 시작했다.
살짝 위아래로 털 뭉치를 흔든 후.
“야, 운호. 일어나라. 이제부터 집에 갈 거니까.”
“우웅. 도착하면 깨워 주세용….”
애가 정신을 못 차리는구만.
그렇기에, 더욱 힘을 넣고, 격렬하게 위아래로 흔들었다.
“일어나라고, 네 식재료 생성기 이계로 던져버린다?”
참고로, 그 물건은 운호 옆에서 굴러다니는 걸 확인했다.
이 꼴이 난 걸 보면, 여왕의 보호막이 없었으면 저것도 사라졌겠네.
고맙다곤 하지 않으리라.
어찌 되었건, 내 말은 꽤 효과가 있는지, 갑자기 운호가 진동하기 시작했고.
“포요오, 제 먹을 거 생성기는 안 돼요!”
절규를 내지른 운호는, 빠르게 내 손아귀를 벗어나, 지면에 착지했다.
그리곤,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더니.
곧 제 몸뚱어리만 한 상자를 발견하고는, 그게 사랑스럽다는 듯, 온몸을 써서 거기에 달라붙었다.
“으아아 무사했구나 먹거리야….”
식재료 생성기에 먹거리라는 이름을 붙이는 건 어떤 저세상 센스일까.
잠든 죗값도 있는지라, 뭐라 한마디 내뱉고 싶지만.
결국, 일어났으니 놔두기로 하고, 다시 알’셸에게 시야를 돌렸다.
“….”
그리고, 알’셸과 눈이 마주쳤다.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냉정하게 얼어붙은 눈과 표정.
그와 대비되게, 손과 마법진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그 안에 감춘 감정을 숨기진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이라도?”
허심탄회하게 털어나 임마.
한 대 더 패 버린다?
“아뇨, 운호 님에게 꽤 친절해지셨다 싶어서 말이죠.”
흠. 친절이라.
알’셸의 말을 듣고, 잠깐 과거를 떠올려보았다.
찰떡 파이 운호.
만두 속 운호.
쓰레기장 운호.
괴생명체 운호.
길바닥 껌딱지 운호.
흠.
운호 취급이 험하긴 했군.
자업자득이니 내 문제는 아니지만.
그렇다곤 해도.
“뭐, 험한 일 겪었잖냐. 그러니 조금 잘 대해 줘도 괜찮겠지.”
로니아가 뭐라 했던 것도 있으니, 내 분노 수치가 한계를 초월할 만큼 쌓이기 전까지는 놔둬야지.
‘그런 분이 제 뺨은 왜….’
“뭐라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로써, 대화가 종료되었다.
* *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알’셸의 작업 구경에 지친 나와 운호는, 식재료 생성기를 켜고 거기서 음식을 받아먹기 시작했다.
“이거 좀 사과 주스 같이 나왔는데.”
음료를 몇 번 받아먹으며 조합을 찾아보기를 십여 번.
찾던 과일주는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음료가 나와 그것을 홀짝였다.
“와, 그거 저도 마셔볼래용.”
그리고, 파란 음료를 홀짝이던 운호는 내가 만들어 낸 사과 주스에 흥미가 생겼는지, 식재료 생성기에 마력을 공급하곤 내 조합식을 뽑아내며 들이켜기 시작했다.
“와, 정말 사과 주스 맛이네요? 색은 좀 그렇지만.”
“그건 신경 꺼.”
검정에 가까운 자색인데 사과 주스 맛이 나는 건 좀 이상하긴 하지.
그래도 향도 맛도 사과 주스라면, 색쯤은 참아 줄 수 있다.
그리 생각하며, 음료를 들이켜는 순간.
‘빨리 이 짓거리를 끝내야 저 꼴을 안 보지….’
아까부터 계속 들려오던 혼잣말이 다시 들려왔지만.
이번에도 신경 쓰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해, 나도 찔리긴 하니 말이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나도, 운호도 이런 상황에 대해선 완전히 무능력자인데.
그러니 저런 불만 정도는 웃고 넘겨 줘야지.
그렇게 알’셸이 노력하고
우리 둘은 향락을 즐기길 잠시.
“찾았습니다. 생각보다 가까운 장소에 구멍이 있었군요.”
알’셸이 펼친 마법진을 모두 거두며, 고개를 이계 어딘가로 향한 채, 그 장소를 빤히 바라보았다.
“오? 그래? 얼마나 걸려?”
“5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정말 바로 옆에 전송해두었군요.”
‘괜히 어려운 길을 골랐습니다. 시작부터 근거리 탐색을 썼으면 바로 찾았을 것을.’
그리 말하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 알’셸.
그러니까, 지금 여왕이 구멍 옆에 그대로 떨어트려 놨는데.
알’셸 네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해서, 광역 색적, 좌표 검색, 구멍 탐지 뭐 그런 거 하느라 시간이 걸렸다 이 말이지?
솔직히 바보 같다는 생각이 머리에 스치고 지나갔지만.
잠시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알’셸의 판단을 따져보니, 나름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여왕 아니던가.
떠올리기 싫을 정도로, 우리에게 트라우마를 박아 넣은 여왕.
잠깐 만난 내가 이 정도인데.
그런 존재들에게 고향과 동족을 몰살당한 알’셸은 그들에게 어떤 감정과 기억을 가질까.
믿을 수 없는 것도 당연한 일.
그러니.
“뭐, 고생했다.”
타박 대신, 알’셸의 어깨를 툭 쳐주며, 가자는 의미로 손을 들었다.
“5분이면 얼른 가서 쉬자고. 이 생존 확률 개판이던 여행을 마무리해야지.”
정말, 긴 일이 있었다.
그림자지기. 마열차.
제쓰. 별의 종족.
담(淡).
마법 왕국. 수호대.
여왕.
심이계. 그릭스.
생각했던 것보다, 멀리 돌아가는 여정이었다.
세계를 떠나 이계에 발을 들이며.
내가 알지 못했던 수많은 것을 알아내었다.
나의 부족함.
이계의 넓음.
진정한 강자와.
저 멀리 있는 존재들.
어찌 보면, 떠날 때 목숨을 걸고 가져오리라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것을 받은 여행이었다.
단순한 정보를 얻고자 시작했던 여행은.
얻고자 한 정보보다 많은 정보를 얻었으며.
여행길에서 생겨난 새로운 질문의 답을 받아 내었다.
물론, 그로부터 더 많은 질문이 생겨났지만.
그것은 대부분 내 개인적인 질문.
아무것도 모른 채, 안갯속을 헤매던 인류는, 나아갈 조그마한 이정표를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이리라.
비록, 여왕이 말했던 정보 제한이 어디까지 적용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부 정도는 말해 줄 수 있겠지.
그것은 분명히 많은 이들을 위한 수확이었고.
나 또한 개인적으로 많은 깨달음이 있었다.
내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가진 한계를 깨부술 만큼.
내가 가진 편견을 뒤집을 만큼.
많은 것은 겪었으며.
내 사상의 오류를 파헤쳤고.
내 정의의 문제를 일깨웠다.
내 목적이 더욱 명확해졌다고, 말해도 좋으리라.
나는 세계를 바꾸는 방법을 몰랐다.
어린아이처럼 유치하게, 눈앞의 광대를 때리면 될 줄 알았다.
그것은 단순한 정신이상자의 범행.
미친 혁명가처럼, 막대한 피해로 안전을 위협하면 될 줄 알았다.
그것은 눈총받는 테러리스트의 사고.
노련한 정치가처럼, 내부에서 새로운 사고를 일깨우면 될 줄 알았다.
그것은 부정된 이상주의자의 길.
현실은 어떠한가.
정신이상자는 단순한 놀림.
테러리스트는 단순한 충격.
이상주의자는 단순한 토론.
물론 무언가는 바뀐다.
정신이상자는 씨앗을 낳았으며.
테러리스트는 파벌을 낳았고,
이상주의자는 진전을 보였다.
그렇지만, 그것은 너무 느리다.
마열차의 담(淡)처럼.
언젠가 우리는, 그 균형이 한순간에 무너질 위기를 목도하게 될지 모르는데.
그러니.
문을 열자.
새로운 문을.
마법 왕국처럼.
모두가 기본적인 힘을 발휘하는.
세계의 문을.
그것이, 우리가.
인류가, 살아갈 길이니.
내가 쌓아온 행동은 계단처럼 오르는 것이니.
이제, 다음 단계를 밟을 차례.
한 걸음, 한 걸음.
생존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