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282)
마법소녀 아저씨 282화(282/671)
282. 검은 달.
전투가 끝나고.
지존회에 소속된 무인들이 기절한 문주를 수습하는 동안에도.
한아빈은 몽롱한 상태긴 했지만, 아직 정신을 잃진 않았다.
다만, 눈꺼풀이 덜덜덜 떨리고, 손발이 반쯤 경련하는 데다가.
상반신이 계속 흔들리는 것을 보아하니, 한계에 도달한 모양.
쓰자마자 기절할 정도로 정신력 소모가 심했던 기술을 얼마 지나지도 않아 공격 한 번 할 수 있을 정도로 정련한 것에 찬사를 보낼 수 있겠지만.
지금 아빈이가 버틸 수 있는 것은 그뿐만이 아닐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정신의 영역.
이는 싸움에 있어 정신론을 말하는 이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말을 하는 새끼들의 손에 총 쥐여 전쟁터에 내보내면, 옆 사람이 죽는 것을 보고 바로 멘탈이 터져서 정신력이고 나발이고 티끌만치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신력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앵무조개 사태 때 자신이 소멸함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제 할 일을 하여 활로를 열어준 미군의 엔터프라이즈 항공 모함의 선원들처럼.
정신력의 유무는. 최후의 순간.
자신의 모든 것이 시험받을 때, 드러나는 요소.
아빈이가 지금 보여 주는 의지를 거기에 연결하는 것은 너무 섣부른 판단이지만.
적어도, 이 순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머릿속에 지우지 않는 것으로 그 말단을 살필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본인도 쓰러졌다가는, 결과에 대해 무슨 말을 들을지 모르니까.
…이리 생각하니 시현이도 한번 체크를 해 보고 싶은데, 쟤는 궁지에 몰린 적이 없네.
뭐, 계획이 잘 돌아간다면, 이번에 보게 되겠지.
어찌 되었건.
마법을 쓴 것에 대해 누가 뭐라 할까 싶어 잠시 기다렸다.
이 짓거리를 한두 번 해 본 것이 아니기에, 나름대로 무인들 사이에 암묵적인 규칙들을 알고 있긴 하지만.
나는 마법을 못 쓰지 않던가.
그 덕에, 이제야 저거 괜찮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지존회의 일원들과 구경꾼까지 포함해 그 누구도 이 대결의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아마, 형(形)처럼 취급한 것이 아닐까.
그럼, 이쪽의 승리로군.
이런 상황 속에서, 몇몇 문파는 대련에서 진 건 진 거고, 문파에 가해진 수치를 지워 없애고자 나머지 인원들이 죄다 달려들어, 난투전으로 이어지는 재미있는 축제도 있지만, 아무래도 이 녀석들은 그 정도로 막장은 아니던가, 그럴 강단이 없는 것 같다.
“가자.”
“네! 스승님.”
“…예.”
일이 마무리되는 동시에 도장을 나왔다.
저 녀석 옷의 금박도 못 떼고, 머리도 밀지 못한 것이 조금 아깝지만.
그건, 마지막에 멋진 보법을 보여준 것으로 넘어가 주도록 하자.
솔직히 속물적이기 그지없는 무인이었기에, 우연히 재능이 있어서 힘만 키운 무인이라 생각했건만.
그 보법과 자세를 보면, 나름대로 무인으로서 정진한 녀석이었다.
아마, 조금 속물적이고, 조금 패션 센스와 작명 센스에 문제가 있는 정도가 아니었을까.
그러니.
“이걸로 봐주도록 할까.”
빌딩을 나와, 거기 그대로 세워진 현판.
지존회(至尊會)라고 적힌 글자 앞에 서, 목판 위에 금박으로 써진 존(尊)이라는 글자를 망치로 깔끔하게 긁어낸 후.
“다 됐다.”
저(低)라는 글자를 음각으로 새긴 후, 부스터로 검게 만드는 것으로 마무리해 주었다.
지저회(至低會).
“뭐라고 쓰신 거예요?”
내 작업을 들여다보던, 한자를 모르는 백시현은 궁금했는지 그리 되물었지만.
“나도 몰라. 대충 어감만 보고 정했거든.”
한자로서 의미가 성립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식으로 읽으면 나름 어감이 괜찮지 않은가.
그러니 도장 깨기는 이걸로 끝.
도장 깨기의 보답이랍시고 날 습격하지 않는 한, 이 문파에 대해 더 이상의 악감정은 없을 것이다.
도장 깨기란 게 그렇지 않던가.
이 한 방으로 모든 악감정을 날려버리는 것.
물론, 당한 상대건, 건 사람이건 그게 안 되니까 매번 싸움이 일어나지만.
적어도 나에게 한해서는 그렇다.
아무튼, 모든 것이 끝나자마자.
“아… 그럼…. 끝난… 거네요…. 전… 좀 쉴게…요.”
아빈이는 저 말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자신이 쓰러지는 것조차 통제하지 못하며.
그에 놀라, 곧바로 한아빈을 향해 몸을 내던졌다.
“세이프.”
다행히, 아빈이가 땅을 구르기 전에 잡아낼 수 있었고.
잠시 아빈이를 눕힐 만한 장소를 찾아보려 했으나, 그런 장소가 보이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아빈이의 몸을 그대로 짊어졌다.
몸 여기저기가 닿긴 하지만, 별 상관없겠지.
의식도 없는 데다가, 내 몸도 일단은 여성체니 말이다.
옛날에도 뇌신이라던가 옥시모론이라던가, 기타 등등 여럿 짊어져 보기도 했으니 별 상관은 없을 것이다.
다만, 이대로 돌아다니는 것은 겉보기에 조금 그러니.
“시현아.”
“네!”
“아빈이 데리고 숙소로 가라. 방에 눕힌 다음엔 마음대로 관광이든 뭐든 마음대로 하고.”
그리 말하며, 백시현의 등 뒤에 아빈이를 옮겼다. 백시현은 그에 아무런 생각이 없는지, 담담히 한아빈을 받아들였고.
“알겠어요! 그런데 스승님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불평 대신 함박웃음과 함께 질문을 되돌렸다.
그에 나는, 길게 늘어선 큰길가를 돌아보았고.
거기엔 수많은 도장이 보였다.
그리고, 지저회가 되어 버린, 과거 지존회의 현판처럼 짜증 나는 이름을 가진 것들도.
무도류(無刀流)는 뭐야.
저거 찢어 버려도 되는 거지?
“난 조금 할 일이 있어서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봬요!”
그렇게 백시현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어디 보자, 오늘은 몇 개나 박살 낼 수 있으려나.”
내 최고 기록이 여섯이었나.
이젠 그 정도 까긴 힘들겠지.
하나 봐주고 다섯 정도 부숴 볼까.
지저회가 터졌으니, 이제 넷 남았군.
그리 생각하며, 무도류를 향해 내달렸다.
* * *
한밤중.
무인 연맹이 높은 산 위에 있는 탓일까.
창밖으로 보이는 달이 묘하게 커 보인다.
아마, 그리 큰 차이는 없으니 단순한 착각이겠지만.
아무튼, 아무것도 할 것이 없어 달을 바라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내가 있는 장소는 유치장이니 말이다.
마법 왕국에서 한 번 들어가 본 덕에, 이리 짧은 시간 동안 연속해서 들어온 것은 간만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번에는 철창을 붙잡고 무죄를 주장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일단, 철창 따위로는 무인을 구속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
철창이 없기도 하고.
그 대신 자리한 것은, 뭔지 모를 재료로 된 투명한 벽.
통통 두드려 보니 묘하게 탄력이 있는 것이 유리는 아닌 것 같지만.
내 얕은 지식으로는 뭔지도 모르겠다.
다만, 유치장을 이걸로 만든 만큼, 어지간한 충격 흡수 효과가 있을 것이다.
투명하지 않은, 지면이나 천장, 벽도 두드려 보았지만.
그 또한 비슷한 반응이 돌아오는 것을 보니, 색만 다르고, 같은 재질인 것 같다.
다만, 내가 못 부술 만큼 단단한 것은 아니다.
여기 처박힌 후 정말 더럽게 할 일이 없어, 벽이 얼마나 단단한가 하고 손가락을 세워 몇 번 콕콕 찌르자 구멍이 생겨 버렸으니 말이다.
다행히 그리 큰 구멍도 아니었고, 균열도 없어, 망치에서 생성한 쇠 구슬로 틀어막긴 했지만.
어쨌든 간에, 이렇게 힘으로 나가려면 나갈 수 있지만, 굳이 나가지 않았다.
애당초 여기 들어온 이유에 내 잘못이 15%쯤 있는 데다가.
내일 아침이면 풀어 준다고 치안 유지 담당 무인이 말해 왔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얌전히 준법 시민이 되어 주는 것이 옳을 터.
다만, 그 규칙이라는 것이 이해되지 않긴 하지만.
대충 무슨 죄로 억류되었냐 하면.
도장 깨기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특별한 사유 없이, 무작정 일정 수 이상의 도장에 쳐들어가는 것은 안 된다고 한다.
하루 한 번 정도라면 괜찮지만, 나처럼 다섯가량 깨부숴 버리면 그냥 대놓고 난동을 부리려는 무법자 아니냐면서.
그나마 무인 연맹에서 추방되지 않고 하룻밤 억류로 끝난 것은.
정확한 힘 조절 덕에 크게 다친 이가 얼마 없었던 데다가.
내 기수를 보고 옛날 규칙을 잘못 알고 있었다고 이해해 준 덕분.
그렇기에, 정확히 하루에 몇 개까지 되느냐고 물어보았지만.
주관적인 판단하에, 아무 이유 없이 혼란을 일으킬 경우라는.
주먹구구식 답이 돌아왔다.
나름 무인답긴 하니,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처음 잡혔을 때는, 정말 도장 깨기 자체가 금지되었을지 모른다고 최악의 상황을 상정했으니 말이다.
저 설명을 들은 뒤에는, 조금 양식을 가지긴 했지만, 무인은 무인인 것 같다 하고 납득했다.
그렇기에 이렇게 유치장에 처박혀서 달구경이나 해주는 상황.
다만, 이 축제에서 하나 아쉬운 점은.
이 깽판을 치면 쿵 지안평 그 바보나, 무인 연맹 본부 소속 누군가가 나올 줄 알았건만.
그쪽의 수확이 없었다는 것.
아마, 이런 자잘한 도장을 깨부수는 것은 그리 큰 소란이 아니기 때문이겠지.
아까 시장을 지나가면서 본 거지만, 생사결을 하겠답시고 도로 한복판에서 진검을 꺼내 들고 서로를 향해 형을 날린 바보들도 있었으니까.
그때는 분명 확실히 급이 다른 무인이 사이에 끼어들어 둘을 쥐어 패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저 방법대로라면 목표로 하던 무인들을 부를 수 있을 것 같지만.
저러면 주변에 너무 민폐가 아닐까 싶어, 내일도 평범하게 짜증 나는 도장 하나나 쥐어 패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저 사람들을 부르는 것이 주목적도 아니고, ‘되면 좋겠다.’ 정도의 부수적 목적이니.
결국, 주목적은 그냥 대련이 넘치는 무인 연맹에서 혈기 발산과.
하나 더. 선을 넘은 무인들을 찾는 것이다.
지저회급, 내가 그래도 무인이라고 불러 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닌.
정말 썩어빠진 이들.
도장의 이름을 내걸고,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들을 뽑아 먹는 놈.
내가 봐도 성립되지 않는 형을 귀중한 거라며 팔아먹는 장사치.
즉, 처벌의 대상자.
다만, 곧바로 나설 수는 없다.
아직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모든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으니까.
그리 생각한 순간.
스윽.
달이 갑작스레 검게 가려지고.
조그마한 야간 조명을 제외한 모든 광원이 꺼진 순간.
보글. 보글. 보글.
어딘가에서 거품 이는 소리가 들리고.
콰득. 콰득. 콰득.
살과 뼈가 이빨에 씹히는 소리와 함께.
퐁.
거품이 터지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이젠 유치장이네.”
검은 그녀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군.”
“몰랐나요? 같은 비행기 탔었는데.”
그래? 그건 몰랐네.
“자신이 나설 자리를 일검에게 빼앗기는 건 조금 재미있었죠.”
난 별 상관없다만.
내가 주목받고 싶어 하는 성격도 아니고, 아무 피해 없이 일이 처리되었으면 된 거 아닌가.
굳이, 그 내용을 입 밖으로 꺼내 반박하진 않겠지만.
“총소림은?”
“그 녀석은 총기 검사 때문에 조금 더 늦을 거예요. 그래도 내일 아침에는 준비 완료되겠지만.”
그렇군.
그럼,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 없고.
“계획에는 불만 없나?”
“나름대로 괜찮은 것 같던데요. 제 취향은 아니지만.”
그래.
“아, 그리고 이건 제 의견은 아니고 결사의 의견인데요. 일반인도 강화하는 계획이 만약 성공한다면, 결사 측에서도 아레제스 시큐리티를 통해 타이밍을 맞춰 수련 도구를 판매할 계획이라고 하더라고요. 무인 쪽 검수는 퀼프가 했고, 마법 쪽 검수는 알’셸과 세이니가 했으니 큰 문제가 없을 거랍니다.”
“의외구만.”
결사는 인간 전체가 강해지는 것에 예민할 거라 생각했는데.
이것도 협력하겠다는 건가.
단순 돈벌이 때문에 내 전 인류 강화 계획에 동조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사회 전체에 파급을 끼칠 수단은 마련된 것 같군.
“뭐, 결사분들은 회의 중에, 그로서 세계가 지켜진다면 괜찮지 않냐며 화기애애했으니까요.”
…생각해 보면 저 녀석들도 머리 꽃밭투성이 바보들이었지.
덩치가 아무리 커져도 그 본질은 어디 안 가는구만.
“좋아. 그럼 계획대로 움직이기로 하고….”
다음은.
“잠깐 나 대신 여기 남아서 연기해 줄 수 있나?”
“상관은 없는데. 뭘 하려고요?”
허락은 받았군.
그걸 듣고, 곧바로 몸을 일으켜 문에 달린 잠금장치를 손가락으로 찔러 파괴했다.
“…그건 어떻게 변명하죠?”
“화장실이 급해서 그랬다고 그래. 아, 그리고 뭐 하려고 그러냐고 물어봤었지.”
그 답과 동시에, 곧바로 어둠을 뒤집어쓰며, 검게 물들었다.
오랜만의 블랙 머라우더 폼.
“단죄할 녀석들이 보여서 말이지.”
그 말을 유밀에게 건네는 것을 마지막으로, 나는 어둠을 내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