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292)
마법소녀 아저씨 292화(292/671)
292. 밤의 끝.
짧게 이어진, 그렇지만 당사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기나긴 밤이라 느끼는 대결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
노인은 망가져 가는 몸으로도 자신의 기억 속에 삼켜졌던 모든 절기를 끌어냈다.
비록 기술을 사용하는 대가로, 몸 어딘가가 망가져 가지만.
노인은 제 삶의 마지막을 불태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라이거의 턱을 가격하는 대가로, 손이 망가졌다.
라이거의 공격을 피하는 대가로, 무릎이 짓이겨졌다.
반격할 수 없는 공격을 막아 내는 대가로, 무기가 부러졌다.
라이거와 노인 사이의 십여 수.
그것으로, 모든 전투가 끝났다.
노인이 이긴다는 것, 그 자체가 불가능했기에.
모든 세계를 살펴보아도, 노인이 이기는 경우는 존재치 않았다.
그만큼 힘의 차이가 있었기에.
넘어선 자의 시선은, 가능한 것의 가능성을 조금 끌어올려 주는 것.
이는 절대적인 사실로 만들어 준다는 의미가 아니다.
시선 속의 지적 생명체가, 인지하지 못하는 변수를 제거하거나 뜯어고침으로써, 희박한 가능성에 도달하게 해 주는 것.
첫 카운터가 성공할 확률은, 만에 하나. 어쩌면 그보다도 더 아래.
이는 노인이 제 몸에 담은 기술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었다.
노인의 몸이, 이 장소가. 그 모든 것이 노인에게 불리했기에.
그렇지만 시선이 닿음으로써, 순수한 기술과 힘의 장이 된 이 장소에서. 노인이 카운터를 성공시킬 세계는, 백의 하나가 되었다.
여전히 압도적으로 불리한 세계 속에서.
노인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하여, 한 번의 공방으로 결정될 자신의 패배를.
조금 미룰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행동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노인에게 있어, 늘어난 것은 시선의 숫자뿐.
넘어선 자의 시선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도 없다.
그것이 모인다 한들, 삶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며, 행복한 미래가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삶에서, 시선은 인지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이고, 그들의 관심으로 삶이 더 기구해질 뿐.
그렇기에, 지금의 노인에게 있어서는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노인은 이 밤이 끝나기 전에 숨을 거둘 것이고.
라이거는 세계를 파멸시키려는 존재도 아니기에.
영웅으로 칭송받을 일도 없다.
노인이 제 삶의 끝에서 보여준 신기에 가까운 기술조차. 라이거를 제외한 그 누구도 보지 못했다.
노인이 라이거를 붙잡은 시간은, 기껏해야 일 분가량.
라이거가 계획을 달성하는 데에, 어떤 지장도 줄 수 없는 시간.
노인은 제 고통과 피의 대가로.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노인도 알고 있다.
당장 지금 노인의 머릿속에 흐르는 생각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냥 놓아두면 되었을 것을.’
노인이 라이거를 발견한 것은, 정말 우연한 일이었다.
노인은 그날따라 울렁이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고.
이에 평소처럼 술이라도 마시고자 사람이 없고, 구석지며, 달을 볼 수 있는 장소인, 구 기록 보관소의 옥상으로 이동했을 뿐.
라이거는 노인을 발견하지 못했고.
노인 또한, 제 기운을 숨기고 있는 라이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술을 한 모금 더 마시고자, 치켜든 금속 술병에.
라이거가 비치기 전까지는.
노인은 못 본 척 지나갈 수 있었으리라.
이미, 그는 세상을 등진 지 오래였으니.
제자도, 써 둔 서적도, 친우도.
그는 옛 추억을 지주 삼아, 인류에 대한 과거의 헌신으로 목숨을 이어가는 자.
죽지 못해 사는 노인.
은퇴 후, 수많은 사건이 있었을 때도.
힘이 없음을, 자신이 알지 못했음을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이.
그러나 노인은. 하늘에서 뛰어내렸다.
그것은 노인 스스로 자신의 끝이 다가옴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명확한 시간까지는 알 수 없지만.
곧, 끝이 다가옴을.
그렇기에, 노인은 자신이 싸울 수 있는 전장을 찾은 순간.
자신이 사상이 뻗어 나가기도 전, 무의식적으로 뛰어내렸으니.
그렇게 시간이 흘러.
노인은 후회한다.
그때 뛰어내린 것을.
손도, 무릎도.
한때 자신과 함께 싸운 파트너이자.
힘을 잃어버린 후, 제 손이자 발이 되어 준.
수십 년 전, 고향에서 깎아 만든, 무엇 하나 특별할 것 없는 나무 봉이 부러져 제 수명을 다했음을.
그렇게, 이 싸움의 과정에서, 남은 모든 것을 잃어버렸음을.
그렇기에, 노인은 뛰어내림을 후회한다.
그렇지만.
노인은 만족한다.
후회도, 만족도.
그 무엇 하나 거짓은 없다.
뛰어내렸기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과거의 것을 되찾았음을 알기에.
지금은 이미 죽어버린 동료들이 뛰어다니던 전장의 열기를.
잃어버린 줄 알았던, 자신의 절기를.
떠올릴 수 있게 된, 힘의 흐름을.
모든 것을 잃었기에, 되찾을 수 있었던 것.
그렇기에, 노인은 만족과 후회를 느끼며.
부러져 버린 무기를 놓고, 입을 열었다.
“내가 졌네그려.”
노인이 말한 것처럼, 누가 보아도 이 전투의 승패는 명확하다.
라이거의 팔이 스친 것만으로도 노인의 무릎은 박살 났고.
정면 승부 한 번에, 무기가 조각나 흩어졌다.
그에 비해, 목제 봉에 대여섯 번 구타당한 라이거의 몸에는 어떤 상처도 남지 않았다.
이것이 근본적인 힘의 차이.
기술로 힘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넘어설 수 있는 한계가 있는 법.
라이거와 노인이 가진 힘의 차이는.
노인이 인(人)마저도 조금은 감정의 기복을 보여줄 신기를 몇 번이고 행했음에도, 넘지 못할 벽.
그렇기에 노인은 패배했다.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패배를.
단, 한 존재만을 제외하고.
“납득할 수 없다!”
고함이 고요한 밤을 뒤흔든다.
잠입 작전이기에,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조차 잊어버린.
무인. 라이거의 고함.
“나는 노공에게 정타 한 번 맞히지 못했는데, 어떻게 패배를 인정하란 말입니까!”
쿵. 쿵.
땅을 울리고, 소리를 내지르며 노인에게 다가서는 라이거.
라이거치고는, 그리 큰 목소리는 아니다.
그의 진심이 담긴 목소리는, 물리적인 힘을 띠고, 주변을 파괴하니.
그의 뇌리 어딘가에, 이 작전이 잠입 작전이란 사실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다는 증명.
그렇지만, 그 목소리는 밤의 고요를 깨트리기엔 충분했고.
누군가가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목소리가 흘러나온 위치를 찾아,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라이거 또한, 그것을 알고 있다.
그의 발달한 감각은, 주변 상황을 민감하게 잡아내고 있으니.
그렇지만, 라이거는 구 기록 보관소의 입구가 아닌.
노인을 향해 다가간 후.
그의 쓰러진 몸을 잡아들었다.
노인의 입가에, 쓴웃음이 감돌고.
“어서 몸을 일으키시고, 다시 한번 …다시….”
모든 것을 알아차린, 라이거의 목소리가 작아지기 시작한다.
손을 통해 흘러드는 노인의 몸 상태를 통해.
노인이 죽어가고 있음을, 이미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은 몸 상태임을.
몸의 주인인, 노인보다도 명확하게 파악해냈다.
라이거의 얼굴이 무표정하게 굳어지고.
노인의 시선은 그것을 잡아내었다.
“몸 한 번 잡아 봤다고 그런 것까지 다 아나 보지?”
노인은 비꼬는 말을 던졌지만.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라이거는, 자그마한 비꼼조차도 받아들이지 못할 만큼 심각한 분위기를 주변에 흩뿌렸다.
노인 또한 그 분위기에 동화되어, 굳은 표정을 지었으며.
곧, 입을 열었다.
“얼마나 남은 겐가?”
모든 것을 받아든, 체념이 깃든 말.
“길면 한 시간…. 일 겁니다.”
곧 죽습니다. 라는 표현을, 최대한 에둘러 뽑아낸 말.
“그렇구먼. 이미 죽었어야 할 몸뚱어리란 말이지.”
노인은 눈앞에 자리한 괴인의 배려를 알아차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노인의 옷을 붙잡아 끌어당겼던 라이거도, 그 행동을 막지 않았고.
“그럼, 할 일을 하게나. 괴인…. 아니지, 그대도 이름이 있는가?”
초탈한 노인이, 그리 물었다.
“…라이거라 합니다.”
“그렇군. 라이거, 그대가 할 일을 하게나. 그것이 승자의 권리니 말일세.”
승자의 권리.
그 말이 라이거를 괴롭힌다.
라이거는, 자신이 승자라 여기지 않고 있으니.
그렇지만 그 말은, 라이거의 생각 한구석에 자리했던, 라이거에게 주어진 계획을 다시 떠올리게 하였다.
라이거의 마음속에서 갈등이 시작되었다.
무인으로서의 자신인가, 결사로서의 자신인가.
갈등은 끝없이 이어졌지만, 결단은 빨랐으니.
“하나 여쭙겠습니다.”
“뭔가.”
“마지막 소원은, 아니면 남기고 싶은 말이라도 있으십니까.”
노인의 생명이 다해간다.
이젠 입을 열 힘조차 없는 노인.
모두가, 그것을 알고 있다.
“소원이라…. 하나 있긴 있군그래.”
얼마 전까지의 노인에게 있어, 미래는 아무래도 좋은 것이었지만.
라이거와의 투쟁 속에서, 한 가지 소원이 그의 내면에 떠올랐다.
“책…. 그래, 무공서를 쓰고 싶군. 그 녀석들이 그렇게 아득바득 한 권을 써낸 이유를 이제야 알겠어.”
모든 무인이 가르치는, 글 쓰는 재주를 타고나지는 않았기에.
그 결과물은 대부분 엉망이었다.
대다수의 무공서는 저자가 가진 기술의 편린조차 담지 못했으며, 누군가는 글의 오류로 제 기술과 전혀 다른 결과를 내놓는 무공을 적었다.
써 내려가는 자신들 또한,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들은 글을 남겼다.
절망에 집어삼켜져, 미래를 꿈꾸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자기가 가진 기술을 노랗게 바랜 종이 위에 써 내렸다.
한 가지, 마음을 담고.
“누군가의, 초석이 된다…. 그래…. 남기는 것은, 그거면 된 거지….”
그 결과가, 자신이 쌓아 올린 마지막과 달라져도 상관없다.
그 결과가, 세상의 빛을 볼 일이 없어도 상관없다.
그 결과가, 보답받지 못할지라도.
그들은 책을 써 내렸으며.
누군가는, 과거의 사람이 남긴 책을 통해 길을 찾았다.
기술은, 인류는 그리 발전했기에.
남기는 것은, 작은 돌 하나.
설령,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돌 하나일지라도.
먼 미래 쌓아 올려질, 금자탑의 하단부.
그 누구도 보지 않을 장소, 그곳에 자신들이 자리함을 알고 있기에.
“…그렇지만, 시간이 없네그려.”
‘일주일, 아니 조금이라도 빨리 만났으면 좋았을 것을.’
노인은, 그리 생각한다.
투박하게, 자신이 가진 것만 써 내려간다면.
일 주. 아니, 하루면 족하다.
그렇지만, 그 깨우침이 너무나도 늦었기에.
노인은 이제 그저 사라질 뿐이다.
어떤 외적인 개입이 없다면.
“…하나 더 묻겠습니다.”
라이거가 입을 열었다.
“…….”
노인은, 말이 없다.
이제, 그럴 기운조차 남지 않았기에.
“정말 차라리 죽여줬으면 하는 고통 속에서라도, 조금이라도 더 살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하십니까?”
라이거는 이럴 때가 아님을 알고 있다. 이미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려오고 있으니.
그렇지만, 라이거는 계획을 포기하는 것을 선택했다.
이 선택의 대가로, 결사에 문책당하더라도.
하람 회장님이 내려주신 계획이 실패해도 좋다고.
그렇지만, 노인의 말이 돌아오지 않는다.
라이거는 움직이지 않는다.
발소리가 가까워져도.
노인의 심장이 느려져도.
그리고, 노인이 숨을 거두려는 순간.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죽으려는 쓰러짐이 아닌.
의지가 담긴 끄덕임.
라이거는 그것을 받아들여.
다섯 손가락을 노인에게 찔러 넣었다.
심장 주변과 명치를 꿰뚫는 일격.
수많은 수련의 결과로써, 강철보다도 단단한 손가락은, 말라붙어 물기 하나 없는 노인의 피부를 꿰뚫었고.
구멍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 대신.
그 안에, 힘을 심었다.
검은 힘.
이치를 뒤틀고, 세계를 집어삼키는.
그런 힘을.
이는 라이거가 내준 힘이기에, 그리 오염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한들, 힘은 힘이다.
라이거가 혈을 뒤틀고, 노인의 의사를 무지하며 강제로 집어넣은 힘.
이는, 근본을 뒤트는 악의가 아니기에, 타락에 도달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한들.
힘이 보유한, 난폭함이 어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은 힘은.
제 보금자리가 죽음에 다가서기 시작했기에.
몸을 되살리기 시작했다.
살과 피. 그리고 내장을 제물로.
피부 안에 자리한, 살코기를 에너지로 변환시켜.
스스로를 잡아먹으며, 새로운 주인의 수명을 늘려나갔다.
비록 그것이 주인에게 막대한 고통을 유발하고.
결국, 현재를 위해 미래를 소모하는 행동이어도.
힘은, 그것을 수행하였다.
그 결과로서, 노인은 지금 당장은 살아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장이 사라지고, 근육이 괴사하여.
피조차 남지 않은 이가.
얼마나 오래 살 수 있겠는가.
길어야 사흘.
짧으면, 하루 안에 끝을 마주하리라.
노인은 힘을 매개로 전해진 라이거의 생각을 통해, 그 모든 것을 깨달았다.
고통을 대가로 얻은 수명이지만, 그조차도 길지 않음을.
그것을 깨달은 노인은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고.
부적을 손에 든 채, 사라져가는 라이거를 향해 한마디를 남겼다.
“…고맙네.”
그 말을 끝으로, 노인은 복도를 내달렸다.
몸에서 흐르는 피가, 복도를 더럽히지만.
망가진 무릎과 박살 난 손이 고통을 호소하지만.
그런 것을 무시하고.
그저, 종이 한 뭉치를 얻고자.
복도를 내달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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