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299)
마법소녀 아저씨 299화(299/671)
299. 밤과 술과 달
무인 연맹에서 볼일도 끝나.
오늘 아침 무인 연맹을 떠날 준비를 끝냈다.
연을 맺은 이들과 작별 인사도 끝냈고, 내가 벌인 일 덕에 바빠진 무인을 보는 것도 조금 양심에 찔려.
빠르게 연맹을 뜨려 했건만.
그놈의 영감탱이들이 어디서 내가 떠난다는 정보를 입수했는지.
“작별주도 없이 떠날 생각인가?”
“요즘 젊은 애들은 정이 없어 정이.”
“내가 하람이 놈 어릴 때부터 봤는데, 이제 다 컸다고 우릴 무시하는구려.”
“이걸 천마가 봤으면 뭐라고 하겠냐, 이놈아.”
“너희가 망치 녀석 제자냐? 너희 스승 어릴 땐 말이다….”
“인무불살이 보면 노하겠다. 이 녀석아. 마법소녀라지만, 무인으로서 몸을 담은 적이 있다면, 작별을 나눌 때도….”
“아직도 주먹이면 모두 해결되냐고 믿느뇨. 사람이란 물처럼 흘러갈 줄도 알아야 하거늘.”
“거, 술 먹을 핑곗거리가 없어 네놈을 찾는 거니. 와서 술이나 받거라.”
“가기 전에 내 제자 녀석 머리 좀 후려쳐 주면 안 되겠는가? 그 녀석이 힘 좀 세졌다고 기고만장해서.”
단체로 찾아와 날 괴롭히기 시작했다.
심지어, 저 말을 하는 영감들 대부분은 여기 머무는 동안 툭하면 같이 모여 술을 마셨던 알콜 중독 노인네들.
그렇기에 무시하고 내치려 했지만.
* * *
하, 그래 내가 참는다.
하루 출발이 늦는다고 일정에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옛 영웅 노인네들 술 상대는 해 줄 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어느 때건, 인류를 위해 헌신한 이들에게는 술 한잔쯤 마실 자격이 있으니.
노인이라고 싸잡기는 했지만.
나이가 삼사십 대인 사람들도 적지 않다.
관리국 설립 전 10살에서 20살쯤 각성하고, 이후 은퇴했다면 그런 나이가 될 사람들이니.
어찌 되었건, 여기 자리한 이들은.
대부분 어디 문파의 장로급이나, 이사급 사람들.
심지어 대놓고 고기를 뜯고 술을 마시는, 소림사 땡중도 있다.
소림사는, 예부터 내려온 무술이 이계의 힘과 형(形)을 만남으로써 현실이 되어, 그대로 문파가 되어 버린 특수한 케이스.
다만, 인지도와 달리, 그리 인기가 많은 유파는 아니다.
무공을 뜯어고치는 사이, 어디서 문제가 생긴 건지, 무공에 출가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버렸고.
제 잘난 맛에 살아가는 요즘 영웅들은 굳이 그런 문파에 들어갈 이유가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일반인에게는 인기가 많은 편이다.
일단, 인지도가 높고.
이상하게 소림사에서 길게 수련한 이들 중, 갑자기 각성하는 무인의 비율이 꽤 높은 데다, 그런 이들은 각성 후에도 소림사에 기반을 둔 무공을 사용하니 말이다.
관리국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술과 힘을 수련한 이가 무인으로 각성할 확률이 높다고 하니, 아마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그런 연구 결과에다가, 내가 여왕에게 들은 말을 종합해 보면.
아마, 인(人)이라는 끝의 존재가. 그런 이들을 좋아하는 것 아닐까.
무협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자신을 단련하는, 마법이나 초능력과 같이 특별한 힘이 없는 이들.
무인을 각성시키는 것이 인(人)인지는 내 지식이 모자라 알 수 없지만, 여왕에게 들은 말로 유추해보면, 아마 그런 성정일 것 같다.
그럼, 아무 힘도 없고 비실비실하던 이가 갑자기 무인으로 각성하는 경우는 뭔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지만.
내 알 바인가.
애초에 나는 남자였는데 마법소녀로 각성한 케이스라고.
운호 녀석 눈이 삔 게 틀림없다.
그와 관련해서 옛날에 물어본 적이 있는데, 운호는 ‘엥? 정의로운 마음만 있으면 되는데용?’ 이라는 원론적인 답변만 되돌릴 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예외적 상황과 내 이야기야 어찌 되었건.
지금 술판을 벌이는 이들은 무인 사회에서 힘과 명성을 가진 이들.
그러니, 이들을 설득할 수 있다면, 무공을 공개하는 과정이 조금이나마 더 빨라지겠지.
그런 생각에, 이 술판을 시작할 때부터 그에 관해 어떻게든 운을 띄워 보려 했건만.
“오늘은 달이 밝구만 그래.”
“예끼, 오늘뿐인가? 산 위의 달은 언제나 밝지! 어제도 그랬고!”
“어제 자네는 술에 취해서 곯아떨어졌네만, 달을 보긴 했는가?”
이 영감탱이들은, 술에 취해 헛소리나 하고 있다.
더럽게 못 쓴 시를 술김에 안 내뱉는 것을 다행으로 알아야 할 지경.
이 주정뱅이들의 대잔치 속에서, 술에 취할 수 없는 몸을 가진 나는 이 알콜 혼돈을 그저 견뎌낼 뿐.
“요즘 애들은 말이야, 근성이 없어 근성이. 라떼는 형 하나 배우겠다고 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 일만 번 휘두르기를….”
“예, 예 그렇군요. 저도 그랬으니 잘 알죠. 그러니 한잔 쭉 들이키시죠.”
빨리 잠재워서 조용히 시켜야지.
비슷한 말이 대체 몇 번째야.
분명, 영웅 기수로만 보면 내가 선배인데, 이 양반들은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많고, 영웅이 되기 전부터 무예를 수련한 양반들이라 내가 뭐라고 하질 못하겠다.
“거 내 사손도 그렇다네, 창을 휘두르는 것보다, 인터넷 방송이니 텔레비전 프로니 하는 것에 출현하는 것을 더 즐기지 뭔가. 에잉 쯔쯔. 무라 함은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신을 관조하는 것이 더 중요할 터인데. 그러니 깨달음 한 번 제대로 얻지 못하지.”
“저도 그런 방송이라면 해 본 적 있습니다만, 확실히 남의 시선을 받는 것에는 단기적으로는 뭐라 이루 말할 충족감이 있죠. 저야 부질없음을 깨닫고 관두었습니다만.”
아마, 그 사손이라는 영웅도 나름 사느라 필사적이라 그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부정하기보다는 이렇게 말하며 술에 취한 영감의 비위를 맞춰 주려 노력했지만.
“거짓말하지 말어. 하람이 방송하는 거 우리가 다 모여서 봤었는데, 다들 즐겁게 보다가, 정책 위반으로 정지당했을 때는 다들 빵~ 터졌지.”
…잠깐?
그 내가 어떻게든 웃음을 내보이며, 실시간으로 괴수 잡는 꼬락서니를 이 양반들이 봤다고?
아니, 나도 그 건에 대해서는 반성하고 있다.
빈 통장과 젊은 혈기로, 아무튼 되겠지 하고 부끄러움을 참고 뛰어들었으니 말이다.
돌이켜 보면, 인생의 부끄러운 한 장면일 뿐이지만.
“봤지. 봤어. 망치 기술 좋은 건 여전하더니만, 천마 녀석 제자인 값은 하더라니까.”
“그거랑은 별개로, 얼굴에 핏줄이 돋을 만큼 참으면서 강제로 웃음을 만드는 것은 좋은 술안주였지.”
“동영상이 전부 내려가서 유감이지 뭔가. 아직 남아있다면 여기서 보여 주면 좋을 텐데 말일세.”
“그거라면 제가 가까스로 저장한 것이 있습니다만.”
“아, 가지고 있어? 그럼 켜 봐. 마침 저기 텔레비전도 있네.”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잠깐 멈춰 이 미친 영감탱이들아.
아니 지금 영상을 틀려 하는 놈은 영감이 아니라, 오십 대는커녕, 사십 대 초반 남자놈.
영웅명은 청룡검이고, 해외에 갔을 때 블루 드레이크 블레이드라고 불려서 다들 빵 터진 기억이 있어, 꽤 많이 놀려 먹었던 녀석.
그 녀석이 지금 제 핸드폰을 들고 텔레비전 앞으로 달려가고 있다.
그것을 막고자, 자리에서 일어나 청룡검을 붙잡으려 했지만.
“좋은 게 좋은 거 아닌가, 같이 보세나.”
“일어날 힘이 있다면, 술이나 좀 따라 주게나. 내 잔이 비었어.”
“뭐야? 시 한 수 뽑게?”
만취한 영감탱이들은, 내 주변을 감싸며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했다.
“아니, 댁들 안 취했지? 일부러 이러지?”
“무슨 소린지 모르겠구먼. 아이고, 이 젊은이가 사람 치네.”
치긴 뭘 쳐 미친 영감아.
난 아무것도 안 했거든?
그리고 댁이랑 나랑 대여섯 살 차이밖에 없어.
그렇게, 힘을 뽑아 여기저기 달라붙는 영감을 떨쳐내려 했지만.
저렇게 대자로 눕는 통에 난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했고.
“술자리에서 흥을 깨는 건 좀 어떤가 하네~.”
“닥치쇼 만독여제 할멈. 댁은 술 안 취하잖아.”
저건 빼박 맨정신이지.
지금도 약빨로 20대 여성 외형을 한 채, 허벅지나 드러내고 술을 홀짝이고 있지만, 그런다고 그 시꺼먼 속이 가려지나.
“누가 할멈이야 이 여장 변태가!”
내 말에 찔리는 것이 있던 것일까.
만독여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달려들었고.
나 또한.
“누가 여장이야 이 팔십 대 할머니가. 난 어쩔 수 없는 거고, 댁은 좋아서 하는 거고.”
여장이란 말에 화가 나, 그대로 쪼아대었으니.
“하, 난 아직 칠십 대 청춘이거든? 간만에 령파독(靈破毒) 맛 좀 보려고 이러니?”
“아이고, 칠십 대 청춘은 무슨. 그럼 나도 청소년이다. 이 할머니야.”
“오냐, 입에 독 좀 부어 주마.”
말다툼이 계속되자.
만독여제는 손을 치켜들며, 오른손 끝에서 보랏빛 액체를 뽑아내었고.
보랏빛 손이, 나를 향해 쏘아지려던 순간.
“거, 만독 할멈. 그 건에 대해서는 하람이가 맞지. 그젠가도 산 아래에서 제 반의반도 못 산 남자 꿰고 있더니만. 나이가 부끄럽지도 않은가.”
“뭐야? 만독이가 그러고 있었다고? 말세로다.”
“그래서 성공했던가?”
“당연히 실패했지. 얼굴만 봐서는 예쁘장하지만, 저 표독스러운 내면을 어떻게 숨기겠는가. 그러니 아직까지 남자 한 번 못 사귀지.”
갑작스럽게 화제를 내가 아닌 만독여제로 바꿔, 기나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각 문파의 노인네들.
그것이, 만독여제의 역린을 건든 것일까.
“죽어.”
만독여제는 무어라 이루 말할 수 없는 귀기 어린 표정을 내보이며, 날 무시하곤 영감들에게 파란 독을 뿌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만독이가 미쳤다!”
“노처녀가 한이 쌓이면 나라를 멸망시킨다더니 딱 그 꼴이구나….”
독이 사방에 뿌려진 덕에, 곡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긴 하지만.
아마, 죽진 않을 것이다.
그나저나, 만독이는 대체 뭐야.
저 양반들도 참 즐겁게 사네.
그렇게, 파랑 독을 맞고 비명을 지르는 노인네들을 안주 삼아, 단맛이 느껴지는 탁주를 들이켜는 사이.
-자.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의 크림슨 해머는 망치를 사용해서 사악한 괴수를 민스 고기로 바꿔 보겠어요.
아마, 내 목소리인 것 같은.
국어책을 읽는 것 같은 부자연스러움을 넘어, 단어 하나하나를 힘겹게 뽑아내는, 어떻게든 살갑게 꾸민 목소리가 방 안에 울리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목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못 볼 것을 볼 수 있었으니.
텔레비전 화면 속.
어떻게든 미소를 띠고자, 얼굴을 기묘하게 일그러트린 채.
얼굴 여기저기 핏줄을 세운.
아마, 나인 것 같은, 푸른 마법소녀가 텔레비전 화면에 떠올라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오래간만에 보는 데도 여전히 술안주로 딱 좋네그려.”
“암, 이건 무인 연맹에 영구 보관해야지. 저 망치 휘두르는 것 좀 보게나. 둔기술의 정석이지 뭔가. 꼭 다들 시청하게 해야 해.”
그렇게 늙으신 양반들이 술을 마시며, 코멘트를 남기는 사이.
영상은 망치를 사용해 불쌍한 괴수 하나를 다짐육을 만드는 장면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는 게 잔혹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 녀석은 재생 능력이 뛰어나거든요. 그럼, 갑자기 되살아나는 변수를 방지하기 위해. 돈가스 고기처럼. 팍팍.
그렇게 말하며, 카메라를 보고 뒤틀린 미소를 짓는 마법소녀.
그 손에는, 가시가 잔뜩 달린 분쇄용 망치가 들려있고.
상하좌우 어디로도 미동을 전혀 보이지 않은 채, 카메라에 딱 시선을 고정하며.
팔만을 움직여, 꿈틀거리는 고깃덩이를 향해, 망치를 내리꽂고 있다.
저건 내가 봐도 무섭기 그지없는 장면이다. 몸에 아무런 미동이 없는 것이,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닐까 싶을 수준.
“말하는 말은 정석이네만, 이게 방송으로 나가도 괜찮은가?”
“안 괜찮지. 보게. 지금 카메라맨도 토하고 있지 않은가.”
“아 저 우웨애액 하는 소리가 토 소리였어?”
“그나저나, 어떻게 무게 중심을 배분해야 손만 가지고 저리 후려칠 수 있는감?”
“하단부 집중이지. 물리적으로 말도 안 되지만, 발과 지면을 기로 접합시키면 되는 거지.”
“아, 그렇게 하는 거였군.”
계속되는 코멘트가, 방청객 사이에서 흘러나오지만.
나는 어떤 반응도 하지 못했다.
과거의 나를 보고, 생각도 행동도, 모두 굳어 버렸기에.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 시간에 다시 만나도록 해요.
영상에 나오는 괴물이 다진 고기가 됨과 동시에.
아마, 나인 것 같은 마법소녀는.
온몸에 피와 살점을 도배한 모습으로.
입만을 미소 지은 채, 전혀 웃지 않는 눈으로 붉게 물든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며 마무리 멘트를 내뱉었고.
영상은, 그렇게 끝났다.
내 멘탈도 함께 끝나버렸지만.
술자리는 계속 이어졌다.
한 편만 저장한 것이 아닌지, 계속되는 스플래터 영상과.
독에 당해 비명을 지르는 영감탱이.
술에 취해 서로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 또라이들.
미쳐 날뛰며 독을 뿌리는 할멈과 함께.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