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305)
마법소녀 아저씨 305화(305/671)
305. 탐식자(1)
내 이야기에 나오는 적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촉수 형상을 했다는 것.
둘째. 무언가를 먹는다는 것.
다만, 무언가 먹는다는 것이 물질적인 섭취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초반의 적들은, 물질적인 것을 먹는 경향이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최초로 퇴치한 역겨운 촉수는 돌을 먹고 있었고.
이후, 나오는 적들 또한 뭔가를 먹고 있었으니까.
다만, 어느 순간부터 물질을 뛰어넘는 것들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기억, 관계, 시간, 공간, 존재.
무어라 이루 말할 수 없는, 개념으로만 존재하는 것.
그리고, 그 방향성은 점차 수상쩍어졌으니.
청주에 나타났던 거대 촉수. 그것은 감정을 섭취했으며.
처음 보았을 때, 저 공통점에서 어긋났다고 생각했던 그레이 이터.
간부급이라서 다른 줄 알았지만.
그것은, 우리 모두의 착각.
진정한 적은 그레이 이터 내부에 숨어있던, 용암 색 촉수.
일단 둘은 떼 놓을 수 없는 관계기에, 하나로 취급하지만.
남은 사체에서 발견한 연구 결과를 보면, 명백하게 두 개체는 다른 존재다.
거대한 갑주 도마뱀과 꽃게들은 물질의 구성 요소와 진화 방향성에서 유사성을 보이지만.
용암 촉수는, 그 갑각류들과 생체적 유사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이질적인 존재.
아마, 그들은 어떤 이유로 촉수에게 조종당했을 것이다.
촉수가 최후의 순간 자신의 만찬을 시작하기 위한 장기말로써.
물론, 강함만 따지자면 용암 촉수보다 거대한 도마뱀이 더 강하지만.
다양성을 먹고, 회색을 만들며, 그것을 조종하던 촉수.
그것은 끔찍하기 그지없다.
그것을 막지 못했다면, 인류 또한 그 촉수의 장기말이 되지 않았을까.
회색으로 변한, 모든 것이 똑같은 인간이 제 개성을 잃고, 이계의 수하가 되어 다른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광경.
그런 끔찍한 장면이 머릿속에 재생되었기에.
그 상상을 털어 내고자 고개를 흔든 후, 지금 상황에 집중했다.
“일단, 촉수 형태고 뭔가를 처먹고 있다고 봐야겠지?”
“그러겠죵…? 그 꽃게들도 결국 위장이었으니까요.”
운호 또한 나와 같은 의견.
그렇기에, 감각을 날카롭게 가다듬은 후, 숲을 천천히 살피기 시작했다.
유럽으로 향하는 도중이었기에, 지금 이 숲은 시베리아 인근에 잔뜩 자리한 침엽수 숲.
동남아시아나 아마존의 정글도 아니고, 가느다란 줄기를 가진 채 높이 솟은 침엽수만 잔뜩 있는 이 숲은, 시야를 가리는 것이 얼마 없어 멀리까지 보여야 정상이겠지만.
“…음산하군.”
“그러게요, 춥기도 하고.”
어느새,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내 눈으로도 꿰뚫어 보지 못하는 안개가 숲을 감싸 안았다.
차가운 냉기가 섞인, 음산한 안개.
고개를 들어보자, 나무 사이에 걸린 태양이 보인다.
너무나도 짙은 안개 탓에, 빛나는 원으로만 보이긴 하지만.
칫.
역시, 자연적인 현상은 아닌가.
아무리 안개가 짙더라도, 감각을 강화하면 뭔가 형태라도 보여야 마땅하건만.
지금 내 과부하 걸린 뇌에 느껴지는 이상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습기가 섞인 냉기.
바람이 나무에 스치며 바스락거리는 소리.
평범하게 안개가 내린 숲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뿐.
그렇지만, 그조차도 내 넓디넓은 감각이 모두 잡아내지 못한다.
마치, 귀까지도 안개가 낀 것처럼.
모든 감각을 방해하는 안개.
이런 게 자연물일 가능성은. 없다.
“운호야. 너도 안개 보이냐?”
“예, 저도 보이네요. 그러잖아도 말하려 했는데, 이 안개가 감각을 차단하고 있는 것 같아요.”
운호는 내 질문에, 자신 또한 나와 같은 답에 도달했음을 알려 주었다.
같이 물어보려 했던, 뒷말도 함께.
“흠….”
어딘가 공포 영화나 공포 게임에서 이런 걸 봤던 것 같은데.
너무 흔해 빠진 설정이긴 하지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떨어진 일행.
만약 이게 클리셰대로 흘러간다면, 나는 제자 녀석들 시체를 보겠구만.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그나저나, 위화감이 너무 큰데.
“운호야. 뭔가 이상하지 않냐?”
“뭐가요?”
“내 적이란 녀석들이, 이렇게 얌전한 짓거리를 하던가?”
그 녀석들 생각을 나로서는 도저히 알 순 없지만.
그놈들은 기본적으로 뭔가를 먹는 존재. 약간의 지능적인 행동을 보여 준 적은 있지만, 이리도 얌전한 것은 처음 본다.
세계에 떨어진 후 우연히 마주쳤건, 내가 지나가는 것을 알아차린 후 함정을 설치한 것이건.
이렇게 조용하게 우리를 끌어들여,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
그것이, 너무나도 이질적이다.
“음…. 그렇긴 하네요. 하도 오래돼서 애매하지만, 보통 선제공격을 가하거나, 요란스럽게 뭔가를 먹으면서 자신이 여기 있다고 알릴 텐데요.”
그래, 그 녀석들 식사는 소란스러우니까.
그렇지만, 그런 소란스러움도.
이 안개 속에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간부급은 다르다는 건가.”
그레이 이터도 따지고 보면 다른 이들과 크게 다른 점은 없었지만.
적어도, 제 만찬이 시작될 때까지 계획을 짜고 식탐을 제어한 것처럼.
이 대적자도, 제 식탐을 위해 배를 곯을 줄 아는 것이 아닐까.
제길.
그러면 귀찮아지는데.
만약 이 짙은 안개 어딘가에서 조용히 나를 노리고 있거나, 천천히 식사를 하는 와중이라면.
나는 그러한 존재를 찾을 방법이 없다.
운호의 마법을 쓰면 가능하긴 하겠지만.
운호가 사용하는 마법 중, 범용성이 가득한 마법의 정체를 알고 나니, 사용하기가 영 껄쩍스럽고.
…여왕의 힘을 빌리다니.
그 변덕스러운 존재가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물론, 최후의 상황에서는 사용해야 하겠지만.
일단 지금은….
“돌아다녀 볼까.”
방법이라고는 그거뿐이니.
* * *
꽤 긴 시간이 지났다.
숲을 달려도 보고, 옆에 있는 애꿎은 나무를 꺾어 멀리 날려 보기도 하고, 망치를 타고 하늘로 솟구쳐 보기도 하고, 주변 땅에 망치를 갈겨 보기도 했지만.
“뭐 바뀌는 게 없네.”
“그러게요.”
여전히 난 숲속에 있다.
시간이 지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태양은 아까 전보다 한참이나 기울어져 있으니까.
단지, 숲에서 나가지 못할 뿐.
“이젠 이것도 질렸는데.”
대체 요즘 이렇게 날 가두는 애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마열차에서도 그렇고, 라이브러리안의 적이었던 거기도 그렇고.
이 안개에서 무슨 적이라도 나타날까 싶었지만.
환각이고 뭐고, 아무런 변화가 없으니 짜증이 날 지경.
“…역시 그냥 싹 밀어 버릴까.”
이미 한번 땅을 강타하거나 나무를 밀어 버리는 파괴를 일으킨 적은 있지만, 그 파괴로 달라진 장소를 다시 본 적은 없다.
그렇다면, 아예 망치 풀파워로 지면을 내리쳐 숲과 함께 안개를 날려 버리면 되는 거 아닌가 싶긴 하지만.
“안 된다니까요. 둘이 어디 있을 줄 알고요!”
내 폭주를 막으려는 듯, 운호가 내 뺨을 툭툭 건들며 귓가에 고함을 내질렀다.
평소의 운호가 저랬다면, 운호의 몸을 걸레처럼 쥐어짜 버렸겠지만.
그래, 저게 문제지.
지금은 운호 말이 맞는 데다가, 운호도 적과 싸우기 위한 전투 모드.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 아니니, 짜증도 솟구치지 않는다.
차라리 혼자 왔어야 했어.
제자 둘이 휘말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싹 갈아 버렸을 텐데.
백시현과 한아빈이 나처럼 안개에 감싸여 숲을 헤매고 있다고 생각하면, 제자들이 휘말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공격은 모두 봉인된다.
물론, 필살기를 날려, 나와 적대하는 대상에게만 영향을 끼치도록 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 뒤에 뭐가 올 줄 알고.
바로 직전 적이었던 그레이 이터도 10초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다.
그런데, 내가 쓰러질 각오를 하고 공격을 날렸다가 적이 버티면?
혹시나 에너지를 먹는 적이라면?
‘만약에.’라는 가정이 끝도 없이 불어나 버리니. 무언가 이 상황을 바꿔 버릴 만한 행동을 할 수가 없다.
완전히 외통수구만 그래.
물론, 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이 너무나도 제한되어 버렸을 뿐.
역시, 이런 방식은 내 취향이 아니다.
평소처럼 적과 대립하여, 망치를 날리는 것이 내 주특기인데.
보이지 않는 적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리라니.
그런 것은 라이브러리안이나 멕베스나 해야 할 일.
그리 생각하며, 조금 더 발걸음을 옮겼고.
곧, 마음을 다잡았다.
저어어어엉말, 하기 싫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하는 수 없지.
“운호야.”
“왜 그러시죠?”
“기원의 노래. 여왕 좀 불러라.”
“음? 아까 쓰지 마시라면서요.”
그땐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릴지는 몰랐지.
근데, 지금은 남은 패가 기다리는 것과 그것밖에 없으니 어쩌겠냐.
여왕이 변덕스럽기는 해도, 뭔가 이 상황을 바꿔 주긴 하겠지.
“아까는 아까고, 지금은 지금이니까. 그냥 불러.”
“그러죠. 뭐.”
운호는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큰 관심이 없는 듯.
내 말에 별달리 토를 달지 않고, 몸을 세우며 제 행동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노래가 흘러나온다.
“짙은 안개 저 너머, 세계의 창조자. 모순의 여왕에게 바라올지니.”
짐승의 영창.
다듬어지지 않은 고대의 마법.
그렇지만 아름다운 노래.
그것을 듣는 이에게 아까울 정도로, 아름다운 노래.
“잔혹한 적의 손길에 붙잡혀, 제 길을 찾지 못한 전사가. 멀어 버린 눈으로 소망하옵니다.”
노래가 안개를 뚫고 울려 퍼진다.
비유가 아닌, 현상으로써.
노래가 퍼져 나갈수록, 내 감각 또한 그 범위를 넓히고 있으니.
“눈먼 전사의 칼이 적에게 닿도록, 그의 손을 이끌어 주옵소서. 그의 분노가 적에게 닿도록.”
보이지 않던, 숨겨짐이 감각에 이끌리기 시작한다.
달려갈 준비를 하였다.
영창이 끝나지도 않았건만, 여왕이 알려 주는 방향을 향해.
“사람의 눈에 냉기를 씌우는 차가운 어둠을 몰아낼 빛을.”
안개가 옅어진다.
우리가 나아갈 방향의 안개가.
“빛나는 길을 우리 앞에!”
영창의 끝과 함께 나타난 빛을 달려 나간다.
피의 향기가 느껴지는 장소를 향해.
이 변화 없는 세계에서 생겨난 변화를 향해.
비록, 그것이.
절망일지라도.
“아?”
달라진 것이 보였다.
안개가 걷혀 나간, 공터.
거기에 한 사람이 앉아있다.
나무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은 채.
마치, 평온하게 잠을 자듯.
그 광경엔, 어떤 공포도, 어떤 절망도 없다.
평화로운 광경이다.
녹색 숲에, 잠들 듯 누워있는, 사람.
한 폭의 그림처럼.
빛을 받으며 잠든.
그렇지만, 그것이 평화롭지 않음을.
내 감각이. 내 직감이.
내 이성이 알려온다.
모두 부정한다.
시각에 속지 말라고.
저기에는, 잔혹한 피의 냄새가.
저기에는, 응어리진 이계의 힘이.
저기에는, 어두운 죽음의 악의가.
내려앉았다고.
익숙한 광경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보는 것은.
그렇지만, 죽음의 저주를 받은 이가.
절대로 죽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은 이라면.
분홍빛 머리칼을 한.
아직 제 싹을 피우지도 못한 제자라면.
“아빈아…?”
그렇기에, 그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내 목소리가.
그녀를 깨우려 노력한다.
영원한 잠 안에서.
그에 응답하듯.
조용히 눈을 감고 자고 있던 한아빈의 머리가 기울어졌다.
마치, 잠에서 깨어나기라도 하듯.
그렇지만, 소망은 배신한다.
머리가 흔들려 머리칼이 흩날리고.
머리칼에 감추어졌던, 상처가 나타난다.
이마를 관통한, 작은 구멍.
총기와 다르게, 날카롭게 그지없는 송곳으로 뚫기라도 한 듯.
피부를 훼손하지 않고 뚫린, 어둡고 공허한 구멍.
그것을 보았지만, 부정했다.
그것을 긍정하면, 내 제자의 죽음이 확정되기에.
“야, 아빈아. 일어나. 놀리지 말고.”
그렇기에, 그녀에게 다가가 뺨을 쓰다듬었지만.
맥박 하나 없는 그녀의 피부가.
이제야 구멍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피가.
그녀의 죽음을, 내게 긍정케 하였다.
구멍을 부정한다 한들.
바꾸지 못할, 죽음의 증거가.
이성이 날아간다.
리미터가 풀려간다.
모든 것이 내 잘못이다.
죄악이 어깨 위에 내려앉는다.
진작에 모든 것을 내 앞에서 날려버렸어야 했는데.
무슨 뒷일이냐.
내가 얼마나 잘났기에 여왕을 믿지 못하겠다는 거냐.
나는, 그런 짓을 하고도 남을 구할 수 있을 만큼 강한 이였나.
오만에도 정도가 있다.
나는, 내 오만의 증거로써.
망치를 내리쳤다.
적과 함께, 모든 숲을.
적과 함께, 모든 안개를.
그리고, 망치는 그에 응답해.
모든 것을 파괴했다.
제 살아있을 시절 모습을 간직한, 제자를 제외한.
주변의, 모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