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308)
마법소녀 아저씨 308화(308/671)
308. 탐식자(0)
앞 유리창에 비친 햇빛 탓일까.
잠깐 생각이 끊어졌다.
그렇지만, 곧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떠올렸다.
그래,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었지.
오래간만에 자동차에 탄 탓인지, 나도 모르게 흥분한 것 같다.
어디 보자.
자동차를 인계받기 전 SUV라고 들었기에, 딱딱한 시트를 상상했건만.
생각보다 내부도 넓고, 시트도 편안하다.
내 몸이…. …일반 사람에 비하면 작은 편이긴 하나, 좌석에 몸이 푹 잠긴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하나 문제가 있다면, 그 덕에 브레이크와 엑셀에 발이 닿지 않는다.
본래도 작은 차가 아니면 아슬아슬하게 닿는 수준이었기에, 평소 좌석 끝에 앉아 운전했건만.
지금 이 차는 좌석을 앞으로 한계까지 땅겨도, 발이 페달에 닿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흠.
하는 수 없지.
그리 생각하며, 망치를 소환한 후.
엑셀 옆에 놓아두었다.
분명…. 엑셀이 왼쪽이었나?
“…오른쪽이요.”
아빈아 고맙다.
내가 고민하는 건 어떻게 안 걸까.
“응? 왼쪽 아냐?”
“…시현아, 너도 운전하지 마.”
역시, 이건 헷갈리는 물건임이 틀림없다.
나만 그랬다면 조금 반성했겠지만, 똑똑한 백시현 또한 그 위치를 헷갈리지 않았는가.
자. 이로써 내가 망치를 밟으면, 망치의 무게 탓에 계속 눌리는 스위치형 엑셀이 완성되었다.
덕분에 반응도 늦어지고, 브레이크를 밟는 것이 좀 불편해졌지만.
본래 자동차의 브레이크는 밟으라고 있는 물건도 아니고.
액셀을 계속 누르거나, 눌렀다 뗐다 하는 것도 귀찮으니 괜찮겠지.
군용 차량은 좌석이 낮계 설치되어 이럴 필요가 없었는데 말이지.
아무튼, 모든 준비가 끝났으니.
받은 열쇠를 열쇠 구멍에 꽃아 시동을 켰다. 그로써 엔진 소리와 진동이 울리길 기다렸지만.
계기판 바늘이 살짝 움직였을 뿐, 기대하던 반응은 돌아오지 않았다.
잠시 제대로 시동이 걸린 것이 아닌 건 아닌가 하고 고민했지만.
약하게 몸을 울리는 진동과 홀로그램으로 허공에 뜨는 UI가, 제대로 시동이 걸렸음을 증명해 주었다.
엔진 소리가 울리지 않고, 진동이 약한 것은 이 차가 고급인 덕이 아닐까.
“비싼 차라 제값을 하긴 하네.”
그리 생각하며, 눈앞에 뜬 홀로그램을 조작했다.
조작 보조? 당연히 0.
속도 제어? 이것도 당연히 0이지.
충돌 방지? 야. 이런 거 있으면 튀어나온 괴생명체를 어떻게 처리해. 당연히 0.
물리력 조작.
단어만으로는 의미를 알 수 없어, 도대체 뭔가 하고 설명을 읽어 보자.
자동차가 지면 상태나, 주변 환경에 영향을 덜 받게 해주며, 가속이나 차체 제어를 어떤 상황이든 평균 수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하여, 조작감을 유지해 주는 기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일정 수치 이상 올리지 말라는 경고가 붉게 적혀있지만.
설명서에 나오는 경고문이 흔히 그렇듯, 어차피 이런 경고는 해당 물품을 제대로 못 다루거나 하는 애들이 대형사고를 칠 때를 위한 면피성 문구다.
정말로 위험하다면, 그런 기능을 상품에 넣었을 리 없지 않은가.
그리고 나는, 전쟁터에서부터 수많은 차량을 몰아본 베테랑.
당연히 10에 위치시켰다.
동시에 경고문이 뭐라고 떴지만, 읽지 않고 터치해 넘겼다.
그 아래에 있는 옵션도, 무슨 안전이 어쩌고 하는 수치만 잔뜩 있었기에, 대충 모는 맛이 있을 것 같은 것을 우측 끝으로, 뭔가 족쇄 같은 것을 왼쪽 끝에 위치시킴으로써, 사전 준비를 마무리했다.
“요즘 자동차는 이런 것도 달렸나.”
“비싼 차에는 그런 커스터마이징이 달렸다곤 들었어요.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지만요.”
그렇구만.
비싸긴 하지만, 민간에서도 이미 사용하는 기술이라는 거지?
사실, 아까 뜬 붉은 경고 문구가 조금 마음에 걸려, 한 번 확인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빈이의 한마디로 그럴 생각이 싹 날아갔다.
민간에도 나도는 기술이라면 큰 문제는 안 생기겠지.
자 그럼, 출발 전에 목이나 축이고 가볼까.
그리 생각하며 가방에서 은빛으로 빛나는 보온병을 꺼냈다.
내 전용 음료수.
내리쬐는 햇빛을 반사하여, 아름답게 빛나는 보온병.
그것을 바라보며, 뚜껑을 돌리려는 순간.
뭔가 불길한 감각이 목 뒤를 스치고 지나갔다.
서늘한 냉기가 내려온 것처럼.
…뭐지?
냉기에 놀라, 급히 고개를 돌리자.
“선배님? 손에 든 거. 뭔가요?”
“그거잖아! 스승님 마실 거!”
“시현아, 내가 그걸 몰라서…. 아니다….”
내가 고갤 돌려 돌아본 장소엔, 나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는 한아빈과 문맥을 읽지 못하고 오늘도 헛소리하는 백시현이 있을 뿐이었다.
…기분 탓인가.
아니면, 뭔가 금속 부품에 목이 맞닿았을 수도 있고.
그리 생각하며, 보온병의 뚜껑을 열려 했으나.
“….”
계속 빤히 날 쳐다보는 한아빈의 시선이 마음에 걸려.
거친 손길로 보온병을 가방에 다시 집어넣었다.
“꾸액.”
그 덕에, 가방 안에서 자고 있던 운호의 비명이 울렸지만.
항의가 돌아오지 않는 것을 보니, 잠에서 깬 것은 아닌 것 같다.
“출발해도 되겠지? 놔두고 온 건 없고?”
“없어요.”
“없습니다!”
“그럼 가자, 목적지는 유럽 마법 학회!”
-목적지. 유럽 마법 학회. 경로를 안내합니다.
응? 음성 인식도 있었네.
* * *
“선배님! 좀 천천히!”
“스승님 더 밟아요!”
두 상반되는 의견 속에서 내가 택한 것은.
당연히.
“하하하하하, 밟으면 밟는 대로 쭉쭉 나가는데 왜 멈춰!”
백시현의 의견 아니겠는가.
도심이면 모를까, 있는 것이라고는 돌과 산뿐인 평야에서 밟지 않으면 대체 어디서 밟으란 말인가.
“나무! 나무 있잖아요!”
“박아도 문제 없잖냐아아아아!”
쾅.
막대한 물리력에 부딪힌 나무가, 자동차를 울리는 약한 진동을 남기곤, 부러져 어딘가로 튕겨 나갔다.
“꺄아아아아!”
오늘 몇 번째 듣는지 모를 한아빈의 비명.
다행히 이번에도 자동차는 무사했다.
조금 걱정하긴 했지만, 당연히 이럴 것이라 예상했다.
오늘 이 자동차로 뭔가를 쳐 버린 것은 처음이 아니니까.
가장 처음은, 앞을 안 보고 대충 운전하다가 받아 버린 돌덩이 하나.
그때도 아빈이는 ‘앞! 앞! 앞!’ 하면서 비명을 내질렀지만, 돌덩이와 정면충돌한 후, 내려서 검사한 자동차는 프레임이 약간 찌그러졌을 뿐.
기본적인 기능에 문제가 생긴 징후는 없었기에.
상상 이상으로 튼튼하다는 것을 인지했고.
그 후로는, 그냥 막 달리고 있다.
-경로를 변경합니다.
“하하하하하. 애초에 길은 있고?”
“있는데 안 쓰시는 거잖아요!”
“그야 이런 자동차면 직진이 더 빠르잖냐!”
“그렇죠! 스승님 말대로 직진이 더 빠르죠!”
“둘 다 제발 입 좀 다물어어어!”
쾅.
또 뭔가를 친 것 같지만, 뒤돌아서 아빈이에게 답을 돌려주느라 뭘 쳐 버린지 모르겠다.
아까 돌덩이를 받아서 완전히 멈춰 버렸던 것과 달리, 약간의 속도 손실만 있는 것을 보면, 내가 쳐 버린 게 그리 거대한 물건은 아닐 것이다.
즉, 아직 엑셀 위에 올려놓은 망치를 안 건드려도 된단 소리.
그리고, 내가 느끼기에는 아직도 속도가 올라가고 있다.
“이야, 기술 많이 좋아졌네. 지금 이거 몇 km지?”
“계기판 보시면 되잖아요!”
“아 그거, 300km에서 망가졌어. 바늘이 그 이상 안 넘어가네.”
“…네?”
어쩌겠니, 사실인걸.
SUV가 이런 속도를 낼 수 있다니. 관리국의 기술자 여러분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지금도 차량이 심하게 덜컹거리고 있긴 한데.
이것도 창밖을 보면 일어나는 대참사에 비하면, 어떻게든 충격을 줄이고 있는 것일 것이다.
쓰러진 나무도 밟고 지나가고, 둔 턱도 막 넘고, 하늘도 날고 있으니.
뭔지 모를 기술이 적용된 충격 제어 장치가 없었다면, 내부는 이미 대참사 일보 직전이 아니었을까.
“꺄아아아악! 선배님 앞! 앞!”
“아, 괴수네. 그냥 치고 가.”
머리에 거대한 나무가 생겨난 형상을 보아, 노루가 변이한 괴수로 보이는 것이 나를 바라봄으로써 서로 시선을 마주쳤었지만.
하하하하, 왜 내가 괴수를 앞에 두고 핸들을 돌리겠니.
그리함으로써, 나무 노루는 막대한 속도의 탄환에 치여 거하게 회전하며 우리의 뒤쪽으로 날아갔다.
덕분에 앞 유리창에 피와 살점이 좀 묻긴 했지만.
“으아아아아아.”
“어디 보자, 아, 이건가?”
뭔가 그럴듯해 보이는 버튼 하나를 누르자, 유리창에 거품이 뿜어지고 와이퍼가 쓱쓱 움직이며, 앞 유리를 깨끗하게 돌려놓았다.
그 과정에서 피가 유리를 코팅하는 통에 아무것도 안 보여서 이것저것 쳐 버린 것 같지만, 자동차가 전복되지 않았으니 큰 문제는 없겠지.
그나저나, 아까 친 괴수가 꽤 등급이 있는 녀석이었나.
지금껏 어디 박아도 금 하나 없던 앞 유리창이건만.
지금은 아까 그놈의 뿔로 보이는 막대 하나가 유리창을 뚫고 박혔다.
아쉽게도, 어느 정도 등급인지는 내가 제대로 못 본 탓에 모르겠다.
한 백에서 이백km라면 보고 힘을 파악하겠지만, 지금은 모습을 보자마자 이미 치고 지나간 뒤였으니.
“음, 이 속도라면 예정보다 일찍 도착하겠네.”
일주일 가까이 걸릴 거라 봤는데, 이틀에서 사흘이면 되겠어.
“선배님? 혹시 일찍 도착하는 장소가 천국인가요?”
그리 한껏 비꼬는 유머가 뒷자리의 한아빈에게서 흘러나오지만.
“그럴 리 없잖니? 아빈아. 지금 난 안전 운전을 하고 있다고.”
위험한 운전은 천국으로 가는 하이패스, 뭐 그런 공익 광고를 여럿 봤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
“…안전. 운전. 이요?”
“안전 운전이지. 안전은 상대적이란다. 자동차가 튼튼하고, 내가 일부러 괴수에 들이대서 처박아 버리는 것도 아니고, 주변 사람도 없으니, 안전한 게 아니고 뭐겠니.”
위험한 운전이란 건, 안전띠도 안 매고, 안에 보드카를 잔뜩 쌓은 채, 그림자가 보이면 그쪽으로 핸들을 튼 후, 엑셀을 끝까지 밟아 그림자를 치어 버린 다음, 찌그러진 프레임과 날아가 버린 앞 유리창을 보며 웃는 걸 말하는 거지.
물론, 이것은 탑승자뿐 아니라, 그림자에게도 위험한 운전이라는 뜻.
미샤를 곰으로 착각하고, 보드카 녀석들이랑 같이 치어 버렸을 때는 정말 위험 운전이었지.
광전사 모드였던 미샤가 우리를 적으로 인식해서 발톱을 휘두르고, 우리는 그 와중에 보드카 챙겨서 품에 끌어안은 후 도망가느라 바빴다. 다행히, 미샤는 당시 기억이 없는지, 우리가 써야 할 경위서는 군용 차량 하나 손실에 대한 것이었을 뿐이라는 행복한 후일담이 있다.
“…선배님, 자리 바꿔요. 제가 운전할게요.”
찰칵.
아빈이는 내 완벽한 정론에서 어떤 불길함을 잡아내기라도 했는지, 안전띠를 풀고 앞 좌석으로 밀고 들어오려 했으나.
쿵.
“꺅!”
자동차가 나무 하나를 치어 버림과 동시에, 아빈이의 몸도 흔들려, 제 머리를 천장에 처박았다.
“아빈아, 운전 중에는 얌전히 앉아있어라. 그러다 어디 다치면 도착할 때까지 치료도 못 해.”
“어, 스승님 저도 치료되는걸요!”
“그래, 아빈이 머리가 깨진 후에 거기서 뿔이 솟아나겠어.”
적어도 상처는 아물겠군.
그리 떠들썩하게 대화를 나누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계속 나아갔다.
뒷좌석에서 비명이 들리지만, 기쁨의 비명이라 생각하자.
* * *
“흠. 애들아, 우리 숲속에 들어온 지 얼마나 지났지?”
“아마, 2시간 정도…?”
“정확히 1시간 51분 29초입니다!”
두 시간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정도면 이미 숲에서 빠져나왔어야 할 것 같은데.
나무에 박는 걸 걱정하느라 천천히 운전했으면 모를까.
불도저처럼 자동차로 죄다 밀어 버리며 지나간 것이 약 한 시간.
그리고, 뭔가 수상쩍은 걸 느껴, 숲속에 난 흙 도로를 타고 달린 것이 한 시간.
이쯤 되면, 뭔가 확실히 수상쩍다.
시야를 과하게 가리는 안개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이 속도로 달리는데 아직도 숲이 안 끝난다고?
“핸드폰은 좀 터지냐?”
“전혀요. 아까부터 안 터지네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역시 그런가.
언제부터인진 모르겠지만, 내 핸드폰도 그렇고, 자동차에 달린 내비게이션도 아까부터 먹통이다.
‘신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라는 문구만 계속 떠 있으니.
“…불길한데.”
정말로, 불길해.
“아, 스승님 저 이런 장면 본 적 있어요. 분명, 공포 영화 같은 데에서 시작을 이런 식으로….”
“…시현아. 이상한 소리 하지 마. 그건 어디까지나 영화야. 현실에서 일어날 리 없어.”
음. 아빈아 미안하다만, 나도 시현이랑 똑같이 생각했단다.
그리고, 이미 이야기랍시고 오만 것이 다 돌아다니는 막장이 우리 세계인데, 공포 영화 정도면 충분히 현실에 일어날 것 같은데 말이지.
“…일단, 계속 달려 볼까.”
공포 영화의 클리셰를 생각하면, 자동차에서 내리면 그때부터 서로 흩어지고 학살이 시작되니 말이다.
아직, 우리가 수상쩍은 상황에 붙잡혔다고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조금 신중하게 움직여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망치를 엑셀에서 치우고.
엑셀을 조심스레 밟으며.
자동차 내부로 스며드는 서늘한 안개 속을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