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31)
마법소녀 아저씨 31화(31/671)
31. 쉬는 건 5분을 넘지 마라(1)
어두운 방.
책상과 의자의 실루엣만 겨우 보일 정도로 약한 조명. 책상에 설치된 모니터에서도 희미한 빛이 나오지만 큰 의미는 없었다.
전형적인 괴인 결사의 회의장. 누군가에게 기억이라도 주입된 것처럼 하나같이 비슷비슷한 디자인.
총 13석으로 이루어진 의자 중 하나를 중앙으로 끌어당겨 몸을 맡겼다.
찰칵.
문이 열리고 두 괴인이 들어왔다.
지팡이를 쥐고 회색빛 로브를 걸친 쥐 괴인.
인간의 형태지만, 실제로는 계속 흐르는 유동성 액체로 만들어진 괴인.
“장기간 소요 재회 기쁨. 크림슨★해머 구도자.”
“이하람이라고 불러라.”
“이하람 구도자. 간부 소집 사유 의문. 대답 요망.”
저놈은 맛이 갔나? 말투가 왜 저러지. 마지막에 봤을 때는 목소리에 찢어지는 소리가 섞이긴 했지만, 저런 괴상한 말투는 아니었는데.
다른 괴인에게 얼굴을 돌려 저거 왜 저러냐 하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번 습격 사건 때 뇌가 다쳤습니다. 이해해 주시길.”
“아. 그럼 뭐 상관없어.”
날 놀리는 것도 아니니까.
나는 품에서 흰 막대를 꺼내 입에 물며, 쥐 괴인의 의문에 답해주었다.
까득.
“다 모이면 말해주마.”
“가시죠.”
“수긍.”
다리를 저는 쥐 괴인의 몸을 인간형 괴인이 부축해 자리에 앉혔다.
결사의 간부 13석 중 2자리가 채워지자,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위이이잉. 찌직. 찌지직.
컴퓨터 쿨러가 돌아가는 소리, 스피커에서 새어 나오는 잡음.
남은 11개 자리의 모니터가 빛을 뿜자, 화면에 괴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갑자기 무슨 소집인가? 급한 일이라도 생겼나?”
“잠 좀 자자 이것들아.”
“어차피 자주 보는 것도 아닌데 이럴 때라도 조용히 합시다.”
“정기소집도 아니고, 린슈아 님의 소집 아닌가. 소란스러운 건 당연.”
시끄러워 이놈들아.
“내가 소집했다. 이 미친놈들아.”
찌직. 지지직.
소란스러움이 끊기고, 그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던 스피커에서는 작은 잡음만이 흘러나왔다.
이어지는 침묵.
“…딸은 잘 만나셨나요?”
그 적막을 잘라낸 것은 위대하신 문어 대가리.
“알’셸. 넌 돌아가서 보자.”
어떻게든 침묵을 종식하기 위한 해산물 대가리의 노력도 허무하게 사라지고, 모니터 속 괴인들은 눈알을 굴리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각자의 머릿속이 생각으로 가득 찰 때쯤. 내가 입을 열었다.
“내가 린슈아를 맡기면서, 너희들에게 요구한 게 뭐였지?”
정말 간단한 내용이었다.
“안전한 장소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하란 것이었죠. 기본적인 지식을 교육하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그들과의 계약.
“그래. 고작 그것이었다. 너희들이 린슈아의 씨앗으로 연명하든, 린슈아를 수장으로 앉히든, 린슈아의 힘을 사용하든 아무 상관하지 않겠다고 했지.”
“저희는 구원자님의 말씀을 따로 어긴 적이….”
“이 씨X새끼야. 관리국 옆에 있는 빌딩이 안전한 장소냐? 왜 이딴 대에 지부를 차리고 앉아있는데. 니들 잘하는 일인 땅이나 파라고.”
고함을 내지르고 조용히 앉아 변명을 기다렸건만, 내 말에 할 말이 없어진 듯, 또다시 침묵이 감돌았다.
무어라 항변이라도 할 줄 알았건만, 이렇게 되자 오히려 당황스러운 것은 나였다.
이 주변이 위험한 걸 알고도 여기 지부를 박은 거야?
무슨 생각으로?
“이하람 님. 한국에는 그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등잔 밑이 어둡다고….”
저놈은 밉상 짓을 안 하면 촉수에 가시가 돋나?
“알’셸. 촉수로 내가 줄넘기하는 거 보기 싫으면 넌 입 다물어라.”
내가 난폭한 말을 내뱉은 탓일까.
끝없는 침묵이 흘렀다.
정말 이놈들 한 놈씩 두들겨 패러 세계 일주라도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가는 와중.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검은 양복을 입은 인간처럼 생긴 괴인이 나에게 양해를 구했다.
“말해봐.”
“자금 담당 엔클루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새 간부인가?”
자금 담당이라면 본래는 저 쥐 괴인이었을 텐데, 새로이 충원한 녀석인가. 아니면 승진?
“예. 전대 자금 담당자이신 퀼프께서 저리되셔서….”
“본좌 현역 사용 유효.”
쥐 괴인이 화난 어투로 의자 위에서 날뛰며 지팡이를 휘두르지만, 그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다른 괴인이 그의 몸을 붙잡아주었다.
저건 글렀구만.
“어찌 되었건, 저희 간부진은 그 장소에 린슈아 님이 거주하셔도 큰 문제가 없을 거라 판단했습니다.”
“합당한 이유가 아니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알고 있겠지? 어디 한번 말해봐라.”
합당하지 않으면 여길 날려버리겠다는 사실상의 협박.
“결사의 현재 상황은 얼마나 알고 계시는지요?”
“관리국한테 죽어라 처맞고 또 쫓겨난 다음 이상한 봉사활동 한다는 것만 알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저 녀석들의 저런 어긋난 핀트야말로 내가 저 녀석들을 도와준 이유이기도 했다.
린슈아를 빼더라도, A급 10명 O급 2명을 보유한 세계 최대규모의 결사인 주제에 하는 짓거리라곤 가장 나쁜 짓이 동네 깡패짓이었으니까.
말이 좋아 세계정복 결사지, 이 녀석들이 인류를 배반한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인류에게 해를 끼치지 못할 것을 알기에.
“이하람 님이 그리 말씀하시는 걸 보면 저희가 잘한 모양이군요. 그건 저희 회사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뭔 회사? 너희 또 이상한 거 하냐? 또 폭탄이라도 처맞으려고?”
이 바보들은 전쟁터에서 진통제 신속배달 서비스 같은 광고지 뿌리다 폭탄 처맞은 애들이었는데.
제일 잘하는 거 있잖아. 얌전히 토목건축 하고 깡패짓이나 하라고 좀.
“이번 사업은 정말 잘되고 있습니다. 아마 이하람 님도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내가 기억하는 너희들이 말아먹은 헛짓거리만 10개가 넘는데.
“어디 들어나 보자.”
“아레제스 시큐리티 서비스.”
“….”
이놈들 보게?
나는 손바닥으로 턱을 받히며, 그들이 어떤 회사인지를 떠올렸다.
이계에 관련된 물품과 기술, 지식을 제공하는, 최근 몇 년간 급격히 성장한 거대기업. 그 기술제공 덕분에 관리국은 수많은 이득을 보았다.
덕분에 이계와 관련된 기술의 발전이 급격히 빨라지고, 항상 인력 부족으로 고생하던 관리국의 숨통이 트였다.
저런 예시조차 극히 일부분일 뿐, 이계의 기술이 인류에게 가져온 혜택은 무시무시할 정도.
그게 다 이 녀석들 덕분이라니.
“과연. 네놈들이었나.”
“회사가 성공한 덕분에 몸을 숨길 필요가 없어져 밖으로 나왔습니다.”
등잔 밑이 어두운 것이 아니었다.
이 녀석들은 처음부터 합법적으로 자신들을 치장하였던 것.
“대장벽 너머 정화봉사단은 그럼 뭐지? 너희들이 할법한 일이긴 한데.”
“본사에서 시선을 돌리기 위한 위장단체입니다. 요즘 잘 되고 있어서 저도 기분이 좋긴 합니다만.”
수완이 좋은 녀석이군.
여태까지의 결사 간부들과 달라.
“어디 출신이냐.”
그를 간부에서 배제해야 할 필요성이 생겨났다.
너무 현실적이다. 꿈과 낭만이 넘쳐나는 얼빠진 괴인들과 다른, 현실적인 판을 짤 줄 아는 녀석, 굳이 따지자면 알’셸과 비슷한 타입.
하지만, 의도적으로 어두운 장소를 걸은 참모장 알’셸과 달리 그의 지도하에 결사는 인간 사회의 전면에 나섰다. 그리하여 얻은 것은 빛의 세계를 걸을 힘과 자금.
자금을 얻은 그들이 폭주하기라도 한다면, 위험성이 낮고 인간다웠기에 살려준 그들이 배제 대상이 되어버릴 터.
“린슈아 님에게 생을 받았습니다.”
“…등급은?”
“B.”
“너의 목적은 뭐지?”
“결사의 유지.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린슈아 님의 안전입니다.”
“세계정복은 어떻게 생각하지?”
“굳이 해야 한다면 자금과 기술을 통한 장악이겠군요.”
나쁘지 않은 대답이다.
저것이 본심일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 배제할 필요성은 느껴지지 않았다.
“선을 넘지 않도록. 지켜보겠다.”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조부님.”
조부?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표현에 놀란 나는 그 단어에 다른 의미가 있나 싶어 뇌를 뒤졌다.
계속해서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나오는 답은 하나뿐이었다.
할아버지?
“이 썩을 놈이.”
삑-.
통신을 끊고 도망쳤다.
그래 유머도 있다. 이거지?
“알’셸!”
“예!”
나에게 계속 구박받아 찌그러져 있던 알’셸이었지만, 내 부름과 동시에 힘찬 답을 돌려주었다.
“저 시건방진 놈 내가 다음에 볼 때까지 예절교육 안 받으면 평생 입도 못 열게 될 거라고 전해줘라.”
‘그렇게 생각하면 직접 가서 말씀하시지는 왜 또 나한테.’
스피커 너머로 작은 쫑알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 질이 좋지 않은 스피커임에도 다 들리는 것을 보니, 이제 저건 그냥 나에게 들리도록 말하는 것인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피어났다.
“전달할 거지?”
“당연한 거 아닙니까?”
좋아.
다른 간부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얼굴은 대부분 두려움이 깃들긴 했지만, 강한 감정은 아니었다.
대부분은 존경과 감사함.
그들의 정착을 도운 것이 10년도 넘었건만, 그들은 아직도 나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았다.
자주 만나던 알’셸 말고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
“그럼 호통은 여기까지 하고.”
표정을 풀었다.
“다들 잘 지냈냐?”
부드러운 내 말투에, 회의장이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각자 절제 없이 근황을 털어놓았고, 내 블랙 머라우더로서의 행동에 대해 논하는 이들도 있었다.
조용히 앉아있던 쥐 또한 알 수 없는 단어를 늘어놓았고, 알’셸 또한 툴툴거리며 그 분위기에 동참했다.
즐겁게 긴 시간 쌓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괴인들.
그들의 수많은 이야기를 귀에 담으며, 나는 천천히 미소를 지어 올렸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이들을 살린 것은 잘못되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 순수한 이들.
이세계에 침략에 대해 반기를 들어, 지키고자 하는 이들에게 죽임당하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쌓아 올린 괴이한 존재들.
최후의 순간. 나는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고. 모두에게 버림받은 이들은 이렇게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역시,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 * *
“아빠 늦어!”
괴인임을 감추기 위해서일까, 선글라스를 쓰고 작은 빵모자를 뒤집어쓴 린슈아가 나를 맞이했다.
“미안하구나. 오랜만에 만나다 보니 할 말이 많았거든.”
괴인들도 쌓아둔 말이 많았는지, 생각보다 대화가 길어졌다.
기다리다 지친 탓일까. 성난 표정으로 변한 린슈아는 내 소매를 잡아끌며 나를 안내했다.
어두운 복도 속에서, 나는 오랜만에 만난 딸과의 약속을 위해 그녀의 행동에 몸을 맡겼다.
손쉽게 떼어낼 수 있는 구속이었지만, 그리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이성적으로 알고 있다.
꽉 잡은 소매를 통해 아이의 불안감이 전해져왔기에.
내가 잠깐 회의에 참석한 사이, 린슈아의 마음속에서 불안감이 생겨났기 때문이리라.
내가 다시 오랜 시간 떠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
그런 잘못을 다시 저지르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
그렇기에, 나는 딸에게 져주었다.
어두운 복도를 지나, 린슈아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식당에는 몇몇 괴인들이 식탁에 앉아 식사 중이었다.
깔끔한 데다가 나름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풍기긴 하지만, 거대기업의 식당치고는 좁은 모습.
괴인 전용 식당인가. 음식은 어디에서 받으면 되는 거지?
잠시 내가 주변을 둘러보자, 린슈아는 나를 어딘가로 이끌었다.
버튼이 달린 작은 마이크.
그리고 그 옆에 달린 뭔가를 올려보내려는 작은 식당용 승강기.
“여기에 원하는 음식을 말하면 아래에서 올라와!”
괴인 직원과 인간 직원을 분리하기 위한 장치인가. 괴인들도 아무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군.
린슈아가 나에게 시범을 보이겠다는 듯, 마이크 옆에 달린 버튼을 누르고 입을 열었다.
“치킨샐러드, 샌드위치 주세요!”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낸 듯, 가슴을 당당히 펴며, 주문을 끝낸 린슈아가 옆으로 비켜섰다.
“아빠도 해봐!”
뭐든 되나?
“맥주 한 잔, 보르시. 양배추 빼고 고기 많이 넣어서.”
린슈아는 보르시가 뭔지 모르겠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설명하기도 힘들고…. 뭐, 직접 보면 알겠지.
잠시 기다리자 승강기가 움직이며 음식이 모습을 보였고, 우리는 그것을 들고 식탁에 앉았다.
내가 보르시를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시는 동안, 린슈아는 행복한 표정으로 샐러드를 입에 넣었다.
보르시와 맥주가 절반가량 사라지고, 린슈아의 그릇에 담긴 샐러드도 사라졌을 때쯤.
“괴인 아저씨들 아빠 친구야?”
린슈아가 천진난만하게 질문을 던졌다.
친구라.
주고받을 뿐인 관계를 친구라 할 수 있을까. 그들 또한 나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을 뿐. 거래 상대가 옳겠지.
“왜 그렇게 생각했어?”
“괴인 아저씨들이 아빠 이야기하면, 왠지 모르게 즐거워 보였어.”
“뭐라고 말하던?”
“자신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그렇게 뛰어다니는 영웅은 얼마 없다고 그랬거든.”
린슈아는 입으로 쾅쾅 소리를 내며, 괴인들이 묘사해주었던 전투를 손으로 재현했다.
내가 해머를 휘두르며 악을 무찌르고, 세계를 지켰다는 괴상한 이야기들.
도저히 무슨 전투를 묘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괴인들과 나갔던 전장 중 하나일 터.
그런 이야기를 해주었나.
내가 행한 죄가 있기에, 나는 린슈아에게 내가 어떤 일을 행했는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내 망치에는 린슈아 부모의 피가 묻어있으니까.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내 입으로 말할 수 없던 행동들이 괴인의 입을 통해 전해졌다.
알’셸. 용서해주마.
날 함정에 빠트린 건 이걸로 다 용서해주마.
“아, 근데 문어 아저씨는 투덜거렸어. 맨날 힘든 거 시켰다고.”
취소다. 이 망할 해산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