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324)
마법소녀 아저씨 324화(324/671)
324. 티타임(1)
“차가 식었군. 왜 미리 말하지 않았나.”
한 번 더 찻잔을 들어 올린 멕베스는 그리 말하곤 손을 흔들었다.
“5분 늦어서 그냥 식은 차나 마시라는 줄 알았지.”
나는 그리 말하며, 허공에 피어난 자그마한 불씨들이 각자의 찻잔과 찻주전자에 달라붙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럴 리 없지. 티타임 시간에 상대를 초대했으니, 상대가 예의를 갖추지 않더라도 나는 예의를 갖춰야 하는 법.”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얼굴로, 그리 말씀하시는 멕베스.
어째 내가 예의 바르지 않다는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들어, 자세를 고치고, 들어 올린 찻잔 각도를 조절했다.
차를 마시는 도중 필요한 예의범절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어느 문화권을 가든 조용하고 가지런하게 움직이면 절반 정도는 먹고 들어가니 말이다.
“혹시나 스콘이나 차가 떨어지면 말해 주도록. 그대의 식탐에 걸맞게 대량으로 준비해 놨으니 말일세.”
“거 고맙수.”
얼음 픽으로 가슴팍을 찌르는 듯한 친절한 어투는 여전하시구만 그래.
그리 생각하며, 살짝 벌려진 다리를 모았다.
본래 내가 예의범절을 신경 쓰는 타입은 아니지만, 이 양반 앞에 서면 이렇게 된다.
멕베스, 그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군인이다.
사전에서 군인을 찾으면 동의어로 멕베스라고 적혀있을 법한 군인.
그것도 무슨 고집 세고, 전투적인 마초 유형의 군인이 아니라.
개인 단위로는 철저히 규칙을 지키지만, 필요하다면 제 상부에 항의할 줄도 알고, 제 부하들이 약간의 규칙 위반이나 실수를 저질러도 그것이 정말 큰일이 아닌 한 너그럽게 넘어간 후,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직을 재정비하는.
보통 말하는 참된 장교.
뭐, 그런 양반이다.
그러니 나 또한 이 양반에게 신세 진 게 많아, 멕베스 앞에서는 조금 제 성질을 죽이는 편이고.
그런 멕베스의 분위기에 더해, 이 방의 분위기도 내 성질을 죽이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마치, 지은 지 100년이 넘은 집에 존재하는, 담배 냄새와 잉크 냄새를 흠뻑 머금은 서재 일부를 잘라다가 붙인 것 같은 장소.
분명, 여기는 제네바 학회의 일부일 텐데, 그런 역사감이 느껴진다.
어째 이 양반이라면 진짜 방을 가져다 붙였을 것 같긴 한데….
지금 방 상태야 어찌 되었건.
방의 분위기와 멕베스의 분위기가 합쳐져, 나조차도 예의 바른 한 명의 손님으로 만들었다는 의미.
물론, 자세만 바로 했을 뿐, 버터 발린 스콘은 계속 입으로 넘어가고 있지만 말이다.
멕베스가 정말 날 손님으로 취급하고 있는지, 지금 내 입으로 들어가는 스콘은 내가 아는 스콘보다 단단한 편에 속한다.
그래 봐야 빵이지만, 자그마한 씹는 맛 정도는 있단 소리.
그러니, 팝콘 먹듯 스콘을 하나씩 입으로 던지고 있고.
멕베스 또한, 나와 꽤 오래 친분이 있는 만큼 내 행동에 큰 불만은 없는지, 크게 감정을 내보이지 않은 채 차를 들이켜고 있다.
그렇게 행동하길 5분여가량.
이야기하자고 해놓고, 관련된 이야기가 한마디도 오고 가지 않았지만.
나도, 멕베스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정적 속에서 무의미하게 차와 스콘이 소비되어, 찻주전자가 제 바닥을 들어냈을 때쯤.
딸깍.
맥베스의 손에 들려있던 찻잔이 찻잔 받침에 차분히 내려지는 소리와 함께.
“박현석 서울 지부장에게 이야기는 들었네. 또, 무인 연맹에서 어떻게 협상이 진행되었는지도 확인했지.”
그렇구만.
“그래서, 사령관 생각은 어떻수?”
“사령관이란 호칭은 그만두게. 지금은 전시도 아니고, 이하람 그대 또한 내 부하가 아니니.”
딱딱하기도 하셔라.
그런데, 하도 사령, 사령관 부르다 보니 입에 익은 호칭이 없는데.
“…멕베스 영감?”
대충 떠오르는 호칭을 내뱉자.
“…흠.”
기묘한 목울음과 함께, 여태껏 완벽하게 움직이던 멕베스의 몸이 잠시 경직되었다.
그와 동시에, 얼굴에 새겨진 주름이 좀 더 깊어졌으니.
아, 저 양반도 사람은 사람이구나.
멕베스의 행동은 항상 강철처럼 단단해 보였었지만, 역시 늙어가는 것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 잠시 옛날 멕베스와 지금의 멕베스를 비교해보면, 팔자주름도 조금 깊어지고, 회색의 머리색도 조금 하얗게 된 것 같다.
정말 나이가 든 것인지, 아니면 내 착각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멕베스 본인이 신경 쓰는 것 같았기에.
“…그냥 사령관이라 부르죠.”
조금 전 제안했던 호칭을 지우고, 내 편한 대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하는 수 없군, 이번엔 그렇게 하도록 하지. 다음에는 새로이 호칭을 생각해 오길 바라네.”
멕베스 또한, 내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아차렸는지, 얼굴을 조금 피고 그리 답했으니.
뭐, 좋게 넘어간 것 같구만.
그나저나, 새로운 호칭이라. 까먹을 것 같은데.
그냥 사령이나 사령관으로 계속 부르자.
귀찮기도 하고.
“아무튼, 이야기가 조금 꼬였는데, 멕베스 사령관 생각은 어떻수?”
“질문은 좁고 명확하게.”
까탈스러워라.
항상 그렇지만.
“무인 애들도 그 똥고집을 꺾고 민간 개방을 허락했는데, 본래도 개방적이셨던 마법사들은 어떠신가 하는 이야기지.”
물론, 마법이 개방적인 것과는 별개로, 마법사들은 무인 이상으로 미치광이 집단이긴 하지만 말이다.
맨날 연구실에 처박혀 있다 보니 대인 관계 능력이 상실된 게 틀림없다.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비밀주의인 무인 애들이 다른 영웅들과도 교류가 깊고, 매우 위험하거나 문제가 있는 이론을 제외하면 논문을 통해 모두 공개하는 마법사는 죄다 미치광이 테러리스트라니.
그래도 몇 년 전에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갱단 수준이었는데, 이제 어째 그냥 비밀 무장 조직이 된 것 같단 말이지.
“마법 자체는, 무인의 수련 방법과 다르게 이미 민간에 공개되어 있지.”
“그렇죠.”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평범히 대화를 나누던 도중, 멕베스는 갑자기 그런 질문을 던지고, 앉은 자세를 바꾸었다.
조금 고개를 꺾고, 손을 턱에 올린 채, 눈의 초점을 나에게 고정하며.
내 답을 기다린다.
멕베스의 나쁜 버릇이 또 나왔군.
저 양반은 매번 저렇다.
매번 뭔가를 알려주려고 할 때마다, 마치 선생처럼 너는 어떠냐고 물어보지.
저 상황에 빠지면, 무어라 말해도 소용없다는 것은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기에.
“후우….”
한숨을 내쉬며, 미리 준비해 두었던 답을 머리에서 짜 맞추었다.
이계에서 겪은 일, 지구의 경험, 내가 알고 있는 마법 체계, 마법학.
이미 한 번 답을 낸 질문이긴 하지만, 혹시나 오류가 있을까 싶어 잠깐 다시 검토했고.
곧, 입을 열어 멕베스의 질문에 답했다.
“마법학 교육의 의무화.”
“어느 단계부터 말이지?”
“나라마다 교육과정이 다르니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기준으로는 초등학생부터.”
“예닐곱 살인가. 꽤 어리지 않나?”
계속해서 이어지는 문답.
그렇지만, 나는 거기에 고민하지 않고 계속해서 답을 쏟아내었다.
“마법은 어릴 때 배우는 게 중요해. 고정 관념이 없을수록 믿음은 빨리 생기니까.”
“그만큼 시간의 낭비가 늘어나지. 모든 이가 마법사가 될 순 없으니. 그렇지 않은가?”
“언제는 기본 교육 과정의 과목들이 꼭 필요해서 들어가 있었나.”
“뼈아픈 지적이군. 그렇지만, 완전히 올바른 답은 아니야. 특히 초등 교육 단계에서 배우는 것들에는 큰 의미가 있지. 누구나 기본적인 수학능력과 언어 구사 능력, 과학과 논리적 사고, 사회를 유지하는 도덕성. 이것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들이 유지되는 이유지. 그럼, 마법학에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멕베스의 기나긴, 내 답에 대한 평가.
그리고, 거기서 이어지는 새로운 질문.
그것을 반박하지 못한 나는, 고민에 잠겨 들었다.
흠. 중학교 이후는 그렇다고 치고, 국민학교 시절은 맞는 것도 같고….
그렇게, 새로이 생각의 나뭇가지를 뻗어 나가는 동안.
멕베스는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
찻잔이 들어 올려지는 소리도.
차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소리도.
자그마한 숨소리조차도 내지 않도록, 조용하고 부드럽게.
내가 고민하도록 조그마한 소음조차 없이 기다려 주었고.
나는, 곧 결론을 내었다.
“마법사가 되지 않더라도, 마법이 당연시되는 사회를 만들려면 기본적인 마법학에 대한 교육이 필요해.”
너무나도 당연한 답이었다.
한아빈과 백시현에게 내밀었던 답.
그것을, 다시 내밀면 되는 일이었을 뿐이다.
“그렇군, 일리 있는 말이야. 미래의 마법사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지.”
멕베스는 내 답이 상당히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리 답해주었다.
다행이구만.
그렇게 문답이 끝났기에, 정신적으로 지친 몸으로 한숨을 내뱉은 후.
따스하게 데워진 차 한잔을 목 안쪽에 밀어 넣었다.
그렇게, 말을 내뱉은 목을 잠시 쉬게 하고.
딸깍.
내 찻잔 받침이 소리를 울림과 동시에.
“그렇지만, 한 가지 의문이 있군.”
멕베스가 갑작스럽게 끼어들었다.
입가에 살짝 웃는 표정을 띤 채.
“뭐지?”
“별거 아닐세. 그저 하나 묻고 싶을 뿐이니.”
멕베스는 그리 말하곤, 잠시 나를 빤히 바라본 후,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이계에서, 무슨 일을 겪었기에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 알고 싶을 뿐이니.”
난 또 뭐라고.
“현석이에게 대충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라이브러리안이랑, 옥시모론한테도 했던가?
아마 라이브러리안 녀석은 나 말을 정리해서 관리국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해 놨을 테고.
“그 내용이라면, 이미 한번 머릿속에 새겨두었지. 마법 왕국, 흥미로운 세계였지. 비록, 자료 제공자가 전문적이지 않아 구멍이 송송 뚫린 것 같은 자료여서 조금 안타까웠네만.”
거 미안합니다.
까고 말해서 내가 그런 거 하러 간 것도 아닌데, 정보 송송 빌 수도 있지. 새로이 정보 얻은 거나 다행으로 여기슈.
그리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은 채 멕베스의 말을 기다렸으니.
“그렇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그대의 이야기야. 이하람 그대가 마법 왕국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으며, 무슨 느낌을 받아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네.”
“…굳이 말해야 하나?”
이미 제시한 자료만으로도, 내 생각은 이미 전해질 텐데.
그리 생각하고 내민 질문이었지만.
“말하지 않아도 상관없네, 그렇지만, 내 지원이 조금 줄어들겠지. 어쩌면, 찬성이 아닌 중립으로 남을지도 모르겠군.”
멕베스는, 나에게 반쯤 강요해 왔다.
내 생각을, 내 입으로 말하라고.
…하는 수 없지.
그렇기에, 나는 입을 열었다.
* * *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내가 어째서 그런 결론에 도달했고, 그런 답을 내었으며.
어째서, 그런 요청을 하였나.
몇 번이고 이야기한 내용이지만, 이번엔 조금 관점이 달랐다.
그로서 얻는 이득과 효율.
실재하는 세계의 미래시가 아닌.
내가 얻은 감정과 생각.
내 이야기 사이사이에 끼어드는 멕베스의 질문 덕에.
그것에 메인이 된 이야기가 되었으니.
그 내용이 모두 끝나자.
“그렇군. 꽤 흥미로운 내용이었어.”
멕베스는 만족했다는 듯, 찻잔을 들어 올려 목을 축였다.
다행이구만.
나 또한, 메마른 목을 축이고자 찻잔을 들었다.
멕베스 차 한 모금.
나 차 한 잔.
그렇게 서로가 목을 축이고.
타닥.
거의 동시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정적이 흘렀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말을 했기에.
멕베스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기에.
시선을 여전히 나를 향하고 있지만, 그 시선에서는 나에 대해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이 존재치 않는다.
아마, 멕베스의 눈에는 그저 내가 비치고 있을 뿐이겠지.
깊은 생각을 하며.
나는 그런 집중을 방해하지 않고자, 바삭거리는 스콘을 접시에 내버려 두고, 가만히 의자에 앉아 멕베스의 움직임을 기다렸다.
3분 정도 지났을까.
멕베스는 마침내 시선을 내게 되돌리며, 입을 달싹거렸고.
나는 그 말을 귀에 담고자 자세를 바로 했다.
“이하람. 그대의 사고방식이 조금 바뀌었군.”
“무슨 말이지?”
멕베스의 침착한 목소리에 담긴 것은,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문장.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 그리고, 소수는 최대한 자신.”
“….”
“옳다 그르다를 말하는 게 아닐세. 그저, 그대의 행동 원리에 관한 이야기지. 그리고, 그렇기에 흥미가 생긴걸세.”
“….”
“왜, 그대가 다수에게 다수의 짐을 떠넘기려 하는지 말이지.”
씨익.
멕베스가,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