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35)
마법소녀 아저씨 35화(35/671)
35. 23시 59분 45초(1)
별 의미 없던 회의가 끝나, 제자들을 만나러 관리국의 숙소로 향했다.
내 제자이기 때문일까, 동원에 응했음에도 개인실을 배정받은 두 제자 녀석들. 다른 영웅들은 건설 중인 장벽 앞에서 돌가루가 들어간 흙밥을 먹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차원이 다른 대우이리라.
쿵. 쿵.
“왜 이게 안 들어가죠?”
그야 여긴 계단이 아니라 에스컬레이터이기 때문이란다. 어차피 놔두면 어떻게든 쑤셔 넣어서 이동할 테니 내버려 두자.
에스컬레이터든 휠체어든 망가진다고 내가 물어내는 것도 아니고.
제자들 입장에서 보면 개인실을 배정받은 것이 나쁜 일은 아니다.
누군가는 비어있는 개인실을 써야 하고, 그로 인해 아는 사람이 편하게 지낸다면 좋은 일이니까.
다만, 이계의 침공이 격해진다면 전쟁터에서 구를 일이 많아질 텐데, 벌써 좋은 침대에 익숙해지면 그 격차에 힘들어하는 것은 아닐까.
콰직.
그런 생각은 금속이 부서지는 소리로 인해 멈추었다.
“방금 휠체어 바퀴가 뜯겨나간 것 같다만. 뭘 한 거냐.”
“휠체어 정도야 제가 들고 가면 되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휠체어를 끌고 가는 게 아니라, 들고 가는 의무관이라.
“그냥 구속을 풀어주지 그러냐.”
팔다리에 꽁꽁 묶인 회색 벨트, 몸 여기저기 박힌 주사기.
지금도 몸 여기저기에 박힌 주사기에서 뭔지 모를 약물이 몸에 흘러들고 있는 상황.
힘을 주면 구속에서 벗어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지만, 그랬다가는 저 광기의 치유사가 톱을 들고 쫓아올 터.
“놔두면 또 운동한답시고 돌아다닐 생각이시겠죠.”
“아무리 나라도 왼손이 박살 나고 오른눈이 텅 비어버린 상태에서 돌아다니진 않지. 그냥 내 발로 걸으려고 그런다.”
나도 당장 망치 들고 쳐들어갈 생각은 없으니까.
“그냥 이대로 푹 쉬세요. 전투 당일까지는 다 고쳐놓을 테니까.”
그녀의 치유능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너무 과한 구속이 답답할 뿐이지.
“그래, 잘 부탁하마.”
어차피 저 고집쟁이가 내 말을 들어줄 거라고 생각도 안 했다. 그래도 말은 꺼내 봤으니. 뭐….
쾅.
방금 문짝이랑 바퀴가 날아간 것 같은데.
“아, 그냥 제가 들고 뛸게요.”
와장창. 쾅.
고철로 변한 휠체어를 관리국 복도의 벽에 내동댕이치며, 그녀는 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덕분에 누군가의 방이 휠체어의 침공을 받게 되었지만, 그건 관리국이 보상해줄 것이다.
“읏샤.”
왼손으로 나를 품고, 오른손으로 자연스럽게 주사기를 다루는 그녀.
오른 어깨에 주사기가 박히고, 뭔지 모를 녹색 액체가 흘러들어온다.
“그래라.”
애초에 이럴 거면 휠체어는 왜 가져온 걸까. 병원 분위기라도 내고 싶었나. 하긴, 이 녀석 특징이 그러니 뭐라고 해봐야 소용없겠지.
방독면에 가려진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필터가 때어지고, 가림막도 깨져나간 아무 의미 없는 방독면.
누구보다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으로 수많은 영웅을 구해온 우리의 의무관의 얼굴이 보여온다.
“옥시모론. 너 우리 애들 제자로 받을 생각 없냐.”
“갑자기 웬 제자죠.”
“정식 제자는 아니고 임시로. 내 제자 놈이 치유능력이 있는데 효과가 영 별로거든. 너라면 뭔가 알 것 같아서.”
아무리 마력이 배출되기 힘든 체질이라고 해도, 자기 자신의 회복도 느리다는 건 뭔가 문제가 있다.
성격과 치료법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살리는 행위만 보면 이 여자보다 탁월한 영웅은 없으니, 제자 녀석들 가르칠 스승으로는 딱이다.
“제자라면 관리국이 요청해서 몇 번 받긴 했지만, 죄다 도망갔는걸요.”
그야 괴인 시체를 뜯으면서 ‘이 부분이 약점이다.’ 하고 있으면 도망치겠지.
그것이 영웅으로서의 능력이라고 해도, 나 이상으로 피칠갑을 만드는 전투 방법을 계속 보고 있으면 이성이 버티지 못할 거다.
“전투 쪽 말고, 치유 쪽만. 괜히 전투 쪽 건드려서 내가 가르치는 거랑 어긋나면 나도 못 참아.”
“음…. 뭐, 해보죠. 훌륭한 의무병 숫자가 많아야 영웅들이 살아 돌아올 테니까요.”
그래. 사지가 날아가고, 얼굴이 녹아내려도 살려서 후방으로 후송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할 수 있다.
나도 이 몰골로 살아 돌아오지 않았는가.
“그래서 제자들은 어디 있죠?”
“…네가 아는 거 아니었냐.”
그럼 대체 어딜 가던 거야.
여긴 어디고.
역시 이 녀석은 치료기술 말고는 믿으면 안 되는 거였다.
* * *
“그래서, 이 녀석이 너희 둘에게 치유 관련 노하우를 알려줄 거다.”
꽁꽁 묶인 나를 벽에 기대어두고, 손을 흔드는 여성.
치유술의 노하우를 알려주는 데 큰 훈련장이 필요한 것은 아니기에, 내 숙소에 제자들이 모였다.
“저 녀석 이름은 옥시모론이라고 하고, 치유계 초능력자다. 사정이 있어서 그렇게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실력은 내가 보장할 수 있지.”
실력은 말이지.
“소개받은 옥시모론이야. 잘 부탁해 애들아.”
까마득한 선배가 고개를 숙였음에도, 내 제자 둘은 멍하니 내 쪽을 쳐다볼 뿐이었다.
“내가. 그러니까. 리미터. 풀라고. 했잖아요.”
“풀어서 살아 돌아왔잖냐.”
운호가 내 머리 위에 올라타 머리를 두드리고 있지만 내게 시선을 향하는 이유는 그런 게 아닐 것이다.
“선배님 하나 질문해도 될까요…?”
“말해봐.”
“어쩌다 그렇게 다치셨어요?”
그렇겠지. 내가 왜 다쳤는가가 제자들의 의문이리라. 그것도 조금 다친 게 아니라, 다 죽어가는 중상.
“너희도 들었겠다만, 공적지정이다. 내 적이 나타났지.”
“그런 게 아니라….”
일부러 질문에 답하지 않고 제자의 말을 돌렸다.
백시현이 조용히 날 바라보는 것이 조금 걱정되지만, 그녀 또한 뭔가를 생각하고 있을 터.
“스승님.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
평소와 다르게 진중한 표정의 백시현이 손을 들며 입을 열었다.
“말해봐라.”
“스승님이 그렇게 다치셨다는 건, 그만큼 지금 쳐들어오는 녀석들이 강하단 뜻이겠죠?”
“하지만 방송에서는 쉽게 막을 수 있을 거라고….”
한아빈이 놀란 얼굴로 그리 말하지만, 둘 다 이미 눈치챈 것 같다.
“한아빈. 정규동원은 잊어라. 그런 정신 상태로는 굴러다니는 시체는 네가 될 테니까.”
“…!”
돌입부대가 장벽 너머로 돌입하고, 나머지는 장벽 위에서 원거리 공격이나 쏴대는 방역작업이 아니다.
군인들과 영웅이 소모품으로 갈려 나가며 전선을 유지하는 지옥.
“너희 나이 때면 아슬아슬한가? 어린 시절을 떠올려봐라. 사이렌이 울리면 부모님들이 어떤 얼굴을 하셨지?”
“그건….”
관리국이 발족하기 이전, 인류 전체가 전시상황 분위기였던 어두운 시절. 사이렌 한 번이 곧 인류의 손실을 이야기하던 때.
그런 시절이 돌아온 것이다.
“방송에서 나오는 선전용 전투는 모두 잊어라. 적은 목을 노리고 쳐들어올 거고, 우리가 뚫리면 민간인들은 학살당한다. 그런 전쟁이다.”
몸을 구속하는 벨트를 뜯어내며, 머리를 감싼 붕대를 오른손으로 들어 올렸다.
공허하게 비어있는 오른쪽 안구.
백시현의 얼굴이 충격받은 듯 하얗게 굳고, 한아빈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
“그러니 너희는 정신 차리고 이야기를 들어….”
쾅.
주먹이 머리를 후려치는 고통. 다시금 몸이 벨트로 묶이는 구속감.
옥시모론의 말을 무시하고 벨트를 찢어버려서 그런 것일까. 그나마 남아있던 양다리마저 벨트로 구속되었다.
“절대안정이라고 했잖아! 감염된다고! 내가 몇 번을 말해야!”
아 맞다. 이년이 옆에 있었지.
“내가 감염될 짬이냐? 세균도 날 보면 도망가겠다.”
“환자에게는 내가 법이야!”
순식간에 뒤바뀐 옥시모론의 성격.
환자를 두들겨 패는 미친 의무관.
평소에는 얌전한 주제에 자기 의술에 토를 달면 저리 변하니 원.
그런 난장판이 주변의 분위기를 풀어낸 것일까.
창백하게 질렸던 제자의 얼굴에도 기괴한 미소가 떠올랐다.
“선배님이 약해지는 상대도 있네요.”
사람은 힘이 있다고 해도 마구 휘두르면 안 되는 거란다 아빈아. 관계를 유지할 줄도 알아야 하지.
“아무튼, 이번 기회에 저 녀석에게 치유술 좀 배워라. 전쟁터에서는 의무관이 있냐 없냐가 중요하니까. 너희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한테도.”
“예!”
두 제자의 목소리가 겹쳤다.
백시현이 회복마법을 제대로 쓰는 건 한 번도 못 봤지만, 한아빈보다 나쁘진 않겠지.
“내 마음대로 가르쳐도 돼?”
“난 치유 계열은 전혀 모르니까. 마음대로 해라.”
“그래.”
도롱이처럼 꽁꽁 묶인 나는 침대 위를 향해 던져지고 의자에는 두 제자가 앉았다. 두 제자의 시선이 옥시모론에게 모이자, 옥시모론의 강의가 시작되었다.
“치유계는 전투에 직접 관련된 힘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중요한 역할입니다. 전투가 길어질수록 보존되는 병사의 숫자에 큰 차이가 생기니까요.”
저건 아마 자기 생각이 아니라 어디 책에서 읽은 거겠지.
“물론 자기 자신이 치유술이 가능하다면 전투 중 유지력도 큰 차이가 나죠. 저기 이하람을 보세요. 치유능력만 있었다면 훨씬 오래 싸울 수 있었을 거예요.”
난 왜 걸고넘어져.
“그래서 옛날엔 소대나 분대마다 치유술에 특화된 영웅을 집어넣었지만, 요즘은 영웅들이 집단을 이루는 것 자체가 보기 힘들어요. 그러니 여러분이 주변 사람들을 치유해줘야 할 거예요. 급할 땐 작은 치유 하나가 사람의 생사를 가르니까요.”
그 말에 제자들은 뭔가 느끼는 게 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바로 실전으로 넘어가 보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공중에서 톱이 나타나고, 그것을 오른손에 쥔 옥시모론이 톱을 휘둘렀다.
서걱. 퓻.
옥시모론의 왼손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 피가 뿜어지는 소리.
가로막는 압력이 사라진 동맥은 세차게 피를 뿜어내었고, 붉은 액체는 제자들의 얼굴에 뿌려졌다.
“에…?”
“마법 써보세요.”
제자들이 도망간 이유를 알겠군. 저래서야 누가 버텨? 옛날 각성자들도 죄다 도망가겠네.
“어… 예.”
하지만, 우리 쪽 제자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 몰골을 보고도 한아빈은 몸을 휘청거리며 옥시모론의 왼손에 분홍빛 마력을 쏘아냈다.
그러기를 2, 3분. 옥시모론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는 멈추지 않았고, 치유는 어떤 전진도 없어 보였다.
“그만.”
“예….”
자신의 치유마법에 아무런 의미가 없음이 눈앞에서 증명된 탓일까. 한아빈의 얼굴이 어둡게 물들었다.
“대충 뭐가 문젠지 알겠네요.”
한아빈이 자신에게서 멀어지자 옥시모론은 자신의 왼손을 주워들어 접합 수술을 시작했다.
척 봐도 대충 끼워 맞춘 손 위로 바늘과 실이 빠르게 오르내리고, 마지막으로 벨트를 두른 후, 손목에 주사기가 박혔다.
거기까지 20초.
옥시모론은 수술이 끝난 왼손을 접었다 폈다 하며 자신의 왼손이 복구됨을 한아빈에게 보여주었다.
“음. 그러니까… 이름이 뭐죠?”
“한아빈입니다.”
“한아빈 양. 의사 혹은 간호사셨나요? 아니면 의술을 배웠다던가?”
“예. 간호학과를 조금….”
옥시모론의 눈이 가늘어졌다. 방독면 탓에 입가가 보이지 않지만, 아마 웃고 있으리라.
“그럼 전부 잊어버리세요. 마법이건, 초능력이건, 무술이건, 모든 치유술은 이치를 초월하는 힘이랍니다.”
“예?”
옥시모론이 자신의 왼손에 달린 벨트를 뜯자, 벌써 살점이 돋아 연결된 왼손이 나타났다.
접합 부위에 봉합사가 남아있지만, 눈에 띄는 부분은 그뿐, 옥시모론의 왼손은 이미 회복이 끝나있었다.
“전직 간호사로 말해보세요. 이 접합 수술은 어땠나요?”
“저… 그게….”
“화내지 않을 테니까요.”
“…엉망이었습니다. 신경이나 혈관에 대한 고려도 없는 데다가. 오히려 지적할 부분이 더 많았어요.”
옥시모론은 그런 말을 들었음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기쁜 감정을 표출하였다.
“그렇죠. 하지만 이게 영웅의 치유술이랍니다. 머릿속에 혈관이나 신경, 거부반응 같은 복잡한 건 머리에서 지워버리세요.”
최고위 의무관. 옥시모론의 목소리가 열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상상하는 건 온전한 상태일 때의 모습 하나뿐. 그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그것을 상상하며 치유를 사용하면, 결과가 보일 거예요.”
“하지만, 옥시모론 선생님도 봉합사나 약물을 사용하시는….”
자신이 쌓은 지식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듯, 한아빈은 필사적으로 자신의 말을 이었다. 옥시모론의 말은 수천 년을 쌓아 올린 현대 의학의 부정이었기에.
“봉합사는 제 능력으로 만드는 거니까 실제 봉합사와 같은지 모르겠지만, 약물은 그냥 맹물이랍니다.”
“아니 잠깐만, 지금 너 우리한테 여태껏 맹물을 주사한 거냐?”
나조차도 놀라 벌떡 일어날 충격적인 진실.
“절대안정이라니까요.”
옥시모론이 손을 휘두르자, 보라색 약물이 담긴 주사기가 이마에 박혔다.
이거 맹물이라며. 왜 보라색이야.
“맹물을 주사하는 이유는 제가 사람을 치료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랍니다. 어떤 효력이 있는지, 부작용이 있는지는 상관없어요. 결과로서 상대방이 치유되니까요.”
단순한 암시죠.
내가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