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352)
마법소녀 아저씨 352화(352/671)
352. 기름 부음 받은 자(2)
내 공격과 적의 공격이 맞부딪쳤다.
그리고, 오랜만에 느끼는 감촉이 손을 타고 올라온다.
공격이 거의 같은 힘으로 부딪혀, 서로의 힘이 깨져나가는 감각.
최근 나와 힘 싸움이 가능한 적들을 못 본 것은 아니다.
그레이 이터나, 마법 왕국의 수호대처럼.
단시간이라면 나와 힘 싸움이 가능한 이들을 여럿 만났지만.
그들 대부분은, 거대한 덩치를 사용한 막대한 질량에서 온 것이거나.
마법이나, 초능력. 혹은 이계침식과 같은 변칙적인 수단에서 온 것.
당장 파르 중장이 내 공격을 무효화하며 막아 냈지만, 그때는 공격 자체가 무효화되었던 감각이었고.
천하일검이 내 공격을 틀어막았지만, 그것은 한 방 한 방이 밀리니 압도적인 물량으로 수십 개의 검기를 내 망치 한 방의 힘에 맞춘 것이라면.
이것은, 순수하게 각자의 힘이 동등한 상태에서 맞부딪혀 깨져나가는 깨끗한 감각.
순수한 힘과 힘이 맞부딪히며 생겨나는 상쾌한 힘의 공멸.
이 감각을 느끼는 게 얼마 만일까.
무언가를 부수고, 파괴하는 감각만이 손을 타고 오르던 긴 세월.
내 감정을 담아 내리친 힘이 거부당하는 감각만이 돌아오던 나날.
과거의 전투나 대련에서나 느끼던 감각이 손을 타고 오르니.
옛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저, 강함만을, 모두의 미래만을 좇던 시대의 기억이.
참혹했으나, 동료들과 함께라면 웃을 수 있던 시절의 기억이.
비참했으나, 끝에는 서로가 불붙은 담배를 베어 물며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던 추억이, 이어 내려온다.
지금은 이제 또 다른 어두운 기억으로 덧칠되어, 다시 볼 수 없는 전사로서의 기억.
공격 한 번을 맞부딪혔을 뿐인데, 뒤따라오는 수많은 기억의 가지들.
절로 웃음이 솟아오른다.
심각한 상황임은 알고 있다.
내가 패배할 경우, 많은 희생이 난다는 것을.
그렇지만, 내가 패배한다 한들, 인류가 멸망하진 않을 것이다.
저 자칭 메시아가 전 세계를 집어삼킬 것이라 했지만.
내가 패배한 순간, 공적 범위가 확대될 것이고.
제네바 지부가 격리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수많은 영웅들이 저 녀석을 퇴치하러 달려들 테니까.
그리고, 수많은 희생을 통해 인류는 또다시 살아남겠지.
멸망하진 않을지언정, 시체가 쌓이고, 피가 흐를 것이다.
그만한 짐이 내 위에 올려졌지만.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그 속에서.
기기기긱.
빠루가 망치를 긁으며 내려온다.
끝에 달린 노루발로, 내 망치 자루를 잡아채고자.
살짝 손을 흔들어 떼어 내려 했지만, 빠루는 망치에 들러붙은 것처럼 딱 달라붙어 있었고.
그에 나는.
“잔재주 부리지 말자고!”
웃음기 담긴 고함을 내지르며, 왼손으로 망치 머리를 잡고 그대로 양손을 위로 들어올렸다.
카앙.
금속이 금속을 가르는 소리가 멈추고, 대신 노루발이 자루를 붙잡는 소리가 크게 울린다.
자칭 메시아의 본래 목적은 이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노루발로 망치를 잡아채, 내 손에서 무기를 버리게 만들거나.
긴 장기전을 유도하며 빠루에 붙은 화염으로 날 불태울 속셈이었겠지.
아니면, 각자의 무기를 봉인하고, 내가 그렇듯 그 틈에 주먹을 때려 박았을지도 모른다.
일단, 떠오르는 노림수는 저 정도.
적이 생각한, 내가 떠올리지 못한 기발한 수단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 길은 봉쇄되었다.
“빠샤!”
평범하기 그지없는, 물리 법칙으로 인해.
철봉처럼 붙잡은 망치가 공중으로 높게 치솟아 오르고.
망치 자루에 걸린 빠루도, 함께 허공으로 튀어 오른다.
그것을 붙잡은 내 적과 함께.
지면에서 벗어나 허공으로 날아오른 적.
정말 자기 말대로 어떤 특수 능력도 없는지, 그녀는 허공에서 빙빙 돌며 추락하고 있다.
발판 하나 만들지 못한 채.
마치, 나처럼.
“하하.”
웃음이 나온다.
정말, 웃음을 멈출 수가 없다.
빙빙 돌며 추락하는 적의 시선이, 내게 박힌다.
자세는 유지하지 못하더라도, 적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그래, 그래야지.
비록, 사고방식과 성격. 그리고 기억이 다르더라도.
저것은 나의 닮은꼴이다.
나를 기반으로 만들었지만, 전혀 다르게 자란 유밀과 다르게.
나와 관여된 소망에서 태어난, 내 반대편, 내 역위상.
그리도 흔한 공중 발판 능력 하나 없는 나로서는 추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할 수 없다.
그렇기에 발과 대지를 접합시키며, 무기의 막대한 질량을 작은 몸이 휘두를 수 있도록 만들고, 지상전을 유지하는 게 기본 전법이지만.
거대한 힘을 가진 존재와의 싸움에선, 그런 접합은 너무나도 쉽사리 뜯겨 나간다.
그렇기에, 공중은 내 약점임과 동시에.
가장 신경을 써야 할 상황.
공격이 들어오면, 이를 악물고 견뎌 낸다.
고통에서 눈을 돌리지 말아야 한다.
이후 필연적으로 이어질, 나쁜 수밖에 남지 않는 수 싸움은 머리에서 지워라.
잠깐의 고통을 막고자 공중에서 발버둥 친다면.
이후 있을 나쁜 미래를 생각한다면.
정말로 공중에 뜬 것이 악수가 될 것이기에.
튼튼한 몸으로, 고통을 견뎌 내라.
설령 팔 하나를 내주더라도, 다시 땅으로 돌아와라.
그러기 위해, 적에게서 시선을 떼 놓지 마라.
자잘한 공격 따위를 막을 시간에, 적의 위치를 찾아라.
오직 나만이, 가능한 일.
제자들에게 가르쳐서도 안 되고, 제자들이 행해서도 안 되는 일.
내게 있어 공중에 떠있는 동안 박혀오는 저격과 추가 공격은 단순한 상처지만.
제자들에게 있어, 그것은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
죽음이라는 최악의 선택이, 그 육체로 인해 머나먼 장소에 있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그것을, 내 적이 행하고 있다.
오로지 지상으로 돌아오는 것을 목표로 하며.
몸이 회전하는 무질서한 추락 속에서도, 날 절대 놓치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달렸다.
적이 떨어질 장소를 향해.
망치가 지금은 존재치 않는 땅에 긁힐 만큼 극단적으로 자세를 낮추며, 앞으로 달려 나간다.
허공에서 춤추던 적이 내려온다.
시선을 내게 고정한 채.
힘이 제대로 담기지 않은 빠루를 위로 치켜들며.
그래, 이 공격만은 막아 내겠단 소리지.
하지만, 이미 끝났어.
“새꺄 넌 이제 못 내려와!”
쾅.
그 누구도 없기에, 한참 전에 제한 없이 리미터를 풀어 버린.
제대로 맞는다면 어쩌면 우주까지 솟구칠지도 모르는 충격이 담긴 올려치기.
그것이, 대지의 힘을 받는 나와 비교하면 약하디약한힘이 담긴 적의 빠루와 맞부딪혔다.
또다시 적이 공중으로 솟구친다.
몸을 제어할 수 없는 하늘로.
약간 악의적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내가 이런 짓을 당했다면, 분명 속으로 쌍욕을 퍼부었겠지.
그나마 나는 변형하는 망치가 있어, 이 지옥 같은 무한 콤보를 애프터버너를 통해 멈출 수 있지만.
적의 무기는 빠루.
무언가 특수 능력이 있지 않는 한, 이 공격은….
“…씨발 요즘 왜 내가 생각만 하면 다 틀리지.”
그리 쌍욕을 퍼부으면서도, 웃었다.
적이, 내가 생각한 이 완벽한 공격에 대처하고 있기에.
화르륵.
사방에 불이 피어난다.
허공에서 쏟아 내리는 기름의 폭포에 불이 붙고.
기름진 하늘 전체에 거대한 불이 피어난다.
그래, 기름은 장식이 아니라 이거지.
나는 기름과 어떤 상호 작용도 하지 못하지만, 적에게 있어 기름은 실존하는 무언가.
적은 허공에서 쏟아지는 기름에 빠루를 박아 넣고, 공중에 멈춰 섰다.
그리고, 허공에 매달린 채 나를 빤히 바라본다.
짧은 공방이 끝난 후, 잠깐의 탐색 시간.
자, 과연 적은 어떻게 나올까.
나는 입가에 걸린 미소를 숨기지 않은 채, 적을 빤히 바라보았고.
그렇게, 3초 정도 흘렀을까.
적이 행동에 나섰다.
화르륵.
빠루의 불길이 더욱 커지고.
그녀가 매달린 기름 폭포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다.
뭐하는 거지? 분신자살인가?
나로는 예상치 못하는 수에 잠시 당황하는 사이.
자칭 메시아는 불타는 기름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적을 시선에서 놓친 데다가, 의도도 파악하지 못해 내가 당황한 순간.
철퍽.
거대한 기름의 끈적임이 들림과 동시에.
“미친.”
욕이 나올 만한 광경이 펼쳐진다.
하늘이 무너진다.
막대한 양의 기름이, 붉은 빛을 몸에 두르고. 거대한 점액괴물처럼 내 머리위로 쏟아져 내린다.
저럼 어떻게 되는 거지?
기름은 나와 상호 작용하지 않는다.
빠루의 불은 나와 상호 작용한다.
그렇지만, 저렇게 불타는 기름도 나와 상호 작용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나?
저 상태의 기름도 내게 아무런 영향이 없다면, 나는 불길만을 대처하면 된다.
그렇지만, 영향이 있다면. 저것은 거대한 질량 병기.
막아 내야 할 필요성이 있는 물건.
그렇게, 잠깐의 고민이 머리에 스쳐 지나갔고.
막아야 한다.
그런 판단이 내려섰다.
불길만이 내게 영향을 끼친다면 의미 없는 짓이고, 수 싸움에서 밀리겠지만.
저게 내게 영향을 끼치는데 그대로 받아 내면, 난 무조건 망한다.
그런 생각이 들만큼 막대한 양의 기름이었기에.
쿵. 쿵.
양다리를 땅에 붙이고.
망치를 높게 치켜들었다.
그리고, 원을 그리며 회전시킨다.
기름을 쳐내고, 불길을 주변으로 분산시키기 위해.
기름이 오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지만.
원심력을 유지하며 가속시키기 위해서는 예열이 필요하기에, 기름의 상호 작용 유무를 판단하지 않고 수비 자세에 들어갔고.
절퍽.
마침내, 망치에 기름이 닿았다.
무거운 감각과 함께.
쯧. 영향 있네.
그런 생각도 잠시.
곧, 그 생각은 머리에도 떠오르지 않게 되었다.
막대한 양의 기름이 날 짓누른다.
뜨거운 불과 함께.
고통과 무게를 견디며, 휘두른다.
무너진 하늘이 끝나리라 믿으며.
그 과정에서 흩날린 불붙은 기름이, 내 몸에 떨어져 내린다.
타오르는 아픔이 몸에 서리지만, 멈추지 않는다.
무게에 짓눌릴 수 없기에.
멈춘다면,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고통이 뒤따라옴을 알기에.
그렇게, 무아지경에 빠져 무기를 휘둘렀고.
어느 순간, 망치에 걸리는 힘이 가벼워졌다고 느낀 순간.
아래.
그런 직감이 내달려.
머리 위에서 회전하는 망치를, 그대로 아래로 내리쳤다.
깡-.
거대한 힘이 담긴 것 치고는 그리 크지 않은 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래에서 위로 쳐올린 불타는 빠루와 기름범벅이 된 망치가 충돌하는 소리.
거기엔, 나와 마찬가지로 기름범벅이 되어 피부가 짓무른 적이 있었다.
공중에 떠버린 탓에, 계속되는 공격을 피하고자, 스스로 불타는 기름에 뛰어든 내 적이.
그렇게 불타면서도, 내 빈틈을 노리고 시선이 닿지 않은 아래로 숨어들어, 내게 비수를 들이민 적이.
그녀의 표정이, 시야에 들어왔다.
불길에 짓물러, 피부가 검붉게 변하고 잔뜩 수포가 피어난 얼굴.
그렇지만, 그녀는 웃고 있었다.
아마, 나도 똑같은 얼굴이겠지.
그녀가 웃는 이유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가 웃는 이유는 알고 있다.
재미있다.
기쁘다.
그래, 분명. 옛날엔 이랬었지.
온 힘을 담아, 망치를 휘둘렀다.
이 장소에는 내게 방해가 되는 이가 아무도 없다.
모든 힘을 쏟아 낼 수 있다.
이 장소에는 전투의 열기를 방해할 기괴한 수단이 없다.
마법도, 초능력도, 특수한 능력도, 이계침식도.
존재하는 것은, 각자의 양손에 들린 무기와.
자신의 강건한 육체에서 나오는 순수한 힘.
비록, 나는 사용하지 못하고, 적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기름이라는 존재가 있긴 하지만.
대신 내겐 망치가 있지 않은가.
완전히 동일한 전투가 아닌, 미묘하게 변칙적인 상황에서 오는, 맛있는 조미료.
그 전투에 흠뻑 빠져, 웃음을 띠었다.
캉.
캉. 카가가가강.
이제, 둘 모두에게 시작과 같은 방심은 없다.
무기가 휘둘러진다. 서로 부딪힌다.
불타는 기름이 시야를 가로막는다.
힘이 담긴 망치가, 기름을 되돌리며, 그대로 적에게 다가선다.
전투가 이어진다.
팔이 부러지고, 피부가 짓누르고, 몸이 망가져도.
공방은 멈추지 않는다.
대지를 파헤치고, 주변 사람을 멸하며, 도시를 무너트릴 힘도.
여기서는 단순한 공격 한 번에 담긴 힘.
그 누구도 이 대결을 방해할 수 없다.
그 누구 없이, 행복하게 온 힘을.
바라던 대련을 여기서 풀어낸다.
그 누구도 없어서, 다행이다.
이리도 즐거우니.
“지금, 행복해?”
이어지는 공방 속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린 기분이 들었다.
정말 말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