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371)
마법소녀 아저씨 371화(371/671)
371. 호화 여행(2)
솔직한 마음으로는 거대 앵무조개가 강적이라는 느낌은 없다.
앵무조개 본체가 기어 나왔다면 당연히 나도 정색을 하고 관리국에 미친 듯이 연락을 날리겠지만, 단순한 하수인인 거대 앵무조개라면 그냥 강한 괴수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빛기둥 사태 때도 내부에 모든 일의 원흉이 존재했기에, 거대 앵무조개로 힘을 돌릴 여유가 없었던 것뿐, 당시의 우리에게 시간이 주어졌다면 충분히 퇴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나는 몇 배는 더 강해졌다.
그러니, 거대 앵무조개에 관해서는 그리 큰 위험을 느낄 수 없다.
내가 염려하는 것은 앵무조개 본체의 봉인이 잠깐이지만 뚫렸다는 것.
언젠간 풀리리라 생각했지만, 일시적이나마 그 틈이 열리다니.
당장 눈앞에서 붕붕 휘둘러지는 촉수보다, 봉인이 풀릴지도 모른다는 미래가 더욱 날 두렵게 한다.
…물론, 이것은 나 혼자만의 걱정일 뿐.
“후끼야아아악.”
다른 사람들이라든가, 거대 앵무조개의 촉수에 붙잡혀서 허공에서 붕붕 휘둘러지는 백시현은 눈앞에 닥친 저 괴수가 더 큰 문제겠지.
…근데 쟨 뭐 하다가 시작부터 붙잡힌 거야?
다행히도, 거대 앵무조개 또한 봉인이 막 풀려 정신이 없는 건지, 그 거체가 서서히 수면으로 솟구치는 와중에도 아직까지는 배를 공격한다든가 촉수에 붙잡혀 공중에서 붕붕 휘둘러지는 백시현을 내려찍거나 하는 적대적 행위를 보이진 않고 있다.
그렇다곤 해도.
“승객 여러분! 진정하시고, 처음 안내해드린 것처럼 피난 구역으로 대피해 주시길 바랍니다!”
“영웅 자격이 있으신 분들은 로비 갑판으로 모여 주시길 바랍니다! 반복합니다! 영웅 자격을 보유하신 분들은 로비 갑판으로….”
“나 괴수 전문 영웅 히트 앱소버가 여기 있으니 걱정하지들 마시게! 내가 잡은 괴수만 해도 그 수가…. 어… 좀 많이 크네….”
크루즈선 하나가 뒤집히기엔 충분한 상황이지.
아직 괴수가 적대 행위를 하지 않았다던가 그게 뭐가 중요한가.
배보다도 거대한 괴수가 눈앞에서 튀어나온 순간, 평범한 사람이라면 패닉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일. 그것도 괴수가 다 튀어나온 것도 아니고, 튀어나오는 도중인데도 배보다 크다면 말이다.
크긴 크네.
본래 항공 모함보다도 덩치가 거대했던 놈이니….
호화 여행용 크루즈선 또한 한 덩치 하지만, 저 정신 나간 것 같은 거대 앵무조개에 비하면 작은 덩치.
애당초, 내가 봤던 거대 괴수 중에서도, 크거나 비슷하기라도 한 녀석이라면 기껏해야 콜로서스나 그레이 이터, 보이드 러너, 셋 정도.
그 덩치 탓에, 퇴치라면 내가 어떻게든 하겠지만, 배의 안전은 도무지 보장을 못 하겠다.
덩치가 크면, 그만큼 생명력도 질긴 법.
저 녀석 머리통에 망치를 박아 넣는 동안, 저놈이 배를 후려쳐서 침몰시킬 가능성이 높지.
…배는 확실히 터지겠군.
인명 피해는….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일단 민간인들은 피난 구역에 대피해서 쉘터로 들어갈 테고.
영웅들이야…. 알아서 살겠지.
피난 구역에 설치한 쉘터의 강도가 약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있긴 하지만, 카탈로그 내용대로라면 더럽게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하니, 예산 횡령이나 과대광고가 아니라면 어떻게든 되겠지.
그래도, 혹시 모를 가능성에 대비해 하나 정도는 손을 써둘까.
“야. 정령.”
‘…퐁?’
내가 말을 걸자 당황한 것일까, 여전히 내 옆에서 둥둥 떠다니던 정령은, 제 입으로 물방울 소리를 내며 시선을 내게 돌렸다.
“저놈 말고 봉인 풀린 놈 없지?”
‘없어.’
“살덩이 괴물들 없는 거 맞지?”
시체에 전염시켜 숫자를 불리는 지옥 같은 괴물. 그것의 봉인이 풀렸다면, 거대 앵무조개고 나발이고 당장 관리국에 비상 연락 때리고 영웅들 소집에 들어가야 하니.
‘없어. 풀린 건 저거. 하나.’
다행이군.
“그럼, 저건 내가 처리할 테니. 너희는 사람 살리는 데 집중해라.”
‘사람? 살려?’
음. 여전히 지능이 모자라나.
아까는 좀 깔끔하게 이야기하더니.
“도망친 사람들 있잖냐. 거기로 공격 향하면 좀 막아 주고, 지금 갑판에 나온 애들도 두들겨 맞거나 추락하면 좀 보호해 주고.”
정령이 좀 멍청하긴 했지만, 나는 그에 당황하지 않고 알기 쉽게 풀이해 정령에게 내 의사를 전달했다.
촉수랑 이야기하다 보니, 이런 이해력이 낮은 애들이랑 대화하는 실력이 늘었단 말이지….
‘알았어.’
내 의사 전달 실력이 향상된 것을 증명하는 것일까.
정령은 이 이상 되묻지 않고 퐁퐁거리며 공중을 떠다니더니, 곧바로 바다 안쪽으로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상당한 힘이 담긴 투명한 물 구슬들이 우르르 솟아올랐다.
나조차도 눈으로만 봐서는, 거기 있다고 잘 알 수 없는 존재들.
그들은 바다에서 솟아올라 주변으로 빠르게 흩어졌고.
일부는 빠르게 배 안으로.
일부는 갑판 위에 모인 영웅들에게 천천히 다가가, 그 옆에 멈춰 섰다.
그런 와중, 그 누구도 새로운 동맹군이 이 전장에 합류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으니.
과연, 이런 건가.
물 주변에서 사건이 일어날 경우 정령들이 도와준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도와주는지는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그렇기에, 힘을 보태 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알고 있었건만.
지금 보니, 말 그대로 본인들이 전투에 참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자신들을 감추며.
어쩌면, 그레이 이터 때도 저렇게 행동했을지도 모르겠어.
우리가 모르고 있었을 뿐.
당장 나조차도 아무것도 모른 채 이 주변을 둘러보면 이계의 힘이 자연스럽게 뭉쳐있다, 정도라는 인식만을 가질 수 있으니.
정령이라고만 하니, 당연히 정령 여왕처럼 인간형을 생각했었는데.
이 녀석들의 본질은 자연 그 자체였지.
그것을 극도로 강화하면, 저 정도로 깔끔하게 위장할 수 있단 건가.
뭐, 잘된 일이지.
이걸로, 인명 피해를 줄일 방법은 최대한 마련했고.
이제 남은 건 어떻게든 저 앵무조개를 빠르게 퇴치하는 것뿐인데….
“후끼야아아아악.”
아까부터 들려오는 기묘한 비명 때문에, 도저히 진지해질 수가 없다.
지금도 촉수에 붙잡혀 괴상한 비명을 질러대는 백시현.
더 짜증 나는 것은 저게 놀고 있거나 그런 게 아니라, 나름대로 필사적으로 빠져나오기 위해 노력하는데 저 꼴이라는 사실이다.
자기 몸이 다치는 것도 참아내며 촉수를 전기로 지지고 있고.
촉수를 끊고자 여기저기 소환된 무기가 날아다니는 데다가.
한 손으로 날카로운 검을 들고 붕붕 휘두르고 있는데도.
아직도 촉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공중에서 괴상한 비명을 내지르는 백시현.
…대체 뭐 하는 걸까.
아직 비명 지를 기운이 남은 걸 보니, 압착당해서 서서히 죽어가는 상황은 아닌 모양인데.
백시현 본인도 위험한 상황인 건 아는지, 계속 힘을 외부로 뿜어내고 있는 것을 보니, 아마 자기 주변에 염동력 보호막을 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왜 비명은 저렇게 힘 빠지는 소리지.
“히기우후야이오오오오.”
“….”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닌지, 갑판에 모인 영웅들도 반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허공을 날아다니는 백시현을 바라보고 있다.
분명 위기 상황인데, 도저히 전투에 집중할 수가 없는 상황.
더 웃긴 것은,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점이다. 앵무조개도 자기 앞에서 기묘한 소리를 내며 날아다니는 작은 날파리가 신경 쓰이는지, 배를 공격하지 않은 채, 백시현을 붙잡은 촉수를 계속 빙빙 휘두르며 수면 위로 솟구치는 상황.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일까요. 선배님.”
“몰라.”
아니 진짜 모르겠다.
저게 만약 적의 시선을 끌기 위한 의도적 행동이라면, 확실히 백시현은 이번 전투의 제일 공로자라고 해도 될 수준.
단순히 짜증 나서 저러는 게 아니라, 겉보기와 달리 백시현이 가하는 공격이 꽤 위협적인가?
그래서 백시현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는 거고?
그 가능성이 사실이라면….
혹시, 지금 저 녀석, 내가 아는 거대 앵무조개보다 한참 약한가?
봉인이 덜 풀렸다든가, 본체의 힘을 빌리는 방식이라 본체가 없다면 극도로 약해진다거나.
그렇다면, 자신에게 강한 공격을 가하는 백시현을 우선시하는 게 말이 되긴 하는데….
그런 생각에, 적의 강함을 확인하고자 적의 역량을 체크해 보았지만.
역시 모르겠다.
그런 생각만이 머리에 떠돌았다.
사람 형태나, 소형 괴수라면 그 안에 품은 이계의 힘 총량으로 대략적인 전투 능력을 파악할 수 있다.
인간 형태라면 이계의 힘이 적어도, 그 행동에서 대략적인 강함도 유추할 수 있고.
그렇지만, 거대 괴수들은 이야기가 좀 다르다.
제 몸 안에 품은 힘의 분배 방식이 인간과 전혀 다르고, 때에 따라서는 이계의 힘이 아예 느껴지지 않는 종류도 있다.
일단 인간형이라면, 심장, 뇌, 단전, 손에 든 무기.
설령 생물학적으로 내부 상태가 전혀 달라도, 일단 몸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면, 어디에 모이고 흐르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그렇지만, 거대 괴수 종류는 일단 육체적 성능부터 차원이 다르다.
아무런 특수 능력 없이, 저러한 거체를 유지하는 몸뚱어리. 즉, 이미 육체의 성능부터가 다르기에, 이계의 힘 없이 순수하게 육체 성능으로 B급을 초과하는 괴물들도 있어 힘 총량으로는 확언을 못 내뱉고.
괴수가 품은 이계의 힘 총량을 그 덩치 탓에 한눈에 파악하기 힘든 문제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일단, 이번 케이스는 둘 다 해당하는데.
“끼히으아악.”
일단 저만한 거체를 유지하는 것을 보아, 육체부터가 말도 안 되는 수준일 것이다.
거기에 더해, 얼핏 보기에는 적이 품은 힘의 총량이 적은 편이지만, 내가 파악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장소에 힘이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자… 어떻게 해야 할까.
“뀨아아아악.”
내가 고민하는 사이, 정신을 놓았던 영웅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각자가 가진 가장 강력한 공격을, 거대한 앵무조개를 향해 퍼붓는 영웅들이 있긴 하지만. 그 행동은, 앵무조개에 있어 날파리가 떠다니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단, 지금 저리 행동하는 영웅 대부분은 적과 자신의 역량 차이를 제대로 알지 못해, 무작정 강한 기술을 날리는, 질이 떨어지는 이들.
그런 존재들의 공격이야 뻔하고.
상위권에 속한 이들은 나처럼 긴급상황 발생 시 언제든지 뛰어들 수 있는 거리에서 적을 관찰하거나, 적에게 달라붙어 견제 수준의 약한 공격을 걸고 있다.
그렇기에, 앵무조개가 그런 허접한 공격들은 모두 무시하고, 하던 대로 계속 백시현을 가지고 놀거나, 눈에 확 띄는 거대한 배를 공격할 것이라 생각했건만.
내 예상과 반대로, 앵무조개는 영웅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째서?”
쿵. 쿵.
촉수가 영웅들에게 내리친다.
그 공격은 갑판을 부수고, 금속을 뒤틀지만.
영웅들은 여유롭게 공격을 피했고, 갑판을 내리친 후 잠시 그 자리에 남은 촉수에 공격을 쑤셔 박는다.
그 행동이 반복된다. 계속.
누군가가 촉수에 잡혀가기도 하고, 촉수 공격을 피하지 못하기도 하였지만, 그조차도 다른 영웅들이 도와줌에, 크게 다친 사람은 없는 상황.
그 전투의 흐름을 보고, 뒤에서 관망하던 이들도 무기를 들고 전투 속에 뛰어들었고, 힘을 아끼던 이들도 강한 공격을 가하기 시작한다.
거대 앵무조개가 덩치와 달리 약하다는 것을 인지했기에.
그래, 저 녀석은 약하다.
덩치가 크긴 하지만, 물풍선이나 마찬가지.
공격은 느리고, 육체는 연약하며, 힘은 질량에서만 나올 뿐.
강대한 괴수가 이리 약하게 나온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약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하나뿐.
“한 방에 끝내자.”
퉷.
손에 침을 뱉고, 망치를 고쳐잡는다.
그리고, 힘을 모아 나간다.
쿵.
주변에 충격파가 퍼짐과 동시에 리미트가 풀리고, 감정이 피어오른다.
사무적인 태도로 인류를 지워 없애려 했던, 앵무조개에 대한 분노.
과거, 수많은 영웅을 죽였던 괴수에 대한 분노.
호화 여행을 방해함에 대한 분노.
그것들이, 내 안에 모이며 망치에 담긴 힘을 키운다.
그래.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다.
저 존재가 이상한 짓을 하기 전에, 여기서 말살한다.
특수 능력이 있다면, 그 카드를 꺼내기 전에 몸을 터트린다.
아직 봉인이 풀리지 않아 약한 상태라면, 힘을 회복하기 전에 날려 버린다.
단기 결전.
저 존재가, 배를 집어삼키기 전에.
내가 약하다고 표현하긴 했지만, 그 덩치가 어디 가진 않기에, 지금도 촉수 공격 한 번 한 번이 갑판을 일그러트린다.
빠르게 퇴치하지 못하면, 배가 가라앉을 것은 당연지사.
그렇기에, 빨리 끝낸다.
쿵.
필요한 힘이 모인 순간, 또다시 충격파가 몸 주변으로 퍼져 나간다.
충격파가 주변을 울린 탓일까. 전장에 일직선의 길이 생겼다.
이 자리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이가 누군지 알아차린 영웅들이 내어준, 일직선 길.
“가세요! 포요!”
단거리 경주의 시작 신호를 알린 것은, 어느새 끼어든 내 파트너.
파트너의 목소리와 동시에. 빛나는 마법진이 일직선으로 피어오른다.
내가 힘을 쏟아도, 갑판이 부서지지 않을 것을 보증하는 푸른 마법진.
그 위를, 달려 나간다.
빠르게, 그저 빠르게.
그러며,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뭐가, 배가 침몰하는 것이 확정된다는 거냐 황왕.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데.
내가 없었더라도, 이들은 배를 지키지 못할망정 승객들은 지켜냈으리라.
그런데, 거기에 내가 더해졌어.
이런 상황에서 배가 침몰하겠냐.
확정된 미래 따윈 없다고.
그러니까.
“잘 가라. 해물탕에도 못 넣을 앵무조개 새꺄.”
이 망치는, 너한테 희생당한 엔터프라이즈 대원들에게 바칠 테니까.
쿵.
단거리 질주를 끝내고, 그대로 점프해 내려친 망치가, 껍질을 강타한다.
머리보다 약간 위쪽에 있는, 척 봐도 단단해 보이는 앵무조개의 집.
그렇지만, 그것은 제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내 힘이 담긴 망치는, 너무나도 손쉽게 껍질을 파괴했고.
그 힘을 잃지 않은 망치는, 그대로 앵무조개의 속살을 뒤흔든다.
펑.
망치의 충격에 견디지 못해 폭발한, 희고 붉은 질척이는 살점이 사방으로 비산한다.
역겨운 점액이 몸에 흩뿌려진다.
그렇지만, 망치는 멈추지 않는다.
껍질을 부수고, 내장을 폭파시킨 망치지만, 여전히 그 안에는 막대한 힘이 남아있으니.
그러니, 망치는 계속 휘둘러진다.
계속해서 손맛이 바뀐다.
단단한 것을 내리치는 감각. 부드러운 것을 내리치는 감각.
몇 겹으로 이루어진 외부 갑각이 계속 깨져 나가고, 부드러운 내장을 타격한다.
그것이 몇 번이고 반복됨으로써, 내가 모든 힘을 표출한 후.
내가 망치를 멈춘 자리에는.
“쓰레기 새끼.”
내가 그런 말을 내뱉을 만큼, 쓸모없는 고깃덩어리로 변한 괴수만이 남았다.
제 몸을 지키고자 겉에 두른 조개는 그 역할이 불가능할 만큼 금이 가고 구멍투성이로 변했으며.
그 단단한 조개로 가리던 속살은, 타격 지점으로부터 퍼진 충격파를 견디지 못하고 곤죽이 되었다.
그렇게 제집이 박살 나고, 내장이 으깨진 괴수는.
사방으로 휘두르던 촉수를 힘없이 내리고, 그저 거품을 뿜으며 비참하게 꿈틀거리고 있을 뿐.
그것에게는, 더 이상 무언가를 상처입히거나 할 힘이 남지 않았다.
“뭐. 끝났네.”
회복이고 뭐고, 이 녀석에게 뭔가를 할 힘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망치에 얻어맞은 자리가 일직선으로 공동이 뻥 뚫린 덕에, 안쪽 사정도 잘 보이니 알게 된 것이지만.
처음부터 이 녀석 안에는 이계의 힘이 거의 없었다.
아마, 본래 본체에게서 힘을 받아 싸우는 타입의 괴수였겠지.
그 육체만으로도 A급 중간 이상이니,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흉악한 녀석이지만.
상대가 안 좋았지? 안 그래?
하필 내가 있는데 부활하다니 말이야.
본체가 없더라도, 주변을 집어삼켜 이계의 힘을 채웠다면 더 격한 파괴를 휘두르는 미래가 있었을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그런 미래는 내가 이 빌어먹을 새끼를 짓이김으로써, 모두 사라졌다.
“으어…. 몸부터 씻어야지.”
온몸에서 썩은 내랑 비린내가 진동하네.
이 사단이 났으니, 관리국이 출동하고 난리가 나겠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몸부터.
그리 생각하고, 앵무조개로부터 뛰어내리려는 순간.
덜컹.
“음?”
갑자기 균형이 무너져, 다리를 헛디뎠다.
뭐지? 최후의 발악인가.
내가 지금 서 있는 장소는 앵무조개의 머리 위.
그러니 앵무조개가 최후의 발악을 하며 움직인다면, 당연히 곧바로 영향을 받을 발판이긴 한데.
칫. 역시 그래도 꼴에 O급의 부하라고, 한 방에 안 죽는다는 거냐.
퉷.
혀를 차고, 뒤져가는 앵무조개 머리통에 침을 뱉은 후, 자세를 다잡았다.
이후 있을, 무언가를 위해.
쿵.
거대한 소리가 울리고, 바닥이 기울어지기 시작한다.
온다.
그리 생각하고, 신경을 집중했다.
이어질 공격에 대비하고자.
그리고, 5초가량이 지났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뭐야?
쿵. 첨벙.
그렇지만,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와, 뭔가가 움직이는 물소리는 계속 이어졌고.
몇 번 더, 의문을 떠올릴 때쯤.
그 소리의 정체를 알아냈으니.
“…아 망할.”
기울어진다.
목숨을 잃고, 제 몸을 유지하지 못하는 괴수의 육체가.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 거체가 모조리 증발한 것도 아니고, 그냥 내장이 갈려 나가 뒤졌는데, 그럼 어찌 되겠는가.
“가라앉던가 어디로 쓰러지겠지.”
여기서 문제는, 이 거대한 앵무조개의 사체가 쓰러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고.
“하하. 망할.”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기에.
죽은 앵무조개의 사체가 타이타닉Ⅱ를 덮치는 상황.
내가 이 상황에서 뭐 어쩌겠는가.
공중 발판도 없는데.
뭐. 아무튼.
그렇게 모든 것을 포기한 나는 덤덤히 품에서 금속 막대를 꺼내 입에 물었고.
조용히, 관계자들에게 사과했다.
“5년 무사고…. 날아갔네….”
“꺄히우히야아아악.”
펑.
거대한 물기둥이 생겨 나는, 폭발에 가까운 소리와 함께.
그렇게, 모든 것이 거대한 물기둥과 함께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