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387)
마법소녀 아저씨 389화(387/671)
389. 과학을 위하여(1)
피바다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마, 두셋쯤 죽지 않았을까.
필요 물질의 결핍으로 인해 둔중하고 아파 왔던 몸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평정을 되찾았다.
갑작스럽게 내 몸을 구성하는 일부가 사라짐에 따른 고통조차도, 이 몸은 빠르게 적응하고 나아간다.
물론, 몸이 온전한 건 아니고 입안에서 피 가래가 끓긴 하지만.
“퉷.”
이 정도야 평범하게 싸울 때도 흔히 있던 일이니.
그렇게 내뱉은 핏덩이가 꿈틀거리는 살점 위에 떨어졌지만, 그들은 이미 자기 몸 위에 쌓인 피와 살점 덕에 새로운 오물이 제 몸에 떨어지든 말든 관심도 없을 것이다.
이런 무력감도 오랜만이네.
감각 범위도 좁아서 불안하고, 장기 상태도 제대로 파악이 되질 않는다.
그래도 뭐…. 살아있으면 된 거지.
평범한 영웅이라면 이 함정에 걸린 순간 이미 죽었다.
그만큼 위험한 함정.
그리고, 이 함정이 나온 덕에 한 가지를 유추할 수 있었으니.
그 새끼들이, 정말로 여기 있다.
그 악질 범죄자 놈들이 어떻게 여태까지 관리국의 시선을 피하며 살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지하 깊은 곳의 공장에 소속되었던 과학자가, 분명 여기 있다.
사실, AO 연구소장의 말을 들을 때에도 반쯤 믿지 못하고 있었다.
AO 연구소장이 거짓말을 했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녀의 말에선 절실한 진심이 묻어나왔으니까.
다만, 적들이 뿌리는 거짓된 정보에 속았거나, 이미 과학자들을 달아난 지 오래일 가능성을 생각했을 뿐.
…진심으로 해야겠군.
그리 생각하며, 품 안에서 금속 막대를 꺼냈다.
평소 같았다면 이걸 담배처럼 입에 물겠지만, 이번에는 그런 사용처로 꺼낸 것은 아니다.
입에 무는 것은 똑같지만, 금속 막대 끝부분을 물지 않고 입 양옆에 닿도록 가로로 집어넣은 후, 그대로 어금니를 악물어 단단한 금속 막대를 꽉 붙들었다.
빠득.
거친 소리가 입안을 타고 올라와 귓가에 스며들지만, 나는 그런 소리를 흘려들으며 손가락을 움직였고.
“흐읍.”
손가락이 목표한 장소에 닿은 순간, 크게 숨을 들이켰다.
푹.
아프다.
손가락이 구멍을 파고든다. 내 몸에 생긴 붉은 구멍을.
출혈을 막고자 빠르게 굳어 버린 피를, 손가락으로 파헤치며 그 안에 든 조그만 금속을 찾는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인다.
손가락의 움직임과 비교도 안 될 만큼 격렬한 통증이 뇌리에 달린다.
둔해지며 잊어버렸던 감각이, 격렬한 고통이 되살아난다.
때려치우고 싶다.
그렇지만, 손가락은 멈추지 않는다.
뇌는 고통에 비명을 내지르지만, 그럴수록 시선은 또렷해져 간다.
감각 모두가 통증이 일어나는 구멍으로 모여 간다.
시선뿐 아니라, 통각도.
그렇게 감각이 집중됨에 따라, 내 우수한 육체는 해당 부분의 감각을 자동적으로 세밀히 읽어 나갔고.
이계의 힘이 없어 해당 감각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나는, 온전히 그것을 받아들였다.
손가락의 미세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직접 살을 파고들어 주변을 압박하는 움직임.
울컥.
배출을 막는 장해물이 사라진 미세 혈관에서부터 뜨거운 피가 쏟아지는 것이 느껴진다.
그것은 생명체를 모방하는 내 몸이, 몸 일부가 괴사하지 않기 위해 움직이는 지극히 당연한 행위지만.
지금의 내게 있어, 그 따뜻한 피는 그저 고통을 증폭시키는 쓸모없는 액체일 뿐이다.
나는 인간과 더없이 비슷한 몸을 가지고, 인간과 비슷한 활동을 이어 나가는 몸을 가지고 있지만.
한없이 근본적인 관점에서 보면, 인간과 다르다.
이 몸은 이계의 힘으로 이루어진, 모방체.
생물학적으로도, 성분 분석적으로도, 마법을 통해서도 인간과 똑같기에 구분할 수 없지만.
그러한 관점이 아닌, 좀 더 깊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심연에 명확한 차이가 존재한다.
평소에는 인간을 모방하지만, 정말 극한의 순간. 최후의 순간에는.
그 지성체의 의지에 따라, 모방을 포기할 수 있는 존재.
나를 포함한 마법 소녀들은 이계의 힘. 마력이 근본에 자리한 생물을 모방한 존재이기에, 지금 이 장소처럼 이계를 부정당한 순간 사라져야 마땅하건만, 어째서인지 힘이 사라질지언정 몸만큼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과거엔 이것을 이상하게 여겼던 적이 있었고, 당시에는 아마 몸 그 자체는 생물체 취급이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제쓰, 그릭스, 마(麼)의 이야기를 듣고 깨달았다.
이것이 나라는 생명체임을, 마법소녀는 생물학적으로는 인간으로 판정되더라도, 그들의 시선으로 보기에는 인간이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의심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순수한 에너지와 마법으로 구성된 몸. 그것이 마법소녀.
사람보다는, 정령이나 불사조에 가까운 존재.
그것이 사람의 모습을 취하는 것은, 그들의 정신 건강과 스스로의 의지가 그리 생각하기 때문일 뿐.
모든 지성체는 특수한 힘이 없어도 그 의지만으로 자기가 존재함을 증명하기에.
설령 이렇게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무언가에 맞아도, 자기 자신이 여기 존재한다는 의지가 있는 한, 그 의지를 부정하진 못하기에 남는다는 사실을.
아마, 이계침식을 뻥뻥 쓰는 애들은 이렇게 모든게 부정당해도 별다른 차이가 없지 않을까.
그들은 홀로 세계를 바꿀 만큼 증명된 존재들.
그들의 힘을 부정하려면, 이따위 것으로는 안되겠지.
그렇게, 생각을 이어 나가던 도중.
…잡혔다.
상처를 헤집던 손가락은 마침내 총알을 잡을 수 있었고.
총알을 뽑아, 땅에 내던졌다.
“끄으으윽.”
당연히, 아픔은 따라온다.
그렇지만, 견딜 만했다.
이미, 무수한 고통을 겪어 봤기에.
차라리 관통이나 당하지.
괜히 남아서 문제 일으키지 말고.
“후우.”
그렇게 한 고비를 넘긴 나는 막대를 입에 문 채 한숨을 내쉬었고.
곧, 다음 목표를 향해 움직였다.
다음 상처 자국. 관통되지 않은 총알을 향해.
그리고, 그 통증을 잊고자.
새로운 생각에 잠겨 들었다.
과연 나는, 여전히 사람임을 주장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
사실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이 생각은, 그저 그 대답을 내기 위해 역순으로 생각을 쌓아 올려 갈 뿐인 과정.
나는. 아직 사람이다.
* * *
결론만 말하자.
내가 한 짓거리는 뻘짓이었다.
이를 악물고 총알을 뽑은 것도, 고통을 넘기고자 나 자신의 존재 증명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고찰에 잠긴 것도, 그냥 죄다 뻘짓이었다.
당연히 나는 과학자를 만날 때까지 이 엿같은 이계 부정 필드가 계속 펼쳐질 줄 알았기에, 향후 행동을 방해하고 고통을 유발할 총알을 빼낸 것이건만.
처치가 끝나 헤집어진 상처를 이끌고 발걸음을 조금 옮긴 순간.
삑.
이 필드가 펼쳐질 때 들렸던 전자음과 함께 필드가 해제되었다.
당연히, 몸은 순식간에 빛의 입자를 뿜으며 회복되었고 말이다.
“이 씨발.”
내 고통은 뭐였는데 쓰레기들아.
그리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가벼워진 몸으로 주변 벽을 때려부수려는 찰나.
철컹.
천장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 그대로 고개를 들었다.
천장에 생겨난 구멍, 거기서 무언가가 금속 암에 매달려 내려오고 있다.
아무리 봐도 무기는 아니었기에, 1초가량 그것을 멍하니 바라본 후에야 그것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으니.
…모니터?
전원이 켜져, 빛을 반짝반짝 뿜는 모니터.
그것은 소리가 들린 지 채 5초도 되지 않아 천장에서 빠져나와 내게 화면을 보여 주었고.
방송이 시작되었다.
“안녕하신가. 시베리아의 영웅 양반.”
“이레귤러 실험체겠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두 종류였으며, 모니터에서 비춰지는 그들 또한 두 명이었다.
기이하리만큼 마른 몸에, 사방으로 들뜬 갈색 산발을 하고, 확대경을 왼쪽 눈에 붙인 남자와.
레슬러라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압도적인 풍채를 갖추고, 더럽다고 느껴질 만큼 엉망진창으로 구레나룻과 수염을 기른 남자. 그런 주제에, 썩은 금색인 머리카락만큼은 단정하게 정리하고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것이. 괴상하기 그지없다.
뚱뚱이와 홀쭉이라도 되나.
뚱뚱이가 옆에 홀쭉이 몸 붙잡고 꺾어 버릴 수도 있겠네.
“흠. 아직 몸이 불편한가? 필드는 이미 거뒀을 텐데.”
“죽여도 시체는 남아. 문제없다.”
그렇게 서로를 향해 대화하는 그들에게선 위기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나를 향해 내뱉는 말도, 무슨 친구와 화상 전화라도 하는 듯한 평범함 뿐.
…정보를 좀 끌어내 볼까.
“…너희가 AO 소장이 말한 그놈들이냐?”
“AO? 아. 알렉산드라 말이군. 혹시 그녀의 답을 돌려주러 온 전령인가? 그럼 미안하게 되었네. 당연히 그때처럼 우리를 민치고기로 만들러 온 건 줄 알았지 뭔가.”
“그녀는 우리에 대해 뭐라 말했지?”
…대답해 줄 의리는 없다.
그렇지만, 이렇게 대화하는 동안 저들은 도망가지 않는다.
그렇기에, 발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너희는 AO 소장에게 무슨 제안을 건넨 거지?”
여기서부터는 단순한 예상이다.
마이크가 저기에만 있다면, 이 행동은 의미 없는 것이 될 터.
그렇지만, 저들이 충분히 미쳐있다면, 이 이야기를 따라올 것이다.
철컹.
기계음과 함께 천장이 열린다.
그렇게 천장에 숨겨져있던 레일이 제 겉모습을 드러내었고, 그 레일을 따라 모니터가 내 발걸음에 맞춰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전령이 아닌가? 그럼 역시 우리를 잡으러 온 적인가. 하긴, 전령은 자네답지 않은 행동이지.”
“필드 펴. 죽이자니까.”
“어허 기다리게 코핀. 우리의 완성작 중 하나가 저기 있지 않은가.”
쾅.
곧바로 망치를 올려쳐, 모니터를 박살내었다.
이건, 해선 안 될 일이다. 정보를 얻고자 상대와 대화를 나누던 건데. 그들과의 대화 창구를 부수다니.
그렇지만, 저들의 말은, 도저히 견뎌 줄 수가 없었기에.
“완성작이라고 하지 마라. 이 개같은 쓰레기들아.”
너희가 우리에게 뭔가를 해준 것은, 아무것도 없어.
우리는 스스로 성장한 거다.
너희들이 우리에게 한 짓거리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어.
AO 소장이 말한것처럼, 그건 너희의 망상일 뿐이야.
지하 깊은 곳의 공장. 그건, 그저 무의미한 잔혹함일 뿐이었다고.
“여전히 난폭한 성격이야. 그렇지 않나, 코핀?”
“죽으면 다 조용해져.”
또다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래, 이 자식들은 미쳤다.
하나 정도라면, 이해할 수 있다.
그걸 이동시키고자 무의미하게 레일을 단 것도.
그런데, 모니터 하나가 파괴되자마자 새로운 모니터가 튀어나오는 것은.
이것들이 제정신이 아닌 탓이겠지.
“음. 이야기해 줘도 상관없겠지. 사샤도 우리에 대해 이야기한 것 같고. 너와 우리 사이 아닌….”
펑.
또다시 모니터 하나가 터졌다.
역겹다.
나는 얼굴도 모르는 잔혹한 존재가, 나에게 친한 척을 한다는 것은.
이제, 정보고 뭐고 필요 없다.
저 새끼들은, AO소장의 부탁에 따라서. 그냥 죽일 거다.
죽인다.
그리 생각하고, 복도를 내달린다.
“어허. 진정하게. 이야기해 줄 테니.”
“진정…. 이야기….”
“진…. 이….”
소리가 메아리친다.
새로이 배치된 수없이 많은 모니터가, 복도에 늘어서서 똑같은 말을 내뱉으며 일어나는 현상.
“우리는 그녀에게 다시 합치는 것을 제안했네. 꿈을 이루기 위해.”
“합치…. 꿈….”
꿈 좋아하시네.
“망상이겠지.”
AO 소장도 인증해주었다.
그건 너희의 망상이라고.
“망상이라. 그렇지만, 실제로 그 연구는 결과물을 내었지 않나.”
듣고 싶지 않다.
저 미치광이들의 말은.
그렇지만, 내 귀는 그것을 정확하게 잡아 낸다.
“옛 시대에서 활약하던 영웅들이 현 시대의 영웅들보다 강하지. 분명 기본적인 스펙만 보면 현 시대의 영웅들이 강할 것은 자명한 일인데.”
“닥쳐. 그건, 우리가 살아남고자 발버둥 친 탓이야.”
너희의 망상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주었다고 하지 마라.
우리가 피를 흘리며 얻어 낸 결과를, 너희 따위가 일부라도 주었다고 하지 마라.
“그 또한 옳은 말이지. 그렇지만, 결괏값은 수없이 많은 변수가 빠르고, 변수에 따라 결괏값은 크게 달라지기 마련. 그럼, 우리가 그대들에게 행한 일이, 과연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펑.
모니터가 터진다.
그들의 말에, 폭음이 섞인다.
그렇지만, 그들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과거 우리가 행했던 일은 확실히 잘못된 일이었네.”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카푸스틴.”
“그런 말이 아니지. 사샤도 말하지 않았던가? 윤리적 문제라네. 코핀. 그리고, 지금은 그 윤리적 문제도 일부 해결 가능하지. 우리도 그동안 놀고 있던 게 아니라네.”
제발. 입 좀 다물어.
누가, 저 새끼들 입 좀 막아 줘.
“그러니, 다시 처음부터 실험을 시작하는 건 어떻겠나? 이번에는 당사자들의 동의도 받도록 하지. 관리국이 나서준다면 피험자를 모집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지. 걱정 말게. 안전할 거야. 큰 문제도 없을 것이고. 옛 원한은 잊어버리는 게 어떻겠나. 세계를 위해. 과학을 위해.”
“세계를 위해. 과학을 위해.”
그들의 말은, 당당하다.
한 점 의심도 없이, 자신들이 옳다고 믿고 있다.
그래. AO 소장의 말이 옳았다.
난, 이들과 단 한마디도 나눠서는 안 되었다.
이들은, 그저 과거에 파묻힌.
오물일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