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392)
마법소녀 아저씨 392화(392/671)
392. 즐거운 연구소(1)
내가 그 엿 같았던 시베리아 전선에서 배운 사실이 한 가지 있다.
아무리 미래가 암담하고, 끝없는 전투가 계속 이어질 것을 알더라도, 쉴 수 있는 시간이 오면 태엽을 좀 풀고 쉬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장에서 긴장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사실 또한 틀린 건 아니지만, 계속된 긴장으로 이어진 정신의 피폐 또한 죽음을 의미하니 말이다.
도망친 과학자 콤비를 하루빨리 붙잡아 그들의 개짓거리를 막아야 하는 건 맞지만.
솔직히 나한테 대상을 찍으면 그놈 위치를 확실히 알 수 있는 편리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수구로 흘러들어 도망친 놈을 대체 어떻게 잡으란 말인가.
그렇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행하기로 했다.
그들의 정체는 밝히지 않았지만, 관리국에 이러이러한 위험한 존재가 나타났으니 긴급 수배령을 내려 달라고 정보를 보냈고.
아직 도착하려면 멀었지만, 정보 습득을 위해 믿음직한 녀석도 불렀다.
칼라베라.
지하에 대해서 알고 있는 인물이자, 조건만 맞는다면 확실히 정보를 갈취할 수 있는 강령술사.
본래 저 녀석 얼굴 좀 보자고 미국 땅을 밟은 것이긴 하지만, 이런식으로 얼굴을 보게 될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나는 당연히 저 녀석이랑 남는 시간에 식사나 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좀 하려고 했건만, 이런 식으로 다시 얼굴을 보게 될 줄이야.
아직 대면한 것은 아니고, 곧 보게 될 예정이긴 하지만 말이다.
원체 바쁜 칼라베라라 언제 보게 될지가 좀 걱정이었지만, 이 이야기를 전달하자 칼라베라도 심각성을 깨닫고 최대한 빨리 와 준다고 했으니, 곧 얼굴을 보게 되겠지.
어찌 되었건, 이 말은 칼라베라가 연구소에 도착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고, 그동안은 쉬는 날이라는 의미.
그렇게, 갑작스럽게 생겨나는 휴일을 만끽하려 했지만,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할 게 없어.”
“그거 오늘만 벌써 스무 번째 듣는 거예요. 포요.”
스무 번이고 뭐고 무슨 상관이야.
“진짜로 할 게 없으니까 그렇지.”
소파나 침대 위에서 빈둥거리는 것도 질렸어.
“그럼 저처럼 영화라도 보세용.”
우리의 회색 쓰레기께서는 그리 말하며 제가 쥐고 있던 태블릿을 들어 올렸다.
저 멍청이의 말대로, 태블릿에서는 무언가 삐까번쩍한 영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마 영웅이 힘을 얻어 강적을 쓰러트리는, 그런 틀에 박힌 영화.
…근데 우리가 그런 영웅인데 저걸 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영웅 본인이 아닌 마스코트 돼지라 나랑 감성이 다른가?
그건 뭐 어찌 되었건.
“딱히 보고 싶은 게 없네.”
“찾다 보면 뭔가 하나쯤 흥미로운 게 나오지 않을까용?”
운호의 말은 분명 정론이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영화를 봐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운호의 제안을 따를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보다 얼마 전부터 궁금한 게 하나 있었는데, 마침 운호가 나왔으니 물어봐야지.
“영화는 때려 치우고.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뭔가용? 포요. 지금 클라이막스 중이니 짧게 해주세요.”
뒤져.
팅.
운호의 말을 듣고 열이 뻗친 나는 곧바로 쇠구슬을 소환해 손가락으로 튕겨 운호의 태블릿을 꿰뚫었다.
아니, 운호가 연구소의 복지용 기기를 빌린 것이니 연구소 물건이지만, 아무튼.
“…어라 갑자기 주인공 머리가 날아가 버렸는데용.”
마침 그놈 머리통에 박힌 모양이네.
아니, 근데 구멍이 뚫렸는데 기기가 굴러가?
요즘 과학 기술은 대단하구나.
“주인공 머리통 날아가서 죽었으니 영화는 끝이네. 아무튼, 너 털이 왜 회색이냐.”
그래, 지금 운호는 털이 회색이다.
얼마 전에 봤을 때는 무슨 시궁창에서 뒹굴다 와서 저 꼴이 된 줄 알고 별 신경을 안 썼는데, 며칠이 지나도 본래 색이 돌아오지 않는 것을 보니 뭔가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과학자 여러분이 준 약을 먹었더니 이렇게 되던데용. 뭐, 놔두면 낫겠죠.”
그리 말하고, 태평히 구멍 뚫린 태블릿에 시선을 고정하신 운호.
새 태블릿을 가져오는 건 귀찮으니, 머리통이 날아간 주인공을 계속 보실 생각인가보다.
그나저나, 약이라.
분명 진귀한 실험체랍시고 연구자들에게 끌려갔었지.
그때 동물 실험을 당한 결과물이 저 털빛인가 보다.
실험을 당했다지만, 연구소에 소속된 녀석들 중 영웅의 마스코트를 조질 만큼 미친놈은 없을 것이고, 운호 본인도 별다른 불만을 내뱉지 않는 데다가, 운호 본인의 육체도 더럽게 질긴 편이니, 저 돼지 녀석의 신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과연 저 털색은 돌아오려나.
본인은 돌아온다고 믿고 있는 모양이지만…. 흐음.
뭐, 내 알반가.
정 안 되면 뭉쳐서 페인트 통에 던져 넣으면 흰색으로 돌아오겠지.
운호의 털이야 어찌 되었건.
“할 게 없어.”
“오늘 서른 번째네요.”
뻥 치지 마. 회색 돼지 놈아. 스물한 번째야.
몇 분 되지도 않았는데 열 배를 뻥튀기해 버리네.
이걸 통해 유추해보면, 사실 이번이 세 번째가 아닐까.
그렇게 쓸모없는 생각을 하며 뒹굴거리고 있자.
“후우…. 그럼 평소처럼 ‘가챠할 돈이 없어!’ 하고 비명을 지른 다음, 집 밖으로 뛰쳐나가 현상금 사냥이라도 하시지 그래용?”
운호는 한숨을 내쉬며, 내게 그런 제안을 내놓았다.
나에 대한 음해와 함께 말이다.
내가 대체 언제 저런 말을 했단 말인가.
분명 게임 결제할 돈이 없는 바람에 집 밖으로 뛰쳐나가 눈에 띄는 놈을 때려잡은 다음, 입금된 돈으로 결제를 때려 박은 후.
‘망겜 접고만다!’
하고 핸드폰을 창 밖으로 던진 적은 있지만, 대놓고 욕망이 절실히 드러난 말을 하며 날뛴 기억은 없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문제가 있다.
“내가 자유 토벌 하는 건 지역 평화를 위해서거든?”
나처럼 돈이 궁하지 않을 때도 적을 열심히 때려잡는 성실한 영웅이 어디 있다고 저런 비방을 하는가.
“예, 예. 아무렴요. 지역 평화도 지키시고 돈도 받고. 둘 다 하시는거죠. zZ지존법사45Zz님.”
“요즘은 그딴 닉 안 쓴다.”
저런 닉 하나 했다고 아재 취급을 하는데 서러워서 살겠냐.
덤으로 숫자도 마음에 안 든다.
닉네임이 얼마나 겹치는지 45까지 가야 사용 가능이라는데, 세상에 45번째 지존이 어디 있단 말인가.
요즘은 ‘별빛으로벼려낸망치’ 같은 좀 낭만 있는 닉네임을 쓰고 있다.
그리고, 정말로 자유 토벌은 돈 때문에 하는 게 아니다.
물론, 돈이 궁할 때는 돈 목적으로 하긴 하지만, 영웅으로서 지역 평화를 지키는 것이 목적이지.
그러니, 운호 녀석 말처럼 주변 도시로 날아가 눈에 띄는 것들 머리통을 모조리 깨고 짭짤한 달러벌이를 해도 되겠지만.
“어쨌건 그것도 못 해. 지금 나 토벌용 단말기 없어.”
“왜용.”
왜긴 왜야.
“아빈이가 좀 쉬라고 뺏어갔다. 나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며.”
운호 말처럼, 난 첫날부터 당연히 자유 토벌 뛰러 나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아빈이가 끼어들어서 단말기를 뺏어가셨다.
그리고 나한테 잔소리를 늘어놓았긴 했는데….
솔직히 뭐라고 했는지 한마디도 기억이 안 난다.
뭐라고 쫑알거리긴 했는데, 말은 배경음이요, 텔레비전 소리가 진실의 울림이로다. 하고 느끼며 ‘닭은 왜 길을 건너지 않을까? 치킨이라 그렇지.’ 같은 더럽게 재미없는 미국식 코미디만을 귓가에 담았다.
아니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저 농담 괜찮은 것 같은데?
아빈이 말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지만, 저건 기억에 남는 걸 보니 생각보다 괜찮은 개그 같다.
치킨은 겁쟁이라는 언어유희.
언젠가 한번 써먹어 봐야겠다.
그렇게 치킨 개그를 머릿속 중요 폴더에 쑤셔 넣은 후, 어떻게든 아빈이의 말을 떠올리려 노력했다.
‘올라가기만 하고 내려가지 않는 것은? 세금과 내 나이.’
‘버터는 하늘에 던지면 날개를 펼쳐요. 버터플라이라.’
같은 곱씹을수록 괜찮은 개그만이 떠올라 고민하던 와중.
마침내 유머의 산을 뚫고 한아빈의 말을 떠올릴 수 있었으니.
‘그것도 병이에요. 좀 쉬세요. 여긴 저희 집도 아니잖아요.’
한아빈이 저렇게 말했던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흐음. 병이라.
다른 사람이 보기엔 그런가.
나는 평소에 태엽을 쫙 풀고 쉰다고 생각하는데, 아빈이 눈으로 보면 아닌가보다.
물론, 아빈이의 편견일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말이다.
적어도 지금은 뭔가 다른 취미를 찾아야 할 것 같긴 하다.
하루 두 번씩 일어난 직후와 자기 직전 테러리스트 본거지인 계곡으로 돌아가 순찰하고 있긴 하지만,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안 하고 소파와 침대 위에서 나뒹굴고 있으면 그냥 날백수니까 말이다.
평소라면 게임이라도 하겠지만, 아쉽게도 이 연구소는 지정된 기기가 아니면 통신이 차단된 것 같다.
싱글 게임도 없고, 자유 토벌도 못하고, 소파랑 침대 뒹굴거리는 것도 한계가 있고.
“…취미나 찾아봐야지.”
그리 생각한 나는 구멍 난 태블릿으로 영화를 시청하는 운호를 놔둔 채 방을 나왔다.
* * *
“꺼지세요.”
쫓겨났다.
어쩌다 이렇게 된걸까.
나는 그냥 길을 가다가 뭔가 재미있어 보이는 실험을 하길래 거들어 줄려고 했을 뿐인데.
분명, 저들도 처음엔 내가 실험에 참여한 것을 환영했다.
막대한 예산과 신기술을 적용한, 험지용 사륜차의 시험기.
향후 방위대 제식 차량으로 사용될 녀석인 만큼, 안정성과 튼튼함이 중요시되기에 최대한 내구성 테스트를 해야 하건만, 막상 테스트 드라이버가 없어 그리 빡센 실험을 하지 못하고 있던 모양이다.
그래서 뭔 짓을 당해도 어지간하면 죽을 걱정이 없는 내가 시험기에 탑승해 자동차를 몰았고, 초반엔 별문제 없이 화기애애하게 굴러갔다.
그런데 곧 뭐가 어찌 된 일인지 5분도 되지 않아 수많은 예산을 쏟아 넣은 시험기가 폭발하여 사라졌다.
아니 진짜로 뭐지?
왜 안전성만큼은 보장한다던 자동차가 5분 만에 폭발해서 차원의 틈 사이로 사라지는데?
심지어 저게 한 번만 일어난 것도 아니다.
처음 저 사태가 일어났을 때, 연구자들 얼굴이 굳어버리긴 했지만, 희귀한 데이터를 얻었다고 하며 좋아했다.
문제는 그 뒤 일.
두 번째 실험기인 이륜 오토바이.
탑승한 지 4분이 채 지나지 않아 바퀴가 분리되고, 극도로 가속된 채 제어를 잃은 오토바이는 그대로 실험장 벽을 들이받아 폭발했다.
이때부터, 뭔가 연구자들 얼굴이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고.
세 번째 실험기인 보행 보조 슈츠.
행군이나 급격한 기동으로부터 발을 보호해주는, 이젠 이게 차량이 맞긴 한 건지 의문이 드는 물건이지만.
그들은 아무튼 탑승하는 거니 차량이라고 내 시선을 피하며 우겼다.
그 꼴을 보아하니, 예산을 지들 멋대로 사용해 만든 물건인 것 같지만 말이다.
아무리 군용 보행 슈츠라지만, 레이저 병기나 홀로그램 바퀴를 달아놓는 또라이가 세상에 있을 린 없으니.
거기다가, 내 몸에 장착할 수 있을 정도로 장착 범위가 넓다?
암만 봐도 이딴 초고성능 슈츠를 군용으로 채택할 바보는 없다.
연구자들이 합심해서 예산을 자기들 취미에 사용한 것이다.
뭐, 횡령과는 별개로,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드는 물건이다.
로망은 본래 비효율을 좇는 것 아니던가.
다리에서 레이저를 난사하고, 위급할때는 바퀴를 사용해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물건.
그게 최악의 형태로 나타날줄이야.
급가속해 달려가던 바퀴는 아까 폭발한 오토바이의 잔해에 발이 걸려 허공에서 춤췄고.
그렇게 공중에 뜬 슈츠는 뭐가 어찌 오작동이 일어난 건지 사방에 레이저 총을 쏴갈겼다.
개인용으로 쓰기에는 너무나도 압도적인 화력인 레이저 총은 실험실을 모조리 쑥대밭으로 바꿔 버렸고.
완전히 혼이 나가 버린 실험팀이 날 쫓아낸 것이 이 사건의 전말.
아니, 그래. 이 사건의 전개 자체는 납득이 가능하다.
내가 합류하자마자 저런 대참사가 일어났으니 날 역신으로 여기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
근런데 따져보면 결국 그것도 자기들이 잘못한 탓 아닌가?
어떻게 군용 자동차가 5분 만에 폭발하고, 군용 오토바이 바퀴가 4분 만에 빠지고, 슈츠에 장착된 병기가 제 맘대로 공격을 갈기냐고.
바퀴는…. 그냥 기획 오류라고 치자.
나머지는 죄다 저 녀석들이 잘못 만든 탓 아닌가.
그걸 나한테 덮어씌우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지.
나는 마음속으로 그리 연구자를 탓하며 복도를 어슬렁거렸고.
곧, 또다시 흥미로운 연구팀을 찾아 그쪽에 합류했다.
* * *
“스승님! 요즘 스승님과 관련해 예산 브레이커라는 소문이 연구소에 돌던데 무슨 일 있으세요?”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 아무것도 아냐.
…아니 진짜 내 잘못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