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40)
마법소녀 아저씨 40화(40/671)
40. 막간 – 한아빈의 전투
마력을 모아 손을 펼쳤다.
특별한 무언가는 필요 없다.
자연스럽게 손을 펴면 거기에 있는 화살.
갑자기 마력이 증폭된 후에는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혼란스러웠지만, 실전을 겪자 빠르게 익숙해졌다.
손에 쥐어진 활에 천천히 화살을 메겼다. 본래 별 특색 없는 갈색 활이었지만, 기억나지 않는 꿈을 꾼 이후 연한 붉은 빛을 띠게 된 활.
활에 걸리는 장력 또한 몇 배나 무거워졌지만, 지금의 나라면 충분히 잡아당길 수 있다.
활시위를 한계까지 잡아당기고, 갑각의 틈을 조준하며 활을 놓았다.
화살은 분홍빛 마력 가루를 흩날리며 적을 향해 날아갔다.
다음 화살을 소환하며 손을 떠난 화살을 눈으로 좇았다.
효율적이지 못한 행동이지만, 내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화살이 빗나가는 것을 걱정하는 게 아니다.
힘이 모자란 시절에도 화살이 빗나간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까.
내가 걱정하는 것은 다른 것.
퍽.
갈라진 갑각 사이에 화살이 박히고, 적의 행동이 느려졌다.
끝내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아쉬움을 털고 다음 화살을 시위에 매겼다.
알고 있다. 내 힘이 모자란 것 정도는. 하지만, 적어도 피해를 줄 수 있게 되었다.
하나하나가 C~B급으로 책정되는 이계의 존재. 본래의 내 힘이라면 뚫는 것조차 불가능한 적. 그런 적의 방어를 뚫을 수 있게 되었다.
긴 시간 쌓인 열등감이 사라지고, 빈자리가 자부심과 기쁨으로 충만해진다.
영웅으로 활동하면서 들어왔던 수없이 많은 모욕. 일반인과 다른 게 뭐냐는 뒷담. 그 모든 것을 화살에 담아 쏘아내었다.
탁.
몇 번을 그렇게 화살을 쏘아냈을까. 내가 쏘아낸 화살이 적의 회색 껍질에 튕겨 나왔다.
내 힘이 모자란 것은 아니다.
그저, 장벽에 뚫린 창문에 적이 나타났을 뿐.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서 날아간 화살은 의미를 잃었고, 공격할 대상을 찾은 적은 나를 향해 집게를 내려쳤다.
괜찮다. 당황할 필요 없어.
담담히 다음 화살을 생성하여 활시위에 메겼다.
집게가 머리 위로 닥쳐왔다.
죽음을 마주한 상황임에도, 내 머릿속에서는 그것과 관련이 없는 정보들이 흘러갔다.
주변 영웅의 위치.
마지막으로 본 창밖의 풍경.
내가 다음으로 노려야 할 적.
남은 마력량과 다음 교대 시간.
손이 닿는 범위의 병력 손실률.
“우랴아!”
눈앞에 흰색 천이 펄럭이고, 은빛 섬광이 지나갔다.
빠각.
단단한 무언가가 박살이 나는 소리와 함께, 파편으로 변한 적이 눈앞에서 흩어졌다.
그다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붉은 살과 피가 흩어지는 것도 아니고, 내장이 흩어지지도 않았다.
마치 회색빛 꽃잎이 눈 앞을 가리는듯한 비현실적인 풍경.
그러한 생각을 하며, 활시위를 당긴 손을 놓았다.
망치를 휘두르는 여성이 창문을 가리고 있지만, 크게 문제 될만한 것은 아니었다. 적의 위치는 이미 예상하고 있으니까.
펄럭이는 흰색 천이 바닥으로 가라앉으며 온전한 시야를 제공했다.
분홍빛의 화살은 예측한 그대로 적에게 박혔고, 다음 화살을 준비했다.
“시현아. 다음 적은 오른쪽에서 올 거야. 한 명 나가떨어졌으니 치유 부탁해.”
“맡겨줘!”
밝은 표정의 여성은 웃으며 내가 말한 오른쪽 통로로 달려나갔다.
흰색 망토를 펄럭이며, 전투 중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내 친구.
그녀에게는 감사하고 있다.
그녀와 만난 이후. 내 삶은 빠르게 바뀌었다. 원하던 힘을 손에 넣고, 사람들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안에 쌓아둔 열등감도, 날 비웃은 동기들도. 모두 그녀의 밝은 웃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런 그녀. 백시현은 전투가 시작되고 잠깐은 자기가 할 일이 없어 지루하다며 무기를 창밖으로 투척할 뿐이었지만, 지금은 내가 말한 대로 열심히 복도를 뛰어다니며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전투 개시 후 14시간째.
두 번째 교대로 들어온 시점부터 갑자기 방어선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장벽 자체는 아직 굳건하지만, 첫 번째 교대 때의 녀석들과 다르게 그들은 쏟아지는 포화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장벽에 다가왔다.
동포들의 시체를 발판 삼아 장벽을 기어오르며 침입하기 시작한 적들. 그리고 난전이 시작되었다.
장벽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근접계 영웅들이 정면에 나서며 진입구를 가로막았고, 진입구를 지키던 병사들은 뒤편으로 빠져 중화기를 지키기 위한 진을 만들었다.
영웅들은 처음 겪는 상황 속에서 공황에 빠졌지만, 곧 이상을 되찾았다. 아마 선배님 때문이리라.
화살을 활시위에 메기는 잠깐의 시간 동안,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회색 바다 한가운데에 생겨난 작은 원. 그 가운데에서 은빛 머리를 흩날리며 망치를 휘두르는 선배님의 모습.
“위치를 사수해라! 공격력은 별거 아니다! 근접계가 앞에서 막고, 방어력을 뚫는 마법계가 지원해!”
말하는 내용에 어울리지 않는, 어린 여성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선배님은 가장 앞으로 나서 모든 이들을 독려하고 있다.
최대한 적들을 막아서는 일차 방벽 구실을 해주시는 이하람 선배님.
가장 앞쪽에 나와 있음에도, 후방까지 닿도록 목소리를 크게 높였다.
희망이 담긴 목소리와 그 무용이 이 전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사기만 가지고 구역을 유지할 순 없었으리라.
군인들 또한 훌륭한 지휘관이 있는지, 적절한 지시를 내리며 전선을 유지했다.
-1층 3구역 영웅 1체 부상. 의무반 출발. 교대 영웅 출격 바람.
-2층 4구역. 영웅 탈진. 부대 투입. 교대자 도착 시까지. 전선 유지.
벨트에 걸어놓은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본래라면 나에게 전해지는 명령만 받아도 충분한 무전기는 주변 모든 무전을 받도록 설정을 변경했다.
처음에는 나도 무전기를 계속 켜놓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무전을 듣고 있자, 뭔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어왔다.
장벽 전체의 상황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들리는 무전으로 전체적인 구조가 그려졌다.
어디가 약하고, 어디가 강한지.
어디를 틀어막아야 이 구역을 안전하게 만들 수 있는지.
그렇기에, 시현이에게 말을 건넸다. 내 말에 따라줄 수 있냐고.
그 말을 꺼내는 순간까지도, 나는 나 자신을 믿을 수 없었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꺼낸 걸까.
열등 영웅인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우리에게 내려진 명령은 이 구역을 사수하고, 교대 시간 동안 버티는 것. 다른 구역까지 지원할 이유가 없었다.
또, 나보다 몇 배나 강한 영웅인 백시현이 내 명령에 따를지도 의문이었다.
친구긴 하지만, 자기보다 약한 영웅의 말을 따르는 것을 싫어할지도.
그러나 그런 내 모든 걱정은 백시현의 말 한마디에 사라졌다.
“좋아. 아빈이 네가 나보다 멀리 볼 수 있으니까!”
그녀는 내 말을 따라 전장 전체를 질주했다. 한 가지 명령이 끝나면, 다음 명령을 받으러 나에게 돌아왔고, 또 다음 명령을 받아 출격했다.
“어떻게 알았어? 정말 거기가 무너지던데….”
“감…?”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왜 거기가 무너질 거라고 생각했을까.
창밖으로 적들이 이동하는 흐름이 보였었다. 정말 미세한 흐름.
무전기에서도 해당 구역에서 곧 교대시간이 된다는 알림이 나온 것 또한 하나의 이유일지도.
그런 정보가 쌓인 머릿속에서 직감적으로 떠올랐다. 해당 구역이 곧 무너질 거라는 예측이.
백시현과 내가 합을 맞추어 괴수들과 싸울 때처럼.
괴수가 백시현의 빈틈을 노려 앞발을 휘두른 것처럼.
이번 전쟁에서도 회색 군세라는 거대한 괴수가 해당 지점에 앞발을 휘두르리라 예측했다.
그렇게 계속해서 전투가 이어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툭.
누군가가 등을 두드리는 감각에 집중이 끊겼다.
“교대시간!”
고개를 돌린 내 눈에 땀을 뻘뻘 흘리는 시현이의 모습이 보였다.
“벌써?”
“응. 명령도 내려왔어. 곧 군인 아저씨들이 올 거야.”
벌써 일곱 시간?
그것을 알아채자 갑자기 손에서 힘이 빠졌다.
얼마나 집중하고 있었던 걸까. 내가 온 힘을 다 쓴 것도 모르다니.
“아빈아 손에 피!”
“피?”
몽롱한 정신으로 손을 들어 올리자 붉게 물든 손가락이 보였다.
활시위를 당기며 피부가 터져나간 모양이다.
“괜찮아. 이정도는….”
“빨리 치료해. 그러다 덧나.”
“마력이 다 떨어져서….”
조금 남아있지만, 더 마력을 사용했다가는 정말 지쳐 쓰러질 것 같다.
소중한 휴식시간을 수면으로 낭비하고 싶진 않다.
“내가 치료해줄게.”
“하지 마…. 또 이상하게 치료하려고….”
옥시모론 선생님의 오른손이 두 개가 된 건 정말 충격이었다.
내가 알고 있던 상식이 증발해버릴 정도로.
그리고 그때부터 급속도로 치유 효율이 높아졌지…. 그런 충격적인 모습을 보니 정말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다른 사람 피부는 치료하다 보니 어떻게든 되더라고!”
하긴, 피부는 주변을 그대로 복사해도 큰 문제가 없나.
중간부터 치료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하더니, 그런 응급치료 정도는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붉은 마력이 손가락을 감싸고, 빠르게 돋아난 피부가 손가락을 둘러싸 피를 멎게 해주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교대시간입니다!”
그와 동시에 나타난 군인들.
다음 영웅이 교대하러 올 동안 이 구역을 지켜줄 군인들이 창문 너머로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부탁드려요….”
“걱정하지 마시고 푹 쉬시길.”
병사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나를 배웅했고, 나 또한 그에 답하고자 고개를 깊게 숙였다.
“가자, 시현아.”
“그래!”
쓰러지기 직전인 나와 달리, 시현이는 아직 힘이 남아 보였다.
교대하는 것도 아마 날 배려하는 행동일 것이다.
그녀의 본래 성미대로라면 선배님처럼 뛰쳐나가 망치를 휘두르고 있을 테니까.
* * *
북적거리는 식당.
수많은 사람이 교대시간 동안 배를 채우려는지 맛없는 음식을 입에 욱여넣고 있었다.
뒤틀린 생선.
튀겨지다 만 게살.
뭔지 모를 붉은 소스.
입맛이 뚝 떨어졌다.
누가 식단을 짰는지 모르겠지만 이 생선처럼 뒤틀린 성격일 것이다.
눈앞에서 게인지 가재인지 모를 생물이 분쇄 당하는 모습을 봤는데 이걸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눈앞의 백시현은 철판도 뜯어먹을 기세로 입에 퍼담고 있지만.
나는 그나마 괜찮은 밥과 미역국을 조금씩 입에 담으며 백시현을 향해 입을 열었다.
“선배님 굉장하지?”
전투가 시작된 지 21시간.
선배님은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최전방에서 망치를 휘두르고 있었다.
끝없이 아군을 독려하며, 잠시도 쉬지 않는 불멸의 영웅.
“응. 싸우는 모습이라면 동영상 사이트에서 몇 번 봤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까 더 박력 넘치더라!”
동영상이라.
어째서인진 모르겠지만, 선배에 관련된 정보는 거의 찾을 수 없었다.
그토록 대단한 영웅임에도, 어디선가 정보가 차단된 것처럼.
찾을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이름과 영웅명. 약간의 참전기록.
동영상 사이트에 올라온 전투기록도 대부분 화질이 나쁜 무언가.
그나마도 대부분은 잔혹한 장면이 포함된 동영상이라며 약관 위반으로 사라진 상태였다.
오죽하면 사람이 죽는 장면들을 모아놓은 테러 사이트로 연결되는 것도 있을 지경.
심지어 블랙 머라우더의 전투 영상이 선배님의 이름을 달고 대신 올라오는 대참사마저 있었다.
“지금 전투…. 선배님이 없었으면 진작 무너졌겠지?”
잠시 머리 안쪽으로 생각해보았다. 망치를 휘두르며 적을 막는 선배님이 없는 상황을.
회색 군세라는 거대한 괴수의 발길질이 그대로 장벽을 후려쳤다면.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끔찍한 상황이었겠지.
“그랬겠지? 그런데 스승님이라면 당연히 그러셨을걸. 본래 그런 성격이시거든!”
본래 그런 성격이라.
팬이란 무섭단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된 정보도 없는 영웅을 팬심 하나로 그토록 파고들었단 이야기가 아닌가.
“어쩌다가 그렇게 선배님의 팬이 된 거야?”
“전투 장면을 눈앞에서 본 적이 있었거든.”
전투 장면이라. 지금 선배님의 모습을 보면 피와 살점이 튀는 트라우마가 생길법한 무언가였을 것 같은데 잘도 팬이 될 생각을 했구나.
“왜? 너도 관심 있어? 그럼 우선 이 장면부터. 몰래 찍은 사진인데….”
“아 괜찮아. 선배님이 대단하단 건 충분히 아니까.”
시현이에게 선배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간 휴식 시간인 일곱 시간 동안 이야기를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적당한 시점에서 이야기를 끊고 다시 흰 밥을 입에 퍼담았다.
“튀김 안 먹을 거야?”
“먹으려면 먹어. 입맛이 없어.”
휙. 덥석.
백시현은 빠르게 젓가락을 뻗어 내 식판에 담긴 튀김을 입에 넣었다.
정말. 걱정 없는 녀석이구나.
나는 더럽게 맛없는 미역국을 입에 담으며 그 휴식을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