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408)
마법소녀 아저씨 408화(408/671)
408. 막간 – 밤을 걷자. 여름이었다.(後)
“흐음.”
내 능력의 특성상 의도적으로 돌입을 늦게 했지만, 상상 이상으로 짙은 죽음의 향기가 감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이가 죽은 걸까.
관리국은 아마 이번 일을 본보기로 삼을 예정인 것 같다.
새로운 질서에 대항하는 자에 대한 본보기. 물론 약간의 정보 조작이 섞이겠지만, 알 사람은 알겠지.
쯧쯧. 안타깝게 되었어.
조직의 규모로 보나, 설립 의도로 보나 절대 이렇게 끝날 조직이 아니었는데 지뢰를 밟아 버리다니.
각성자 우생 사상이라니.
일단 의료인의 말석에 앉은 내가 보기에는 헛소리나 다름없다.
각성자가 되는 것은 순수하게 우연한 결과일 뿐이고, 그로 인한 사람의 위아래는 생겨나지 않는다.
군의관으로서 수많은 사람을 열어 본 내가 하는 말이니 거의 확실하다.
물론, 여타 특수 능력에 의해 몸이 변하는 경우가 존재하긴 하지만, 그것도 장단점이 있는 것이지 우월이라기엔….
“거기다. 이야기가 끝나면 힘이 돌아가기까지 하지.”
몇몇 영웅들은 영웅이던 시절의 잔재가 남긴 하지만, 그것은 우월과 거리가 멀지.
애초에, 우생이란 개념부터 말이 안 된다.
생식 능력이 남은 영웅끼리 결혼해서 애를 낳는다고 해도 태어난 아이가 각성자인 케이스는 존재하지 않는데 말이다.
다만, 약간의 이능력이 존재하는 케이스는 다수 보고되긴 했지만, 그조차도 일반인보다 특별히 뛰어난 건 아니다.
그렇게 오늘도 학문에 대한 탐구를 추구하며 터벅터벅 복도를 걷다 보니, 여러 사체가 시야에 들어온다.
어떻게든 사체를 보이지 않게 처리한 경우도 있고, 대충 내버려 둔 경우도 있지만.
죽음에 민감한 내 능력은 그런 것들을 모두 빠르게 붙잡는다.
수많은 죽음이 지하에 자리잡았다.
평소엔 병사들과 의무관으로서 참여하는 경우가 많아 이들과 함께 일할 기회가 적은 나로서는, 이들의 생각과 행동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생명은 소중한 것인데 말이지.
암살팀에 적을 올린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이 녀석들은 단체로 정신감정 좀 받아봐야 한다.
아마 카르테를 가득 채울 정신이상이 대량으로 적히지 않을까.
정신과 전문의가 아닌 내 시점으로 봐도 수많은 문제를 곧바로 잡아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현실에 자리한 수많은 문제를 고찰하며 복도를 걷던 와중.
“음?”
이 장소에서는 희귀한 감각이 머리를 달렸다.
수많은 죽음이 넘치는 이 장소에 살아 숨 쉬는 생명 하나.
내 능력이 그것을 빠르게 캐치한 즉시, 나는 의료인의 본분을 다하고자 그녀에게 빠르게 다가갔고.
피로 더럽혀진 아름다운 금발 머리를 가진 그녀가, 머리에 자리한 총상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를 발견한 나는 곧바로 상태 파악에 들어갔고.
뒤틀림 없이 뻥 뚫린 사입구.
사입구 주변에 남은 화상 자국과 불규칙한 상처.
해당 상처는 근접한 거리에서, 관자놀이에 총 한 발.
입사 각도를 보면, 그대로 뇌로 총알이 파고 들어가 있다.
이상을 통해 유추해 보면, 아마 범인은 스베틀라나일 것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항상 귀찮아하는 스베틀라나지만 일 처리를 대충했다간 사후 처리가 더 귀찮아진다는 이유로 일 처리는 확실한 편인 그녀인데, 그녀가 처리에 실패했다?
당장 주변에 흩어진 시체들은 한 방에 죽지 않았는지 그림자 창으로 찔린 상처나, 총상이 몇 발 더 남아있는데 말이다.
그런 의문과 별개로 응급 처치를 진행해나가던 와중.
“아. 그렇군.”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쏟아지던 피가 멈추고, 오히려 피가 상처 내부로 흡수되기 시작한다.
재료 회수형 재생.
총상은 아물지 않겠지만, 아마 그것도 시간 문제겠지.
아마 확실한 즉사가 아니라면 재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보통 뇌를 날리면 죽긴 하지만, 그조차도 재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우연히 총알이 들어간 방향이 좋았는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이 여성은 리스트에도 없는 사람이라 반드시 죽일 필요는 없어, 여성의 생환을 축복하려던 찰나.
그녀가 눈을 떴다.
“아…으어… 아아.”
언어 능력이 복구되지 않았는지, 기괴한 말을 내뱉는 여성.
“아. 깨어나셨군요.”
나는 그녀를 달래고자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녀는 잠시 날 멀뚱히 바라보더니, 곧 몸을 일으키며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나를 적으로 인식하고, 공격하려는 행동.
빠른 판단과 좋은 움직임이지만.
“이런, 아직 다 상처가 아물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내 말과 동시에 여성의 자세가 무너졌다.
뇌가 망가졌으니 당연히 움직임도 정상은 아닐 터.
그녀가 일어섰다 한들, 그녀의 팔은 정상적으로 나에게 향하지 못하고 사방으로 벌벌 떨리고 있으니, 나에게 해를 끼치진 못했을 것이다.
다만, 그녀의 자세가 무너진 것은 그녀 탓이 아니다.
그것은 순간적으로 그녀의 체내 신호를 조작한 내 능력의 영향.
“으. 어. 아….”
그녀는 여전히 제대로 된 말을 내뱉지 못했지만.
나는 그녀를 안심시켜 주고자 입을 열었다.
“재생 능력 보유자시군요. 상황 파악이 힘드시겠지만, 현재 뇌에 총알이 남은 상황입니다. 그것만 어떻게 한다면….”
거짓 없이 현재 그녀의 상황을 알려주며 안심시켜 주려 한 순간.
“아?! 으! 아!”
그녀는 갑자기 발버둥 치며, 날뛰기 시작했으니.
“진정하시길! 날뛰다가 총알이 뇌를 잘못 건드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나는 곧바로 염동력을 발동해 그녀를 강제로 붙들었다.
이런 강제 진료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긴급 상황이니 어쩔 수 없다.
내 말이 통한 것일까.
그녀는 머리를 더는 흔들지 않았지만, 손발을 흔들며 내 구속에서 벗어나려 했고.
“아아아아!”
여전히 기괴한 소리를 내뱉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언어 능력을 복구하기 어려우신 상황입니까? 운동 능력은 어느 정도 복구되신 것 같으니, 제 말이 옳다면 오른쪽 눈을 두 번 깜빡여 주시길.”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깜빡. 깜빡.
여성의 눈이 두 번 깜빡였다.
“흠. 그럼 제 말을 잘 들어주시길. 재생 능력자라 하여도 뇌가 손상된다면 재생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얌전히 있어 주신다면, 제가 수술을 진행하여 총알을 빼내고….”
그녀의 팔다리가 또다시 흔들린다.
그게 아니라는 듯.
대체 무슨 상황이지.
위험은 조금 있지만 어쩔 수 없나.
“그럼 하는 수 없죠.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나는 그리 말하며 염동력을 더욱 강화함과 동시에,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붙잡았다.
접촉을 통한 의식 연결.
정신계 능력에 재능이 없는 탓에 접촉해야만 발동할 수 있고, 상대에 따라 내 뇌가 과부하에 걸려 망가질 가능성이 있지만,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는 하는 수 없다.
그리 각오를 다지고 접촉을 시도하자, 다행히 빠르게 링크가 연결됨을 느낄 수 있었고.
‘제 말 들리십니까?’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들려요.’
그녀는 곧 이것이 텔레파시임을 이해한 듯, 빠르게 답을 돌렸고.
이어 그녀는 나에게 수많은 의문을 퍼부으려 하였지만.
나는 내게 쏟아지는 상대의 그런 의식을 모두 차단하고, 단호한 말을 건넸다.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환자의 회복입니다. 그러니, 단적으로 질문하겠습니다. 재생 능력의 범위와 그 종류에 대해. 그렇지 않고서는 수술을 진행할 수 없습니다.’
내가 그런 의식을 건네자 그녀의 소란스러운 의식이 잦아들었고, 곧 한 가지 답이 돌아왔다.
‘…재생 능력이 아니에요.’
‘무슨 말씀이시죠?’
상처가 회복된 것을 보면, 분명 재생 능력임이 확실한데.
‘…시간계 능력이에요. 몸의 상태를 몇 분 전으로 되돌릴 수 있는. 제가 죽기 직전에는 자동으로 발동하는 기능도 있죠. 강제가 아니라 제 의지로 끌 수 있는 능력이지만요.’
확실히, 저러면 순수한 재생이 아니고 변종 능력이로군.
문제는 그런 능력이라면 수술이 더욱 어려워진다.
뇌를 전혀 건들지 않은 채 총알만을 적출하는 수술.
각종 도구가 완비되고 도와주는 이가 존재하는 수술실이라면 모를까, 이러한 야전 환경에서는 그 난이도가 극도로 올라간다.
그렇지만, 해내고 말겠다.
그리 마음먹은 순간.
‘…의사 선생님.’
갑자기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의식이 뇌리에 흘러들었다.
‘왜 그러시죠.’
나는 거기서 무언가를 직감했기에, 부드러운 감정을 되돌렸고.
‘저, 머리에 총알이 박혔다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나는 거짓을 말하지 않고 단호히 진실을 알려 주었다.
백색의 거짓말은, 의료 행위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시간은요?’
‘그건…. 저도 알 수 없군요.’
‘…그럼 끝났네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직 포기하시면 안 됩니다!’
나답지 않게 소리를 내질렀다.
또다시 내 품 안에서 누군가를 잃을 수 없기에.
‘…상냥하시네요. 그렇지만, 정말로 끝이에요. 제가 최대로 돌릴 수 있는 만큼 시간을 돌려보았지만, 여전히 상처가 회복되지 않아요.’
그 말로 이해했다.
이미 즉사급의 피해를 받은 상황이지만 능력 발동의 조건은 되지 않았고, 그로서 상처를 입은 시점과 사망 사이에 시간 편차가 크게 생겨났다.
사망 지점에서부터 한계까지 시간을 돌려도, 죽어 마땅할 상처가 그대로 남을 만큼.
운이 좋았어야 할 상처가, 그녀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운을 가진 상처가 되어버렸다.
애매하게 살 수 있는 각도로 총에 맞은 탓에, 능력의 발동 타이밍이 늦어져, 영원한 죽음의 루프에 갇히고 말았다.
차라리 총알에 맞은 순간 즉사했다면.
그렇지만, 괜찮다.
아직 죽진 않았다.
그리 생각하고, 그녀를 설득했다.
이미 죽음을 각오한 그녀를.
‘괜찮습니다! 아직 살아계시지 않습니까! 지금 치료한다면, 살아남을 수 있으실….’
‘그 확률은 얼마나 되나요.’
말문이 막혔다.
나조차도 장담할 수 없었기에.
그렇지만 그녀의 조소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설령, 살아난다고 해도, 저는 본래의 삶을 되찾을 수 있나요?’
‘그건….’
뇌의 복구.
그것은 아직까진 미지의 영역.
일부 가능케 하는 능력의 소유자나 기적이 수없이 겹친 성공 사례가 있긴 하지만….
과연, 관리국의 눈에 찍힌 조직의 구성원에게 그런 인도주의적 일을 해줄까.
그리 내가 끝없는 고민에 잠긴 사이.
‘그렇군요. 한없이 절망적이다. 그리고, 관리국이 그런 자비를 베풀어 줄 수 없다.’
‘…들리셨습니까?’
아무래도, 내 마음이 흔들려 내 생각 일부가 건너간 모양이다.
‘예, 확실하게. 들렸네요.’
‘…신경 쓰지 마시길. 살아남으시기만 하면 빛을 볼 날이 있을 겁니다. 의학 기술도 진보하고 있으니, 몇 년만 있으면….’
나조차도 믿지 못하는 말을 내뱉지만, 괜찮다.
이것은 환자를 살리기 위한, 의지를 북돋아 주기 위해 필요한 일.
죽은 이라면 모를까, 살아남을 수 있는 이가 또 내 안에서 죽는 것은.
‘절. 죽여 주실 수 있나요.’
모든 것을 포기한 그녀의 말이 절실하게 다가왔다.
의식만이 오고 가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텔레파시라 알 수 있다.
그 의식에 담긴, 단호한 결심을.
‘…사람을 살리는 의사에게 잔혹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그럼 조금 말을 바꿀게요. 동료들에게 보내 주세요.’
그건 말장난이다.
그리 생각했지만.
‘아까 느껴서 알고 있어요. 안락사를 이미 고려하셨다는 사실도, 그것을 행하신 적이 있다는 것도요.’
‘역시, 전 정신계에 재능이 없군요.’
그런 내 개인적인 사정까지 모두 흘러 들어가다니.
그래, 나는 의사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을 하였다.
전장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라지만, 미약하나마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는 이들을 죽여 왔다.
그렇게, 나는 마모되어 간다.
처음의 안락사를 잊어버린 채.
그 행위의 준비를 해 나간다.
언어를 통한 생각의 교환이라면,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눴겠지만.
텔레파시였기에, 상대방의 결심이 전해졌기에.
주사기에 담긴 약간의 약물.
이것을 주사하는 것으로, 상대는 편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그것을 준비하며, 상대방에게 육성으로 말을 건넸다.
내 첫 경험에 대한 말을.
“제 약혼자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함께한 아름다운 제 연인이었죠.”
“제가 의사의 길을 걷게 된 건, 갓 십 대 중반이 된 그녀가 평생 함께할 불치병을 진단받았을 때였습니다.”
“곧 세상을 떠나지는 않지만, 어느 나이 이상을 넘길 수 없다는 불치병. 무도병이라고도 합니다.”
“저는 그것을 고치고자 노력했지만, 그녀는 결국 발병하여 죽을 나날만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내 말을 듣는 그녀에게 약을 주사해 나간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것을 떨쳐 내고 일어섰습니다. ‘각성.’ 그것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었죠.”
인간의 힘으로 어찌 못하는, 불치병조차도.
그녀는 나를 향해 웃어 주었다.
주사받은 그녀는 몽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렇지만, 그 행복은 길지 않았습니다. 과거를 지내신 분이라면, 아시겠군요. 각성자의 생존율은 그리 높지 않았으니까요.”
또다시 그녀는 병상에 누웠다.
의식을 잃은 채, 옛날과 같이.
“사람은 희망을 맛봄으로써 절망에 대한 저항력이 약해집니다. 다시 병상에 누운 그녀를 저는 두고 볼 수 없었죠.”
살아날 가능성이 없는 그녀가, 또다시 흰 병상에 삼켜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녀가 조용히 눈을 감는다.
그와 동시에 나는 눈물을 흘렸다.
새로운 힘이 들어온다.
시간계 능력. 죽음을 방지하는 힘.
우호적 관계를 가진 이를 내가 죽였을 경우, 힘을 얻어내는 능력.
나조차도 알지 못한 채, 그녀가 죽었을 때 알아낸 능력.
나는 평온히 눈을 감은 그녀의 눈을 가려 주었고.
그녀에게서 옛 연인의 단면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당신도 금발이었지.
앤지.
당신은 영원히 내 것이야.
누구에게도 주지 않아.
수술하면 살 수 있다고 말하고 거짓말을 하던 내 친구 의사도, 그 유전병처럼 나에게서 당신을 빼앗아 가려고 했던 거잖아.
그러니, 복수할게.
당신을 내게서 뺏어 간, 각성자를 천대하는 이들에게.
살릴 수 있었잖아?
당신을 내게서 뺏어 간, 각성자를 신성시하는 이들에게.
너희들이 전선으로 그녀를 내몰았잖아?
그로서. 덧없는 생명에게, 죽음이라는 비료를 주자.
그게, 내가 할 일이야.
그리 생각하며.
내가 숭고한 일을 진행하는 동안, 나를 둘러싸고 있던.
염동력과 체내 신호 조작으로 몸을 굳혀 두었던 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심장에 강화된 손을 박아넣었다.
오늘도 그녀에 대한 추모는 멈추지 않는다.
* * *
인간을 살해하는 데 특화된 부하들이 모든 것을 정리하는 동안.
그 틈을 틈타, 나는 조용히 홀로 회의실에 들어섰다.
적들의 총대장과 담판을 짓기 위해.
그렇게 당당히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선 공간.
거기에는 빙 둘러앉는 원탁이 놓여있다.
원탁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이 둘러앉을, 단출하지만 고급품으로 보이는 의자들이 놓여 있지만.
그 의자들은 모두 텅 비어있고, 단 한 자리에만 누군가가 앉아있다.
실제 나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젊어 보이는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고.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잔뜩 얼굴을 찌푸렸지만.
곧, 모든 것을 이해한 듯, 의자에 몸을 맡기며 입을 열었다.
“다른 분들은요?”
본래라면 표적과 나눌 이야기는 없겠지만.
적의 없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체념의 감정만이 느껴졌기에.
조용히 입을 열어 답해 주었다.
“모두 이야기를 내려놓았다.”
수많은 의미가 담긴 내 말에, 그녀는 뒤틀린 미소를 지었고.
곧, 슬픈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렇군요. 수고하셨습니다. 이하람 씨.”
“…날 아나?”
내 이름이 나올줄은 몰랐는데.
“옛 시대를 살아온 한국 출신 영웅이라면 모두 알고 있겠죠.”
“그렇군.”
그녀의 말에 나는 무어라 답해 주어야 할지 알 수 없어. 그리 말을 마무리 지었고, 10초가량의 짧은 침묵이 지나.
“잠깐만 기다려 주실 수 있나요?”
“….”
나는 그에 어떠한 대답도 되돌리지 않았지만.
“감사합니다.”
그녀는 그것을 승낙이라 이해한 듯, 감사 인사를 표하며 품 안으로 손을 넣었고.
그녀에게서 적의가 전혀 느껴지지 않긴 하지만, 세상만사 모든 것을 포기한 자폭하기 직전의 순교자도 저런 감정을 보이는 일이 잦았기에, 나는 방심하지 않고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좇았고.
그녀는 품 안에서 보랏빛 보석 하나를 꺼냈다.
기다란 수정 형태의, 안쪽에서 어둠이 휘몰아치는 보석.
그것을 손에 쥔 그녀는 원탁 위에 수정을 내려놓았고.
그녀는 그 위에 손을 올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것은, 제 이야기 최종 보스의 코어입니다.”
저걸 파괴하지 않고 가지고 있음으로써 힘을 유지한 건가.
“이게 남아있는 한, 제 이야기는 끝나지 않으니, 만약 제가 죽는다면 이 존재는 해방되어 주변을 파괴하겠죠.”
담담한 사실을 내뱉는 그녀.
협박인가?
자신을 죽이면 강대한 적이 해방되리라는.
그리 생각하고, 대기시켜둔 대처 부대를 호출할 준비를 시작했다.
때마침, 그녀의 손에 힘이 모이기 시작했기에, 그녀를 죽이고 곧바로 해방될 적을 상대할 준비를 시작하려 했지만.
파칭.
그녀의 손 아래에서 작은 폭발이 내달리고.
폭발에 직격당한 수정이 깨짐과 동시에, 그녀 안에 잠들었던 힘이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끝.
힘의 회수.
갑자기? 왜?
예상 밖의 사태에 당황하여, 잠깐 굳어있는 사이.
그녀는 말 한마디와 함께 행동을 이어 나갔다.
어디선가 나타난, 손에 들린 작은 총.
웃는 듯, 우는 듯, 뒤틀린 얼굴 옆에 그녀는 그것을 걸쳤고.
“이걸로, 제 책임은 끝났네요.”
탕.
모든 것을 끝낸 그녀가 손가락을 굽혔다.
이젠 영웅이 아니게 된 그녀의 몸은 총알을 견뎌 내지 못했고.
피가 섞인 무언가를 흩뿌리며. 그대로 눈을 감았다.
모든 것을 포기한, 적들의 대장이 쓰러진 자리.
본디 수많은 빌런이 모여 앉았을 원탁에는 머리에서 피를 흘리는 이만이 홀로 앉아 있고.
나무로 이루어진 원탁 위에는 서류가 어지러이 놓여 있다.
그렇게 피로 얼룩진 서류 중, 눈에 띄는 제목을 가진 것이 있어, 조용히 그것을 손에 쥐었다.
조직 해산에 관한 찬반 논의.
그리고, 해당 논의가 찬성될 경우와 반대될 경우. 양측에 대해 자신들이 어찌 행동해야 할지에 대한 미래 계획을 담은 서류.
거기에 적힌 내용은, 상당히 온건한 내용이었다.
찬성의 경우는 애초에 조직 해산이니 그저 관리국의 정의를 믿을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었고.
반대의 경우에도 현재의 불법적 행동을 멈추고, 관리국 측에 자신들의 존치를 요구하는 협상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으니.
나는 조용히 라이터를 꺼내 그 서류를 불태웠고.
탁자에 앉아, 피를 흘리는 그녀에게 작별의 한 마디를 건넸다.
“너무 늦었어.”
그리고.
“수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