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428)
마법소녀 아저씨 425화(428/671)
425. 디트로이트 섬멸전(4)
아무리 돌아봐도 벽에 새겨진 숫자를 제외하면 이 실험실이자 실내 수영장 같은 장소에 수상한 점은 없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눈길이 가는 것은 이 장소에 굳이 대량으로 모아둔 액체.
처음에는 이 액체가 오염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이 액체가 어딘가로 향할법한 구멍은 딱 하나 존재할 뿐인 데다가, 심지어 그 구멍조차 단단해 보이는 가림막으로 완전히 막혀 있다.
이 장소에서 액체가 빠져나가기는커녕 천장이나 벽에 연결된 둥근 파이프에서 불규칙적으로 투명한 액체가 흘러들어오기만 하는 상황.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장소의 이해할 수 없는 액체.
그렇지만 무언가 비밀이 있는 것은 확실했기에, 우리는 이 장소의 위치를 지휘부에 알림과 동시에 해당 액체를 샘플로서 같이 전달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한 고찰을 전문가에게 맡긴 후 현장을 떠났고.
그로부터 약 한 시간이 지난 뒤.
“…또 여긴데?”
그와 똑같은 장소를 또다시 발견할 수 있었다.
흰색 타일로 이루어진 네모난 방.
천장과 벽에 파이프가 달려 있는 것을 제외하면, 네모난 물웅덩이만이 존재하는 장소.
파이프의 숫자나 매달린 위치까지 똑같은진 모르겠지만, 똑같은 방으로 돌아왔다고 착각할 법한 장소였다.
그렇지만 조금 전 방과 이 방이 확실하게 다른 장소라는 것을 증명하는 요소가 이 방에 존재했으니.
“여긴 7이네.”
벽에 새겨진 숫자가 12가 아닌 7이었다.
배수구가 막혀 있는 것은 똑같지만, 벽에 새겨진 숫자는 다른 방.
이 장소 또한 적들이 죽어라 몰려오며 우리를 가로막은 시점에서 중요한 장소라 생각해야 할 터.
“뭐든 짐작 가는 거 있는 사람?”
적을 뚫고 힘들게 도착한 곳이 또다시 이해할 수 없는 장소였다는 사실에 생겨난 허탈함이 내게 반쯤 혼잣말에 가까운 질문을 주변에 던지게 만들었다.
누군가 답을 해주었으면 좋으련만, 돌아오는 것은 당연한 정적뿐.
…관리국의 분석 결과를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나.
의문이 계속해서 생겨나긴 하지만, 이걸 붙잡고 있을 만큼 중요해 보이진 않는 장소.
그렇기에 부하들을 이끌고 떠나려는 순간.
“아까 거기가 12였었죠?”
몬터규가 흔들림조차 없는 잔잔한 물을 바라보며 멍한 말을 내뱉었기에.
“그래.”
나 또한 멍하니 질문에 답했고.
“그리고 여긴 7이죠.”
“그렇지.”
“그럼 최소한 이런 장소가 열둘은 있단 말이군요.”
…아마 그렇겠지?
“뭔가 생각나는 게 있나?”
워낙에 뜬금없는 대화였던지라 몬터규에게 그리 질문을 던지자.
“아뇨, 별 의미는 없었습니다.”
“….”
머리통을 쥐어박고 싶다.
그런 욕망이 마음속에 솟구쳤지만, ‘굳이 때릴 만큼 말도 안 되는 헛소리는 아니긴 하네.’ 싶은 생각도 동시에 떠올랐기에 그냥 듣지 않은 셈 치려는 찰나.
“대장님. 지휘부에서 연락입니다.”
여전히 반쯤 무표정한 스베틀라나가 그리 목소리를 높였고.
“뭔데? 전선이 밀려서 지원이라도 해주라고 하던?”
“아뇨, 이 장소에 관한 분석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음? 생각보다 빠르네.
“뭐라든?”
본래 지휘관인 내가 들은 다음 부대원에게 전파해야 할 사항이겠지만, 귀찮아서 연락 수단을 스베틀라나한테 떠넘긴 탓에 이렇게 한 다리를 걸친 질문이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스베틀라나는 그에 불만을 표하는 기색 없이 입을 열었고.
“우선 이 방 자체에 대해 벽을 뚫거나 탐지기를 파이프에 올려보내는 등의 정밀 검사를 행했지만, 수상한 점은 발견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단 말이지.
그에 맞장구라도 치듯 나는 손가락으로 벽을 두드려 보았다.
그 두드림에 반응해, 벽 너머 빈 공간이 있는 것 같은 울림이 아닌, 딱딱한 지반을 치는 듯한 둔중한 소리만이 반사되었다.
“다만, 그와 별개로 방위대 측에서 동일한 방을 발견하고 확보했는데, 해당 방에는 각각 60, 65, 66, 72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었고, 그중 72라 새겨진 방은 파이프에서 폭포수처럼 물이 쏟아졌다고 하는군요.”
흐음? 이런 괴상한 방이 열두개만 있어도 충분히 많은 것 같은데, 일흔두 개라고?
그리고 파이프에서 물이라….
“뭐가 다른 거지.”
그리 말하며 이쪽 파이프를 돌아보았다.
조금이나마 물이 나오던 12번 방 파이프와 달리, 물이 전혀 나오지 않는 7번 방 파이프. 그리고, 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72번 방 파이프.
“그 건에 대해서는 아직 추측되는 바가 없다고 합니다. 향후 새로이 정보가 들어오는 대로 다시 연락하겠다고 합니다.”
결국, 이 수상쩍은 방이 디트로이트 지하에 더럽게 많이 건설되었다는 사실 빼고는 전혀 영양가가 없는 정보네 저거.
의문을 풀어 줄 줄 알았더니, 더한 의문을 쌓는 정보라.
“그래. 다음 가자 다음. 어째 또 찾아도 다음엔 2나 3이 찍힌 수영장이 나올 것 같긴 하다만.”
그러니 한숨을 내쉰 후, 부하들을 이끌고 떠나려 했으나.
“그리고 액체에 관한 내용입니다만, 수상쩍은 점은 관측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오염수와도 다르고, 안에 괴물 조직도 없다고 하더군요. 다만, 이상하리만큼 단백질과 지방의 함량이 높았다고 합니다. 그것 말고는 평범한 물이라고 하는군요.”
“…응? 뭐?”
평범한 물이라고?
“…지금 장난해?”
이만큼 모아놓은 수상쩍은 액체가 그냥 물이라고?
“마법이나 초능력, 하다못해 위기감지 능력으로도 반응이 없다고?”
“그렇게 자세한 내용은 전달되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아직 파악하지 못한 성질이 숨어 있을지 모르니, 손대지 말라는 추가 설명은 있었군요.”
내 짜증을 내비치는 질문에 성실하게 답하는 스베틀라나.
그녀치고는 많은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아마 저건 들은 내용을 최대한 요약한 것임이 분명하다.
그럼 관리국은 정말로 저 물에서 수상쩍은 점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인데.
뭐 하러 박사 녀석들은 이걸 지키고, 이걸 쌓아 두는 거지?
자기들의 본거지가 방위대에게 쓸려나가는 와중에도 전력을 이 무의미한 장소에 집중시킬 만큼?
과연, 이게 정말로 물이 맞긴 한 걸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일부러 남겨두었던 물건을 사용할 결심이 섰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놔뒀는데 말이지….
그리 생각하며 액체 X가 담긴 보온병을 품에서 꺼낸 후, 뚜껑에 물로 추정되는 무언가를 퍼담았다.
이것과 저 물이 무언가 특이 반응을 보인다고 한들, 애당초 액체 X부터가 너무나도 이질적인 성질을 가졌기에 정보의 의미가 없을 것이란 생각에 더해, 수상쩍은 액체와 수상쩍은 액체가 만났을 때 어떤 괴현상을 일으킬지 알 수 없어 일부러 시험하지 않았건만, 관리국도 이 물의 정체를 밝혀내지 못했다면 돌파구가 필요하다.
그런 생각에 마음을 다잡으며 액체 X를 물이 담긴 뚜껑에 털어 넣었다.
투명한 액체 둘이 만났기에 처음엔 그것을 구분할 수 없었지만.
눈에 힘을 주고 강하게 바라보니 두 액체의 차이가 눈에 들어온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의심될 만큼 완벽한 투명도를 가졌지만, 여기 존재함을 증명하듯 미미한 왜곡을 나타내는 액체 X와.
한없이 물에 가까움을 증명하듯 왜곡이 강한 수수께끼의 물.
그것은 잠시 섞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곧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층을 이뤘다고?
수수께끼의 물이 액체 X로 변하지 않는다.
아무리 더러운 물이라도 액체라 판단되면 액체 X로 바꿔버리던 액체 X가 이 수상쩍은 액체는 변화시키지 못하고 둘로 나뉘었다.
…이건, 뭐지.
여기서 얻어낼 수 있는 정보는?
내가 액체 X에 대해 아는 건?
이 액체는 물이 아닌가?
아니 애초에 물이 아니라고 한들, 콜라나 기름도 액체로 취급해 액체 X로 만들어 버리는 압도적인 성질이 왜 이 액체엔 발현되지 않는 거지?
그것은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고.
곧바로 허리춤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내 행동에서 뭔가를 느꼈는지 몬터규가 진중한 태도로 질문을 건넸지만, 나는 그걸 답할 시간도 없다는 느낌으로 입가에 손을 올렸고.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아마, 나보다 액체 X에 대해 더 자세히 아는 사람에게.
전화를 받을지는 알 수 없지만, 관리국을 통하는 것보단 이게 더 빠를 것이라는 판단하에 전화를 걸었고.
“예, 전화 받았습니다.”
이상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아마 그놈이 맞을 거라 생각하고 소리를 높였다.
“라이브러리안. 액체 X가 액체를 변화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나?”
“액체 X가 뭡니까? 지금 저도 디트로이트 사태 때문에 바빠 죽겠으니 이상한 질문 하실 거라면 빨리 끊어 주시길.”
이런 망할 녀석 같으니.
“그 수상쩍은 액체 있잖아. 뭐든 닿으면 똑같이 변화시키는 그거.”
“아아아, 그걸 액체 X라 불렀습니까? 음. 어디 보자.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정 용량을 초과했을 경우, 고분자처럼 액체와 고체 상태의 구분이 모호한 경우….”
바빠 죽겠는데 구구절절 늘어놓지 말라고 이 이과 놈아.
“이론적인 이야기는 됐고, 방금 디트로이트 사태 때문에 바빠 죽겠다고 했지? 연구 중이냐? 그럼 그 액체 X, 아까 샘플로 보낸 액체에 처박아 봐.”
“아, 그 이상하게 단백질, 지방 함량이 놓은 물 말이군요. 어디 보자.”
핸드폰 너머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름대로 열심히 찾는 모양이지만, 그 기다림은 한없이 길게 느껴졌고.
대충 1분 정도 지났을까.
“음.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군요.”
찾는 김에 확인 절차까지 끝냈는지, 찰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다시 전화를 든 라이브러리안.
“이유는?”
“흠….”
내 질문에 대해 콧소리를 높이는 라이브러리안.
내 기억과 다른 여성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지만, 거기 담긴 근본적인 소리는 내가 알던 그가 맞았고.
“제가 몸에 부착한 물질 탐지기로 확인해 보았지만, 이 액체는 분명 한없이 높은 확률로 그냥 물입니다.”
진중한 목소리를 내뱉는 라이브러리안은 뭔가 가닥을 잡은 듯한 분위기를 내비쳤다.
“그런데 평범한 물은 아니지.”
“그렇죠. 평범한 물이라면 곧바로 저 액체로 변했을 테니까요. 다만, 이 액체를 실험하는 도중 비슷한 현상을 한 번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 말하는 라이브러리안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불길함이 담겨 있었다.
만약, 자신의 가설이 옳다면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듯.
“…제 연구실에 배속된 정령 한 분이 실수로 이 액체를 마셨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만, 정령이 분명 액체를 섭취했음에도 정령의 몸이 해당 액체로 변하거나 하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었습니다.”
…대체 라이브러리안 녀석 이 위험한 액체를 어떻게 보관하는 거야.
나도 조심성이 없는 편인데 그보다 더한 대사건을 일으키셨네 그려.
한 소리 해야 할 것 같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이 물이 정령이라는 의미냐?”
그리 말하며, 보온병 뚜껑을 흔들었다.
내 귓가에도 핸드폰 너머에서 울리는 것과 비슷한 찰랑거림이 들려온다.
“아뇨, 정령은 아닙니다. 그분들의 구성 요소 또한 한없이 평범한 물과 가깝지만, 명백한 차이가 존재해 구분할 수 있습니다. 사망한 정령분들의 몸 또한 마찬가지고요. 이는 해당 물이 정령과 관련이 없는 영역에서 특이성을 보인단 의미죠.”
이 녀석 감 잡은 것 같은데.
“시간 끌지 말고. 빨리 말해. 너, 이게 무슨 액체인지 짐작하고 있지?”
내가 그리 윽박지르자, 잠시 목소리가 끊겼다.
핸드폰 너머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끼릭거리는 기어 소리.
찰랑거리는 물소리.
그리고, 옅은 한숨 소리까지.
그건 아마 라이브러리안이 입 밖으로 답을 꺼내는 것을 꺼리고 있다는 증거이리라.
그렇지만, 라이브러리안은 이 상황의 중대성을 깨닫고 있는 듯, 10초도 채 지나지 않아 입을 열었다.
“현재 디트로이트에서 사망한 감염자는 액체가 되어 버립니다.”
“…그렇지.”
불길함이 머리에 감돈다.
라이브러리안의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을 이해했지만, 내 생각이 틀렸음을 듣기 위해 핸드폰을 귀에서 때지 않는다.
“그 액체는 빠르게 지면으로 흡수되는 통에 샘플을 채취하지 않았죠. 거기에 살아있는 샘플도 구했으니 굳이 채취하기 어려운 액체 샘플을 얻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불길함이 멈추지 않는다.
“그럼 이렇게 생각해 보죠. 방은 그런 액체를 모아놓는 장소고. 만약, 그 액체가 정령처럼 무언지 모를 이유로 생물 취급을 받는다면.”
씨발.
그대로 손을 흔들어 보온병 뚜껑에 담긴 액체를 타일 위로 흩뿌렸다.
라이브러리안이 내 생각을 부정하지 않았기에.
“지휘부 쪽엔 제가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나는 멍하니 핸드폰을 다시 품 안에 넣고,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물웅덩이를 바라보았다.
라이브러리안의 가정이 옳다면.
수많은 죽음이 모인 장소를.
디트로이트 아래 펼쳐진 어마어마한 규모의 무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