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43)
마법소녀 아저씨 43화(43/671)
43. 막간. 사람의 한계.
“할아비. 나도 더는 못하겠다.”
가부좌하고, 뜨거운 대지 위에서 참선을 시작한 지 수 시간.
단전 부근에 존재하는 마법봉에 막대한 이계의 힘이 담기긴 했지만, 그 덕에 몸 전체가 쑤실 듯 아팠고, 이계가 가하는 정신공격과 지루함은 견디지 못할 수준이 되었다.
이 이상 뭔가를 했다가는 훈련이고 뭐고 다 때려치울 것 같았기에, 눈을 뜨고 가부좌를 풀며 대지에 드러누웠다.
덕분에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던 하반신 말고도 상반신도 익기 시작했지만, 조금 전까지 뇌를 파고들던 정신적 아픔에 비하면야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아픔.
같이 수련하던 천하일검은 아직 버티고 있나 싶어 고개를 돌려보자.
“으어어 몸이 익는다아아아….”
바보의 모습이 보였다.
한참 전에 나가떨어졌는지 여기저기 구멍 난 방화복과 얼굴을 지면에 처박은 채로 피부 전체가 붉게 달아오른, 예상 이상으로 꼴사나운 모습을 한 채.
“얼굴은 왜 처박고 있냐.”
“이게 더 시원하거든.”
아무래도 뇌가 맛이 간 모양이다.
아무리 주변 공기가 후덥지근해도, 그 공기를 뜨겁게 달구는 대지에 비할 바가 아닐 텐데.
어차피 생각이 없는 머리인데 좀 더 맛이 간다고 해도 문제는 없나.
어차피 저렇게 된 거, 차라리 뇌세포가 구워지면서 좀 멀쩡하게 되는 기적을 바라는 편이 좋을 것 같아, 그냥 그렇게 내버려 두었다.
할아비는 어디 있지.
고개를 땅에 붙인 채 좌우로 돌려보아도 찾을 수 없었기에, 앞으로 고개를 들자, 그의 모습이 보여왔다.
온몸에서 열기를 뿜어내며, 막대한 이계의 힘을 받아들이는 천마검신의 모습.
“저걸 잘도 받아들이시네.”
“내 사부신데 당연하지.”
그럼 너도 제자로서 스승의 얼굴에 먹칠은 그만두지 그러냐.
이딴 놈이 사형이라니, 동문으로서 부끄러울 따름이다. 다행히 인성은 있는지 사형이랍시고 행세하지 않아서 다행이지, 사형 취급하며 존중하라고 말했다가는 나도 다른 녀석들처럼 진작 도망쳤을지도.
사람 사이에 문제가 생기는 것보다는 몸이 힘든 쪽이 낫다니 나도 많이 변했구만.
그렇게 다양한 생각을 하며, 잠시 천마검신을 바라보고 있자, 다른 감정이 들끓었다.
왜 나는 저렇게 하지 못할까. 나라고 저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지. 고작 땅을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좋은가?
“야. 지안평.”
“왜. 귀 울리니까 말 걸지 마라. 아직도 머리가 아파.”
“늙은 사부가 저러고 계시는데 제자가 이러고 있는 게 말이 되냐?”
“그렇긴 한데, 못 일어서겠거든.”
못 일어서는 게 아니라, 일어설 생각이 없는 거겠지.
“그딴 식이니까 나한테도 따라잡히지. 관둬라. 그나마 동문이라서 말은 걸어줬더니만, 나는 계속하련다.”
아마, 이렇게 말하면 저 자존심 강한 천하일검도 나를 따라 하겠지.
나는. 아니, 우리는 이렇게 시간 낭비할 때가 아니다. 조금이라도 앞을 향해. 더 큰 힘을 위해.
“뭐? 야. 나 보고 다시 말해봐라. 누가 누구한테 따라잡혔다고?”
귓가에 들리는 소리를 무시하고, 다시 가부좌를 틀었다.
지친 육체가 행동을 거부하듯 고통을 내질렀지만, 의지로 억누르고 행동을 이어나갔다.
【사람은 널 괴롭히잖아.】
【이런 고행을 한다고 누가 알아줄 것 같아? 다 헛짓이야.】
【사람은 배신하고, 또 배신하지. 받아들여. 정의란 허상이야.】
가부좌를 틀고, 이계의 힘을 다시 받아들이기 시작한 나에게 속삭임이 들려온다. 이계의 힘이 옅은 외곽지역과 다르게 명확한 문장을 이뤄 사람을 유혹하는 목소리. 이계의 농도가 짙은 만큼 당연한 건가.
저런 말은 현실이든 환각이든 지겹게 들었지만, 그게 텅 빈 내면에서 메아리치며 모든 감각을 대체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들리는 것은 저주에 가까운 유혹뿐, 느껴지는 것은 오로지 통각.
어두운 눈꺼풀 뒤편에 비추는 것은 어둠이 아닌 고통스러운 기억들.
입에 전해지는 둔탁한 금속의 맛을 느끼며, 이미 마비된 코는 유황의 향을 재생한다.
이번에는 분대가 전멸한 전쟁터의 기억인가.
그들의 행동과 희생에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그래. 너 때문에 전멸한.】
괜찮다.
이 정도면 견딜 수 있다.
그리고,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 * *
“오늘은 용케도 둘 다 따라왔구나. 평소에는 둘 다 쓰러져 있더니.”
껄껄.
정말로 노인다운, 그런 웃음을 지으시며 천마검신은 우리 둘의 등을 향해 손바닥을 날렸다.
짝.
“앗. 따거!”
“쯔…, 피부가 다 벗겨졌는데 그러시면 안 됩니다. 할아비.”
찰진 타격음과 함께 등에서부터 저릿한 통증이 올라왔지만, 다행히도 옆에 있는 얼빠진 지안평과 다르게 비명을 내지르지는 않았다.
“수련이 부족한 거다. 이 정도 열기로 엄살을 부리다니. 쯔쯔.”
우리는 중간에 쉬기라도 했지, 이 할아버지는 왜 이렇게 쌩쌩한지 원.
짧은 대화를 끝내고, 우리는 조용하지만 빠르게 발을 움직였다.
조금이라도 빨리 거주지로 돌아가고자 지친 몸을 이끄는 전력 질주.
평소와 다름없는 귀환 길이었지만, 오늘따라 이 적막함이 견딜 수 없어 입을 열었다.
“머리 안 아프십니까?”
“갑자기 무슨 소리냐. 하람아.”
“저랑 만나기 전부터 항상 이러셨지 않습니까? 이계의 힘이 강한 장소를 찾고, 그 힘을 받아들이고자 운기… 가부좌를 트시는 행동.”
운기조식이라는 말을 꺼내기는 여전히 거부감이 든다.
나는 마법소녀고, 무인의 행동에 그리 물들고 싶지 않으니까. 힘을 키우는 방법론 자체는 인정하지만, 형식을 추구하는 그 행동은 내 취향이 아니다.
“그게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
문제야 넘칠 지경이죠. 각성자의 정점에 있는 세 명 중 둘이 정신공격만으로도 나가떨어지고, 수많은 입문자도 다 도망간 판에.
“그것들이 보여주는 광경이 지옥처럼 끔찍하지 않습니까?”
“지옥도 그것보단 낫겠다.”
“지안평 넌 입 다물어.”
갑자기 끼어든 지안평에게 한마디 쏘아내는 동안, 천마검신은 입을 다물고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그렇다고 다리가 멈추거나 한 것은 아니다.
평소와 똑같이, 전력으로 질주하며, 의견을 나누는 대화. 그것은 우리가 그만큼 바쁘게 움직인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리라.
“하람아.”
“예.”
“처음에 등급이 어떻게 되었지?”
거북한 질문이군.
“…어느 처음 말씀이십니까?”
사실 별 관계없다.
내가 처음 각성자가 되었을 때건.
그와 처음 만났을 때건.
당시의 난 제자리걸음뿐이었으니.
“나와 만났을 때 말이다.”
“…F. 였죠.”
특수한 S를 제외하면, A부터 F로 각성자를 나누는 여섯 단계의 등급.
그중에서 나는 최하위였다.
전투 능력도, 특수 능력도. 모두.
각성자의 최하위에 속하는 존재.
그렇다고 F급의 수가 많은 것도 아니었다.
각성자의 분포 비율은 다이아몬드 형태. C와 D가 가장 많고, A와 F는 극소수. 더욱이 마법소녀는 모든 기능을 가지고 각성하니 아무리 못해도 C급의 평가를 받거늘, 그조차 받지 못한 낙오자.
“그런 너는 세상을 살면서 볼꼴 못 볼 꼴 다 보지 않았느냐?”
“봤죠. 많이 봤죠.”
등급이 낮은 만큼 더더욱.
각성자의 대우 자체가 전체적으로 개판이라지만, 그래도 높은 등급을 가진 이들은 겉보기에는 힘이 있다.
설령 그 힘이 민간인을 향하지 못하더라도, 그 자체만으로 위압감을 가지게 만드는 힘.
그렇기에, 모든 증오는 하위권에 집중되었고. 나에게 세계는….
“그런 너에게 세계는. 지옥과 마찬가지 아니더냐?”
“….”
놀란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을 감고 웃음을 지어 올리는 그의 얼굴을.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니, 이리 말하면 너에게 실례겠구나. 당한 것이라면 네가 더 많을 테니.”
“그렇진….”
내 불행이 다른 각성자보다 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겪은 불행은 각성자 모두가 짊어지는….
“젊은 녀석이 우울한 얼굴은 하기는. 갈 때가 머지않은 노인이 말하는 데 그냥 잠자코 듣거라.”
앞으로 수십 년은 쌩쌩하실 것 같은데 말이죠…?
“나에게 세상은 지옥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지옥이라 생각하고 있지, 그러한데 어찌 심마가 보여주는 지옥에 굴복할 수 있을까. 그것들은 지옥을 모르는 것들이다. 그게 보여주는 것이야 충분히 견딜 수 있지.”
의미를 모르겠다. 그것들이 보여주는 지옥은 내 과거나 잘못된 선택.
즉, 내 마음속의 목소리. 그렇다면 현실을 지옥이라 생각하는 천마검신은 더더욱 고통스럽지 않을까.
“저에게는 과거를 비춥니다만….”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질문을 내뱉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그럼 어떻게….”
“이미 한 번 견딘 것을 다시 보여주는 것에 무슨 문제가 있느냐. 이미 한 번 그 불구덩이에서 담금질 된 검이 나이거늘.”
그렇구만. 나와 달리 그는 과거를 극복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후회하고, 절망하고, 비탄에 빠져, 과거를 곱씹는 나와 다르게.
그러한 천마검신의 대답에 나는 생각에 빠졌고, 다시 우리 사이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사부님. 질문이 있습니다.”
갑자기 천하일검이 입을 열었다.
“무어냐.”
“사부님은 세상이 지옥과 마찬가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지옥에서 타인을 지키고자 검을 휘두르십니까?”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냐.
그리고, 나도.
아니, 아마 모든 각성자는 저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을 뿐.
“네 안에 답이 있거늘 어찌하여 나에게 묻느냐?”
그것을 꿰뚫어 본 듯, 천마검신은 너털웃음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사부님의 답을 듣고 싶습니다.”
“너 자신의 답으로 충분하거늘, 타인의 답이 필요하단 말이냐?”
“예.”
천하일검이 좀 멀쩡해 보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철들었나.
“나는 지옥에서 다른 이들이 나처럼 고통받길 원하지 않기에 검을 휘두르지. 그뿐이다.”
다른 사람이라. 분명, 뇌신이나 옥시모론도 저것과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다. 오래되어서 정확히 뭐라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천하일검은 천마검신의 답에 뭔가 생각할 것이 있는지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다시 찾아온 침묵.
“그러고 보니….”
갑작스럽게 천마검신이 입을 열었다. 제자가 모두 한 번씩 입을 열었으니, 마치 자신의 차례라는 듯.
“다 큰 너희가 나를 따라다니는 이유는 S급 기술에 대한 실마리 아니었느냐? 조금 감이 잡히느냐?”
S급이라. 분명 그런 이유였지.
“전혀요. 티끌만큼도 없네요.”
“마찬가지입니다. 사부님.”
S급. 사실상 측정 불가에 오른 각성자들을 위해 신설한 항목.
“너희는 나와 같은 경지 아니더냐. 조급해하지 말고, 정신과 기술을 단련하거라. 그리하면 자연히 오르니.”
“같은 경지라니, 아직 사부님의 실력은 저보다 훨씬 위이십니다.”
“말로는 그래도 실제 전투 능력은 엇비슷하지 않나.”
내가 그 말을 내뱉은 순간.
상반된 두 반응이 돌아왔다.
나를 째려보는 지안평.
내 말이 옳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천마검신.
“사부님에게 예의를 갖춰라. 이하람. 평소에는 사부께서 용납하기에 입을 다물고 있지만. 방금의 무례는.”
“사실이 그런데 뭘.”
실제로 S급과 A급의 기본적인 전투 능력 차이는 거의 없다.
아마 그것이 각성자로서의 한계라는 듯, 극에 달한 힘. 그렇다면 A급과 S급을 나누는 경계는 무엇인가.
A급과 S급을 나누는 것은 S급 기술, 필살기 등으로 불리는, 전장의 상황을 일거에 뒤바꿀 수 있는 상식을 초월한 무언가.
그리고 그런 S급의 낙인이 찍힌 것은 천마검신, 옥시모론, 멕베스, 칼라베라, 네 명뿐.
본래는 세 명이었지만, 최근 천마검신 또한 S급 기술에 눈을 떴기에 같은 유파인 우리 둘은 사제관계를 빌미로 이렇게 붙어 다니게 되었다.
“망치를 꺼내라 이하람.”
오늘따라 이 멍청이가 유독 진지하네. 그럼 나도 장단을 맞춰줄까.
“오냐. 꺼내주마, 오늘 누가 위인지 다시 확실하게….”
우리 둘은 무기를 꺼내, 서로를 향해 겨누었다. 짧은 눈치싸움이 끝나고, 서로를 향해 돌진하려 할 때.
“그만둬라.”
천마검신의 굳은 목소리가 우리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거주지가 바로 앞이다. 사람들 앞에서 싸울 참이냐?”
그 말을 듣고 눈에 마력을 집중하자, 어느새 군 주둔지 가까이 왔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이계의 힘이 감각을 왜곡시킨 건가. 한참 남은 줄 알았더니 벌써 다 왔었다니.
그다지 감정이 달아오른 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순순히 무기를 집어넣고 천하일검을 바라보았다.
“…나중에 결판을 내자 이하람.”
그러나 천하일검은 나와 달리 열기가 가시지 않은 듯, 무기를 집어넣지 않고 겨누며 그리 말해왔다.
나중에 싸우는 거야 상관없는데, 나한테 아무런 이득이 없지 않나?
“지면 네놈이 꼬불쳐둔 담배 내놔. 꽤 많이 박아놨지?”
어차피 싸울 거라면 부수입이라도 얻어야지 뭐.
“아! 그래! 주마! 네놈도 담배 준비해놔라!”
천하일검은 그렇게 큰 소리를 내뱉고서야 분이 풀린 듯 검을 집어넣었고, 우리는 주둔지를 향해 다리를 움직였다.
그렇게, 구멍 옆까지 가 가부좌를 튼다는, 정신 나간 일과가 오늘도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