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434)
마법소녀 아저씨 434화(434/671)
434. 최종장의 서막 – 알’셸
창밖을 바라보며 직접 내린 커피를 홀짝인다.
원두를 굵게 갈아 맛이 연한, 어찌 보면 차에 가까운 커피.
그 은은한 온기와 쓴맛이, 몸을 조금 따뜻하게 해준다.
하늘은 맑고, 세상은 평화롭다.
과거의 나라면 이런 생각을 할 리 없지만, 이계에서 돌아온 이후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순수하게 복수를 위해 모든 것을 증오하는 삶이 아닌, 현재와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삶.
물론 마음속에 잠든 분노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주변을 둘러볼 여유 정도는 생겼단 의미.
소피아와의 만남을 통해 묵힌 감정을 해소한 것도 있었고, 새로이 떠오른 아이디어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적을 명확히 인지함으로써 얻은 새로운 지식이다.
최후의 순간. 화신체를 직접 마주함으로써 얻어 낸 깨달음.
저것은 내 과거의 기억보다도 몇 배나 끔찍한 존재라는 것.
과거의 나에겐 지금만큼의 지식이 없었기에, 그들이 세상을 멸망시킬 강대한 괴물이라 생각했다.
그로부터 기나긴 여행을 떠난 후, 다시 그것을 마주한 순간.
내 생각이 틀렸음을 알았다.
그들을 언급하는 단어로서 ‘괴물’이라는 단어는 전혀 올바르지 않은 단어라는 사실을.
괴물이란 단어는 우리 종족의 우주 함대를 격침시킨 행성 사이즈 괴수와 같은 존재를 지칭하는 것이다.
괴수는 강하다고 한들 결국 생명체이기에, 막대한 힘을 박아 넣는다면 쓰러트릴 수 있는 존재지만.
마열차에 강림한 살아있는 불꽃을 본 순간 이해했다.
저것은 세상에 절대적인 진리가 존재한다고 가정할 때, 그것을 근본부터 부정할 수 있는 존재임을.
예시로, 내가 보았던 어떤 세계는 모든 것의 근본에 글자가 존재했다.
어떠한 의미를 지닌 글자를 누군가가 세계의 중심에 새겨넣으면, 세계에 해당 글자가 뜻하는 개념이 새로이 생겨나는 세계.
세계의 진리에 따라 세계의 근본에 적혀 있지 않은 개념은 나타나지 않으며, 설령 다른 세계에서 저 세계로 침입한다 해도 세계 자체의 거부 반응으로 인해 급속히 약해지다 결국 소멸해야 하지만.
만약 저 세계에 화신체가 강림한다면, 해당 화신체를 나타내는 개념은 세계에 해당 개념이 존재하건 존재하지 않건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해당 개념을 지닌 화신체가 나타남에 따라, 세계의 중심에 화신체를 뜻하는 글자가 새로이 새겨질 것이다.
반대로 해당 개념이 이미 존재했다면, 그 글자는 화신체에게 종속될 것이고.
그리고 그 글자는 주변에 존재하는 다른 글자를 집어삼키며 세상을 멸망으로 이끌겠지.
세계의 중심에 자리한 수많은 개념을 집어삼키고 홀로 남은 후, 스스로 소멸함으로써 자기 자신조차 부정하며 세계를 끝으로 이끌 것이다.
다만, 100% 일이 저렇게 흘러간다는 보장은 없다.
내가 저 세계의 멸망을 본 것도 아닐뿐더러, 저 시나리오는 그저 내가 예측한 것일 뿐.
그렇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행성 크기의 괴수와 화신체.
둘의 힘을 비교했을 때, 순수한 강함은 괴수가 압도적이다.
행성 사이즈 괴수는 무수히 많은 동족이 탑승한 전함을 한입에 삼킬 만큼 강대한 힘이 있었지만.
행성 표면에 강림한 화신체들은 그 정도의 강함을 보이진 않았다.
역전의 용사 여럿이 달라붙는다면, 화신체들은 그들을 쓰러트리는 데 꽤 시간이 걸리는 강함.
그 정도로 힘의 차이는 명백하다.
그렇지만, 만약 행성 사이즈 괴수와 화신체가 싸운다면.
과연 승자는 누가 될까.
아마, 시간이 걸리겠지만 결국 화신체가 승리할 것이다.
그들은 그런 존재기에.
그렇다면 우리는 그저 그들. 끝을 그저 두려워해야 하는가.
무언가 소환이 잘못되어 어린아이 주먹만 한 힘밖에 휘두를 수 없는 화신체가 오더라도, 그 주먹이 언젠간 살아있는 생물 모두를 때려죽일 때까지 그저 얻어맞으며 종말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가.
그에 대한 답은 살아있는 불꽃을 눈으로 직접 보며 깨달았다.
본체의 힘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화신체는 불멸이 아니다. 특정 조건만 만족시킨다면, 그들은 쓰러트릴 수 있는 존재다.
우선 방법 하나. 그들에게 부여된 개념을 세계에 속하도록 한다.
여행 당시 동행자의 말을 들어보면, 제쓰가 화신체에게 필멸성을 부여했다고 말했다.
그 정보를 토대로, 해당 지역에 남은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얻은 결론.
제쓰는 모종의 방법으로 화신체가 살아있는 불꽃이 아닌, 불꽃의 형태를 가진 에너지 생명체라 정의 내렸다.
그럼으로써 강함은 그대로지만 해치울 수 있는 개체로 격하되었고, 그것을 쓰러트릴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어찌 가능했는지는 도저히 모르겠지만 말이다.
결국, 나는 아직 할 수 없는 방법.
그렇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하나의 방법이 있다면, 다른 방법도 있다는 뜻.
세상에 유일한 방법은 없다.
절대 달성할 수 없는 질문은 존재하지만, 만약 단 하나의 해석이라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면, 그 질문의 답은 하나가 아니다.
그것을 알고 난 후, 바로 다음 목적지가 마법 왕국인 것은 크나큰 행운이었다.
마법 왕국은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세계였다. 단 하나의 화신체만 강림해도 멸망할 세계가 대부분일 텐데, 그 세계는 대(對) 화신체전 참전 훈장이 공식적으로 존재할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세계.
그렇기에 화신체를 퇴치한 기록을 열람할 수 있었고.
마지막 순간, 우리에게 중립적인 화신체, 즉 마법 왕국의 여왕을 눈으로 살필 기회도 얻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내가 유추해낸 두 번째 방법.
‘이계침식.’
해답은 너무나도 가까운 장소에 있었다.
이 세계에서는 O급이라 부르는 승천자.
저 승천자라는 개념만큼은 어떤 세계에 가도 존재했고, 그들이 발하는 마음의 소리인 이계침식 또한 내가 본 모든 세계에 존재했기에, 나는 저것이 이계에 오염된 세계에선 반드시 피어나는 개념이라 추측했지만.
아니다.
저것은 그런 물건이 아니다.
이론이라면 잘 알고 있다.
하나의 존재가 스스로 세계를 구축할 만큼의 경지에 올랐다면, 자신의 세계를 외부에 그려내는 것.
해당 세계에 존재치 않는 개념의 덧칠.
…화신체와 똑 닮지 않았는가?
물론 강약의 차이도 존재할뿐더러, 그들이 발하는 개념은 항상 참인 명제로 나오기에 문구의 해석에 따라 영향을 받는 방식이 다르지만, 결국 구조 자체는 비슷하다.
이를 통해 유추해 보자면.
승천이란 아마 끝을 향해 나아갈 최소한의 조건을 얻은 이들을 의미할 것이다.
같은 존재를 가리키는, 기둥이란 명칭도 이제 이해가 된다.
끝의 조건을 갖춘 존재니, 끝이 강림할 수 있는 거겠지.
어떤 놈이 그걸 알아내서 이름 붙였는지 모르겠지만, 결국 단어의 사전적 의미가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
기둥도 그렇고, 승천도 그렇고.
…아니, 반대인가.
처음부터 끝 녀석들이 그걸 알고 그런 단어를 퍼트렸다면?
그런 생각을 떠올리자, 갑자기 손에 쥔 커피가 차갑게 느껴졌다.
모든 것을 아는 녀석들이 우릴 가지고 노는 것 같군.
…털어 버리자.
그리 생각하며, 컵을 입가에 가져와 기울인다.
조금 전의 한기가 착각이라는 듯, 아직 따뜻한 온기가 연한 쓴맛과 함께 입안을 가로지른다.
그리고 생각을 다시 이어나갔다.
이건 내 추측일 뿐, 아직 확실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아마도 승천자는 화신체를 부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계침식이라는 개념을 통해, 상대방의 존재성을 일그러트린다면.
그로서 화신체가 가진 개념이 일그러진다면, 그것은 퇴치할 수 있는 존재로 떨어지겠지.
가령, 살아있는 불꽃의 경우.
‘불꽃은 유리와도 같으니.’
같은 이계침식이라면 깨트릴 수 있는 존재가 되어 파괴할 수 있을 것이다.
불꽃이 파괴할 수 있는 개념으로 격하되기에.
이 방법에 문제가 있다면.
저렇게 딱딱 맞게 이계침식을 조정하거나, 저런 이계침식의 보유자를 찾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이계침식은 자신이 가진 세계를 그대로 내뱉는 것이니, 문장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려우리라 본다. 다만.
…시린의 케이스를 보면 조작 자체가 불가능한 건 아니야.
그녀는 자신의 이계침식이 하나로 고정되어 있진 않다고 하였다.
다만 뉘앙스를 바꿀 수 있을 뿐이고, 그마저도 수정에 긴 시간이 걸린다고 하였지.
그걸 처음 들었을 때는 별생각이 없었지만.
수많은 자료가 모이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승천자가 더욱 위로 올라가고자 하는 경지라면, 자신의 의지로 문장을 바꾸는 것이 다음 스텝이 아닐까.
이것은 정보를 통해 예측한, 지금까지의 생각과 달리 순수한 망상이다.
이론을 뒷받침하는 것이 전혀 없는, 그저 우리가 무기를 가질 수 있도록 비는 덧없는 기도.
저것을 실험해 보기에는 승천자의 숫자가 너무나도 적을뿐더러, 애초에 어떻게 다뤄야할지 모르는 영역.
그리 생각하고, 커피잔을 탁자에 놓으며 오른손을 바라본다.
텅 빈 손.
손 위에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꽉 움켜쥔다.
…받아들여야 하나.
나는 승천자의 자격이 있다.
더러운 이계의 힘을 거부하기에, 도달하지 않았을 뿐.
더욱이 내 예측이 옳다면, 이것은 역겨운 그들에게 다가서는 길.
그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혐오감이 솟지만.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지.
적들과 맞서 싸울 무기.
세계를 오염시키는 침략자로서의 무기가 아니라.
세계를 지킬 방패로서의 무기.
그리 생각하면, 몸을 지배하는 혐오감이 조금 옅어진다.
내 더러움으로, 이 세계를 지킬 수 있을지도 모….
쾅.
“셸! 있지?!”
문이 걷어차여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천천히 문으로 고개를 돌려, 방문자를 바라본다.
“…시린 누님. 몇 번이나 말씀드리지만, 문고리는 장식이 아닙니다.”
“잠겨있던데?”
“노크도 장식이 아닙니다.”
“했는데?”
들렸지.
사색을 위해 무시했을 뿐.
“사생활이라는 단어를 알고 계시는지요. 시린 누님.”
여긴 제 개인실인데 말입니다.
“가족 사이엔 없는 거 말이지.”
그리 막말을 내뱉는 시린은, 평소 결사에서 얌전한 척, 교양있는 척하는 꼬락서니를 모조리 벗어던지고 질퍽질퍽 걸어가 내 소파에 점액을 처바르기 시작했다.
불만을 내뱉진 않았지만 말….
“에잇.”
펑.
눈앞에서 폭발이 일었다.
사람이었다면 그대로 머리가 날아가 버릴 만큼의 폭발.
물론 나는 그리 연약한 생명체가 아닌지라 조금 따끔했을 뿐.
“…무슨 짓이신지 여쭤보아도 되겠습니까? 시린 누님.”
“뭔가 내 욕을 하는 것 같아서.”
“….”
짜증이 솟구친다.
안 그래도 평소 간부들에게 ‘너희 누나는 저리 사근사근하고 인사성도 밝은데 너도 좀 본받아 봐라. 알’시린의 절반만큼만 협조성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아.’ 같은 미친 소리를 듣는 판인데 그들이 저 망나니의 실체를 본다면 뭐라 할까.
물론, 이번에도 입 밖으로 내뱉진 않는다.
“에잇.”
당연히 공격도 피한다. 한 번이면 모를까 두 번 당하진 않는다.
아무튼, 그렇게 폭발을 피해 이동하여 커피를 내린 후.
새로 뽑은 커피를 망나니 앞에 내려놓으며 입을 연다.
“그래서, 무슨 일로 오셨죠? 술이라면 없습니다.”
어제 박스째 훔쳐 가셔서 말이죠.
내가 분노를 참으며 질문했지만.
“야. 이게 뭐냐. 커피가 아니고 구정물인가? 설탕 줘 봐.”
누나라는 이름의 흉물은 커피 맛도 모르는 주제에 개소리를 내뱉으신다.
“…용건을 말씀해 주시죠.”
참자. 참아라.
그리 마음속으로 곱씹으며, 설탕을 내밀었다.
“투하.”
시린의 손에 설탕통이 들리고, 커피 안으로 대량의 설탕이 쏟아진다.
물보다 많은 분량의 설탕이 쏟아지지만, 커피가 따뜻한 탓인지 그 모두가 녹아내리기 시작했고.
“이제 좀 마실 만하네.”
개소리가 이어진다.
…죽일까?
아니. 참아라. 참아. 셸. 그래. 저래도 일단 같은 혈족이야.
후.
“마실 만하시다니 다행이시군요. 그래서. 용무는.”
제발. 좀 빨리 말하고 가지 그래?
“아. 그래. 그거.”
이제야 그 조막만 한 뇌가 굴러가기 시작했는지 심해꼴뚜기 아종은 멍하니 나를 바라보더니.
“어우, 이건 왜 이렇게 달아?”
자기 손에 들린 커피를 바닥에 흩뿌리며 그리 입을 연다.
갈색 액체와 함께 채 녹지 않은 설탕 입자가 땅에 흩뿌려지고.
죽이자.
혈족이고 뭐고 어지간해선 안 죽으니까 반만 죽이자.
그리 분노하며 마음속으로 영창을 시작하려 하자.
부글.
거품 소리가 울리고.
“나 왔어!”
커피 안에서 그녀가 튀어나온다.
그렇게 한 명의 절대자가 내 방에 강림한 순간.
“임무 완수했습니다. 린슈아 님.”
기름에 볶아진 산낙지는 지금까지의 만행을 먹어치워 버리기라도 하셨는지 곧바로 수장을 향해 예의를 차린다.
물론, 나는 저 정도로 예의를 차리지 않기에.
“린슈아 님께서 어쩐 일이시죠.”
담담히 그녀를 향해 질문했고.
그녀는 설탕통에 담긴 설탕으로 만든 사각 각설탕을 입에 담으며 날 바라보았다.
“응. 응.”
화내지 않고 그녀가 입을 열길 기다린다.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설탕을 삼킨 그녀가 입을 열었으니.
“화신체가 강림했어. 이제 싸울 준비하자!”
말의 내용에 걸맞지 않은 발랄한 목소리와 함께 내뱉어진 폭탄.
“…예?”
“…예?”
우리 둘의 목소리가 겹친다.
우리 둘이 가족임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완벽한 하모니와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