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443)
마법소녀 아저씨 443화(443/671)
443. 오서독스(1)
그렇게 찾아간 관리국 미국 동부지부는.
단적으로 말해 개판이었다.
기자들은 몰려서 시끄럽게 떠들고.
관리국 직원들은 종이 뭉치에 하드디스크에 메모리 스틱에 오만 걸다 들고 달려다니는 데다가.
일단 모이라고 해서 모인 것 같은데 인원을 통제해야 할 담당자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시끌벅적한 영웅과 예비군들.
이 모든 걸 어떻게든 수습해 보려다가 영혼이 나가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경비원과 방위대 대원들.
음. 전쟁터보다도 더 엉망인 것 같은데.
사람이 죽어나던 전쟁터에서 방금 귀환했으니 이런 농담은 해선 안 될 것 같긴 하지만,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들 만큼 상황이 개판이다.
심지어 저건 그나마 사람 사이의 분쟁이지.
“앙? 데스 어테커 아니신가요?”
“요새는 괴인도 한가롭게 관리국 산보하고 그러네. 세상 참 좋다. 안 그러냐 피시아?”
서로 악연이 있어 보이는 괴인과 영웅이 서로 째려보며 기 싸움을 하는 개판은 이제 뭐 어쩌라는 건지 감도 안 잡힌다.
심지어 괴인 쪽은 머리에 금속 액세서리가 덕지덕지 붙은 걸 봐선 결사 소속도 아닌 것 같은데.
…그 와중 더 무서운 건 저렇게 괴인이 덕지덕지 억제기를 달고 있어도, 최소 A급 하위의 기운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결사 말고도 저런 녀석들이 세상에 남아있었나.
역시 세계는 넓고 미친놈들은 많다.
아무튼, 관리국은 결사뿐 아니라 인간 쪽에 우호적인 존재는 괴인이건 뭐건 죄다 끌고 온 모양이다. 당장 그런 괴인들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관리국 로비에서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음에도, 관리국은 그들에 대해 아무런 대응을 하고 있지 않다.
괴인임을 판별하는 이계의 힘 감지장치는 전원이 꺼져있고, 경비 담당자들도 그들을 힐끗 째려볼 뿐, 그 이상 무어라 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은 겉보기만 그럴 뿐. 실제로는 현 암살팀 단원 같은 애들이 살기를 숨기며 괴인들을 노려보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뭔가 수상한 행동을 하면 그대로 목을 따 버리려는 의도겠지.
아무튼, 관리국이 필사적인 게 잘 느껴지는 덕에 상황이 개판이라도 크게 거슬리진 않지만, 한가지 신경을 크게 거슬리는 것이 있었으니.
“관리국의 데프콘 2 발령이 예산을 타내기 위한 정치 공작이 아니냐 하는 의견이 있습니다만!”
“디트로이트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정보 통제에 들어간 겁니까? 저 빛기둥은 뭔지 설명을 해주시죠!”
“소비에트 극동전략군은 현 상황엔 뱌시이급이면 충분하건만 미국과 관리국이 힘을 합쳐 소란을 피우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만!”
“유럽 공동체는 대서양군 운용에 대해 형식적인 훈련일 뿐이라고….”
조금이라도 관리국에서 높아 보이는 사람이 오면 시끄럽게 달라붙는, 언론이라는 이름의 파리 떼들.
얼마나 물어볼 사람이 없는지, 지부장은커녕 잘 쳐줘 봐야 부장이나 차장급이나 되어 보이는 사람을 붙들고 물고 늘어지고 있다.
지부장급 정도면 이미 다들 비상대기에 들어가 코빼기도 보이지 않을 테니 붙잡을 사람이 저거밖에 없는 건 잘 알겠지만, 저 사람도 이 상황에서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좀 자중하면 안 되나 싶다.
물론, 자중이라는 단어가 머리에 들어간 시점에서 기자가 아니겠지.
다만, 그중 둘에서 셋 정도 조금 신경 쓰이는 녀석들이 있다.
마이크를 들이밀고 있는 건 다른 기자들과 똑같지만, 그 행동에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멀리 떨어져 전체를 관찰하고 있기에 알아차릴 수 있는 미묘한 차이.
아마, 저 녀석들은.
“…중국인가? 아니면 소련?”
동양계가 하나, 슬라브계가 하나.
“유럽일 가능성이 커 보이는데. 아, 저쪽은 한국일지도.”
“그건 아냐. 우리 쪽 애들은 방위대를 털어먹는 걸 더 좋아하거든. 너희 쪽이 경찰이나 공무원으로 위장하는 것처럼.”
그런 소거법을 적용해 생각해보면, 북중국 국가안전국인가.
하나는 그냥 소련이라 치자.
이 상황에서도 서로 못 물어뜯어서 난리라니.
“이럴 때마다 세계 단일정부 투표가 부결돼서 아쉽단 말이지.”
그놈의 국가가 대체 뭐라고 저리 시끄러운지 원.
언어의 장벽이 대충이나마 해결되어 소통이 이뤄져도 이런 꼬락서니인 걸 보면, 저런 다툼은 집단이 존재하는 한 한도 끝도 없을 것 같다.
“외계인이라도 쳐들어 오지 않는 한 안 되지 않을까? 애초에 세계 총투표에서 3대 97이었잖아?”
이계의 존재나 외계인이나 그게 그거 아닌가. 뭐, 아무튼.
“그 3중 하나가 나야.”
투표장에서 미성년자 취급받아서 지랄 말라고 가운뎃손가락을 들었다가 잡혀갔었지.
결국, 투표 시간 마감 전에 해방되어 투표하긴 했지만 말이다.
“미안, 난 설립 반대였어.”
“그래?”
처음 알았다.
애초에 이런 걸 물어보고 다닐 일이 어디 있었겠는가.
예나 지금이나 친구 사이에서 정치 이야기는 꺼내선 안 되는 주제지.
15년이나 흘렀으니 이리 잡담 삼아 꺼낼 수 있는 거고 말이다.
그래도, 이 주제에 대해 더 파고들지 않으려 했지만.
“나라의 유무는 별 상관없지만, 하나 된 세계는 너무 차가울 것 같았거든.”
뇌신은 그리 말하며, 자신의 반대 사유를 알려 주었다.
나는 그에 답하지 않았고.
그저 함께 조용히 인파를 가로질러, 안쪽으로 들어갔다.
종말이 한 걸음씩 다가오는 현실과 달리, 시끌벅적한 인파 사이를.
* * *
이 관리국 지부는 사실 출발한 장소에서 가장 가까운 지부가 아니다.
본래 예정은 가장 가까운 지부로 가서 현 상황을 확인한 후 추가로 지령을 받아 전투에 나서려 했지만.
뇌신이 내게 알려 준 어떤 정보가 있어 이 지부에 들른 것이다.
사실 이것도 관리국이 내게 송신한 정보인 것 같지만, 단말기가 날아간 시점에서 나는 못 들었으니 뇌신이 알려 준 정보가 맞다.
아무튼, 지금 내가 수행하고자 하는 것은 관리국의 명령을 받은 공식적인 작전 행동.
이 장소에서 입 밖으로 내뱉은 것은 모두 기록될 것이고, 행동 하나하나 모두 분석 당할 위험이 있다.
그것을 다시 한번 뇌리에 되뇌며 뇌신과 함께 문을 넘었다.
문을 넘은 장소는 얼핏 보기엔 평범한 방이었지만, 외부와 방을 구분하는 경계선을 넘자 한순간에 방 밖과 방 안은 전혀 다른 장소임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감각을 뻗는 것조차 답답하게 느껴질 만큼 부족한 이계의 힘.
물속을 잠수한 것처럼 행동이 느려지게 만드는 물리력 억제장.
피부가 따끔거릴 만큼 느껴지는 각종 탐지기기와 시선.
거기에 그치지 않고, 대놓고 적의를 뿌리는 A급 상위 영웅 둘이 경계 태세로 방 안에 자리하고 있다.
이 방의 영향을 적게 받는, 기계식 육체 강화 영웅이 둘.
이계의 힘 억제 실험실이 장난이라 느껴지게 할 만큼 살벌한 공간.
그 살벌한 공간엔 두 이계의 존재가 자리하고 있었으니.
“흠. 미리 커피 한잔 더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될 수 있으면 인스턴트가 아닌 거로 말이죠.”
이 방에 걸린 수많은 제약에도 불구하고 평소와 똑같이 보이는 문어 대가리와.
“웅? 가시는 김에 우유도 가져다주세요. 여기 과잔 좀 퍽퍽하네요.”
사건이 터질 땐 털끝 하나 안 보이더니만, 여기 와서 과자나 처먹고 있는 돼지 패럿 한 마리.
두 놈 모두 두들겨 패버리고 싶다는 욕망이 샘솟지만, 어떻게든 욕망을 참으며 행동을 이어나갔다.
일단, 난 저 문어 대가리랑 전혀 모르는 사이다.
그러니, 커피를 느긋하게 즐기는 문어 놈을 억지로 무시하며.
“아, 오셨네용.”
과자를 즐기고 있는 내 파트너 녀석의 목덜미를 붙잡아 들어 올렸고.
“넌 왜 여깄냐.”
목덜미가 붙잡혀 들어 올려졌음에도, 과자를 처먹으며 내게 과자 부스러기를 뿜어내는 파트너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 그 알… 아니, 저분께서 하람 님을 호출하셨는데, 하람 님이 안 오시잖아용. 그래서 오실 때까지 대리인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죵.”
오호. 그래. 거참 흥미로운 내용이구나.
그런데 하나 물어볼 게 있다.
“운호야.”
“왜 그러시나용?”
“혹시나 해서 하는 질문인데, 내 적 튀어나온 거 알고 있니?”
아직 내 표정은 웃는 표정이다. 다른 사람이 보면 핏줄이 돋았다거나 할 수 있겠지만, 일단은.
“아! 맞아용. 새로운 적이 출현한 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알려드리려 했는데 전화도 안 받으시공, 제가 가려 해도 거리도 멀고 해서 저번처럼 알아서 오실 거라….”
좋아. 사형.
운호의 말도 안 되는 변명에 대한 처벌을 정하자 내 몸은 뇌신처럼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꼬리와 머리통을 쭉 당겨 길게 만든 후, 두 말단을 이어 쌍 옭매듭을 하고 앞뒤로 당겨 어지간해서는 절대 안 풀리게 만드는.
이중 피셔맨즈 매듭.
“부애애액.”
너무 번개처럼 움직인 탓일까.
운호는 앓는 소리도 꺼내지 못한 채 기묘한 형태로 매듭지어졌고.
난 매듭으로 변한 쓰레기를 방 한구석에 내던진 채 의자에 앉아 알’셸 놈을 마주 보았다.
알’셸은 눈앞에서 벌어진 DIY 강의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빤히 날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그런 알’셸에게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일단, 야. 라고 부른다던가 알’셸이라는 이름을 꺼내면 안 된다.
평소처럼 너무 가볍게 대하는 것도 안 될 것 같고.
서로 제대로 대화를 나누는 게 처음인 적대적 대상에게 어울리는 말투가 무엇이 있을까.
내가 그리 첫말을 고민하던 와중.
“제가 지목한 당사자께서 자리하셨군요. 그럼 우선.”
내가 생각을 끝내기 전에 알’셸이 먼저 입을 열기 시작했으니.
“크림슨★해머 영웅님을 이 장소로 이끌어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합니다. 뇌신 님. 관리국과 대화 통로를 마련해 주신 것도 그렇고, 매번 신세를 지는군요.”
문어 대가리는 평소와 같은, 반쯤 장난치는 듯한 분위기로 뇌신에게 감사를 표했고, 그에 뇌신은.
“괜찮아. 내가 타락에서 벗어난 것도 너희 덕분이고, 이 정도는 해줘야지.”
그녀를 아는 사람이 들었다간, 기절초풍할지도 모르는 말을 꺼냈다.
그렇지만, 이 방에 있는 사람 중 그에 놀라는 사람은 없다.
나 또한 뇌신에게 미리 저 내용을 들어두었으니 말이다.
그래. 뇌신은 이 상황을 정리하고자 자신의 명예를 포기했다.
대장벽 붕괴 사태에 맞서기 위해, 타락을 택하였다는 거짓으로.
그리고, 타락에 무릎 꿇으려던 순간 도와준 것이 결사라는, 꾸며진 이야기를 관리국에 전달했다.
그리함으로써, 자신은 타락한 영웅이자, 반쯤 괴인이며, 인류의 적과 인연을 맺은 존재라는 악명을 뒤집어쓰겠지만.
그런 악명을 뒤집어썼기에, 힘을 감출 필요 없이 최전선에 나가 싸울 수 있게 된 거라고 그녀는 말했다.
자신의 옛 명예를 지키고자, 자신의 힘을 감춘다면.
그것은 정의로운 영웅이 아니라며.
사람들과 세계를 위해서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옛 명예를 더럽히는 일은 얼마든지 하겠다며.
그리 말하며, 그녀는 웃었었다.
…더럽혀져야 할 명예는 내 것이건만, 자신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을 택한 그녀.
그에 마음 한구석이 아파 오는 것을 느끼며.
이어지는 알’셸의 말을 귀에 담았다.
“간만입니다. 크림슨★해머 님. 절 으깨버리신 그 강대한 망치질은 그대로이신 것 같군요.”
…예의 바름이 넘치다 못해, 비꼬는 게 아닐까 싶네.
“무슨 일로 나와 대화를 신청했는지 물어봐도 될까?”
그 비꼼에 내가 어떻게든 예의를 담아 그리 답하자.
“좀 더 평범하게, 파괴적으로 말씀하셔도 됩니다. 만약 크림슨★해머 님이 이 자리에서 절 죽이시더라도 결사와 관리국 사이의 동맹이 끊어질 일은 없으니 말이죠.”
오호. 그래?
“그럼 더 궁금하네. 난 대체 무슨 자격으로 여기 앉아 있는 거지?”
난 당연히 동맹에 관해 이야기하러 온 줄 알았는데, 그와 관계가 없다면 이 녀석이 이렇게 불편한 자리에서 나와 만난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어쩐지 직원들도 나한테 어떻게 말하라고 한마디도 안 해주더라.
“저는 크림슨★해머 님의 개인적인 의향을 묻고자 이리 살의 넘치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 말하는 알’셸은 불만이 가득 찬 손놀림으로 비어있는 커피잔을 두 번 두드렸다.
아마 ‘커피 리필은 없습니까?’하고 비꼬기라도 하는 거겠지.
그나저나 저놈의 크림슨 해머 더럽게 거슬리네.
“그 의향이 뭔지 궁금하긴 한데, 일단 이하람이라 불러. 그놈의 크림슨★해머 때려치우고.”
“그럴 순 없습니다. 영웅명이라 함은 그 사람의 긍지를 담은 이름. 마땅히 경의를 담아 그리 불러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알’셸은 얼핏 듣기엔 백퍼센트 진심이라 느낄 만한 목소리와 어투로 말을 내뱉었지만, 내 귀에는 그 말이 전혀 다르게 들려왔다.
이 새끼 나 놀리는 거지? 그렇지?
지금 날 놀릴 만한 각이 나와서 설치는 것 같은데?
“…됐으니까 이하람이라 불….”
“그리고, 제가 묻고자 하는 것 말입니다만.”
알’셸 놈이 내 말을 잘라먹었네?
좋아. 죽이자.
아직까진 내가 어떻게든 분노를 제어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시간문제일 것 같다.
그리 생각하며, 저 문어 놈을 간장에 담가 문어 간장 조림으로 바꿔 버릴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저희 결사는 침략자에 대해 대규모 반격 작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작전에 대해 관리국 측에서 서류상으론 지원군이라 지칭된 감시관 영웅 한 분을 붙일 예정이었습니다만, 그 영웅에 대해 저희 결사는 크림슨★해머 님을 지명했습니다.”
알’셸은 최대한 빠르고 사무적인 어투로 정보를 건네 왔다.
마치 이 결정에 대해 내 의사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듯.
“관리국은 좀 덜 중요한 영웅을 붙일 예정이셨는지 선선히 저희의 요구 사항을 승낙했고, 이제 남은 건 크림슨★해머 님 본인의 승낙 뿐. 자, 어쩌시렵니까?”
이번 알’셸의 목소리에는 비릿한 웃음이 담겨있었다.
이건 내게 가하는 협박인가? 아니면 다 알고 계시죠? 그냥 고개만 끄덕이십시오 하는 말인가?
어쩌면, 둘 모두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어찌 되었건 난 저 제안을 승낙하는 것이 좋은 상황.
다만, 한 가지 알’셸 놈이 간과한 것이 있다.
난 이런 상황을 굉장히 싫어한다는 것이다.
쾅.
나는 곧바로 앞에 놓인 테이블을 차 알’셸 쪽으로 다과를 엎어버리며 입을 열었으니.
“괴인들이 야유회 가는데 난 왜 끌어들이고 지랄이신가?”
시선이 모인다.
한숨을 내쉬는 뇌신의 시선.
이게 무슨 상황인지 뇌 정지가 온, 감시자 둘의 시선.
그리고, 어디선가 날 지켜보고 있는 관리국 직원들의 시선.
그것을 난 완전히 무시한 채, 과자 부스러기로 엉망이 된 알’셸을 바라보며 계속 입을 열었으니.
“하고 싶으면 니들 마음대로 해. 난 괴인 놈들이랑 팀 먹을 생각 없으니까.”
물론, 실제 이유는 괴인이랑 한 팀 먹기 싫은 게 아니고, 그냥 문어 놈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 싫어서 이러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내가 고함을 내지른 지 대략 30초 정도가 지난 시점.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제 몸에 달라붙은 과자부스러기를 털던 알’셸은 천천히 제 양복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런 알’셸의 행동에 대기 중이던 영웅 둘은 수상한 짓 하지 말라는 듯, 한 걸음 내디뎠지만.
“….”
내가 조용히 알’셸의 행동을 바라보자 그 이상의 행동은 내보이지 않은 채 침묵했고.
그에 알’셸은 조용히 품 안에서 한 장의 종이를 꺼냈다.
“이게 뭐로 보이십니까?”
“종이.”
나는 솔직하게 이제 별 관심이 없어 그리 건성건성 대답했고.
“사진입니다. 드리죠.”
알’셸은 손가락을 튕겨, 나름 멋스러운 행동으로 내게 사진을 날렸다.
나는 허공을 날카롭게 가로지르는 사진을 붙잡아 손에 들었고.
사진에 찍힌 것을 확인했다.
뭐야 이거.
사진에 찍힌 것은 정말 간단한 장면이었다.
어딘지 알 수 없는 도시에서, 두 사람이 무언가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마주 보며 입을 여는 광경.
이리 보면 흔하디흔한 사진이지만.
사진에 찍힌 두 사람의 존재가 내 뇌를 정지시켰다.
그 내용을 뇌가 이해하는 데 약 10여 초.
그리고, 그것을 부정하는 데 약 10여 초.
그리고, 이것이 거짓이 아님을 확인하는데 약 10여 초.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진에 찍힌 것을 납득하는 데 약 1분.
그 모든 고뇌가 끝나고서야, 나는 입을 열었으니.
“…뭐냐 이거.”
“보시는 그대로입니다. 저희 표적 둘이 찍힌 사진이죠.”
그래. 그렇다 이거지?
여기 찍힌 것이 표적이라.
그럼 하는 수 없지.
“가 주마.”
그래, 내가 친히 너희 전쟁에 한 손 거들어 주마.
이 정도의 떡밥을 던졌으니, 나도 그에 응하는 것이 당연하겠지.
만약 이 내용이 거짓일 경우, 정말로 알’셸을 문어 간장 조림으로 만들어 버리겠지만 말이다.
그런 내 결정이 만족스러웠던 것일까.
“알겠습니다. 그럼, 작전 당일 다시 뵙도록 하죠.”
알’셸은 웃으며 그런 말을 남겼고.
꿀렁.
검게 빛나는 마법진과 동시에 발아래 생겨난 어둠에 잠겨, 한순간에 방에서 사라졌다.
그 기묘한 공간 이동이 일어나자 방이 빠르게 소란스러워졌다.
“마법?! 어떻게!?”
“관리국을 봉쇄해! 멀리 가진 못했을 거다!”
“현상 분석 빨리 시작해!”
투명도를 조절할 수 있는 벽이었는지 갑자기 투명하게 변한 벽 너머에서 소란을 일으키기 시작한 연구자부터 시작해.
천장이나 땅바닥에 숨어있던 인원들 또한 벽 너머로 고함을 지르며 방 안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그렇게, 한순간에 방은 엉망이 되었지만.
나는 그 소란에서 완전히 벗어나, 들고 있는 사진을 다시 한번 찬찬히 바라보았다.
여전히 사진엔 두 명의 사람이 찍혀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람이 아닌, 사람 형태의 무언가가 둘이라고 해야겠지만.
하나는 내 적이자 네 번째 간부인, 검은 지렁이 인간.
그리고 남은 하나는.
세계를 뒤집어엎은 이 모든 사태의 원흉.
두 학력위조범 중 하나. 빼빼 마른 홀쭉이.
그 둘이 서로를 마주 보며 학력위조범 중 덩치의 시신을 주고받는 사진이 내 손에 들려 있다.
자칭 박사 녀석들이 둘 다 살아있는 것인지, 아니면 둘 중 하나만 살아있는 것인지는 사진만으로는 알 수 없는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