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453)
마법소녀 아저씨 453화(453/671)
453. 하나의 이름으로(1)
“운호야.”
“왜 그러세용.”
보라색 빛이 비추는 어둠 속에서 울리는 각자의 목소리.
“…대적자. 느껴지냐?”
운호는 말했었다. 더는 그 존재가 느껴지지 않았다고.
“…예. 느껴지네요.”
그리고, 그 말은 달라졌다.
이제 다시 평범하게 그 존재가 느껴진다고.
“위치는?”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포요.”
그런가.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렇게 마음을 가다듬었다.
어쩌면 이 사태에 대해 운호를 원망해야 할지도 모른다.
운호가 날 말리지 않았다면, 더 철저하게 촉수 인간을 짓밟을 수 있었을지 모르니까.
그렇지만 그것은 운호의 잘못이 아니다.
나조차도 날 말리는 운호를 반쯤 무시하며, 모든 감각이 적이 소멸했다고 답을 줄 때까지 계속해서 적을 으깨 버렸으니까.
그리고, 조금 전 일어났던 전동차와 투명 벽 사건 또한 이 일이 누군가의 잘못 때문이 아니란 사실을 증명해 준다.
대체 무슨 일인지 이해할 수조차 없는, 완전한 돌발 상황.
이런 사태에 대해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실패.
그래, 내 대적자인 검은 촉수를 처치하는 것은 실패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주저앉아야 할까.
아니다.
조금 전 생각했던 것처럼, 당연히 내가 할 일을 계속해야 한다.
미친 과학자. 학력 위조범.
홀쭉이 퇴치.
그렇기에, 보라색 형광봉을 들고 주변을 뒤졌고.
통.
가볍게 두드린 벽이 내부가 비었음을 알려 줌으로서, 숨겨진 통로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기이한 지하철 사건까지 포함해 4분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지하철역에 들어오고, 다 합쳐도 10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간.
그렇지만, 날 둘러싼 감정은 들어올 때와 전혀 달라져 있었고.
이번엔 절대 실수할 수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어두운 비밀 통로 안쪽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렇게 또 다른 작전이 진행되기 시작했기에.
조금 전의 실패를 만회하고자 온 정신을 이쪽에 쏟아도 모자란 상황이지만.
내 신경은 다른 것에 향해 있다.
갑자기 달려온 전동차에 대해서.
그것을 나는 처음 보는 전동차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무언가가 걸린다.
정말로 나는 그 전동차를 처음 본 것인가?
어딘가 기시감이 드는, 금속에 긴 원색 선 하나가 길게 그어진.
어두운 전동차를 정말로 내가 처음 본 것일까.
그렇지만, 알 수 없다.
내가 세계 각국의 전동차에 푹 빠져 사는 것도 아니고, 대충 네모난 금속 상자가 달리는 전동차의 디자인 차이를 알 리 없다.
애당초, 난 지하철 자체를 거의 타지 않는다. 지하철보다 내가 뛰어다니는 게 훨씬 빠르니 말이다.
전철류는 내게 있어, 처음 가보는 장소라 길을 모를 때 타는 것.
일반적인 지하철이라면, 내가 전동차에 탄 순간 내가 가진 외모 탓에 시선을 끌기에, 일부러 그런 불편한 시간을 감내할 이유가 없다.
전쟁터에서 온종일 굴러, 여러 총을 봤음에도 총들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데.
그보다 훨씬 적게 본 전동차의 디자인을 구분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렇기에, ‘어디 드라마나 영화에서 봤나.’ 그런 생각을 마지막으로 흐름을 끊어 내려 하지만.
의식의 흐름 사이에 박혀 버린, 위화감이라는 말뚝은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 도시에 온 이후로 계속 무언가가 이상하다.
세계 자체가 뒤틀린 듯한, 그러면서도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그런 이상한 느낌이. 계속해서 내게 쏟아진다.
그 원인조차 모르는,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아직 복도는 어둡다.
-덜컹.
짧게 몸을 울리는 지하철의 진동. 그 흔들림에 눈을 떴다.
어느새 잠이 든 걸까.
지금 무슨 역이려나. 지나쳐버리지 않았다면 좋겠는데.
천천히 고개를 돌려 등 뒤에 자리한 유리창을 바라보자, 거기엔 내 얼굴이 비친다.
은발, 트윈테일.
옷은 평상복인 양복 상태지만, 머리카락을 붙든 빛나는 날개 모양 머리끈은 여전히 제 존재감을 뽐낸다.
음. 큰 문제 없네.
지하철이 터널을 달리고 있는 것일까. 광원의 차이로 유리창이 거울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눈에 감각을 불어넣어, 어느 장소를 달리고 있는지 확인하려 했다.
그에 점차 밖의 풍경이 보이지만.
곧, 의문이 그를 뒤따른다.
…내가 왜 전철에 타고 있지?
내가 무슨 역으로 가는 거지?
그리고 그 생각은.
덜컹.
소리와 함께 전동차가 터널을 빠져나오며 사라졌다.
어두운, 비상등만이 밝게 빛나는 지하철역이 나타났다.
풍경의 변화에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밀려났고.
곧바로, 무슨 지하철역인데 이렇게 어둡나 싶어 역명을 보려 했지만.
발아래만을 옅게 비추는 비상등은 역명을 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어째서인지, 감각을 강화해도 시야에 들어오지 않던 역명을 보려고 노력하던 와중.
-문이 닫힙니다.
안내 방송과 함께, 문이 닫히고. 전동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잠시 역명을 본 것 같았지만.
거기 적힌 것은, 내가 도저히 읽을 수 없는 꼬부랑 글씨였기에.
빛이 잘못 반사되어, 잘못 본 것이라 생각하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전동차에는 사람들이 있다.
빽빽한 것은 아니지만, 한두 명 정도는 자리가 모자라 서 있을 정도의 숫자.
조금 전 역에서 사람 몇 명이 내리긴 했지만, 그만큼 사람이 타, 사람 숫자는 유지된다.
그렇기에 그들을 훑어보았지만.
평소처럼, 난 그들을 구분하지 못하였다.
민간인.
사람.
내게 있어, 흘러가는 군중과 같은 존재.
얼굴은 질긴 선과 먹물로 장식되어 있으며, 이름은 기억하지 못한다.
필요하다면,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다.
그들은, 토마토기에.
덜컹.
전동차가 크게 울린다.
갑자기 속도가 줄어들지만.
그 누구도 그에 반응하지 않는다.
당연한 일인 것처럼,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냐는 듯한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리지만.
누구도 당황하지 않는다.
그렇게 줄어든 속도로 전동차가 달리기 시작하고.
-승객 여러분께 불편을 끼쳐드려… 곧 정규역인 임시 비상 정차 구간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무언가 뒤틀린 것 같지만 평소와 같은 안내 방송이.
-다음 역은, 비밀 실험실 앞. 비밀 실험실 앞.
역명이 흘러나온다.
-이 역은 열차와 지면 사이의 높이 차이가 120cm이오니, 내리실 때 발이 부러지지 않도록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간격이 넓음을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온다.
내가 내릴 역이 아니기에, 조용히 문장을 흘리던 찰나.
덜컹. 저벅.
누군가가, 맞은편의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출입구로 향한다.
아마 저 존재는 다음 역에서 내릴 생각이겠지.
-해당 역에 이 열차는 정차하지 않으니, 문을 열고 뛰어내려 주시길 바랍니다.
내 생각을 증명하듯, 평소와 같은 알람이 흘러나오고.
우득. 우드득.
전동차에 탄, 검은 자국 없이도 검은 얼굴을 가진 존재는 금속 문을 우그러트리며 난폭하게 문을 열었다.
이건 조금 특이한 광경이네.
보통 문틈 사이에 손을 넣고 강제로 개방할 텐데, 거기다 힘을 써서 한쪽 문을 우그러트리다니 말이다.
그렇지만, 종종 있는 광경이기에 아무도 그에 반응하지 않았고.
나 또한, 그에 관해 신경을 끄고, 다시 밖을 보려던 찰나.
무언가. 시선이 느껴졌다.
시선의 방향은, 힘으로 우그러진 문 앞에 서 있는 그것.
그에 반응해 고개를 돌리자. 그것과 눈이 마주쳤고.
“내리지 않을 것인가.”
그것이 질문해 왔다.
누군지 모르는 이가 던진 질문.
답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며 입을 다물고, 유리창으로 고개를 돌렸고.
덜컹.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니, 어쩌면 유리창 너머의 내 얼굴을.
마법소녀 옷을 입고, 운호를 어깨에 올린.
보라색 형광봉을 든.
유리창 너머의.
양복을 입은 평상복 차림의 전철에 타고 있는 내가 아니라.
아니다. 거기엔 양복을 입은 내가.
덜컹.
전동차가 울린다.
누군가가 뛰어내린다.
놀라 고개를 돌려보지만.
이미 풍경은 지나친 뒤.
나는 무엇에 고개를 돌린 것인가.
바깥의 나인가.
정말로 뛰어내린 존재인가.
아니. 애당초 이 전철은 무엇인가.
정말로 어두운 건 어디지?
밖인가? 전동차 안인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지?
나는, 왜 여기에 타고 있지?
키코드 1.
나는 2이며, 지금 3에 있다.
지금 나는 4에 타고 있으며, 5로 가고 있다.
나는 6을 위해 7에서 나와 8로 가고 있으며, 이는 9를 만나 10을 하기 위해서이다.
이 약속은 11월 12일에 하였으며.
오늘은 13월 14일이며. 내 나이는 15살이다.
뭐야.
뭔데.
이게. 대체.
-덜컹.
“이하람 님?”
운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신을 차리자, 눈앞에 문이 있다.
“….”
“괜찮으시죵?”
운호가, 내게 질문을 해 온다.
“어. 음… 괜찮아.”
평소처럼, 환각과 환청이다.
빛 없고 어두우며, 이계의 힘이 짙은 장소에 있다 보면, 흔히 보이는.
기억에도 제대로 남지 않는 환영.
그렇기에, 조금 전 전동차의 환영에 대한 기억도 대부분 사라졌다.
아마, 전동차에 너무 신경을 많이 쓴 나머지 그와 관련된 악몽이 떠오른 것이리라.
“그럼 다행이구용. 무표정하게 그냥 걷기만 하시길래.”
…그건 평소에도 그렇지 않나?
뭐 어쨌건.
문이라.
무슨 문인지 알아보고자, 이 장소의 유일한 광원인 보랏빛 형광등을 들어 올렸다.
마감 처리도 제대로 하지 않아, 울퉁불퉁한 데다 철근까지 튀어나온 콘크리트 벽.
거기에 달린, 작은 금속 문.
문에는 흘러내리는 흰색 페인트로 7이라는 문자가 적혀있다.
그것 이외에 특이한 무언가를 찾을 수 없었기에.
나는 천천히 손잡이를 잡아 돌리며 문을 열었고.
찰칵.
잠겨 있으리라 생각했던 문은, 부드럽게 돌아가며 열리기 시작했다.
빛이 시야에 들어온다.
일반 조명보다는 약하고, 비상등보다는 강한 빛이.
오밤중의 병원이, 딱 이 정도 밝기였는데.
그렇지만, 새로운 광원을 통해 드러난 새 장소는, 엉망이었다.
병원이라고 하면 실례일 정도로.
동굴을 대충 공구로 두드린 다음 써도 이것보다는 멀쩡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절로 떠오르는, 엉망진창 건축물.
페인트칠은 하다 말았는지 여기저기 얼룩져 있고.
천장은 척 봐도 기울어져 있으며.
조금 전 문이 달렸던 벽과 같이 여기저기 철근이 드러난 마감.
다만, 이 장소의 벽과 천장에서 드러난 것은 철근뿐만이 아니었으니.
파직. 파직.
사방에서 스파크를 튀겨대는 전선.
우웅. 우웅.
이상한 소리를 내는 배관.
달칵. 달칵. 달칵.
회전축이 망가졌는지, 이상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팬.
무슨 폐허인가.
그런 생각과 함께 발을 내딛자.
찰팍.
젖은 무언가를 밟는 감촉이, 발을 따라 올라온다.
그에 시선을 내리자.
갈색빛의 무언가가 보인다.
…녹슨 물인가. 완벽하네.
정말 완벽한 폐허다.
모든 것을 망가트린 미친 과학자 에게는 딱 어울리는, 망가진 장소.
적의 기척은. 없다.
그렇기에, 발을 디뎠고.
찰팍. 찰팍. 파직. 우웅. 덜컹.
내 발소리에 수많은 소음만이 겹쳐 흐르는 공간을 천천히 걸어갔다.
질퍽.
그 소리에, 잡음이 생길 때까지.
그것은 발아래에서 울렸고.
감촉 또한, 내가 밟은 것이 여태까지와 같은 물웅덩이가 아님을 알렸으니.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그리고, 시야에 그것이 들어오기 전. 그 정체를 알았다.
공기와 반응하여 표면이 딱딱히 굳었던 물체가, 내 발걸음으로 인해 그 안에 있던 물건의 악취를 주변으로 풍긴다.
씁쓸한 금속의 향.
피의 향.
대량의 피가 구정물과 섞인 것.
그것은 어느 인기척 없는 문 너머에서 흘러나오고 있었고.
나는 천천히, 그것이 흘러나오는 문을 열었다.
시체가 보인다.
무수히 쌓인 시체가.
급하게 사용되기라도 한 듯, 이빨 자국과 비슷한 절단면이 잔뜩 달린.
남녀노소 구분 없이 쌓아 올려진 시체가 피를 흩뿌리고 있다.
나는 문을 닫았다.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달려나갔다.
머릿속에 든 잡념을 지우며.
다시금 불타오르기 시작한, 분노를 퍼 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