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464)
마법소녀 아저씨 463화(464/671)
463. vs 세계의 파괴자(1)
“예, 듣고 있습니다. 예, 통신에 문제없는 거 맞습니다.”
“아니, 그럼 왜 그리 침착하냐고!”
쿠쿠루루의 따지는 목소리가 크게 울리지만, 당황이 피어나진 않았다.
과정은 알 수 없지만, 사건 자체는 사전에 예측되었던 것이니.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확신은 없었기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말이다.
“참모는 어떤 상황이든 당황해선 안 되니 말이죠.”
“염병, 문어 놈이 꼴값하고 있네. 갑자기 그런 사건이 터졌다는 말을 들으면 ‘어?’라는 반응 정도는 나온다.”
쿠쿠루루는 다 좋은데 흥분하면 꼭 이렇단 말이지.
한 종족의 수장이라면, 평소에도 조금 자신의 품위 유지를 신경 쓰는 것이 어떨까 한다.
“그리 느껴지십니까? 이래 보여도 꽤 놀랐습니다만.”
“…잠깐, 설마 너 뭔가 알고 있….”
쯧.
“이런, 간섭 탓에 잘 들리지 않는군요. 끊도록 하겠습니다.”
“야. 알’셸 이 새….”
강제로 연결을 차단하자 들려오는 쿠쿠루루의 목소리가 끊겼다.
정보를 많이 주지 않고자 강제로 끊은 것은 맞지만, 내세운 핑곗거리 자체가 완전한 거짓은 아니다.
실제로 이 장소엔 막대한 이계의 힘이 소용돌이치고 있고, 그사이엔 검은 분노가 섞여, 힘이 혼란스러운 상황이니 말이다.
물론 그렇게 복잡한 상황이더라도 계속해서 연결 신청이 들어오지만, 그런 호출은 모두 무시한다.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니 말이다.
철컥.
손을 뻗어, 문손잡이를 돌린다.
몇 번이고 문을 열어 그 안을 확인했지만,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던 방의 문을.
끼이익.
몇 번이고 들었던 경첩 소리가 귀를 울리고.
역시, 여기였군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텅 비어있었건만, 지금은 기계장치로 가득한 방.
이 장소를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두바이 전역에 깔린 수상쩍은 이계의 힘 흐름과 기지에 깔린 마법식, 기술식을 분석하여 계획을 통제하는 장소는 쉽게 역산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역산을 통해 도달한 장소는 텅 빈 방이었고.
무언가 위화감을 느낀 나는 잠시 대기하며 상황이 바뀌길 기대했다.
그것이 지금의 결과물.
마지막 순간까지 계획이 방해받지 않음이 미리 정해진 장소.
그렇지만, 그 흐름이 깨져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정해진 미래라.
운명을 믿은 적은 없고, 지금도 믿지 않지만, 비슷한 건 있는 것 같다.
흐름을 지배하는 자들이, 우리를 바라본다는 사실.
그렇다면, 그것들은 이리 발버둥 치는 나를 바라보며 얼마나 비웃었을까.
“….”
그것을 생각하며, 방 안으로 발을 옮겼다.
저벅.
내 발걸음이 방 안을 맴돌자 방 안에 존재하던 인간들이 날 바라보았으니.
그들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뒤, 이어 시끄러운 외침이 시작되었다.
“사, 살려 주세요! 저흰 그냥 시키는 대로만….”
그와 비슷한 목소리가 사방에 들리지만, 그 어떤 문장도 내 마음을 흔들진 못했기에.
짝.
박수로 공기를 울리는 파열음을 일으켜 그들을 진정시켰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 이쪽을 보아 주실까요?”
오른손을 크게 들어 올리자, 방 안에 존재하는 인간들의 시선이 내 손가락 끝에 자리한다.
명백한 민간인이다.
어디에선가 납치되어 착취당하고 있는 연구자나 기술자들.
그렇기에, 평범한 상황이라면 죽일 이유가 없는 대상이지만.
참으로 유감이군요.
모든 이의 몸에서, 그들의 파편을 느낄 수 있었기에.
딱.
손가락을 튕겨, 마법을 사용하였다.
검은빛이 한순간 위로 솟구치고.
찰나의 시간이 지나, 검은빛이 세상에서 거두어진 뒤.
방 안에는 정적이 자리했다.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고, 고통 없이 사라진 존재들.
만약 여기 온 사람이 내가 아닌 다른 간부였다면, 그들은 목숨을 건졌을지도 모른다.
민간인을 포로로 잡아 판단을 둔하게 한다.
설령 이미 그들과 반쯤 동화된 존재라고 하여도, 아직 그들은 자의식을 가지고 살아 움직이고 있으니, 연민을 느끼고 행동이 둔해지기를 노리는 가학적인 함정.
그렇지만, 내게 있어 그것은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했기에.
생명이 사라진 텅 빈 방을 건너, 단말기 앞에 앉아 기기를 무력화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인간들을 구하는 일이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던, 이 계획의 성공만은 막아야 하기에.
방 안에 존재하던 인간들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
그들과 실랑이하느라 시간이 낭비되었다면, 그만큼 작업이 지연되었을 테니.
단지, 그것뿐이다.
* * *
짧으면서도 긴 시간이 지나.
기지는 결사가 완전히 장악했다.
이 기지의 본래 주인인, 코핀이라 불리는 작자의 계획도 이걸로 완전히 분쇄된 상황.
그나저나, 저 과학자들은 완전히 미친 존재임이 틀림없다.
계획의 마지막엔 자기 자신조차 갈아 씨앗으로 탈바꿈시키고, 자신과 연결된 모든 인간을 모판으로 사용해, 수많은 지성체를 하나로 모아 더 높은 장소에 도달한다는 계획.
계획의 실현 가능성 유무는 어찌 되었건, 구멍투성이 이론을 확실하다고 여기며 자기 본질을 갈아 넣을 생각을 하다니.
만약 내가 관찰자의 입장이었다면, 저 실험의 결과를 흥미롭게 지켜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이 세계에 관여하기로 마음먹었고 계획을 내 손으로 멈추었으니, 이제 저 실험의 성공 유무는 영원히 알 수 없다.
그렇게, 하나의 계획이 좌초되고, 하나의 대악당이 쓰러졌지만.
아직 작전은 끝나지 않았다.
더 큰 일이 우릴 기다린다.
“이제 저희를 이 방으로 모은 이유를 알려 주시지 않겠습니까?”
만에 하나 생길 문제를 방지하고자 열심히 작업을 이어 가는 내게 그런 질문이 쏟아졌다.
그렇지만 나는 그에 곧 알게 될 거라는 말을 반복했고.
그렇게 스물여섯 번째 질문이 내게 쏟아지고 28초 후.
쾅.
한 손에 코핀을 붙든 마법소녀가 벽을 부시고 나타났다.
그는 검은 입자를 잔뜩 두른 채, 푸른 침을 뚝뚝 흘리며, 완전히 비틀린 행동을 취하고 있었으니.
목이 망가지기라도 한 듯 걸을 때마다 얼굴이 사방으로 흔들리고, 규칙적이지 않은 보폭은 금방이라도 자세가 무너질 것 같지만, 길게 뻗은 검은 드레스가 땅에 가시를 박아 넣으며 쓰러짐을 방지한다.
그렇게 인간이라는 겉모습만이 남은 검은 마법소녀는, 모든 것이 잡아먹혀 거죽만 남은 과학자를 땅에 질질 끌었고.
“다. 끝난 거. 아니었나?”
푸른 침을 흩뿌리며, 이 장소에 모인 우리를 둘러보았다.
…눈이 망가졌나.
분명 고개를 돌리며 우리를 하나하나 살피는 것 같지만, 정작 눈동자가 움직이질 않는다.
대상을 좇는 움직임이라곤 전혀 없이, 그저 정면만을 직시하는 텅 빈 눈동자는 유리구슬로 만든 의안처럼 위화감을 잔뜩 뿜고 있었으니.
그렇다면 지금 저건 무슨 감각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는 걸까요.
그에 잠시 의문을 품었지만, 답은 금세 도출할 수 있었다.
피부를 찌르는, 오염된 이계의 힘.
주인의 명령 없이도 힘을 가져다 바치려는 듯, 과잉 충성을 보이며 내 일부를 깎아 나간다.
흠.
이래서야 환각이나 정신 계열은 안 통하겠군요.
그렇게 눈앞의 존재에 대해 분석을 이어 나가던 와중.
“그럼. 얜. 필요 없어.”
콰직.
대지에 누인 코핀의 머리통이 부츠에 짓밟혀 파괴되었다.
공포에 가득 찬 히익거림으로 자신이 살아 있음을 표현하던 그였지만, 그는 아무 말도 남기지 못한 채 이 세상에서 소멸하였으니.
이로써 작전의 표면적인 목표는 모두 달성되었다.
세계를 위협하던 미친 과학자의 완전 소멸과 그들의 계획 무력화.
만일은 대비하여 확보한 제어권을 통해 기지 전체를 체크해 보았지만, 몇 번이고 체크하고 마법으로 확인해도 적이 부활하려는 낌새는 느껴지지 않았다.
세계에 그 난리를 쳐 놓은 악당치고는 너무나도 비참한 최후지만, 그를 동정하는 마음은 조금도 피어나지 않았다.
저 존재는 마땅히 받아야 할 처분을 받은 것뿐이니.
문제는 그 과정에서 생겨난 새로운 문젯거리.
…이럴 거라고 미리 듣긴 했지만, 이건 좀 심하군.
자, 그럼 어떻게 저걸 무력화….
“…무력화?”
우드드득.
목뼈가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검은 마법소녀의 고개와 시선이 내 쪽으로 향한다.
제기랄. 마음을 읽혔나.
저편에서 적의가 피어오른다.
검은 마법소녀가 손을 벌린다.
“…저어어어억?”
마침내 우리에게 주의를 돌린 검은 마법소녀는, 완전히 이성을 잃고 광기에 빠진 상태.
뇌신도, 운호도 이 방에 있지만, 나를 포함한 모두가 저 위압감에 반응하지 못한다.
그들 또한 조금이나마 이계에 속한 이들인만큼, 본능의 영역에서 이해했을 것이다.
저건, 평범한 방법으론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라고.
끝의 극단적인 수하들처럼 문에 노크해도, 의지를 전달해도, 답이 돌아오지 않는 상대라고.
목이 쓰리다.
피부가 따끔거린다.
온 신경을 이하람 님에게 집중하고 있어 확인할 순 없지만, 지금 내 피부도 검게 물들었을 것 같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적 기지에서, 날 쓰러트리는 거면. 적이겠지?”
기긱. 기기기긱.
땅을 질질 긁어대는 붉은 빠루가 불쾌한 소음을 사방에 퍼뜨린다.
막대한 힘이 담겼음에도, 바닥 일부분만을 파괴하는 몸의 움직임.
…아직, 최소한의 이성은 있는 것 같군요.
적어도 아무 생각 없이 모든 걸 파괴할 만큼 판단력이 흐려지진 않았다.
힘의 차이가 압도적이긴 하지만, 찌를 수 있는 빈틈.
내가 알고 있는 이하람 영웅에 대한 정보와 지금 여기서 얻어 낸 정보를 조합하여, 승리로 향하는 방정식을 이끌어 낸다.
마법을 통해 극도로 가속된 두뇌는, 곧 결과를 내었고.
첫수를 시작하고자, 행동을 억누르는 의지를 걷어 내며 크게 외쳤다.
“궁금한 점이 있지 않으신가요?”
살짝 허리를 굽히는 인사와 함께, 한 손을 몸에 붙이고 나머지 한 손을 들어 올리며 정중하게.
“궁금한. 점…?”
그에 적의가 약간 흩어진다.
좋아. 첫수는 성공했다.
그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올린다.
넓게 퍼진 시야에 ‘저 새끼가 지금 뭐 하는 거야?’ 라는 의미를 담은 동지들의 시선이 내게 내리박히는 것이 들어오지만, 지금 저들의 시선은 중요치 않다.
“예, 이들이 행하고자 하는 계획은 저희 결사가 탈취했습니다.”
“…아. 어?”
머리가 좋아진 건 아닌 모양이군.
아니, 오히려 더 멍청해졌나.
“거짓. 말.”
“거짓이라곤 한 점 없는 진실입니다. 본인도 그리 느끼고 계시지 않나요?”
뚝.
뚝.
검은 마법소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푸른 침이 땅에 떨어진다.
표정이 전혀 변하지 않는지라 그 행동에서 얻어 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아마 그는 자기만의 세계에서 무언가를 파악하고 있으리라.
그러한 잠깐의 침묵을 넘어.
“…계속.”
마침내, 그가 말을 꺼내었으니.
아마, 내 말이 진실임을 이해한 모양이다.
그래, 내 말에 거짓은 없다.
아직까지는.
그럼, 이제부터.
“현재 해당 시스템은 저희 결사 간부들의 목숨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간부가 한 명이라도 죽으면, 자동으로 실행되도록 말이죠.”
완전한 거짓말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속인다.
피부색, 얼굴 표정, 내면의 목소리, 흘러 나가는 기운, 표층 심리.
생물학적으로 조정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마법을 통해.
지금 검은 마법소녀가 무엇을 통해 진실과 거짓을 판별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 지식 안에서 인지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위장했고.
“…그런 게 있었나?”
다른 바보 녀석들이 그런 말을 내뱉었기에.
“제 평소 행동을 생각해 보시길. 멋대로 적용할 만하지 않습니까?”
그에 맞춰 진실을 내뱉었다.
뚝.
푸른 침이 떨어진다.
흔들.
고개가 흔들린다.
계속해서 고개를 흔들며,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날 바라보던 그는.
우득.
우드드득.
갑자기 고개를 계속 회전시키며 방 안의 다른 존재들을 확인했고.
“…거짓말쟁이의 신뢰. 그래서?”
마침내 다시 내게 고개를 돌린 그가 그리 내뱉었기에.
“간단합니다. 저희를 죽이지 않고 무력화시키신다면, 해당 기계를 정지시키고, 의문에 답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또한, 거짓 없는 진실.
본디 그는 우리와 같은 편에 속해있으니, 우리에게 어떤 손해도 없는 거래.
“….”
표정은 변하지 않지만, 고민하는 것이 느껴진다.
저런 형태가 되었다고 하여도, 행동의 본질은 영웅.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면, 어떠한 피해를 내지 않는 것이 최우선.
그 기본적인 생각이 여전히 머리 밑바탕에 깔려 있고, 거기에 이하람 영웅의 행동 패턴이 더해졌다면, 아마 이 거래에 응할 것이다.
평범한 상대라면 조금만 고민해도 무언가가 많이 이상하단 사실을 인지할 수 있겠지만, 이건 다르다.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힘과 상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읽는 힘이 선택지를 좁힌다.
물증 하나 없는 단순한 말이건만, 그저 상대방이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상대의 머릿속에서 이것은 변하지 않는 불변의 진리가 된다.
뭐, 이 정도는 껌이죠.
그리 생각하며, 상대의 반응을 기다리던 찰나.
“…규칙. 추가.”
서늘함이 피어난다.
뒤틀린 목소리가 입가에 번진다.
【그 후 너흰 내가 죽인다.】
“…콜?”
악독한 목소리는 제약이 되어 우리를 감싸 안는다.
막상 그 말을 한 상대는, 그런 변화를 전혀 모르는 눈치.
방금 저 말로써 이미 그것은 세계에 강제되었건만, 굳이 내 의견을 되묻는다.
그렇군요. 저런 것입니까.
깨달음을 하나 얻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쓸모없는 물건.
그렇기에, 자신만만하게 외친다.
“콜.”
그 조건을 추가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애당초 이 전투의 패배는 죽음이나 마찬가지.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외치고 고개를 들자.
“우선. 한. 놈.”
눈앞의 검음이 붉음을 내게 휘두르기 시작한다.
반응할 수 없다.
마법, 몸, 육체 강화, 전이.
그 어떤 방법으로도 이 상황에선 저 공격을 막을 수 없다는 결론이 가속된 두뇌에서 도출되었다.
설마 죽이지 않고 무력화라는 의미를 모를 정도로 멍청해졌을 줄이야.
승산을 높이고자 비살상 제약을 걸어 힘을 약화시킬 생각이었는데, 말뜻 자체를 이해하지 못할 줄은.
그런 한탄을 마음속으로 내뱉은 순간.
“엉? 그야 넌 어차피 한 번 죽는 걸론 안 죽잖아.”
유창한 목소리로, 눈앞의 존재가 말을 걸어왔다.
조금 전까지의 감정 없고 망가진 목소리와 다른, 거만하기 그지없는 익숙한 목소리.
우드드득.
머리에 빠루가 박혀 드는 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아픔이 넘쳐흐르지만, 통증을 차단하고 생각을 이어 나간다.
이성을 되찾은 건 아니다.
당장 시야에 비치는 검은 마법소녀의 모습은, 여전히 적의를 내뿜으며 망가진 상태.
알고 있던 지식을 꺼내 온 것이겠군요.
제가 누군지도 모르는 주제에, 어떤 힘을 가지고 어떻게 싸우는지는 알고 있다는 뜻.
…승산이 낮아졌군요.
그렇지만, 당신네는 항상 그런 승산 없는 싸움에 몸을 맡겼죠.
그럼, 이번엔 우리 차례입니다.
그렇기에, 온 힘을 담아 다음 행동을 시작한다.
죽음에 대한 반항은 아니다.
이번 죽음은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죽음을 가치있게 사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피는 곧 나 자신이요.’
‘자신은 가장 훌륭한 매개체이니.’
주르륵.
흘러내린 피가 원을 그리며 퍼져 나간다.
‘원은 경계를 상징.’
‘피는 전장을 상징.’
피의 원이 순식간에 그려지고, 그 정중앙에 내가 자리한다.
‘그리고 여기 산 제물이 있나니.’
의식이 점멸한다.
마법을 통해 의식을 강제로 각성시키며, 주문을 이어 나간다.
‘나 자신을 제물로써.’
꿀렁.
피가 튀고, 거품이 피어난다.
“신을 부르노라.”
뜯겨 나간 입이 신을 찾는다.
이것은 가장 원초적인 주술.
제물 속에서, 신은 응답한다.
전장을 거부하고, 분노를 삼키는 신이.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검은 안개가 피어난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나는 미소 지으며 전장을 바라본다.
혈투가 시작된 전장을.
…부활했더니만 모든 게 끝나 있진 않았으면 좋겠군요.
그리고, 마지막 소망을 담아.
다음을 기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