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47)
마법소녀 아저씨 47화(47/671)
47. 한 번 찍어 안 넘어가는 숲 없다(3)
장벽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자, 인파 사이의 제자를 찾을 수 있었다.
각자의 개성을 뽐내는 수많은 영웅이 빽빽이 모여있음에도 두 제자의 모습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신나게 망치를 돌리며 아무나 붙잡고 입을 여는 백시현.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수많은 사람을 눈에 담는 한아빈.
어째서일까.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두 제자. 그 제자들의 모습이 이리도 눈에 띄는 것일까.
“또 제자들 보고 있어요?”
“저기서 신나게 다른 녀석에게 싸움을 걸고 있더군.”
“활기차네요.”
옥시모론 또한 장벽 아래를 내려다보며 두 제자를 찾기 시작했지만, 찾을 수 없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 뿐이었다.
“저기다.”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그제야 찾아낸 듯 즐겁게 내려다보았다.
“저렇게 망치를 돌리는데 아무도 안 맞네요.”
“재능은 있어. 기분파라 그러지.”
저거 증폭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저게 네 제자냐? 비실비실한 게 너랑 똑같구만.”
쌍안경처럼 손가락으로 고리를 만들고 오른쪽 눈에 붙여 바라보는 천하일검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저래 보여도 관리국 설립 이후 100명 안에 드는 재능입니다. 저보단 모자라지만요.”
이상한 말을 덧붙이며 헬멧을 조작하는 라이브러리안.
“모자라단 건 무슨 뜻이냐.”
“저는 저 나이 때에 박사과정을 끝마쳤습니다. 제가 더 뛰어나죠”
“어른이 어린애들이랑 비교하고 아주 자랑이다.”
요 며칠 지능자랑 하던 게 그것 때문이었나.
“머리가 좋으면 뭐 해. 영웅이라면 전투력이 훨씬 중요하지.”
그리 말하며 회색빛 환도를 손에서 놓고, 공중에서 부리는 천하일검.
이기어검인가.
“천마검신 할아비가 그 짓 할 시간 있으면 검이나 잘 내려치라고 하지 않았었냐.”
제자 놈이 겉멋이 든 걸 보면 뒤통수를 때리셨을 텐데.
“내 제자 녀석들은 화려한 걸 더 좋아해서 말이지. 어쩔 수 없이 익숙해지더군.”
회색 환도는 공중을 비행하며 분신을 생성하거나, 검강을 만들거나, 공중에서 휘몰아치며 곡예비행을 선보였다.
젊은 애들이 좋아하긴 하겠네.
“기술을 가르쳐줘도 더 화려한 것은 없나 하고 물어보더라. 나 때는 스승 그림자도 못 밟았는데.”
“지랄. 할아비가 보면 거짓말하지 말라고 땅속에 처박겠네.”
스승 그림자는 무슨, 깽판 치다가 검집으로 두들겨 맞고 땅속에 처박혔지. 거짓말도 잘해요.
그건 그렇고, 방어할 장소가 좁아진 탓일까. 오랜만에 젊은 축에 속하는 옛 영웅들이 이렇게 모였다.
젊은 편이라고 해도 옥시모론 빼면 죄다 40대지만.
1차 방어선과 달리, S급, A급에게는 스스로 판단하고 봉쇄선을 지키라는 명령이 떨어졌기에 가능한 일.
“나머지는 어디 있냐?”
“멕베스 사령이라면 지휘본부에 있고, 프로히비션은 아마 술집에 처박혀있겠지.”
천하일검은 그 지능답게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입에 담았다.
미시카 미샤, 칼라베라, 황왕은 찾아봐야 의미가 없고. 애초에 다른 사람이랑 어울리는 성격도 아니니까.
“무한성주는? 부탁할 게 있었는데.”
“사령관 대리라면 장벽을 둘러보고 계십니다. 마지막까지 장벽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야 한다면서.”
어쩔 수 없지, 다 끝나고 말하자.
잠깐의 잡담이 끝나고, 다들 할 말이 없는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대화가 끊기자, 우리는 천천히 바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직 적이 보이지 않는 머나먼 지평선 너머. 이제는 회색빛을 띠기 시작한 그 장소를.
“어제 1.1% 가 죽었다더라.”
“많이 죽었네.”
“손실률이라 많이 죽긴 했어도 다 죽은 건 아니지만요···?”
“현시점 40% 정도가 사망했다.”
두 명의 멋없는 사족을 뒤로 흘리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제자 녀석들은 3명이 죽었다고 질질 짜더군. 그럼 죄다 살려 보내야 하지 않겠냐?”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저 참을성 없는 놈이 중국 최대 무인 연맹의 수장이라니, 저것보다 더 쓸만한 사람이 있지 않았을까.
“주변 피해 신경 쓰지 말고 모조리 쓸어버리자고, 그 망할 대장 개체에 한 방만 박아넣을 수 있으면.”
망치를 휘둘러 장벽을 내리찍었다.
쿵.
짧은 충돌로 지면이 흔들렸다.
“내가 확실히 끝낼 테니까.”
세 영웅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호오’ 거리며 이상한 얼굴을 한 천하일검.
거대한 금속 장갑으로 얼굴을 쓰다듬는 라이브러리안.
방독면을 쓴 탓에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호흡이 조금 빨라져 과하게 숨결을 뿜어내는 옥시모론.
“몇 년 동안 활동이 없어서 시체라 생각했건만, 그런 감정을 몸에 숨겨두셨나.”
천하일검은 웃으며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복의 소매를 펄럭이며, 찬찬히 내 주변을 돌기 시작한 그.
“하늘이 점지해준 심상은 땅에 의해 바뀐다 하였다. 하지만, 한 번 땅에 의해 변한 너의 마음이 다시 바뀌었지. 누구의 힘일까? 어린 제자인가?”
그의 얼굴에 담긴 능글맞은 웃음이 내 인내심을 긁어나갔다.
이럴 때만 무인처럼 행동하나?
“꺼져.”
빠르게 망치를 휘둘렀다.
회전도 없는 짧은 공격.
당연히 피할 거라 예상하고 짧게 휘두른 것이었으나.
퍽.
“으억?”
“아?”
능글맞은 얼굴에 금빛 망치가 처박혔다.
뭐라 말해야 할까. 전혀 예상치 못한 공격이 정확히 들어간 이 감각은 대체.
천하일검 또한 이 공격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몸을 가두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장벽 아래로 떨어졌다.
…안 죽겠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금세 알 수 있었다.
천하일검이 저 정도 공격에 당할 리 없으니.
“···너희들이 한 거지?”
“능글거리는 얼굴이 짜증 나서요.”
“동감이다.”
주사기를 꺼내든 옥시모론.
뭔지 모를 무기를 손에 든 라이브러리안.
어떤 기술을 썼는지는 몰라도, 천하일검을 잠시 마비시켰거나 집중력을 흩어버린 것이리라.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놓고 애들처럼 장난질이라니. 동료들의 수준에 한숨이 나왔지만, 나 또한 비슷하게 행동했기에, 굳이 입에 담지는 않았다.
* * *
쿠웅. 쿠웅.
장벽 위에 앉아있음에도 그 진동이 전해져왔다.
거대 개체가 걸어오는 소리.
작은 개체가 걸어오는 장면이 점묘화로 그려진 회색 바다라고 한다면, 이것은 무어라 불러야 할까.
거대한 빌딩이 곧게 서서 땅을 갈아엎으며 걸어오는 장면을.
무한성주 영감. 이건 장벽의 의미가 없는 거 아닌가?
지금 설치한 장벽이 바다에 있던 장벽보다는 높다 해도, 저것과 비교하면 의미가 없는 수준이다.
기껏해야 허리에 닿을까.
뛰어넘지 못하게 하는 용도로는 충분해 보였지만, 대다수는 공격조차 하지 못할 높이차.
그 크기만으로도 압박이 느껴지건만, 그들의 형체 또한 사람의 정신을 갉아먹기 충분해 보였다.
가장 많이 보이고, 그나마 멀쩡한 것이 껍데기가 벗겨져 수많은 수포가 솟아오르는 역겨운 피부.
그중에는 내장이 상했는지 끊임없이 입에서 회색 거품을 뿜어내는 녀석도 있었고, 몸이 반쯤 짓이겨져, 알 수 없는 회색 진물을 뿜어내며 땅을 오염시키는 녀석도 있었다.
그런 괴이한 군세가 시야를 가리며 걸어오고 있으니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압박감이 있었다.
“저래 보여도 덩치만 크지 힘은 약하다고 하면 알아들을까.”
“꺼흑. 아무도 안 믿지 않을까요.”
하루 만에 본래의 몸을 회복한 운호가 머리 위에서 트림을 내뱉었다.
이 녀석 정말 괜찮은 걸까.
신뢰와는 거리가 먼 흰색 풍선이지만, 그 말은 나름 타당해 보였다. 지금도 적은 수많은 병기의 폭격을 받으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으니까.
이런 폭발 따위는 자신의 갑각을 뚫을 수 없다는 듯, 진물과 거품을 흘리며 걸어오는 거대한 갑각들.
우우우우우웅.
그리고 압박감에 마침표를 찍는 뱃고동 소리.
어디에 있는지 아직 보이지 않지만, 조금씩 커지는 울음소리도 정신을 압박하기 충분했다.
아마, 정신력이 강한 이들 빼고는 전의를 상실했으리라.
“쟤들은 공격 막아줄 애들만 있으면 허수아비인데.”
둔중한 집게 공격을 튕겨 내줄 영웅이 있다면 남은 건 계속해서 공격하는 것뿐.
나처럼 공격을 가볍게 튕겨내는 건 불가능해도, 육체 계열 상위급이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위력.
그 사실은 영웅들에게 전달되었지만, 지금의 사기로는 탱킹 로테이션이 완벽히 돌아갈 것 같진 않았다.
우선 저들이 불멸의 존재가 아님을 인식시켜야겠지. 그리고, 그건 내가 할 일이 아니다.
번쩍.
내 우측에 있는 장벽에서부터 밝은 섬광이 솟아올랐다.
등에 달린 제트팩에서 불꽃을 뿌리며 높이 솟아오르는 은빛 갑주.
라이브러리안.
높이 솟아오른 그 주변에 수많은 금속이 나타났다. 허공에서 생성된 추가 장비들. 그리곤, 그 장비들이 갑주에 붙으며 덩치를 불려 나갔다.
인간형 갑주에서, 팔다리가 과도하게 큰 괴상한 거대로봇의 모습으로.
라이브러리안의 상징이었던 은빛 갑주가 검게 물들고, 빛을 반사하지 않는 무광의 갑주가 지상을 향해 낙하하였다.
몰려오는 군세를 향해 낙하는 검은 거대갑주.
쿵.
땅과 충돌한 갑주는 대지를 갈아엎으며 회색 군세를 가로막았다.
부스터로 가속하며 금속이 달궈진 것일까. 갑주 주변의 풍경이 일그러져 보이고, 공중에 흙과 돌이 흩날리는 모습은 나름 멋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뿐. 등장은 화려했으나 15m 정도의 크기를 가진 거대갑주는, 거대한 회색 갑각류와 비교하면 턱없이 작아 보였다.
도저히 상대가 안 될 것 같은 크기의 격차.
“저거 누구야?”
“변신 영웅이나 전대 영웅 같은데 자살 아냐?”
“미친 건가?”
장벽 안에 몸을 움츠린 영웅과 병사들이 탄식을 내뱉는 것이 내 귀에도 들려왔다.
만약 저 말을 듣는다면 갑주 안의 라이브러리안은 어떻게 생각할까.
우우우우웅.
그리고 그 탄식은, 갑주에서 울리는 거대한 엔진음에 덮어 씌워졌다.
푹. 푸푹.
검은 갑주에서 쏘아진 작은 앵커. 몸을 고정하기 위한 물건이 대지에 박히고, 검은 갑주가 양팔을 벌렸다.
갑주의 양팔에서 서서히 뭔가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마력에 민감한 상위 마법사나, 기를 수련한 상급 무인들이 느낄 수 있는 무언가.
“시작부터 현실조작인가. 크게 써달라고 했더니 정말 크게 쓰는구만.”
한순간에 뻗어 나간 라이브러리안의 뭔지 모를 기운이 광대한 전선을 감싸고.
철퍽.
수많은 갑각류가 균형을 잃고 대지 위로 넘어졌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평야였던 전장은 한순간에 거대한 늪지로 변하였고, 동시에 좌측 담장에서 누군가가 달려나갔다.
회색빛 환도를 들고 보라색 무복을 입은 꽁지머리 남성.
“제자들아! 너희들이 그리도 조르던 화려한 기술 하나 날려주마!”
전장 전체에 사자후를 날리네.
정신 나갔나?
저런 괴상한 짓을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덕분에 내 귀에도 약한 고통이 느껴져 왔다.
“이상한 소리를 들으니 토할 것 같아요.”
“토하면 매일매일 시현이 라면만 먹일 거다.”
머리 위에서 입을 틀어막는 흰색 털뭉치에게 경고를 던진 후, 달려나가는 천하일검을 눈으로 좇았다.
늪지로 변한 땅에도 방해받지 않고 질풍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
동시에, 거대한 기가 환도에 담기는 것이 느껴졌다.
“···S급 기술인가?”
잘못 느꼈나 하고 다시 기를 감지해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반년은 모아야 할 것 같은 분량의 기가 느껴졌다.
제정신인가.
천하일검의 기에는 한점의 흐트러짐도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을 검에 담아 휘두르겠다는 듯 올곧은 기운.
적들의 앞에 도달한 천하일검의 환도가 휘둘러졌다.
보라색 무복이 바람을 받아 넓게 펄럭이고, 나조차 인지할 수 없는 속도로 검이 휘둘러졌다.
자신의 모든 기를 담아 한순간의 가속으로 무기를 휘두른다. 무기를 붓 삼아 자신의 심상을 그리는 무인들만의 독특한 기술.
그나마 가장 가까운 존재로는 마법사의 마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인의 형은 가장 중요한 점이 다르다. 효율성을 추구하여 영창조차 하나의 음절로 끝내는 마법과 정반대에 있는 비효율의 극치.
검이 그리는 궤도 하나가 마법의 마법진이며, 검이 가르는 공기 소리가 영창의 목소리이니.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발현되는 마법은 곧 가장 강력한 물리력이 되어 세계에 영향을 끼친다.
형이 끝나감과 동시에 천하일검은 그 기술명을 입에 담았다.
“월형난무(刖刑亂舞)!”
수많은 검압이 갑각류의 발을 스치고 지나갔다.
무의미해 보였던 검의 궤도는 예측할 수 없을 만큼 섞이며 강대한 검압을 발생시켰으며, 그로 인해 발생한 검압은 물리적으로 닿을 수 없는 장소에도 손을 뻗쳤다.
스가가가각.
번쩍이는 환도의 빛이 전장 전체를 감싸고, 섬광이 가실 때쯤 한 박자 늦게 수많은 절단음이 귓가에 흘러들어왔다.
그가 무엇을 자른 건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그가 자른 것은 진흙탕 위에 꼬꾸라진 갑각류들의 다리.
몸을 일으키던 수많은 갑각류가 다리를 잃으며 고꾸라졌다. 그저 어떻게든 움직이고자 발버둥을 칠 뿐이었다.
분명 신기에 가까운 기술.
평시에 형을 펼쳐서 그 유려함과 안정됨을 자랑한다면, 깐깐한 천마검신도 분명 칭찬해주리라.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저 바보 놈 정말 다리만 벤 건가?”
“어··· 무공은 잘 모르지만, 대충 읽은 발현식에 순수하게 다리만 베라고 적혀있던… 것 같아요.”
아 그래서 월형(刖刑) 이시다?
저 또라이한테 뭘 바란 우리가 잘못이지.
그 후, 모든 에너지를 충전한 라이브러리안이 거대한 레이저포를 쏘아내었지만.
잘했답시고 당당히 걸어오는 천하일검의 모습을 눈으로 좇느라 별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