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475)
마법소녀 아저씨 474화(475/671)
474. 막간 – 어디에나 있는 이
팔자가 꼬인 것도 정도가 있지.
이 전차에 탑승하고 몇 번이고 전투를 치렀건만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신형 전차의 메쉬 의자에 몸을 기울이며, 차오르는 불만을 속으로 내뱉는다.
뭔가 몸을 받치는 느낌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가벼운 의자.
정비병들 말로는 좌석으로 전달되는 진동도 줄이고, 장기간 좌석에 앉아 있음으로써 생기는 탑승자들의 피로를 줄이기 위한 인체공학적 의자라고 말은 들었지만.
뭔가 불편하단 말이지.
예전의 부드러움이라곤 전혀 없는 데다가 땀에 찌들기까지 해 곰팡내가 풍기는 얄팍한 쿠션 의자나, 차갑고 단단해 계속 앉아 있다 보면 관절이 아파지는 금속 의자에 비하면 천국이나 마찬가지이긴 한데.
이 새로운 의자는 이건 이것대로 뭔가 아닌 것 같다.
전차에 탑승하여 적과 싸우는 게 아닌, 계산기를 붙잡고 서류 작업을 하는 화이트칼라가 되어 버린 느낌이란 말이지.
탑승자의 편의를 고려해 이것저것 설치해준 건 고맙긴 한데, 그럴 거라면 내가 항문 질환으로 고생하기 전에 미리 해줬으면 하는 약간의 불만도 있고 말이다.
사실, 좋아진 건 의자뿐만이 아니긴 하지.
더럽게 춥거나, 더럽게 덥거나 둘뿐이던 냉난방 장치도 평범히 쾌적한 온도를 유지해주고.
항상 남정네 땀내가 물씬 풍기던 내부 공기도 깨끗하게 정화되어 짠 내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다.
전차 내부 특유의 금속 내는 남아있지만, 그건 전차가 금속 상자인 이상 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치고.
문제는 그 덕에 뭔가 내가 전차에 타고 있다는 실감이 들지 않는단 뜻이다.
진동도 없고, 남자 새끼들 땀내도 없고, 엉덩이를 차갑게 만드는 의자도 없다.
지금 당장이라도 전화를 들고 상관 새끼와 말싸움을 해야 할 것 같은, 사무실에 있는 느낌이란 말이지.
…이거 아까도 떠올렸던가?
아무튼, 몸이 편해져도 불만이 솟아오르는 걸 보면, 사람의 욕망은 한도 끝도 없는 것 같다.
이 전투가 끝나면, 당분간 휴가를 받을 테니 요 근래 못 마셨던 술도 마시고, 여행도 다녀오고 해야겠어.
여행지로는 어디가 좋을까.
요즘 전 세계가 엉망이라 멀리 나가진 못할 것 같은데.
그리 생각을 이어 나갔지만, 곧 꿈을 접는다.
디트로이트에서도 이 생각을 똑같이 했었지.
그 사건도 벌써 한 달이 넘었나.
당시에는 이거 끝나고 나면, 지친 몸과 정신을 달래러 휴가나 떠나자고 마음먹었는데, 요 근래 휴가는커녕 제대로 된 휴식도 받은 적이 없다.
아니, 조금 다른가.
위쪽은 조금 쉬고 오라고 휴가를 강제로 쥐여줬지만.
자발적으로 휴가를 반납하고 열심히 전차를 몰았지.
그러니, 이 상황은 내 팔자고 뭐고 하기 이전에 내가 선택한 결과물.
사실 휴가를 받았어도 이 전투에는 무조건 끌려왔을 것 같으니 별반 다를 건 없을 것 같지만.
그리 생각하고, 쓴웃음과 함께 전차 안에 있는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조종수 존.
포수 슈잉.
장전수 하이얀.
디트로이트 이후, 쉬지도 못하고 날 따라온 녀석들.
나야 외압이라곤 전혀 없는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휴가를 반납했지만.
이 녀석들은 어떨까.
팀 리더인 내가 휴가를 반납한다고 말한 바람에, 쉬고 싶은데 눈치를 살피다 결국 휴가를 사용하지 못한 녀석이 있지 않을까.
휴가를 사용하는 건 전혀 민폐가 아니니 쉬고 오라고 말은 했지만, 그런 말조차도 사람에 따라 하나의 위압이라고 느낄 수 있으니.
뭐, 그렇게 떠밀려서 휴가를 사용하지 못한 녀석 말고도, 휴가 반납에는 찬성하지만, 안으론 불만을 품은 녀석도 있을 것이다.
비록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말이다.
그러니, 이 녀석들에겐 감사한다.
속내가 어떨지는 도무지 알 수 없지만, 오늘 이 전장까지 불만 하나 내뱉지 않고 따라와 주었으니까.
그동안 하이얀 녀석은 신병 티를 벗었고 말이지.
자신이 정말 사람들을 지키고 있는지 고민하던 FM 신병 녀석은, 이제 훌륭히 자신의 답을 찾았다.
부끄러운지 그 답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행동하는 모습이나, 콘솔을 조작하는 손길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다.
긴 시간 한 팀이 되어 호흡을 맞추기에 느낄 수 있는, 타인이 성장하는 감각.
이계와 끝없이 싸우던 한 달.
그것은 기록상으로만 한 팀이었던 이들이, 서로의 땀내를 흡수하며 진정한 한 팀이 되기엔 충분한 시간.
길게 사귄 이도, 한 달 만에 가족보다도 더 서로에 대해 잘 알게 된 녀석도.
모두 다 같이 살아 돌아가 휴가나 즐겨보도록 하자.
* * *
우리는 벽이다.
이 평야에서, 보병들을 지키는 하나의 방패.
그 역할에 충실하게 최전방에서 차체를 움직이며 적을 말살한다.
내가 해치우지 못하는 적은, 굳건한 장갑과 빠른 기동성으로 유인하며, 지원이 오길 빈다.
그렇게 전투가 시작되고 30분쯤 지났을까.
주변 시야엔 더는 적이 포착되지 않는다.
1분가량 더 대기했지만, 시야가 닿는 가장 먼 거리에서도 적을 포착할 수 없었기에.
“휴.”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의자에 맡긴다.
전투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계속 저런 집중 상태를 유지하다간 금세 나가떨어지고 말 테니.
그러니, 전투의 긴장만은 유지하며, 잠시 몸을 풀었고.
내 그런 움직임이 전염된 것일까.
나머지 팀원들도 잠깐의 스트레칭을 시작하였고.
다들 굳은 어깨를 한 번씩 풀며, 옷 안에 자리 잡았던 땀내를 외부로 풍기기 시작한다.
서걱.
귓가에 소리가 울린다.
가위로 종이를 자르듯 가벼운 소리.
그렇지만, 잘려 나간 것은 전혀 다른 것.
우리를 보호해주던 금속 장갑이 너무도 가볍게 잘려 나간다.
금속이 저리 쉽게 잘리는 거였나.
그런 얼빠진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지만, 생각은 내 행동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전차 내부의 조명이 아닌, 밖에서 쏟아지는 빛으로 눈을 찡그리며 명령을 내린다.
‘후진! 탄종도 근접산탄으로 바꿔! 떨어진다!’
장갑에 의미가 없는 적.
그렇다면 거리를 벌리고, 기동전을 이어가며 지원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상책.
그렇게 정석을 떠올리며, 명령을 내렸지만.
돌아오는 것은 침묵뿐.
불길함이 치솟는다.
비릿한 금속 향이 올라온다.
푸슉.
불길한 소리가 치솟는다.
1초도 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외부의 빛으로 인하여, 잠시 기능을 잃었던 눈이 제 기능을 하기까지는.
‘조종수 – LOST’
그리고, 참상이 시야에 들어온다.
머리가 대각선으로 잘려 나가, 즉사한 존의 모습.
조금 전의 공격으로 잘린 것은 장갑만이 아니었다.
사람 또한 함께 잘려 나갔다.
절망감이, 불길함이 치솟는다.
그렇지만 그보다 빨리.
‘조종수 권한 이전!’
전장에서 살아온 삶은, 살아남기 위한 행동을 시작한다.
신형 전차라 다행이다.
구형 전차라면 조종수가 당한 시점에서 팀이 전멸했을 테니.
“쯧.”
머리에 두통이 인다.
피를 뒤집어쓴 몸이, 열기를 띠기 시작한다.
빠르게 엔진을 가열하며, 후진을 시작한다.
적이 보인다.
존을 죽이고, 장갑 일부를 잘라낸 적이.
사마귀의 몸짓을 키우고, 본래라면 사마귀의 배가 있어야 할 자리에 말벌을 달아 둔 것 같은 괴수.
그것은 급히 후진하는 우리에게 날개를 파닥이며 위협하고 있다.
…왜 내가 포착하지 못했는지 알겠다.
주변만 살핀 내가 바보였지.
적은 공중에서 우릴 습격해왔다.
아마도 카메라의 사각인 머리 꼭대기에서 수직으로 강하하며.
이 데이터도 지휘부에 넘겨야겠어.
평범하게 지상에서 사용할 전차라면 이만한 탐지 범위와 시야각도 넓다고 하겠지만.
우리가 싸우는 것은, 상식을 벗어난 이계의 적들.
전차 하나를 잡기 위해, 급강하폭격을 할 수 있는 녀석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기동성이 그리 좋지 않다는 점인가.
사마귀-말벌은 우릴 먹잇감으로 삼았는지, 날개를 파닥이며 쫓아오고 있지만, 점차 거리가 벌어지고 있다.
이게 만약 일대일 승부라면, 이대로 멀어져도 되겠지만….
콰직.
또다시 불길한 소리가 들린다.
오늘 운수가 좋지 않음을 증명하는 소리.
이번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곧바로 알았다.
연한 갈색의 기둥이, 슈잉이 있던 자리에 솟아올랐으니까.
‘포수 – LOST’
팀원의 죽음을 증명하는 안내문이 머리를 울림과 동시에, 전차가 멈추었다.
와득. 와득. 와득.
땅에서 솟아오른 괴생명체는, 자신이 뜯어간 전차 일부와 슈잉을 씹어먹고 있다.
전차 기동부가 슈잉과 함께 당한 모양이다.
“….”
죽음을 체감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휴가라도 쓸 걸 그랬다는 뒤늦은 후회가 머리를 잠식한다.
그렇지만.
‘포수 권한 이전!’
몸은 계속 살아남고자 움직인다.
아직 모두 죽은 것은 아니다.
내가, 하이얀이 살아있다.
그렇기에, 쏟아지는 두통을 참으며, 우릴 향해 날아오는 사마귀 괴수에게 포신을 돌렸다.
‘발사!’
명령을 내린다.
포수인 슈잉이 죽었기에, 그 누구도 들을 수 없는 명령을.
쿵.
구동부가 망가진 탓일까.
아니면, 장갑이 뜯겨 나가 외부의 공기가 들어온 탓일까.
막대한 진동이 몸을 감싼다.
터져나가는 화약의 향기가 코를 울린다.
흩뿌려진 피의 악취가.
넘치는 사철의 따가움이.
내가 아직 전차를 타고 있다고 증명해준다.
적을 날카롭게 바라본다.
날아간 탄환은 공중에서 산탄을 살포하며 괴수를 덮치지만.
…피했군.
저리 몸을 키워도 곤충이란 뜻일까.
정확히 조준된 근접산탄에 맞았음에도, 사마귀-말벌은 날개가 조금 찢겼을 뿐, 온전한 형태를 남긴 채 우릴 향해 덮쳐온다.
‘고폭소이탄 장전!’
“고폭소이탄 장전!”
링크를 통하지 않은, 하이얀의 온전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이런 상황에서도, 하이얀은 전의를 잃지 않았다.
두려움 탓인지 목소리가 조금 떨리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일 테니.
철컹.
곧바로 장전된 탄환이 바뀌는 느낌이 소리와 함께 몸을 타고 울리지만.
‘오류 발생.’
“탄이 걸렸습니다!”
빌어먹을 자동 장전 장치.
이래서 신기술은 믿으면 안 된다.
결국, 가장 중요한 타이밍에 문제를 일으켜 버리지 않았는가.
뭐가 ‘절대 그럴 일은 없습니다!’냐. 망할 기술개발부 녀석들.
‘수동 장전은?’
‘…탄환 배출도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 주포가 일그러져서 탄이 어디 끼인 게 아닐까….’
긴 이야기이기 때문일까, 하이얀 녀석의 의견이 생목소리가 아니라 링크를 통해 전해져온다.
“…어… 어떻게 할까요?”
귓가에 군인답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젊은이다운 목소리.
자신보다 계급이 높은, 오래 산 이에게 하는 질문.
그에 솔직하게 답하자면.
이제 남은 방법은 없다.
포탑이라도 멀쩡하면 모를까, 그놈의 신기술이 마지막 발악마저 허용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니, 남은 것은 이제 하나뿐.
‘권한 이전. 대상. 장전수.’
머리를 감싼 헤드셋을 벗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전차에 연결된 링크가 끊기고, 코에선 코피가 흐르기 시작한다.
“어…. 어디 가십니까?”
귓가에 얼빠진 목소리가 들려오기에, 한마디 내뱉어주었다.
“최대한 어떻게든 해볼 테니, 장전 성공하면 곧바로 갈겨라.”
말을 내뱉으며, 문을 열고 탱크 위로 올라선다.
저 앞에, 날아오는 사마귀 형태의 괴수가 보인다.
“….”
그것을 바라보며.
탕.
손에 쥔 권총을 하늘로 당긴다.
총소리가 울린다.
이 소리를 듣고 지원군이 오면 좋겠지만.
이미 사방은 총소리가 울려 퍼지는 전장 한복판.
내 총소리는 특별한 것이 아니니, 주의를 끌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머지 다른 하나의 의도는 달성할 수 있었다.
괴수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그것을 확인하며, 발을 굴렀다.
팍. 팍.
단단한 군용 부츠가 망가진 전차의 포대를 짓밟는다.
…포탄이 걸리면 이렇게 발로 차곤 했지.
정비반에서는 안전사고 위험이 있으니 하지 말라고 했지만, 당장 죽고 살고 하는 판에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답이 없었다.
물론, 그건 수동장전이라 잼을 일으킨 탄 그 자체를 찼던 것이기에, 지금 이 행동과는 연관이 없지만.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내 발길질이 우연히 잘 들어 먹혀, 망가진 자동 장전 장치가 고쳐지길 빌면서 말이다.
탕. 탕. 탕.
다음 총알은, 허공을 향해 쏘지 않는다.
사마귀를 노리며, 조준사격.
물론, 포대를 차는 것도 멈추지 않는다.
사마귀가 가까워진다.
움직임 없는 전차를 노리는 것보다. 살아 움직이는 날 처치하는 것을 우선시하듯.
탕. 탕. 탕.
특수한 처리도 되지 않은 총알 따위가 괴수를 쓰러트릴 거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계속해서 적을 향해 쏘아낸다.
탕. 탕. 탕.
총알의 소음이 귓가를 울린다.
사마귀가 가까이 다가오지만, 아득히 멀게만 느껴진다.
존, 슈잉.
미안하다.
이제, 긴 휴가를 즐기러 가자.
탕. 탕. 탕.
총소리도 발길질도 멈추지 않는다.
사마귀가 지척까지 다가왔다.
탕. 탕. 철컥.
철컥.
권총이 멈추고.
철컥 소리가. 두 번 들렸다.
텅 빈 권총을 내던진다.
진동이 울부짖는다.
화약내가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