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476)
마법소녀 아저씨 475화(476/671)
475. 막간 – 이방인.
전사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리 질문한다면 답은 곧잘 돌아올 것이다.
싸우는 이, 군인.
그렇지만 내 고향 세계에선 의미가 달랐다.
전사란, 공동체를 지키는 이.
물론 이 세계에서도 전사란 단어에 그런 의미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전사라는 단어가 가진 뉘앙스 중 하나일 뿐.
지금은 사라져 버린, 내 옛 고향에서 전사라는 단어는 저 하나만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 종족에게 직업 선택의 자유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다.
계급에 따라 정해진다.
지금 이 세계에서도 흔히 존재하는 그런 것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태어난 후 제5주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교육을 마친 후, 우리는 작은 상자에 손을 집어넣는다.
그리 큰 상자는 아니다.
이 세계의 단위를 기준으로 하면, 각 변이 약 30cm인 정사각형 상자.
위쪽에 구멍이 뚫려있긴 하지만, 손을 감싸는 검은 천으로 가로막혀 안을 볼 순 없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이들은 거기에 손을 집어넣고.
제 갈고리만 한 새끼줄을 꺼낸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광경을 똑똑히 기억한다.
30여 명의 친구들과 그들의 부모 60여 명.
그리고, 우리를 가르치고 돌봤던 선생님들과 이 중요한 자리에 참관한 어른들 10여 명.
그렇게 10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난 천천히 상자에 손을 집어넣었고.
부디 부모님처럼 성직자가 뽑히길 빌며, 10초가량 상자를 뒤섞었다.
이거다 싶은 느낌이 든 새끼줄을 꺼낸 후, 새끼줄 색을 확인하고자 들어 올린 순간을 기억한다.
그 색은, 푸른색이었다.
피의 색.
그것이 내가 전사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부모님처럼 성직자가 되어 다친 이들을 돌보거나 종교에 헌신하는 것은 매우 특별한 사정이 생기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는 뜻.
그때 내 머릿속엔, 전날 친구들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각자 자기가 무엇이 되고 싶다며 옳지 않은 정보로 마구잡이로 떠들었던 대화.
각자 여러 직업을 말하던 와중. 그 속에서 나는 성직자만을 외쳤고, 나는 그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믿음은 바로 저 순간, 손에 들린 파란 새끼줄을 봄으로써 박살 나고 말았지만 말이다.
당시엔 그저 피를 흘리며 싸워야 하는 전사가 된다는 충격에 빠져 망연자실했지만, 사실 내가 어렸기에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었을 뿐 길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저 의식에서 정하는 것은 우리가 나아갈 길의 큰 틀뿐.
전사의 길에 들어서도 정말 성직자가 되길 원한다면, 신학 교육을 받고 신성전사가 되는 방법이 있으며. 반대로 성직자의 검은 새끼줄을 뽑은 이가 전사가 되길 원한다면 훈련을 받아 신성전사가 될 수도 있다.
심지어 싸우는 것이 두렵다고 하면, 비전투직군으로 배치되는 정도의 융통성이 존재하는 인생의 길.
그렇지만, 결국 전사라는 큰 틀은 벗어나진 못한다.
날 가르쳐 주었던 선생님이건, 가족들이건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
직업에 우열은 없다고.
모두가 공동체를 위해 일하는 일원이라고.
그 말이 한 점 거짓 없는 진실임은 확실하다.
내 고향 세계에서는 그 누구도 상대의 직업에 선입견을 품지 않았고, 모두가 상대의 직업을 존중하며, 서로가 지닌 의무에 덕담을 나눴다.
내가 떠돈 다른 세계와 달리.
그것이 우리 종족의 특성인지, 아니면 단순히 우리 사회의 문화가 그랬기에 모두가 그리 행동한 것인지는 지금에서는 알 수 없다.
어떤 사유건 직업에 따른 우열이 없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전사라는 직업이 싫었다.
싸운다는 행위에 거부감이 들었다.
그런 내 고백에 전사 학교 선생님, 친구, 부모님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
신성전사가 아닌 군종 사제의 길을 알아봐 주셨고, 내 앞에 펼쳐진 새로운 길을 즐겁게 기다릴 수 있었다.
…구멍이 열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계의 침공.
그것은, 수백 주기 동안 이어진 평화를 산산이 파괴하였다.
평화 속에서 그저 존재하기만 했던 전사들은 그들의 침략에 무참히 쓰러졌고, 세계의 위기 속에서 개개인의 가치는 중요하지 않게 되어갔다.
세계의 모든 것이 전쟁을 위해 사용되었고.
거의 모든 이가 반쯤 전사의 영역에 발을 걸치는 형태가 되어 투쟁을 벌였음에도.
결국, 세계는 멸망하였고.
나는 홀로 살아남아 다른 세계에 서 있다.
펑.
폭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는 장소에 도착했다.
이 장소에 내가 주목한 것은 단순한 우연이었다.
소리에 예민한 내게 들린, 어쩐지 동족의 날갯짓과 닮은 날개 소리와 명백히 하늘을 향해 쏘아지는 소구경 권총의 소리.
그것이 내 감각을 자극하였고.
시야에 그것이 들어온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였다.
전차 위에 서 있는 권총을 든 인간 남성.
그를 향해 날아가는 곤충형 괴수.
최후의 발악.
그것을 인지하고, 최대한 빠르게 그를 구하고자 몸을 움직였지만.
내가 전차에 도착한 것은 포탄이 쏘아진 뒤.
포탄에 직격당해 불타오르는 와중에도 괴수가 제 손에 달린 칼날을 휘두르는 것을 멈추지 않자, 지근 거리에서 발생한 폭발에 휘말려 팔다리가 찢겨 나가고 전신이 불탄 남성이 그 몸뚱어리로 적을 저지하고자 뛰어든 뒤.
그 영웅적인 행동 자체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괴수와 평범한 인간은 기본적인 육체 성능부터 아득한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행동은 내가 도착함으로써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휙.
곤충형 괴수가 사거리에 들어온 순간, 팔을 휘둘렀다.
내 갑피 사이에서 솟아난 흰색 키틴질 블레이드.
그것은 곤충형 괴수의 머리를 가볍게 절단하였고.
그로써 온몸이 불에 타오르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인간을 하나라도 더 죽이고자 발버둥 치던 괴수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쿵.
목이 잘린 곤충형 괴수와 온몸이 짓눌린 인간 남성이 땅에 떨어졌다.
푹.
혹시나 곤충형 괴수가 부활할까 싶어, 키틴질 칼날로 적의 몸뚱어리를 빠르게 몇 번 헤집었고.
적이 완전히 죽었음을 5초가량 소모해 확인한 후, 땅에 떨어진 인간을 바라보았다.
육체 상태로 추정해보면, 아쉽지만 그가 살아날 방법은 없다.
그렇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전사였기에.
“…유언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를 바라보며 그리 질문했다.
목소리가 나오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이미 폐도 망가졌을 것이 뻔했으니까.
그렇지만, 희미한 공기가 그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
공기의 색색거림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소리.
그렇지만, 나는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전차 안. 생존자.’
“…더 할 말은.”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생명 반응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 그에게 짧은 묵례를 보낸 후, 전차를 들여다보았다.
그가 말한 생존자를 찾기 위해.
그렇게, 내가 전차 안쪽으로 머리를 비집어 넣은 순간.
철컥.
기묘한 소리와 함께, 총구가 머리에 겨눠졌고.
탕.
곧바로 총알이 발사되었다.
그리고, 총알은 내 갑각을 꿰뚫지 못했다.
나는 그에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않았다.
애당초 내게 겨눠진 것이 갑각을 뚫을 수 있을 만한 물건이었다면, 처음부터 회피했을 테니까.
“…죽어… 사마귀… 괴물….”
그러니, 나는 총알을 내게 발사한 이에게 아무런 적의를 내비치지 않은 채, 입을 열어 말을 이었다.
“그 괴물이라면 이미 죽었다. 닮긴 했지만 난 아군이다.”
이 세계의 생물인 사마귀와 내가 닮았단 사실은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내 머리는 좀 더 인간형에 가깝고, 손에 달린 것이 칼날이 아니라 갈고리 형태의 발 세 개가 손가락처럼 붙은 형태이며, 이족보행을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 갑각은 보라색에 가까운 흑색이다.
조금 전 불타던 녹색 사마귀 괴수와는 전혀 다른 색.
“…아군?”
내 말을 듣고 진정한 것일까.
완전히 얼이 빠진 듯한 얼굴의 인간 남성은,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서 일어섰고.
“전차장님…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코피를 흩뿌리며 의식을 잃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장소에 그냥 놔두면 안 되는 것은 확실했기에.
등에 달린 갑각을 열어 날개를 펼치고, 갑각 아래에 남성을 끼워 전장을 내달렸다.
지하와 공중에서 대량의 괴수가 밀려 들어와 패주하고 있는 전장을.
이 인간을 받아줄 수 있는, 여유 있는 인간 집단을 찾고자.
그렇게 5분가량 전선을 돌아다니며 괴수 둘을 더 베어내고, 계속해서 생존자를 찾던 와중.
탕.
갑각 사이에 총알이 박혀 들었다.
푸른 피가 흩뿌려지고, 통증이 달린다.
그에, 날카롭게 공격이 날아온 장소를 쏘아보았다.
“멍청한 새꺄! 저건 아군이야! 아군! 구해 준 거 보면 몰라?”
“아니… 그렇지만. 그….”
거기엔, 여전히 내게 총구를 겨누고 있는 인간과 그의 행동을 타박하며 소리 지르는 여성이 있었으니.
탁.
땅을 박차고 그들 앞으로 도약했다.
“힉?!”
“죄… 죄송합니다! 이 녀석이 뭘 몰라서 그만….”
그들 앞에 내려선 내게, 그들의 공포와 변명이 들려온다.
그리고, 말 아래에 깔린 나에 대한 혐오감도.
그렇지만, 나는 그것에 반응하지 않으며, 그들을 향해 입을 열었으니.
“…퇴로는 확보된 상태인가?”
딸깍. 딸깍.
입가가 딸깍이며 그들의 언어를 내뱉는다.
날갯소리나 고주파로 대화하는 우리 종족에겐 익숙하지 않은, 내가 들어도 이상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그에 혐오감을 느낀 것일까.
그들은 여타 인간들이 그렇듯, 얼굴을 잔뜩 찌푸리면서도 어떻게든 혐오의 감정을 감추고자 노력하며 입을 열었다.
“예, 퇴로는 확보된 상황입니다. 지금 이 거점을 유지하긴 어려우니, 생존자들은 확보된 퇴로를 따라 후방 지점에 집결하라는 명령이….”
그렇군.
“사람 하나 짊어질 여력이 있나?”
“아. 한 사람 정도라면….”
“받게.”
그들의 말에, 내가 짊어졌던 이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그들의 말을 기다리지 않은 채.
그들과 반대로 뛰어, 지금도 적들이 몰려오는 장소로 향했다.
인간들이 후퇴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적을 막아야 할 터.
그것이 전사의 사명이니까.
나는 조금 전, 지나쳐간 이들이 부러워서 견딜 수 없다.
스스로 길을 선택한 이들.
자신의 선택으로 전사가 되어, 동족을 지키고자 전장에 나선 이들.
그것은 내 고향 세계가 멸망하던 순간까지도 내가 손에 넣지 못했던 것이었기에.
자신의 길을 따르는 이들을 위해.
적들 앞에 내려서 팔을 휘둘렀다.
아직도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나의 의무를.
갑각이 잘리고, 피가 튄다.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내게도 종종 공격을 가해 온다.
그렇지만, 나는 그걸 신경 쓰지 않고, 전사로서 몸을 움직인다.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왜 동족이 남지 않게 된 지금도 전사로서 살아가냐고.
자신이 원하는 길을 새로이 찾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그것은, 내가 전사로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비록 아직 납득하진 못하였지만.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적을 죽이는 것이고, 내 삶은 전장에 있었기에.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왜 동족도 아니며 자신의 세계도 아닌 장소에서 피를 흘리며 아무것도 보답받지 못한 채 싸우냐고.
그것은, 내가 전사이기 때문이다.
전사란 공동체를 지키는 자.
그것은, 세계가 달라져도 변치 않을 의미이기에.
그것이 설령 내가 원치 않던 길이라 하더라도.
세계가, 동족이 사라진 지금.
그 하나만이 내게 남겨진 것이기에.
“와라. 침략자들.”
고향이 아닌 장소에 푸른 피를 흩뿌리며 싸운다.
타인을 위해.
날 경멸하는, 공동체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