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477)
마법소녀 아저씨 476화(477/671)
476. 승구(承句)
전선의 상황이 어지럽다.
지금은 내가 빌딩에서 내려와 전장에 있는 통에 전체적인 상황을 살필 수 없어 정확히 어떤 상황이라고 말하진 못하겠지만, 아마 전선 여기저기가 붕괴하고 있을 것이다.
당장 내가 있는 이 전장만 해도 엉망진창인 상황이니 말이다.
벽 역할을 해주어야 할 기갑군이 무너지자, 보병들은 기갑과 포격에서 살아남은, 도저히 맨몸으론 상대할 수 없는 적과 부딪히게 되었다.
그런 돌발 사태를 어떻게든 영웅들이 해결하려 해보았지만, 결국 수없이 몰려오는 적들을 견디지 못한 채 전선 곳곳이 무너져 내린다.
피어오르는 화약의 탄내, 멈추지 않는 폭발로 공기 중에 낀 흙먼지.
흙에 젖을 시간도 없이 비산되어 공기 중에서 풍겨오는 말라붙은 피의 썩은 금속내.
사방에서 메아리치는 비명, 구원을 요청하는 거친 고함, 어떻게든 다시 모여 전열을 가다듬고자 하는 사기 넘치는 목소리.
지옥이 현세에 강림한 듯한 광경 속에서, 나는 익숙함을 느끼고 만다.
이게 몇 년 만일까.
옛날엔 이런 광경이 너무나도 일상적인 풍경이었는데 말이다.
다만, 익숙한 광경이라곤 해도 분노가 피어오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당장 우리가 싸운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이런 광경을 더는 보지 않기 위해 싸워왔던 것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다시 이런 광경이 눈 앞에 펼쳐지는 거지?
우리가 평화에 절여졌나?
아니다. 사회 분위기가 평화에 절여졌을지언정, 관리국은 전쟁 준비를 소홀히 한 적이 없다.
우리가 그때보다 약해졌나?
아니다. 보급의 질도, 병사의 질도, 무기의 질도, 영웅들이 가진 힘도, 모두 무엇 하나 과거와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좋아졌다.
심지어 이야기 외 퇴치 수단에 따른 이계의 힘 폭발이라는 우리쪽에 불리한 제한 조건마저 제거된 전장이니 포격과 같은 선제 타격을 무제한으로 쏟아 넣었다.
그런데도, 전선은 적에게 압도적으로 유린당하고 있다.
이 사태의 원인은 지휘부가 아닌 나도 금방 유추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전쟁 준비를 부실하게 했을 가능성도 있다.
어쩌면, 우리 작전에 치명적인 오류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보다도.
적이 너무나도 많다.
그리고, 적의 질이 월등히 좋다.
총알 한두 방으로는 저지할 수 없는 적들이 포격으로 죽은 숫자만큼 자리를 채우며 밀려온다.
지상만 해도 이런 상황이라 끝없이 교전이 일어나는데, 지하와 공중을 통해서도 적들이 밀려온다.
지하와 공중을 통해 습격해오는 적들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지만, 지상전에만 익숙한 우리에겐 막대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당장 전선의 벽을 형성하는 전차조차도 지상전의 힘 싸움에서 밀려 무력화되는 게 아니고, 대부분 지하나 공중을 통해 날아든 기습으로 인해 파괴될 지경이니 말이다.
본래라면 저런 변칙적인 사태.
즉, 평범한 군대가 도저히 상대하지 못할 괴물이나, 지하나 공중을 통해 공격해 들어오는 적들을 우리 영웅들이 담당해야 한다.
…이론상으로는 말이다.
우리라고 하기 싫어서 안 하고 있겠는가.
어떻게든 전선의 문제를 해결하려 해도 적이 너무나도 많다.
영웅의 수는 한정되어 있고, 적은 끝도 없이 몰려오는 상황.
이런 상황에선 구 S급 영웅들.
우리 같은 규격 외 강자들이 전선을 뒤집어엎어야 하겠지만.
이 방법 또한 현 상황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현재 전장에 투입된 S급은 여섯.
나, 천하일검, 프로히비션, 멕베스, 라이브러리안, 얼티메이트.
불참자는 총 다섯.
다른 문제를 해결하러 간 미샤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후방 대기 중인 옥시모론.
전장에 참가할 수 없는 몸 상태인 칼라베라와 무한성주.
전면에 나올 일이 없는 황왕.
사실상 기용 가능한 전 S급이 투입된 상황이건만, 상황은 호전되지 않고 있다.
일단 문제가 되는 것은, 유사 블랙홀 탄을 피한, 아무리 생각해도 최소 A급 최상위인 적 여섯 개체.
그 여섯 개체가 철저하게 우리 여섯을 마킹하고 있다.
전선을 뒤집어엎으려고 해도 그런 큰 필살기를 쓸 수 없게 하겠다는 듯 계속해서 견제를 걸어오고, 제대로 싸우지 않는 그들을 무시하면 곧바로 그들 또한 우리를 무시하고 전선으로 날아가 학살을 이어 나간다.
모든 힘을 해방해 저 적을 빠르게 때려눕힐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저게 끝이 아니잖아.
아직 이 전장엔 적의 수뇌부 셋이 남아있다.
시안, GM, 극(㘌).
저 존재들을 쓰러트려야만 이 전쟁이 끝나기에, 눈앞의 강자에게 온 힘을 집중할 수도 없다.
까고 말해서, 그냥 눈 딱 감고 필살기 한 방 갈겨버리면 눈앞의 강자와 적은 모두 지워버릴 수 있다.
그런 짓을 했다간 남은 셋을 상대할 방법이 없을 뿐.
아직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없는 시안이나, 퇴치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GM도 어떻게든 된다고 치자.
진짜 문제는 극(㘌)이다.
단기간에 이만한 군세를 이 세계에 불러온 극(㘌).
저 존재를 토벌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전투가 끝없이 반복될 뿐.
그것을 알고 있기에, 계속해서 다른 생각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리라.
반대로, 극(㘌)을 퇴치할 수 있다면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전선의 상황이 이것보다 더 미쳐 돌아가도 저 망할 화신체만 몰아낼 수 있다면, 더는 충원되지 않는 이계의 적들은 어떻게든 쓸어버릴 수 있다고.
그걸 기반으로 내면에서 유혹하는 목소리가 내게 끝없이 들려온다.
전선을 포기하고 앞으로 나서라고.
나 말고도 다른 영웅들이 다수 있으니, 그들이 적을 막아선다면 잠깐은 전선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눈앞의 사람을 구하려는 것은, 더 많은 희생을 유발할 뿐이라고.
알고 있다.
수치적으로는 그렇다는 것 정도는.
효율과 합리를 따른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그렇지만.
“…우린 영웅이잖아.”
혼잣말을 내뱉는다.
쏟아지는 생각을 걷어내고자.
사방에서 들려오는 폭음과 비명을 내 안의 울림으로 덮어내고자.
나는 저들을 버릴 수 없다.
그렇기에 망치를 휘둘러 쏟아지는 적들을 분쇄한다.
나와 거리를 두고 계속해서 견제해 오는 강자를 쫓는다.
저 녀석만 쳐 죽이면, 이 전선이 호전될 것이라 믿으며.
강자 중 하나를 쓰러트린다면, 이 불길한 균형을 무너트리고 적 수뇌부를 타격할 수 있다고 믿으며.
…언제까지?
저 강자와의 교전이 시작되고 몇 시간이 지났지?
얼티메이트와 회색 거인이 격돌하고 몇 시간이 지났지?
왜 아직 단 한 명도 이겼다는 연락이 들어오지 않는 거지?
왜 나는 저 진절머리나는 날파리 새끼 하나 못 잡는 거지?
처음부터 저걸 무시하고 돌진했을 때 나오는 희생보다, 이 몇 시간 동안의 희생이 더 커진 거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그 생각이 머리를 스친 순간.
으득.
어금니로 볼을 깨물었다.
차가운 철맛의 뜨거운 피가 고통과 함께 입을 감돌자, 나쁜 방향으로 향하던 생각이 멈추었다.
정신 차려라, 이하람.
계속 생각하지 않았더냐.
계속 의심하지 않았더냐.
이 전장 전체가 적의 시나리오 위 아니냐고.
알’소피아가 내게 전해 준 기억을 떠올려라.
저들의 총공격은 이 정도 수준이 아니다.
그럼, 어째서 전선이 유지되는가.
그에 대한 답은 뻔하다.
극(㘌)이 이런 흐름을 원하고 있다.
전선에 참여한 S급 여섯.
그것을 붙들 적 여섯.
적의 타격으로 여러 전선이 무너졌지만, 일부에선 전선을 밀고 있다고 하고, 패주하는 전선 또한 전멸에 이르지는 않고 있다.
즉, 전체적으로 보면 아마 아직까진 승산이 있는 상황일 것이다.
이게 우연일 리는 없다.
이 모든 것은 누군가가 설계한 시나리오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소모전으로 나아가도록 전투의 흐름을 유도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 고뇌조차도 적들에 의해 유도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적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적들이 그린 최악의 상황은 뭘까.
끝없는 소모전 뒤에 우리가 패주하는 것?
아니다.
그건 단지 우리가 전쟁에서 진 것일 뿐이다.
지금은 승산이 남아있기에 꾸역꾸역 버티고 있지, 정말로 승산이 없다고 판단된다면 전력 보존을 위한 후퇴 명령이 지휘부에서 나올 것이고, 이어 다음 전투를 준비할 것이다.
그럼, 저 잔혹한 적들이 원하는 시나리오는 무엇인가.
생각에 악의만을 가득 채운 뒤틀린 인격체가 짜낸, 가장 우리를 괴롭게 만들 시나리오는.
…뻔하잖아.
우리 S급 전원이 희생을 등에 업고 자신들을 타격한다.
그럼 우리가 전투를 벌이는 동안 관리국은 전 병력을 후퇴시키지 않고 전선을 유지하려 할 것이고.
그렇게 전 병력이 스러진 뒤, 우리가 적에게 패배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절망이 아닌가.
…아마 그런 시나리오를 노리고 있을 것이다.
잔혹하고, 악랄한, 끝이라는 녀석들은.
그렇지?
그런 생각을 담아, 저 너머에 자리한 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전투가 시작된 후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본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극(㘌)을.
그리고 그 순간.
그것과 내 눈이 마주쳤다.
이번엔 착각이나 환상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시선을 돌리기 전에도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그것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웃었다.
뭐지, 저 웃음은.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웃음.
그것은 날 불안하게 만들었고.
그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뭔가 이상하다.
압도적인 강자를 퇴치하고자 소수 정예가 공격을 가하고, 나머지 전 병력은 전선을 유지한다.
그들의 공격이 성공할 것을 믿으며.
이건, 몇 번이고 반복된 작전이다.
O급 대부분과의 전투에서.
세계 멸망의 위기 앞에서 우리의 마지막 선택지는 그것뿐이었으니까.
그런데 왜 지금은 그걸 고려하지 않고 있지?
세계 멸망의 위기가 아니라서?
아니, 그렇지 않다.
극(㘌)과 빛기둥은 분명히 세계 멸망의 위기다.
그렇지만, 그가 꺼낸 전쟁이라는 상황이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다.
몇 번이고 싸울 기회가 있다고.
져도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고.
단판 승부에 모든 것을 걸지 않아도 된다고.
…그렇지만, 사실상 이 전쟁이 단판 승부라면?
이 전쟁이 반복될수록 소모는 심해지고, 적은 매번 우리보다 조금씩 강한 군단을 계속 꺼내 들어, 종국엔 파멸만이 기다릴 뿐이라면?
인류의 힘이 소모되지 않은 지금만이 유일하게 저들로부터 승리를 쟁취할 가능성이 남은 시기라면?
그런 의문 속에서, 다시 극(㘌)을 바라보았다.
이번엔 시선이 마주치지 않았다.
극(㘌)은 고개를 돌려 다른 장소를 바라보았고, 나는 그것의 옆얼굴만을 보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의 뒤틀린 웃음은 내 망막에 남아 뇌리를 뒤흔들었고.
“…아니, 내 망상이잖아.”
다시금 혼잣말을 속삭였다.
떠오른 망상을 떨쳐내고자.
그렇지만, 이번 망상은 떨쳐낼 수 없었다.
생각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반박과 찬성으로, 부정과 긍정으로.
어느 하나의 답을 찾지 못한 채.
그렇게 얼마나 생각을 이었을까.
“아.”
생각에 잠겨 행동이 둔해졌다.
시야에 회색빛 투사체가 보인다.
별사탕처럼 생긴, 뾰족뾰족한 가시가 달린 구체형 탄두.
지금 나를 마킹하는 적의 강자가 내게 쏘아낸 흉탄.
방심은 치명적인 미스를 가져온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결단을 내리지 못한 의문은.
결국 최악의 답을 내고 말았다.
이번 전쟁에 모든 것을 걸지도 못하고.
다음 전쟁을 기약하며 병력을 보존하지도 못하고.
이름조차 모르는 적의 흉탄에 당해, S급 한 명이 무력화된다.
지금 내게 날아오는 흉탄엔 그만한 위력이 담겨있다.
날 죽이진 못하더라도, 당분간 전선에서 이탈시킬 만큼의 힘이.
흉탄에 당한 이의 말로도 몇 번이고 봤기에 잘 알고 있다.
몸에 탄환이 박힌 순간, 총탄은 그대로 폭발하여 살점을 헤집은 뒤 곧바로 몸을 재생시킨다.
그럼으로써 그 자리엔, 퍼즐 조각처럼 조각조각 찢겨 나간 살점이 가느다란 혈관이나 신경 줄로 연결된, 살아 있는 인간이 남는다.
몸이 찢겨 나가 신경이 밖으로 드러난 채, 무한한 고통으로 울부짖는 비참한 인간이.
그 고통을 덜어주고자, 목숨을 끊어주려 해도.
회색의 흉탄이 몸에 박혀 있는 한, 그 사람은 절대 죽지 않는다.
가느다란 혈관과 신경은 계속해서 재생되며 몸의 연결을 유지하고.
추가적인 공격을 받아도, 해당 부위 또한 똑같은 상황에 부닥쳐 늘어난 고통으로 울부짖는다.
몇 시간 뒤, 효력이 끝날 때까지.
옛 전쟁에서 저격수의 역할은 적의 목숨을 끊는 것이 아니며, 집단의 진격을 늦추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저 적은 훌륭한 저격수라 할 수 있으리라.
절대로 죽지 않는 부상자를 양산함으로써, 적에게 부담을 지우니까.
더욱 악랄한 것은 저 상태의 피해자를 아직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후방으로 이송되어, 외과수술적인 봉합을 마친 후 총탄을 빼내거나, 그 자리에서 강력한 치유계 능력으로 회복된다면 말이다.
그렇게 몇 시간이라는 목숨줄은 그들의 후송을 유도한다.
전장의 상황이, 도저히 그들 모두를 회복시키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그런 총탄에 내가 당할 상황이 되었다.
고통은 참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최우선 전력인 나는 몇 시간 내에 다시 부활하겠지.
그렇지만, 몇 시간 동안 내가 빠짐으로써 전선에 가해지는 부담이 커질 것이고, 그만큼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다.
어쩌면, S급 여섯, 강자 여섯이라는 균형이 무너진 만큼, 그 몇 시간 만에 우리가 패주할지도 모른다.
무의미한 고민은, 최악의 선택을 유발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의사가 날 조립하기 쉬운 부위를.
그리 생각하며, 손 한쪽을 내주려는 순간.
기잉.
대량의 마력이 주변에 흐르고.
“공간 동결!”
유쾌한 목소리와 함께 빛나는 마법진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목소리와 마법진은 너무나도 익숙한 것이었기에.
나는 마법진이 흉탄을 가로막는 것을 눈에 담지도 않은 채,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내게 너무나도 익숙한 흰 털뭉치가 자리해 있었으니.
“…운호?”
이 자리에 있을 리 없는 내 파트너가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