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484)
마법소녀 아저씨 483화(484/671)
483. 강습.
어쩐지 발걸음이 빨라진다.
괜찮다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만에 하나라는 가능성이 머리에 맴돌고 있기에.
알고 있다. 천하일검이 그리 쉽게 쓰러지진 않으리라는 것 정도는.
그렇지만, 조그만 의심이 멕베스가 잠긴 검은 구체에서부터 피어난다.
쓰러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
아니, 아마 아직 쓰러지진 않았을 것이다.
천하일검이 쓰러졌다면, 분명 지휘부 또한 그것을 인지하고 있을 테니.
그렇지만, 불리한 상황이라면.
우리가 도달한 순간 패배한다면.
그런 의심을 지니고 전투가 이어지는 불바다를 넘어 천하일검의 전장에 도달했다.
저 멀리, 무복을 펄럭이는 이가 보인다.
우리에게 등을 돌린 채 멀뚱히 전장에 서 있는 바보 한 명.
그 뒷모습에서 나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비탄, 후회, 자학.
그것은 내가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걱정을 폭발시켰고.
“지안평 너!”
그리 외치며 천하일검의 정면을 바라보고자 발을 굴렀다.
그저, 서 있기만 한 시체가 아니길 빌며.
그렇게 격정과 걱정이 묻어나는 외침이 닿았을지도 알 수 없는, 목소리보다 빠를지도 모르는 돌진을 수행한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늦었군.”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 없는, 싸구려로 보이는 갈색 담뱃대를 입에 물고 천연덕스럽게 연기를 뿜어내는 멍청이의 모습이었으니.
옷 여기저기가 조금 찢어지고 잔상처가 피부에 조금 남아있긴 하지만 멀쩡해 보이는 그 얼굴을 본 순간, 내 안에 끓어오르던 감정은 한순간에 증발해버렸고.
아니, 오히려 차가워지고 말았다. 액체가 기화하면 온도가 내려가듯.
…내려가는 거 맞던가? 아무튼.
“…뭐 하냐.”
“보다시피, 약초를 물고 있지,”
지랄도 풍년이시네.
“적은?”
“진작 쓰러트렸지.”
“…뭐 하냐.”
“아까 말하지 았았던가? 약을….”
뻔뻔한 바보를 향해 주먹을 휘두른다.
달라진 말의 뉘앙스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멍청이를 향해서.
“진작 끝났으면 지원이라도 오란 뜻이었다! 이 돌대가리야!”
차가워진 마음에서 피어오른 새로운 감정, 그것은 다른 방향의 분노.
그것이 담긴 주먹이, 멀뚱히 서 있던 천하일검을 후려쳤다.
“…꺽.”
바보는 담뱃대를 문 채, 희미한 담배 연기를 궤적처럼 남기며 짧게 공중을 날았으니.
그로써, 당황한 것은 나였다.
음. 맞았네.
당연히 평소처럼 피하거나, 막을 줄 알았건만.
천하일검의 그 상태에 의문이 피어오르려는 찰나.
“저런 바보도 지치는 때가 있는 법이란다. 꼬마.”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갑자기 끼어든 말로 인해 그 의문은 빠르게 사그라들고 말았다.
여전히 기척 하나 없이, 서늘한 냉기만을 뿜으며 내 머리 위에서 설교하는 그녀.
“싸우면 친해진다지만,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하지 않겠니.”
그 말과 동시에, 바보가 유성우처럼 공중에서 떨어져내렸다.
하늘에서 추락한 희귀 물질을 채취하고자 라이브러리안과 얼티메이트가 추락 지점에 가까워졌고.
“지쳤다는 의미?”
나는 고개를 위로 들어, 날 빤히 내려다보는 프로히비션을 올려다보았으니.
“남자란 허세를 부리는 법이지. 저 녀석은 그게 과하지만.”
그녀는 내 말이 정답이라는 듯, 아니라는 듯 아리송한 답과 함께 나에게서 멀어졌다.
흐음.
정확히 이해가 안 되지만, 대충 천하일검이 저러는 건 허세고 저 녀석도 겨우겨우 이겼다는 의미인가.
그런 거 치고는 몸 상태가 깨끗하긴 한데….
뭐, 별 상관은 없겠지.
사실 뭐, 살아있으면 된 거 아니겠는가.
적 시체라든가 보이지 않긴 하지만, 그것도 뭐 크게 중요한 일은 아니지.
그리 생각하며, 뜬금없이 전장 한가운데 박혀있는 은빛 철 막대를 지나 부축받으며 일어나고 있는 천하일검 앞에 섰다.
“담뱃대가 부러졌다.”
때려선 안 될 부위를 때려버렸나?
얘가 갑자기 헛소리를 하는데.
본래도 멍청했으니 더 멍청해지면 안 되는데.
저러다 언어 능력에 이상이라도 생기면 골치 아플 테니 말이다.
겸사겸사 그것도 확인해볼까.
“갈 수 있겠냐?”
“어딜 말이지?”
내가 때렸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듯, 무복에서 흙을 털며 일어서는 천하일검이 그리 답을 되돌렸다.
아무래도 아직 언어 능력은 괜찮은 모양이군.
“어디긴 어디야.”
나는 그리 말하며, 멀리서 전장을 내려다보는 이에게 고개를 돌렸으니.
언덕에서 전장을 내려다보는 그것은 마침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나는 그 존재와 시선이 마주쳤다.
자신이 준비한 패가 모두 무력화되었음에도, 얼굴에 어떤 당황조차 떠올리지 않고 빤히 이쪽을 바라보는 그것.
극(㘌)은 지금까지와 달리 시선을 돌리지 않고 계속해서 나를 빤히 바라보았고.
그것은 미소인지, 무표정인지 알 수 없는 기묘한 표정으로 나에게 반응을 보였다.
그것은 마치, ‘이제야 올 생각인가?’ 하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나는 그에 답하기 위해.
“퉷.”
저 안면에 침을 뱉는다는 심정으로 땅을 향해 침을 뱉은 후.
“모든 일의 원흉을 잡으러.”
천하일검의 말에 답했다.
* * *
전장을 내달린다.
멕베스가 빠진 다섯 전우 플러스 운호와 함께.
우연히 적이 죄다 쓰러져 전투할 일이 없던 얼티메이트는 상당히 체력을 회복한 상태였지만.
천하일검은 프로히비션이 말했던 것처럼, 약간 지친 듯 평소보다 둔한 모습을 보였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장을 내달린다.
그것은 모든 것을 저버린 질주.
사방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고, 살려달라는 비명은 메아리치고, 살아남기 위한 화약 소리는 사방에 울리니.
그리고 모든 것을 집어삼킬 불꽃은 꽃밭의 꽃처럼 무수히 피어난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전장을 달려나간다.
구하지 않는다.
돌아보지 않는다.
반응하지 않는다.
다만, 모두가 그리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여섯 중 하나.
얼티메이트만은 그런 우리의 움직임이 익숙하지 않은 듯, 그늘진 쓴웃음과 함께 종종 그들에게 시선을 돌린다.
물론, 우리라고 아예 그들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경로상에 적이 존재한다면 쓰러트리고, 살려달라는 인간은 염동력이든 드론이든 사용하여 후방으로 쏘아 낸다.
그렇지만, 그 이상의 간섭은 하지 않는다.
우리 손이 닿는 범위 너머, 그렇지만 인지력은 닿는 범위.
잔혹한 그들의 유언과 원망.
그것에게서 고개를 돌리며, 전속력으로 적을 향해 달린다.
그것은, 우리에게 있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기에.
그것은, 우리에게 있어 마음가짐이 끝난 일이었기에.
그들의 생명을 가볍게 취급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모든 생명을 구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머나먼 과거에 이해했다.
그렇기에, 그들의 마지막 숨소리를 마음에 품고, 그저 적을 향해 달려 나간다.
우리가 구하는 것은, 개인이 아닌, 세계이기에.
영웅의 자격 없는, 우리이기에.
얼티메이트는 그런 의미에서 아직 괜찮다.
그는 우리에게 종종 왜 전면에 나서지 않냐고 묻지만.
우리는 그와 다르다.
얼티메이트는 우리의 행동을 알면서도 고뇌하고 반응하지만.
우리는 자그만 목소리에 고개조차 돌리지 못할 정도로 닯아버렸기에.
그렇기에 우리는 이 익숙한 전장의 어둠을 달린다.
그렇게 전진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피어나던 사람의 숨결도 사라지고, 전선 너머 적의 밀집 지역에 도달하여 몰려오는 적의와 공격이.
그리고, 우리를 지원하기 위한, 전선에 쏟았으면 타인을 더 살릴 수 있었을 수많은 지원 포격이 있었다.
아무리 우리라고 해도, 그 막대한 물결을 뚫기 위해서는 상당한 힘과 시간을 써야만 했었다.
그 모든 과거를 지나.
지금 우리는 언덕 위에 섰다.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이계의 적들조차 가까이하지 않으려는 장소.
거대한 강의 흐름이 갑자기 갈라지도록 만드는 거대한 돌처럼, 텅 비어있는 원형의 공간.
거기에 서 있는, 세 존재 중 둘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우리를 바라보았으니.
“수뇌부 특공. 고전적이지.”
극(㘌).
“이것까지 놔두라는 말은 아니겠지? 화.신.체.”
그리고, 말을 뚝뚝 나누며 아군에게도 적의를 한껏 뿜어내는 시안.
그것은 이미 분홍빛 털이 보송보송하게 피어난 박쥐가 아니었다.
크게 뜬 눈에서는 검은 오물을 흘리고, 털 아래로 튀어나온 다리는 기이할 정도로 뒤틀린 발톱으로 제 몸을 찌르고 있었으니, 그렇게 생긴 상처 또한 검은 오물을 대지에 흩뿌리며 땅을 오염시키고 있었다.
“내 손님이니 내가 상대한다.”
극(㘌)이 그리 말한 순간, 시안의 크게 뜬 눈은 극을 향했고.
시안이 칠판을 유리를 긁는 듯한 소리를 내며 뭐라 말하려던 순간.
“그렇지만, 그들은 그걸 원하지 않는 모양이다. 가도 좋다. 여왕의 개.”
극(㘌)은 갑자기 말을 바꿔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고.
“여왕은! 아무! 상관! 없어!”
말을 받은 시안은 깨지는 듯한 목소리로 절규하며 우리를 돌아보았으니.
“쓰레기들. 거의 가치도 없는 주제에 중요한 걸 파먹을 줄만 아는 가축들.”
그것의 절규는, 마치 물리력을 가지기라도 한 듯 우리를 구속했고.
어떻게든 구속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을 쳐보지만, 시안의 비명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할 줄 아는 것은 불어나는 것 말고는 모르는 녀석들은, 빨리 죽어서 이 계약에서 날 해방시켜 줘야 할 것 아니야.”
그렇게 시안이 말 한마디를 내뱉을수록, 땅에 퍼진 검은 얼룩은 그 세를 불렸고.
“살아있는 게 원죄인 놈들. 사냥놀이의 점수용 사냥감으로도 못 쓸 무가치한 놈들.”
그렇게 시안에게서 뿜어진 검은 얼룩이 그것의 주변을 원형으로 뒤덮은 순간.
우리 모두는 약속이라도 한 듯, 비명의 구속에서 벗어나 시안을 향해 돌진했고.
“죽여라. 실버 컨덕터. 핼로 할로윈, 트윈 엔젤, 미라클 쇼타임.”
그 말과 동시에 검은 구덩이에서 사람의 형체가 넷 솟아올랐다.
검음에 물들었음에도, 원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 네 마법소녀.
“으어… 아….”
그들은 여전히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듯, 자신의 몸에서 오물을 뱉어내는 심장박동 소리와 함께 지팡이를 뽑아 들었다.
시선의 방향조차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그들이지만, 그들은 역전의 용사처럼 기민한 몸놀림으로 우리를 향해 뛰어들었고.
끈적한 노래.
빛바랜 붉음과 파랑.
검은 죽음의 소환물.
검게 녹슨 나이프와 스페이드뿐인 트럼프.
검은 토끼.
한때 날 난도질하던 모든 것들은.
팡.
너무나도 손쉽게 분쇄되며 허공으로 사라졌다.
나 이외 다섯 이들의 도움으로.
검은 오물에 잠식된 그들은 확실히 강하지만.
나를 난도질했던 것은 수적 우위와 그들을 죽이지 않으려 했던 내 판단에서 가능했을 뿐.
그들의 공격 따윈 정점에 오른 이들에게 쉽게 무력화되었고.
나는 그사이를 틈타, 한 마법소녀 앞에 도달했다.
검게 바랜 지휘봉을 든 채 음표가 잔뜩 달린 드레스를 입은, 열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그녀.
실버 컨덕터라 불린.
영웅 일람에 분명히 이름이 존재하는, 한 마법소녀는.
그녀는 내 속도에 반응한 듯, 탁한 눈으로 날 바라보며 지휘봉을 휘두르기 시작했지만.
“미안하다.”
내 망치는 이미 허공을 가르며 움직이기 시작했고.
팡.
그녀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와야 할 목의 위쪽에서는, 풍선 터지는 듯한 소리만이 들려왔다.
누군가를 죽인 손맛이, 손을 타고 오른다.
알고 있다. 그녀가 살아있단 사실 정도는.
그렇지만, 각오를 끝내고 왔기에.
그녀의 이름을, 내 안에 묻을 각오를 하고 왔기에.
그녀를 치우고, 다음을 향해 날아갈 준비를 한다.
한 명이 사라져, 가벼워진 탄막 사이를.
그리고, 다음 마법소녀를 향해 또다시 도약하려던 순간.
“일어나. 실버 컨덕터.”
끔찍한 목소리가 울린다.
머리가 날아가 몸이 무너졌던 마법소녀의 몸이 일어서고.
슈륵. 슈르르륵.
실이 뭉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눈앞에 존재하는 마법소녀의 머리가 재생된다.
그 시간은 찰나에 가까웠고.
그렇게 머리가 재생된 마법소녀는 천천히 눈을 뜨며 입을 열었으니.
“여긴… 어디….”
명백한 지성이 느껴지려는 말이 그녀의 입 밖으로 벗어난 찰나.
퍼걱.
검은 창이 그녀의 머리에 박혀 들었다.
그녀의 뒤통수를 뚫고, 안구를 통해 빠져나온 창은.
그대로 얼룩처럼 퍼져나가며 그녀를 검게 물들었으니.
그것은, 이 전투 또한 쉽게 끝나지 않으리라는 선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