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493)
마법소녀 아저씨 492화(493/671)
492. 근원과 근본과 근간
삑.
조금 전까지 바라보던, 노이즈 많은 텔레비전이 꺼졌다.
“지금 펼쳐진 저 광경을 보고 나니, 무슨 생각이 떠오르지?”
투명한 재료를 통짜로 사용한, 각 없이 곡선만으로 이루어진 의자.
그런 의자에 앉은 탓에 얼핏 보면 스쿼트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존재.
다만, 다리를 꼬며 앉아 있어 자세히 보면 절대 그런 착각을 할 리 없는 상대가 입을 열자.
텔레비전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지고, 텔레비전을 향하던 서로의 의자 방향도 달라져, 각자를 마주 보는 형태로 바뀌었다.
그 속에서 나는 등을 받친 충격으로 곰팡내가 잔뜩 피어나는 소파에 몸을 집어 던지며 입을 열었다.
“…죽고 싶어졌다.”
왜 나는 저기에서 쓰러져 있었지.
왜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
왜 나는 모든 힘을 극(㘌)에 쏟아낸 것일까.
조금이라도 더 버텼다면.
잠깐이라도 남아 힘을 보탰다면.
다음 화신체도 쓰러트릴 수 있지 않았을까.
“그 질문은 나도 답해 줄 수 없겠군. 네 앞에 나타난 것을 보면 알겠지만 난 네 번째를 넘었을 뿐, 화신체와 싸운 경험은 한 번뿐인지라.”
상대는 그리 말하며, 쓴웃음을 던졌다.
“그것이 우리 세계의 멸망이었지.”
그녀는 그리 말하곤, 품에 안고 있던 책을 내던졌다.
붕.
시야를 가득 가리는 금속 건틀렛이 내게 질주한다.
한순간.
책이 던져진 것과 거의 시간 차가 없는 속도로 날아오는 주먹.
실제로 그녀가 공중에 내던진 책의 위치는 처음과 거의 차이가 없다.
그렇지만.
깡.
나는 공격을 막아 낸다.
빠르긴 하였지만, 내가 싸웠던 어딘가 어긋났다고 할 정도의 초월적인 속도는 아니었기에.
뒤이어 두 번째 주먹이 날아오고.
그 주먹 또한, 처음 휘두른 망치의 궤도에 휘말려 무효화된다.
동시에, 상대가 등 뒤에 띄운 빨강, 파랑, 보라, 검은색의 구슬이 기묘한 문양의 사각 마법진을 띄우며 날 포착하지만.
해당 마법의 발동 동안 날 붙잡아두어야 할, 건틀렛의 상대이자 본체가 너무나도 쉽게 튕겨 나갔기에.
나는 너무나도 여유롭게 몸을 뒤로 던지며 각 마법을 피해 낼 수 있었다.
“자신감을 가져. 넌 강하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면 나는 다시 의자에 앉아있었다.
던져진` 책은 상대의 품속으로 다시 돌아가 있었고.
나는 몸을 움직인 적이 없다는 듯, 소파에 앉아 상대를 바라보고 있다.
뭐지 이건.
그에 잠시 당황하던 찰나.
“네가 마주했던 다른 이, 우리와 근본이 같은 이들이 너무 강해서 착각한 모양이지만, 극소수를 제외하면 넌 이미 그들 대다수보다 강하다. 지금 나를 그리 쉽게 뿌리쳤듯.”
…방금 그거 기운 내라고 해준 거였나.
“하나를 잡았기에, 두 번째의 기습을 막았고, 세계의 피해를 줄였다. 최고는 아니더라도, 하나의 개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셈이지.”
아무래도 기운 내라고 한 일이 맞는 모양이다.
영 재능은 없는 것 같지만.
한숨을 내쉰다.
‘만약에.’는 없다.
애초에 그런 게 있었다면 우리가 그렇게 길을 피로 물들이며 현재에 도달하진 않았을 테니까.
그러니, 자기 비하는 그만두고, 현실을 보자.
적어도 나는 직접 프로히비션의 최후를 보았다.
동료들의 최후조차 건지지 못한 적이 몇 번이었던가.
그녀는, 이미 처음부터 일이 이렇게 흘러갈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프로히비션은 멕베스와는 방향성이 다르긴 하지만, 그녀 또한 미래 예지를 지니고 있으니까.
당장 극(㘌)이 부정한 미래에서 그녀가 내게 모자를 건넨 이유도, 이미 프로히비션 자신이 죽음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겠지.
그녀가 건네준 모자를 남기고 싶지만.
그녀가 모자를 건넨 것은, 부정된 미래의 것.
그렇기에 그녀는 물리적인 것은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지만.
수많은 것을 내게 건네주었다.
상대의 능력, 힘의 사용법, 그리고 치유할 수 없는 상처.
그것을 활용하는 것은, 세계에 남은 나의 몫.
그렇기에, 마음을 먹는다.
마음을 가다듬고, 이를 악문다.
동료를 잃은 슬픔을, 마음 한켠에 담는다.
과거의 내가 몇 번이고 그랬듯.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그리고, 앞선 동료가 우리를 향해 남겨 준 것을 지키기 위해.
과거처럼, 전쟁을 마음에 품는다.
슬픔을 보여 줄 시간을, 미래로 밀어내며.
“다른 정보를 보여 줄 수 있나?”
다시 피어나기 시작한 분노.
동료를 잃은 것에 대한 분노.
사람들을 죽인 것에 대한 분노.
세계를 혼돈으로 밀어 넣은 분노.
그것들을 다시 한번 불피우며, 다음 전쟁을 준비하려 하지만.
“그건 없다. 우리가 볼 수 있는 범위는 한정되어있으니까.”
투명 의자에 앉아 난처한 기색을 보이는 상대는, 변명을 늘어놓는다.
“방금 그것도 겨우겨우, 그것들의 시선을 뚫….”
“그게 궁금해? 알려 줄게.”
계속해서 들려와 익숙해진 목소리를 뒤로하고,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딱.
그에 반응한 내 목소리보다, 그 존재의 손가락 튕김이 내 귓가에 닥친 소리가 빨랐고.
핑.
전기가 흐름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빛이 피어났다.
노이즈 한 점 없이, 깊이 있는 광원을 내뿜는 네모난 창.
그러한 것이 끝없이 어둠에서 피어나, 우리 주변을 감싸며 탑처럼 끝없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내 시점이 닿는 시야의 정면부터, 시야가 닿지 않는 뒤를 향해.
아래에서부터, 위로.
순차적으로.
끝없이 빛이 피어난다.
저 멀리 내 시야가 닿는 천장을 넘어서도 빛이 피어나고 있는, 끝없는 텔레비전의 탑.
나타난 화면 하나하나는, 슬쩍 바라보기만 해도 내가 거기 있는 것 같은 생생한 현장감을 내게 전달하는 사각형의 세계였고, 내가 상대에게 요청했던 것을 아득히 뛰어넘는 것이었지만.
원하던 것이 눈앞에 나타났음에도, 나는 화면에 시선을 주지 않고 그것을 소환한 이에게 시선을 주며 입을 열었다.
“너 뭐냐.”
아니, 정말로 이상하지 않은가.
이건 내 내면세계….
아니, 내면이 맞긴 한가?
어쩌면 근본이 같은 사람을 모은 동창회 같은 세계일 수도.
어쨌든 간에, 나와 비슷한 느낌을 지닌 이들만 모인 이 공간에서,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존재가 있는 말도 안 되는 상황.
“아, 나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냥 손님이거든. 원하는 건 얼마든지 봐. 난 지금 좋은 걸 봐서 기분이 좋거든.”
…아니 손님이고 뭐고 간에, 여기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상한 거 아닌가.
애당초 여기가 뭐 하는 장소길래 손님이라는 개념이 통용되는 건데.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조금 전까지 날 지배하던 분노나 암담함도 이 순간만큼은 뇌 구석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심지어 여왕이 멀쩡한 상태인 것도 아니고.
여전히 얼굴이 보이지 않는 머리통 한구석은 터져서 뇌수가 줄줄 흘러내리며, 팔 하나는 어디로 날아갔는지 소매만 펄럭이는 데다가, 배와 옷은 뭔가가 관통한 듯한 구멍이 뻥 뚫려 반대편의 암흑이 보이고 있다.
“그르릉.”
그나마 멀쩡한 다리에는, 날카로운 이빨과 출혈된 눈알이 잔뜩 돋아난, 탐식자였던가 뭐였던가 하는 녀석이 달라붙어 물어뜯는 와중.
…진짜로 뭐지 저거.
이런 내 당황이 나만의 것은 아닌지.
다리를 꼬며 의자에 앉아있던 내 대화 상대도 얼굴에 손을 올린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는 상황.
그나마 여기서 대화가 먹힐 법한 상대가 다리를 꼰 저거 하나뿐이라니.
“저거…. 뭐지?”
그렇기에, 그나마 멀쩡한 상대에게 질문을 던지자.
“…신경 쓰지 마라. 우리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특별히 악역향은 없으니까.”
상대 또한 저 여왕에게 어마어마하게 시달렸는지, 긴 한탄과 체념의 감정이 담긴 답이 돌아왔다.
“…정말로?”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데.
내가 그리 생각하며 말을 돌렸지만.
“우리 성격에 치워 버릴 수 있었다면 진작 치워버렸겠지.”
납득했다.
정말로, 저 말 한마디가 모든 것을 설명해 주고 있다.
당장 나만 해도 운호를 집 밖으로 몇번이고 던져 버렸는데, 그보다 더한 여왕은 어떻겠는가.
우리 집에 저런 동거인이 있다면 그대로 풀차지 해머샷을 날려 집과 함께 여왕을 묻어 버렸겠지.
당장 저 여왕에게 남은 수많은 상처가 그런 성질머리의 결과물이리라.
…다리에 붙어있는 나와 닮은 저 짐승은 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저게 탐식자일 것 같진 않다.
그 막대한 힘을 가진 녀석이, 무슨 애완동물마냥 남 다리에 달라붙어서 이를 잘근거리며 피를 빨고 있을 린 없지 않겠는가.
아무튼, 여왕이 아무리 의심스럽고 거부감이 든다 하더라도 지금 상황에서 주어진 정보를 그냥 거부할 순 없는 노릇.
그렇기에, 여왕이란 거슬림을 시야에서 벗어던진 채 사방에 늘어선 사각의 세계를 마주 보았다.
수많은 정보가 흘러든다.
화면으로는 얻을 수 없는 정보가, 거기 직접 있기라도 한 것 같은 감각이.
얻어 내는 것은 내게 없는 세계의 수많은 정보.
이미 내가 쓰러져 의식을 잃은 것을 알고 있기에.
이 특이한 정보 습득의 기회 속에서, 수많은 정보가 들어온다.
관리국 본부의 붕괴.
한층 더 활발해진 이계의 존재들의 공격.
모든 봉인이 풀린 것은 아니지만, 몇몇 봉인이 풀리며 일어나기 시작하는 각 지역의 소규모 침공.
타락한 마스코트 시안이 사라졌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직 함께 싸우고 있는 마스코트.
미국 이외의 국가들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비명.
영웅들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비난.
그리고 마지막으로.
죽은 극(㘌)을 대신하는, 새로운 극(㘌)이 말하는 다음 전쟁의 선포.
화신체가 선포한 다음 전쟁은 그리 머지않은 미래였기에.
“갈 것인가?”
내가 정보를 찾던 동안,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책을 읽던 상대는 안경을 벗고 내게 질문해 왔다.
안경이라.
우리 정도의 육체 능력이 있는데 안경에 의미가 있나.
“단순한 내 과거의 증명이다. 집중을 위한 것이지.”
그런 내 질문에 대해 마음을 읽은 상대는 곧바로 답을 되돌렸다.
그리 말하는 상대는, 또다시 말을 덧붙였으니.
“네가 동료에게 막대를 받았듯, 나는 이 특수 재료 안경을 받았지. 어지간해서는 부서지지 않는.”
상대는 답과는 어울리지 않게, 자칫 잘못하면 바로 깨질 것 같은 설탕 공예품을 만지듯 조심스럽게 안경을 접어 품속에 집어넣으며 계속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지? 네 몸은 이제 복원이 안 될 텐데?”
상대는 지금까지 내가 본 이들과 다르게, 나른하며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그리 질문해 왔고.
“부정.”
나는, 그에 곧바로 떠오른 답을 되돌렸다.
어쩐지, 알 것 같다.
그들이 날 여기 소환해 프로히비션의 최후를 보여준 이유를.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 내게, 답을 주기 위해.
내 힘을 어떻게 쓰는지 알려 주기 위해.
“정답이야. 다만, 주의하도록.”
빠르게 흐려져 가는 의식 속에서, 그녀의 말만이 내 귓가를 간지럽힌다.
“부정이란, 그들의 힘. 거기에 가까워진다는 의미를.”
그 말에 뒤따라, 다른 이들의 목소리가 흘러온다.
“또 봐.”
보이지 않음에도 손을 흔드는 것이 느껴지는 여왕과.
“아그.아그.”
완전히 짐승으로 향한 존재의 목소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