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50)
마법소녀 아저씨 50화(50/671)
50. 검은 마법소녀
“저리 꺼져.”
역겨운 회색이 내 몸에 달라붙으려 하기에 손을 털었다.
같은 이계의 존재임을 확인한 것일까, 회색 세계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른 장소로 몸을 움직였다.
그렇다고 먹는 것을 포기한 것은 아닌지 계속해서 공격을 가하고 있지만 크게 신경 쓸 것은 아니다.
애당초 이계의 존재라고 같은 편은 아니니 당연한 행동.
적대적인 중립 관계일 뿐.
굳이 척을 지는 짓은 하지 않겠지만, 내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삼키려고 움직이리라.
“저… 정말로 이거 괜찮은 거죠? 유밀 님?”
“괜찮아. 아마.”
“아마…?”
겁먹으며 내 원피스를 당기는 데인저 라이플의 모습은 안쓰러웠다.
내 몇십, 아니 몇백 배를 살아왔으면서 이런 모양인가.
처음에는 강한 자세로 나오더니, 힘을 보여준 이후부터는 이런 상태에 빠져들었다.
아마 그것은 내 창조주 중 더 잔인한 쪽에 대한 공포심.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회색에 뒤덮여 죽어가는 장벽을.
뚜벅.
내가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세계는 잠시 색을 되찾았지만, 곧바로 촉수는 세계의 다양성을 먹어 치웠다.
“다양성이란, 먹을 수 있는 걸까?”
“못… 먹죠?”
“너한테 물어본 게 아니야.”
내 안에 있는 기억에 물었다.
킬킬거리며 담배 연기를 뿜어내는 멍청한 남성에게.
감정, 기억, 관계, 과거, 공간…
【다 먹을 수 있지. 왜 못 먹어?】
잠깐 사이로 떠오르는 단어도 여러 가지.
그리고, 그와 동시에 역겨운 기억도 같이 솟아올랐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
거울에 비친 동료의 모습.
뇌. 전기. 약물. 시체. 피. 개조. 기계.
기억을 얻는 대에는 대가가 필요하다는 뜻일까. 짧은 과거를 떠올린 순간, 그와 연관된 에피소드들이 연달아 떠오르며 날 괴롭혔다.
“짜증 나.”
제대로 생각조차 못 하게 만들어버린 내 아비에게 건네는 한마디.
“제 저격총 말인가요…? 거추장스러우면 집어넣겠….”
“그런 거 아니니까 좀 조용히 좀 해줘.”
데인저 라이플이라는 동료도 짜증이 난다.
돈이 많은 여자라는 건 알겠다.
내 모습을 보고, 내 말을 듣자마자 수많은 위장 신분과 거처를 마련해주었으니까.
지금 전장에 나와 있는 것도 이 여자 덕분.
군대에 연줄이라도 있는지 보급로에 숨어들어서 영웅으로서 위장하는 것도 성공했으니.
이상하리만큼 비굴한 것은 둘째 치고, 과하게 능력이 좋은 여자.
기억에는 이런 게 없었는데. 대체 그놈은 뭘 보고 이 녀석과 날 붙여준 걸까.
저벅. 저벅.
조용해진 장벽 위에는 내 부츠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완전한 적막. 변하지 않는 세계.
영웅들이 패배한다면 세계는 이렇게 변하겠지.
그런 사실을 알고도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 이유는 어째서일까.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일까.
뭔가를 하고픈 생각이 들지 않았기에 그저 장벽 위를 걸어 나가던 도중, 동행자가 내 옷을 당겼다.
“왜?”
“저기… 사람들을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닐까요?”
도와줘야 한다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장벽과 일체화된 생명체들을.
“으…아….”
“어….”
“아…우….”
“사….려….”
지성이 사라지고, 감정마저 잃어버린 인간이었던 것.
입에서 나오는 음성도 아무런 의미 없는 괴상한 목소리.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생물이 되었는데. 너희는 생물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가는구나.
뭔지 모를 감정이 솟아오르긴 한다.
기억을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는 의문. 대체 이것은 무슨 감정일까.
그런 감정을 감추고, 유일한 대화상대에게 입을 열었다.
“어떻게 구할 건데?”
“이 이상한 공간에서 끌고 나간다던가… 아니면 유밀 님 주변에 놓아두면 되지 않을까요.”
“첫 번째는 힘들어. 이 많은 사람을 어떻게 끌고 나가? 두 번째는 더더욱 안 되는 일이고. 너 하나 지키는 게 고작이야. 두 명? 네가 대신 밖으로 나갈래?”
내 힘으로 유지할 수 있는 공간은 반경 2m 정도뿐.
몇 명이고 이 공간에 들어오는 건 사양이다.
“그러니, 저들을 살리고 싶다면. 영웅들이 이기길 기도해.”
지금 상황에서는 영웅들이 이길지 잘 판단이 서지 않지만.
린슈아 님을 호출해야 하나?
결사의 괴인들이 모이면 저 정도는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결사의 의지라면 이런 방식은 최악의 방식.
내 안에 심어진 린슈아 님의 사상이, 결사의 가르침이. 이 모든 것에 반대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 상황이 이어진다면 결사가 전장에 나설 거라는 것도 금방 알 수 있었다.
인간에게 배척받고, 인간에게 죽임당했으면서도. 뒤에서 세계를 지켜온 나의 선배들.
하지만, 그것도 아직 모르겠다.
왜 그들은 싸웠던 걸까.
인간 세상에서 태어난 괴인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아무리 이계가 속삭인다고 하여도 지구는 그들이 태어난 고향이니까.
그럼 이계에서 태어난 괴인들은 어째서? 왜 죽음의 순간까지도 그들은 지구를 위해 싸운 거지?
말로는 세계정복을 위해서라지만, 그것 또한 헛소리.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내게 남겨진 가르침도, 사상도 모두 주입 당한 것.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무언가가 아니었다.
기억도 마찬가지.
모든 것은 고통뿐이다.
아비가 내게 넘겨준 기억도.
어미가 내게 넘겨준 사상도.
집단이 내게 넘겨준 가르침도.
모두 내 삶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무언가일 뿐.
세상의 아름다움 탓에 그 고통이 조금 덜어졌지만, 내게 가해지는 고통은 영원하고, 세상의 아름다움은 한순간이었다.
언젠가는 바다의 빛남과 하늘의 푸름도 익숙해지겠지.
몸을 달리며 간지럽히는 바람도 흙의 촉촉함도 모두.
그러면 내게 채워진 무거운 족쇄는 다시 내 몸을 조여들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회색 세계가 모든 감각을 죽여 나에게 전해지는 아름다움이 없어진 지금, 그 우울한 무게는 다시 나를 내려찍고 있다.
나는 그저 누군가의 대리로 태어난 존재라며.
그조차 저주받은 출산이라며.
고요한 회색 세계는 내가 그런 어둠 속으로 파고들기 적합한 환경이고.
그렇게 데인저 라이플을 달고 장벽 위를 걷는 동안, 뭔가가 느껴져 생각을 멈추었다.
막대한 힘.
그리고 뭔가가 충돌하는 큰 소리.
“아직 움직일 수 있는 영웅이 있나 보네.”
“그럼 그리로 가죠! 힘을 합치면….”
공포로 정신을 놓아버린 건가?
내가 무슨 존재인지 잊어버렸나?
“괴인이 영웅 앞에 모습을 드러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괴인이라고 다 나쁜 게 아니란 건 저도 알아요! 제 운전기사도 괴인이고…”
운전기사? 그건 또 뭐야.
정말 정보가 부족해서 미치겠네.
“내 기억은 그렇게 말하지 않네. 다른 장소로 가자.”
저벅.
발을 돌려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 * *
어째서일까.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어느샌가 나는 이 장소에 서 있었다.
망치와 회색 갑각류가 충돌하는 것이 가장 잘 보이는 장소에.
“저 붉은 기둥은 뭘까요. 유밀 님.”
“이 상황의 주범이 아닐까.”
느껴지는 이계의 힘도 어마어마하니까.
막대한 이계의 힘. 린슈아 님보다는 못하지만, 세계를 멸할 수 있는 존재.
내게 남은 기억에 따르면 저 정도 존재들과의 전투는 10번이 넘게 존재했다.
그리고 그 전투들은 모두 어느 정도 희생을 내고 승리했지.
이번이라고 다를까. 그리 단순하게 생각하고 붉은 거구의 정보를 읽어내렸다.
그와 동시에, 내 자신감은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저게 뭐야?
힘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그저 저기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로 느껴지는 압박감과 공포심.
아니, 힘의 크기조차 공포스러운 존재임을 인식한 순간 날 짓누른다.
“우웨에엑.”
속에 든 것이 게워져 나왔다.
장벽 안에 있던 식당에서 먹은 파스타.
다 녹지 않은 면이 입에서 튀어나오며 산산이 부서졌다.
“유밀 님!? 괜찮….”
당황한듯한 데인저 라이플이 내 급격한 변화를 걱정하며 안부를 물어오지만, 그 내용이 귓가에 들리지 않는다.
무의미한 소리.
어떻게 저런 것과 맞설 수 있는 거지?
왜 아비는 모든 싫은 감정을 짊어지고 저기 서 있는 거지?
그저 나는 내 안에 든 기억을 읽고 그것이 내 경험이라고 착각했을 뿐이었어.
기억이 담담하게 적혀져 있기에 착각했던 거야.
그리 기록하지 않으면, 그리 기억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기록.
옛 시대의 영웅들은 그런 것과 싸워 세계를 지킨 것이다.
우우우우우웅.
구토하며 시선을 돌리었던 동안, 상황이 급격하게 바뀐 것일까.
막대한 힘과 괴이한 소리가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붉은 광선과 금빛 망치가 맞부딪혔다. 온통 회색으로 가득 찬 세계에서, 색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의 충돌.
망치가 휘둘러졌다.
계속.
또 계속.
“어째서?”
이해할 수 없다.
왜 저걸 막고 있는 거지?
내 기억이, 복사된 전투 능력이 말하고 있다.
저건 피해야 하는 기술이라고.
막을 필요가 없다고.
그럼 왜?
“저 영웅 대단하네요! 저걸 막고 있어요! 아마 우리가 이길….”
아니야.
저건 막고 있는 게 아니야.
자신의 몸을 혹사하고 있는 거다.
무언가를 위해 광선이 나아가지 않도록.
그것을 깨닫자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그가 피한다면 광선이 어디에 떨어질지, 어떤 일이 생길지.
그 대답은 간단했다.
그가 피한다면, 광선은 장벽으로 떨어지고, 수없이 많은 이가 죽겠지.
저 남자는 그걸 막기 위해 저기 서 있는 거다.
자신의 몸을 버리며, 자신이 울부짖는 정의를 위해서.
그것이 뒤틀리고, 망가지고, 역겨운 가치라 한들, 그것이 그가 가진 정의이기에.
나는 알 수 있다.
그의 망가진 가치관을.
앞뒤가 맞지 않는 오류투성이의 정의를.
미쳐버린 인간의 말로를.
그런데도 그 안에는 그가 믿어온 것이 있었다.
그가 지켜온 것이 있었다.
그의 정의는 자기 자신도 예외가 아니었기에. 자기 자신도 그 정의에서 벗어난다면 처벌할 대상이기에.
그는 지금 저기에 서 있는 것이다.
그것을 깨달은 탓일까.
많은 기억이 연쇄적으로 떠올랐다.
이해할 수 없던 감정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이해한 순간.
그가 남긴 마지막 문장이 떠올랐다.
영웅의 피로 만든 평화를 수호하기를.
정당치 못한 세상에 계속 도전하기를.
자신의 삶을 숭고하게 여기지 않기를.
행동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지 않기를.
타인의 신념을 접하여 마음에 품기를.
잔혹한 적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기를.
마음속 불타는 욕망에 물들지 않기를.
꺾이지 않는 가치관을 마음에 품기를.
고통받는 약자를 위해 무기를 들기를.
고독한 존재인 딸과 같이 지내주기를.
우리가 가진 비참한 고통을 모르기를.
그 존재가 괴인이라 한들 정의롭기를.
열두 개의 계약.
강제성이 없는 염원.
그의 삶을 잠깐 훑어본 것으로 알 수 있었다.
저 계약은 그의 손에 닿지 못했던 소원이라고.
저 기나긴 문구 중 단 하나도 이루지 못한 남자의 소원.
내가 행복하길 바라며 담은 소원이라고.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의 필요성에 의해 태어났으나. 저주받지 않았다고.
린슈아 님이 웃어주신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축복받으며 태어났으니까.
그것을 알아차린 순간, 저 멀리서 붉은 점이 보였다.
빠르게 커지는 구체.
그 안에 담긴 막대한 이계의 힘.
그리고 그것을 막고자 필사적으로 달려오는 아비의 모습을.
비참하게 울부짖으며 필사적으로 손을 뻗는 아비의 모습을.
닿지 않을 손을 뻗으면서도, 어떻게든 타인을 지키고자 몸을 혹사하는 모습을.
하찮다.
저것은 타인에게 모든 소원을 떠넘긴, 모든 것을 내버린 영웅의 마지막이다.
신념만이 남아, 자신이 망가졌는지도 모르는 빈 껍데기.
그렇기에, 주변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름답지 않은가.
설령 그러한 괴물이라도, 세상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
마음속에 떠올렸다.
내가 가진 영웅의 모습을.
금빛 망치를 든. 작은 키.
오만방자한 얼굴.
여자아이의 모습답지 않게 뒤틀린 표정과 삶에 찌든 무표정.
파란 장갑과 검은 부츠.
푸른색의 코트.
붉은빛의 덧치마.
흰색의 롱 원피스.
흰색 스타킹.
【그게 네가 바라는 모습인가?】
마음속의 그가 낄낄거리며 질문을 던져온다.
담배는 어느새 흰색의 금속 막대로 바뀌어있었다.
그래.
동시에, 나는 장벽을 박차고 솟아올랐다.
검은 원피스가 변해갔다.
그 색은 검정 그대로였으나, 누군가와 똑 닮은 마법소녀의 옷으로.
손에 든 빠루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까득. 까드득. 철커덕. 철컥.
철이 뒤틀리는 소리에서. 기계가 철컥거리는 소리로.
손에서 무게감이 느껴졌다.
누군가의 손에 들린 것과 똑 닮은 검붉은 망치.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내 감정을.
눈앞의 붉은 구체를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