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500)
마법소녀 아저씨 499화(500/671)
499. 공황
식은땀과 함께 의식을 되찾았다.
삐익거리는 시끄러운 소리가 귓가에 울리지만, 그런 소리는 내 신경을 자극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신경을 자극하곤 있지만.
그 정도의 자극은 지금 내 정신에 어떤 파문도 일으키지 못한다.
이 감정을 공포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지만.
그것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무력감과 상실감.
그리고, 그와 동시에.
모든 것이 충족되는 충족감이라는, 다른 감정과 정반대되는 감정이 내 안에 자리하고 있다.
언젠가 올 바다.
그것을 본 것이 처음은 아니다.
푸름을 느낀 것도 처음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때보다 더한, 끝없이 아득한 감정이 내 안에 자리했다.
처음의 만남 때도 난 그것 앞에서 무력했다.
내가 잃어버렸던 것들을 보여주던 바다는 날 절망으로 몰아넣었고, 날 삼키려 하였다.
그 당시의 기억은 그릭스의 간섭이 없었다면 그대로 파묻힐 만큼 고통스러운 기억이지만.
지금만큼 충격적이진 않았다.
어째서일까.
계속해서 수많은 허상을.
어둠 속에서 지금도 내게 소리치는, 과거의 환각과 환청을.
시체로 이루어진 대지 위에 홀로 선 나의 기억을.
모두 이겨 내며 서 있는 나이건만.
지금의 공황은 견딜 수가 없다.
삐익거리는 경고음도, 의사를 기다려 달라는 안내음도.
반복되는 호출음도 내게 무엇 하나 어떤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그저, 나는 바람을 쐬고 싶다.
답답한 마음을 자연의 공기로 풀어내듯.
그저 본능적으로 그러한, 효과가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행하고 싶은 일만을 갈망하며 문을 넘는다.
가로막는 유리 벽도, 차단하는 에어록도.
열리는 속도를 기다리지 못해 강제로 뒤틀어 열어 내며.
이 감정을 벗겨 낼 무언가를 찾아 병실을 떠난다.
어째서 이런 것일까.
무엇이 다른 것일까.
다른 점은, 알고 있다.
단지, 그것에 납득하지 못했을 뿐.
본능이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는 이성에게 말을 자아내어 이유를 전달해 온다.
육체 없이, 영혼으로서 바다를 보았다라는 이유를.
대체 무슨 차이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이유를.
그것이 그렇게 강렬한 것인가.
육체의 존재 유무가, 그 바다에게 있어 그리도 중요한 것인가.
알 수 없다.
언젠가 올 바다가 무엇인지, 정확히 어떤 것인지.
그 푸른 바다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계 가장 안쪽에 자리한 장소.
우리가 버려온 것들을 아무런 의미 없이 돌려주는 장소.
인과와 시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것이 있는 장소.
모든 지성체의 심층 의식.
그렇지만, 그렇게 인지해도.
푸른 바다에 접함으로써 얻는 이 감정을 이해할 수 없다.
공허하면서도 충실한, 이 감정을.
떨쳐 내기 위해 복도를 내달려도, 달라붙는 이 느낌을.
많은 일이 있었음에도, 나는 아직 무력하다.
수많은 사람이 스쳐 지나가지만, 내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
누군가가 날 알아보고 손을 뻗지만.
난 반응 없이 계속 내달렸다.
들어찬 감정이 사라지지 않기에.
충족감이 사라지지 않기에.
이 감정을 벗어낼 장소.
이 감정을 벗어낼 사건.
이 감정을 벗어낼 기억.
찾을 수 없는 것을 찾으며 병원을 내달린다.
병원 밖으로는 나가지 않는다.
사고 능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기에.
밖에 어떤 이들이 있는지 잘 알고 있기에.
서로를 비난하는 민중 무리.
거기에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무언가의 시작이 될 법한 건덕지를 줄 순 없다.
그것을 알기에 병원을 내달린다.
나를 알아보며 내질러지는 번개도, 마법도, 기술도, 목소리도, 고함도, 초능력도, 도구도, 이름도 무시하며.
어디로 가야 할까.
어디로 가야 찾을 수 있을까.
이런 경험이 없어 모르겠다.
분노가 아닌 감정을 품은 채, 인내하고 삭히지 않으며 표출하는 것은.
그렇게 나를 부르는 모든 것을 떨쳐 내고 도착한 장소는.
잠긴 문을 박살 내고 도착한 옥상이었다.
본디 산책 용도로 열려있어야 할 문은, 지금은 사용 시간이 아니라는 듯 잠겨 있었기에.
그렇지만, 사람이 아닌 대상을 고려할 만큼 내 상태가 멀쩡하지 않았기에.
복도를 내달리며 발생할 충돌은 모두 피했지만, 지금 발생한 기물파손은 사람과 관계없었기에.
어두운 밤이 내려앉아, 조명이 모두 꺼진 옥상 정원에 도착하였다.
찬 바람이 분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검은 하늘엔 별이 보이지 않는다.
도심의 빛에 의해 가로막혀 있다.
보랏빛 구름이 천천히 움직인다.
도심의 빛과 밤의 어둠을 받아, 연한 보라색으로 보이는 구름이.
저 너머에, 푸름은, 언젠가 올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저기 있음을 인지했다.
보이지 않더라도, 언젠가 올 바다는.
그 이름대로 언젠가 우리에게 도달할 것을 알기에.
우리는 바다로 향한다.
바다는 우리에게 온다.
바다는 우리의 기원이며.
바다는 우리가 만들기에.
언젠가 모든 것을 삼켜 푸르게 돌아갈 바다는.
모든 것을 돌려주기 위해 저 너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 끝없는 대해를 늘리며 우리에게 닿도록.
우리 모두에게 태어난 바다로 돌아올 것을 종용하며.
이것은 얻어 낸 지식이 아니다.
처음부터 알고 있는 것이다.
사람, 아니, 지성체로 태어난 이상, 벗어날 수 없는 것.
모든 지성 있는 존재의 심층 의식.
그 아래에 자리한 바다는 우리 안에 잠든 것이기에.
우리가 태어난 장소기에.
우리는 알고자 하면 그것에 대해 알 수 있고, 떠올릴 수 있다.
그렇지만, 이해할 순 없다.
바다의 존재를.
바다의 이유를.
바다의 가치를.
바다가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은, 푸른 종이에 적힌 검은 글자일 뿐.
거기 적힌 것은 광인의 헛소리다.
가끔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이 존재하지만, 대부분은 이해할 수 없는.
‘…그 하늘이자 바다는 파랗고 고요하지만, 너무나도 고요하기에 개인의 단속적인 지성으로서 존재하며, 인격신의 가치는 세상의 점유를 이성으로서 자리하고 시간과 공간의 쐐기로서 인지한다. 이는 곧 속단의 시작이자 종언이므로 무성신의 구조는 세상 구성의 단언이며 파멸을 부르는 공놀이이자, 모두가 열광하는 낭비로서 가치를 지니기에. 지성은 무의미를 의미로 바꾸는 자이다. 세상은 그것을 위해 존재하며, 우리는 그 가치에서 낭비를 진행하여 세계는 하나로….’
시끄러워.
알려 주지 마.
뭐라고 하는 거야.
너희를 부르지 않았어.
나를 잠식하지 마.
부르지 마.
호출하지 마.
귀를 막고 눈을 감으며.
내 안에서 솟아오르는 푸름을 거부한다.
그렇지만, 푸른 거품은 구멍에서 솟아오른다.
현실의 세계가 아닌, 내 정신에.
잊은 것을 돌려주며.
잠긴 것을 풀어주며.
내가 잃어버린 것을 속삭인다.
친우의 죽음을.
전쟁의 처절함을.
내 손으로 죽인 동료를.
정의를 위해 감내한 희생을.
손에 묻은 피를.
지키지 못한 이들의 얼굴을.
살려달라던 이들의 이름을.
김동훈의, 죽음을.
다시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날 망가트린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 위해.
타인과 걸어가기 위해.
신념을 유지시키기 위해.
마음 한구석에 묻어두고, 계속해서 망각하려던 것을.
잃어버린 것을 돌려준다.
세상을 향한 절망이 피어난다.
원한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분노가 잠식한다.
죽음과 절규를 누군가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는다.
잘못된 것은 모든 것이며.
그렇기에 모든 것에는 가치가 없다.
세상은 언젠가 돌아가야 할 장소로 돌아가야만.
지성은 자신의 죄를 인지하고, 정면으로 마주 보아야만.
변명이나 체념, 합리, 전치, 주지로부터 벗어나 인정을 강제시킨다.
자신이 자신으로 남기 위해 버린 것은, 바다는 품고 있기에.
죄를 선악의 유무 없이, 잃어버린 것을 돌려주기 위해.
그리함으로써, 그들은 연결된다.
진실한 대화를 통해.
사상의 이해를 통해.
모든 것은 바다로 돌아간다.
그렇기에. 바다는, 깊고도 푸르….
“꺼져.”
머리를 양손으로 짓누른다.
바다를 거부한다.
인지함으로써 지성을 망가트리는.
언젠가 올 바다를.
우리 안에 이런 것이 존재함에도.
그들을 알기 전까지 이것들을 인지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이건 위험하다.
내가 바라본 것은 표층뿐.
코발트 빛으로 빛나는 표면 뿐.
그것조차 이러할진대.
푸름조차 사라질 심연.
검은 어둠으로 가득한 깊숙한 장소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빛무리가 영혼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향해 가는 것일까.
이 속삭임에 넘어간 이들은.
푸른 바다로 향해.
무엇이 되는 것일까.
속삭임을, 푸름을, 거부한다.
원초의 하나를.
우리 아래 잠긴 연결을.
바다의 부름이 영혼을 부르는 것이라면.
우리를 이루는 육체의 유무는, 죽음을 가르는 것일까.
그렇기에 바다의 속삭임이 내 귀에 닿은 것일까.
칼라베라의 죽음이 이런 것일까.
그렇기에, 죽음으로부터 돌아오는 이들이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죽음은, 대체.
‘죽기 싫어.’
소리가 울린다.
내가 진심으로, 아마 내뱉은 소리.
수십 년간 억눌렀던 목소리.
그것을 표출하자.
잿빛 종말이 피어난다.
붉은 불이 눈앞에 일렁인다.
노란 가면의 목소리가 날 부른다.
그리고, 푸름이 피어오른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죽음 너머.
알지 못해 감춰두었던 공포가.
날 그 너머로 이끈다.
죽기 싫다.
그렇지만, 그 너머를 알고 싶다.
그것은 자기 파멸의 시작.
푸른 바다가 속삭인다.
끝이 아님을.
바다의 존재를.
소리를 지르고 머리를 짓누르며 억눌렀던, 언젠가 올 너머의 부름이.
다시 시작된다.
아하하하하.
그것을 견디며, 그저 웃는다.
세상엔 알아서는 안 될 지식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이것을 견디는 이가 존재한다고 믿을 수 없었기에.
한 번 구멍이 생긴 댐은, 이제 그 푸름을 막지 못하고 흩뿌리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위에 덧칠하며 댐이 무너지는 것을 막을 뿐.
이제, 돌이킬 수 없다.
그렇기에, 자신이 인지하면 적이 사라진다고 믿는 지성 없는 들짐승처럼, 대지에 머리를 박고 하늘로부터 시선을 돌린다.
절규로 머리를 뒤흔드는 속삭임을 막으며.
그것이 얼마나 지났을까.
두개골을 흔들던 것은 푸른 속삭임과 고통 어린 내 절규뿐이었건만.
날 살피려던, 수많은 이들의 목소리는 내 귀를 뚫지 못하였건만.
“괜찮으세용?”
어딘가 순진한 듯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그것은 너무나도 익숙했기에.
시선을 들었다.
거기엔, 흰 패럿이 있었다.
언제나처럼, 웃는 이가.
“…바다가 왔어.”
그에 나는 답한다.
할 수 있는 말을.
“바다용?”
아무것도 모르는, 그럼으로써 행복한 이는 무구하게 그리 답해 주었다.
“…푸른 바다. 두바이에서, 박사들이 소환한….”
분명, 운호도 거기에 휘말렸었다.
“아. 그 푸른 거품 말인가용.”
운호는 알았다는 듯 끄덕인다.
순진한 말이 내 사이에 파고든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진다.
바다의 속삭임은 끊기지 않지만, 누군가의 목소리는 의식을 돌릴 수 있게 해주었기에.
“푸른 거품이 솟아나고, 거기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엄마에, 제가 잃은 동료들을 만났었죵. 꿈이라시길래 꿈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네용.”
운호는 신기하다는 듯 그에 하늘을 바라보았다.
땅에 머리를 박은 채, 곁눈질로 운호를 보는 나와 달리.
“지금 그걸 겪고 계신 건가용?”
“….”
답하지 않는다.
이것을, 그 현상과 같다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에.
조금 더 지독한 것인지, 아니면, 근본적으로 똑같은 것인지.
그렇게 내가 말을 아끼는 사이.
“영차.”
운호는 아무 말 없이, 내 어깨 위에 올라타 몸을 흔들었다.
그것이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어.
“뭐 하냐.”
나는 그리 되물었고.
“힘내시라구용.”
운호는 태평스럽게 말해 왔다.
마치 별것 아니라는 듯.
그 어이없는 답에, 나는 계속되는 속삭임으로부터 완전히 의식을 돌릴 만큼 정신이 아득해지고 말았고.
당황의 침묵 사이로, 운호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과거의 재현이죵? 전 아무것도 모르니까 아무것도 못 해드려요. 그렇지만, 한가지 기억나는 게 있어용.”
운호는, 자신의 말에 리듬을 맞춰 몸을 흔들며 말을 이어 나간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엄마도, 이젠 보지 못하는 동료들도 모두 다 절 원망했어용. 차갑게, 그저 차갑게용.”
그리 말하는 운호는 춤을 멈추고 팔을 뻗어 내 몸 위에 드러누웠다.
“그런데, 그 사이로 따듯한 감촉이 있어 과거에게 넘어가지 않을 수 있었어용. 그게 뭔가 했는데, 일어나고 보니 하람 님 손이었죵.”
온기를 전하려는 듯, 살이 닿는 면적을 늘리며.
“과거나 내면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건 자신의 힘뿐이에용. 뭐라 말해도 그 사람이 품은 것은 그 사람만 알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운호 잠시 말을 이었다.
“옆에 있어 드릴 순 있죵. 파트너니까용.”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
밤은 더 이상 차갑지 않았고.
속삭임은 들려오지 않았다.
잠깐의 꿈이었던 것처럼.
평범한 환청처럼.
언제나의 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