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508)
마법소녀 아저씨 507화(508/671)
507. 믿음으로서.
“오늘도 활기차게!”
하나!
둘!
“크림슨★해머!”
그리 말한 익숙한 얼굴의 은발적안 여자아이는 작은 망치를 휘두르며 기묘한 포즈를 취하기 시작했다.
다리 하나를 곧게 세운 채, 나머지 다리 하나를 높게 치켜올리며 허리를 뒤로 굽힌 뒤, 고개를 45도 각도로 치켜올리며 윙크를 했고.
이어 감은 눈에서 튀어나오는 은빛 별을 V자 사인을 그린 손가락으로 잡아채며 목소리를 높였다.
“키랏~★”
그와 동시에,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별들이 등 뒤에 흩뿌려졌으니.
그녀의 행동은 명백하게 자신을 찍는 카메라를 의식한 것이었으나, 자신이 행동하며 발생하는 부차적인 피해는 고려하고 있지 않았다.
예를 들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어딘가에서 생겨나는 은빛 별.
평범한 마법소녀라면 그런 별은 단순한 치장용 마법인 것이 대부분이다. 환상 계통 마법이나, 허공에 홀로그램을 띄우는 편의성 마법.
그렇지만, 그녀는 다르다.
그녀는 그러한 마법을 보유하지 않았기에, 그녀가 내뿜는 은빛 별은 물리적인 실체를 지닌 물체이다.
잔뜩 가시가 돋아난 마름쇠, 혹은 손으로 던져 상대방에게 큰 상처를 입히는 용도의 도구.
그러한 금속 마름쇠를 대량으로 소환해 폭발과 함께 주변에 흩뿌리고 있으니, 그녀 주변의 구조물은 클레이모어에 직격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만신창이가 되어있다.
물론, 당사자도 그 사실을 알기에 필사적인 카메라 워크로 그런 파괴 행동을 숨기지만 말이다.
비록 그녀의 팬들은 그런 사실을 잘 알고, 그런 것을 숨기는 크림슨★해머가 귀엽다고 말하는 판이지만.
뭐, 미친 마법소녀엔 미친 팬들이 붙기 마련 아니겠는가.
“자 그럼! 오늘도 처음 방송을 보는 어린이들을 위해 날 소개할게!”
참고로 말하지만, 이 방송의 시청자는 65%가 성인 남성이다.
성인 인증을 뚫고 들어온 괴짜 어린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 연령층이라 할 순 없을 것이다.
“내 이름은 크림슨★해머! 영원한 ■■살 마법소녀!”
그리 말하는 그녀는 또다시 윙크함과 동시에, 눈에서 시작된 별 모양 클레이모어로 애꿎은 주변 나무 하나의 수명을 종료시켰고.
“이 아이는 운호! 내 파트너지!”
“어…. 오늘도 잘 부탁드려용.”
카메라 구석에서 나타난,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흰색 페럿은 묘하게 굳은 표정으로 크림슨★해머의 어깨에 올라탔다.
“내 가장 친한 친구!”
그녀는 페럿을 볼에 비비었고.
이어, 영상이 시작되었다.
몇 번이고 우려먹어, 이미 이 미친 방송의 열혈 시청자들은 대사 하나하나 따라 말할 수 있는 영상이.
“내 이름은 크림슨★해머! 마법 왕국의 마스코트에게 선택받아 마법소녀가 된, 평범한 중학생 남자아이!”
오프닝이 흘러나오는 동안 카메라는 정지되지만, 영상이 말하는 주체.
마법소녀 크림슨★해머이자 이하람인 그녀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계속하였다.
부푼 드레스가 헝클어진 장소는 없는지, 프릴이 뜯겨나가거나 실이 풀린 장소는 없는지.
“나는 모두의 소중한 것을 먹는 악의 무리와 싸우고 있어! 사랑. 소망. 꿈. 희망. 미래. 인연. 사람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것들 말이야!”
망치를 변환시켜 거울을 만든 그녀는, 운호의 털에 붙은 먼지를 떼어내며, 머리카락을 손질하였다.
격렬한 오프닝 인사 덕에, 완벽하게 세팅된 자신의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삐져나온 자국을 발견했기에.
“…오랜 시간 싸워 왔지만, 아직 악의 무리는 지치지 않고 우리의 소중한 것을 노리고 있어. 그래서 나도 계속 싸워 나가는 거야. 지금의 나는 옛 모습도 잃었고, 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곧 영상이 끝난다.
그녀 안에 자리 잡은 프로 의식은 그녀가 영상을 보고 있지 않음에도 끝나는 시간을 인지하게 하였고.
마지막으로 한번 더 옷차림을 점검하며, 자신의 아이덴티티가 된, 하나의 포즈를 준비했다.
“그래도 나는 싸워 나갈 거야! 사람들의 꿈과 희망! 모두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서!”
반복된 오프닝 영상이 끝나고.
메인 카메라로 돌아온 장소에는 그녀가 서 있었다.
조금 전까지의 그녀와는 다른, 역전의 용사란 분위기를 풍기는 크림슨★해머가.
비록 목에 묶인 긴 분홍빛 나비넥타이나, 머리에 달린 큰 분홍 리본.
그리고, 눈가를 장식한 반짝이면서도 연한 펄이 그녀의 외모에 여성스러움을 덧붙이지만.
어깨에 망치를 짊어지고 어딘가를 쏘아보는 그녀에게선, 역전의 용사다운 분위기가 피어 나왔다.
치장된 외모에서는 도저히 연상되지 않는, 날카로운 눈빛과 함께.
그녀를 찍던, 마법으로 움직이는 카메라가 돌아간다.
마법왕국에서 크림슨★해머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 준 카메라는 그녀와 그녀의 파트너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영상을 찍어 주었고.
그녀가 바라보는 방향에 존재하는 촉수를 프레임 안에 잡았으니.
도심 한복판, 민간인이 대피한 빌딩의 숲에는 빌딩으로 착각할 크기의 검푸른 괴물이 자리해 있었다.
음란함보다는, 본능적인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외형의 촉수.
말미잘처럼 생긴 괴물은 굵은 하나의 촉수를 몸채로 삼고, 굵기도 길이도 규칙적이지 않은 촉수를 사방으로 흩뿌리고 있었으니.
도심에서 사람들이 모두 대피했다곤 하지만, 움직이며 주변 건물을 박살 내는 괴물은 자연스럽게 끔찍한 상황을 연상하게 하였다.
거대한 괴물이 이동하며 촉수를 휘두르자 빌딩 하나가 쪼개져 무너지고, 몸체의 말단에 달린 자그만 촉수들이 꿈틀거리며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아스팔트 도로에 금이 생기며 지반침식이 일어난다.
거대한 힘을 가진 괴물이 보여주는 물리적인 현상은, 자연스레 시청자들의 공포를 불러일으켰지만.
그 누구도 절망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공포에 굴복하지 않는다.
그녀가 여기 있으니까.
쾅.
비현실적인 소리와 함께 카메라의 시야가 빠르게 회전한다.
별을 흩뿌리며 대지를 질주하는 크림슨★해머가 프레임에 잡힌다.
몸에 매달린 분홍색의 끈을 사방으로 흩날리며, 지나가 자리에 은빛 별을 흩뿌리는 그녀는, 하나의 유성처럼 보인다.
그것은, 하나의 전설로 남은 모습.
모두가 절망에 빠진 순간, 소원을 들어주러 날아오는 별똥별.
그것은 하늘을 가로지르지도, 모든 소원을 들어주지도 않지만.
한 가지 소원을 보장하였다.
대지를 가르며 날아오는 분홍빛의 별똥별은,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원을 이뤄준다고.
그런 전장의 전설이, 대지를 가른다.
“발판 부탁해!”
“알았어용!”
마법으로 붙잡은 그녀와 그녀 파트너의 목소리가 허공을 가르고.
푸른 마법진으로 이루어진 경사로를 따라, 분홍빛의 유성은 하늘로 솟구친다.
하늘에서 태어나 땅으로 사라지는 별똥별과 달리.
유성은 땅에서 태어나 하늘로 솟아올랐고.
푸른 경사로의 끝에서, 그녀는 날아올랐다.
망치를 치켜들며, 발판을 박차고.
양손으로 붙잡은 채, 휘둘러지는 궤도로 은빛 별을 뿜는 망치는.
공격을 받는 대상, 괴물의 크기와 비교해 턱없이 작아 보였으나.
방송을 보는 모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의 승리를, 그리고 희망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쾅.
망치가 촉수에 내리박혔다.
지반이 무너진다.
언제까지고 그 자리에 남아 인류를 위협할 것 같던 거대한 촉수, 괴물이자 기둥은, 무너진 지반과 함께 땅속으로 가라앉았고.
망치에 타격당해 박살 난 살점이 사방으로 비산한다.
그것은, 크림슨★해머가 주장하는 주 연령층.
꿈과 희망이 넘칠 시기인 어린아이들이 보기에는 그리 좋지 않은 장면임이 분명하지만.
다행히도 그러한 장면은, 마법왕국산 카메라가 실시간으로 수정해 핑크빛 별로 후처리를 해주었다.
그렇지만,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세계의 위협, 크림슨★해머의 대적자, 모든 것을 삼키는 공허의 파편은 강인하기에.
그렇기에, 그녀는 숨을 들이켰다.부디, 이것으로 끝나기를 빌며.
“공허에서 탄생한, 멈추지 않는 허기의 파편이여.”
영창으로 망치가 붉게 달아오른다.
“나, 파괴의 주인이 명하노니.”
휘릭.
푸른 발판에 올라탄 그녀는 가볍게 망치를 회전시키며 원을 그렸고.
“네가 태어난, 얼굴 없는 주인에게 돌아가라!”
퉁.
가볍게 회전시킨 망치가 적의 머리에 닿고.
그녀가 외친다.
그녀의 필살기를.
“저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모두의 희망을. 여기에!”
찰칵.
망치가 열리고.
“스타★디스트로이어!”
피처럼 붉은 레이저가 쏘아졌다.
소리 한 점 없는, 순수한 에너지가.
그것은 망치 아래 자리한 거대한 존재를 갉아나갔고….
* * *
“이 씨바아아알!”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다.
내가 일어난 장소는 침대 위였지만, 식은땀은 멈추지 않았고.
그렇게 발작하길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정신이 안정된 나는 주변을 살폈다.
핑크로 장식된 이상한 방이 아닌, 평범한 병실.
머리카락에 이상한 장식도 없고, 여성스러운 충동이 일지도 않는다.
꿈이었나? 돌아왔나?
그리 생각하고 싶지만, 이상하리만큼 꿈의 기억이 지워지질 않는다.
꿈이라고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생생한 기억.
지금의 나로서는 그것이 꿈이라고 부정할 수 없는, 하나의 현실.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
현실의 나는 그 몰골을 하고 있고, 이 침대 위가 꿈일지도 모른다.
너무나도 막대한 부하를 받은 정신이, 도피처를 찾아 만들어 낸 꿈.
그렇기에 꿈이자 현실인 침대에서 벗어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무엇이 현실이고 꿈인지 구분할 한 걸음을 내딛지도 못하는 사이.
찰칵.
“…벌써 일어나셨네요?”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옥시모론이 나타났다.
어두운 병실에서 쏟아지는 복도의 빛을 역광으로 받으며 나타난 그녀.
그것은 지금의 나에게 저승사자나 다름없었으니.
“…옥시모론.”
“흠. 아직 다 안 나으셨는데. 용량을 잘못 계산했나.”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내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옥시모론은 품 안에서 약이 든 주사기를 꺼내었다.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저주의 약을.
공포가 되살아난다.
꿈이 아니었다.
핑크빛 역사는 현실이며, 절망은 실존하는 기억이다.
그렇기에.
“안 맞으어어어어엏아.”
나는 발광하며 침대에서 튀어 오른 후, 다급히 도망치려 했으나.
“아직 안 나았다고 했죠? 얌전히 약 맞으세요.”
나와 달리 너무나도 담담한 목소리의 옥시모론은 가죽 벨트를 내뽑으며 나를 구속했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몸에 힘을 불어넣고, 벨트를 끊으려 노력한다.
비록, 지금 하는 일이 헛된 일이란 사실을 알아도, 포기란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기다리는 절망은, 앞으로 벌어질 것을 알고 있는 절망은, 각오한다 한들 행복해질 수 없는 것이기에.
그렇기에 발버둥 치며, 타인의 손이 아닌 내 발로 운명을 정하고자 절망에 맞서려 노력하였다.
몸이 회복되었단 말 자체는 사실인지, 벨트 몇 개가 끊어져 나간다.
벨트를 끊을 수 있다. 그 사실에 희망을 품고 더욱 발버둥 쳤지만.
“어휴. 이제야 얌전해지셨네.”
결국, 운명은 날 배신했다.
저주하리라 운명이여.
이것이 세상이 내게 내린 답이라면 난 세상을 저주하리라.
신을, 인과를 부정하여 하늘에 서리라.
“…모조리 죽일 것이다…. 모조리…. 모두 저주받을 것이다…. 내 세계에서 태어나는 모든 생명은 남녀를 불문하고 은발적안에 국민학생 이상으로 성장하지 않는 저주받은 세계이리라…. 모두가 함께 저주받아 고통받으리라…. 절망을 나누리라….”
중얼중얼중얼.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저주를 퍼부으며, 세계를 부정했으나.
“대체 왜 그리 싫어하시는지 모르겠네. 겪어보셨으니 아실 테지만, 별일 없었잖아요.”
“별일 없었다고?”
옥시모론의 말이 내 안에서 저주로서 숙성되던 분노를 폭발시켰다.
“야! 내가 어? 분홍색으로 치장하고 발랄하게 뛰어다니면서 결정대사도 내뱉고. 춤도 추고. 아이돌도 하고, 코코아를 마시면서 앗뜨거도 하고, 운호랑 얼굴을 비비고, 여아용 신발 광고도 찍고, 어? 야 내가 어?”
더 많은 치욕을 고발해주고 싶지만, 그러한 기억을 꺼내는 것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웠기에.
뒤로 갈수록 내 생각에도 의미불명이 되어 가는 분노를 퍼붓던 찰나.
“계속 잠들어 계셨는데 무슨 말씀이시지. 정말로 심각한 악몽을 꾸신 모양이네요….”
여전히 담담한 옥시모론은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는 어투와 목소리로 내 말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그 말은 내 감각으로도 거짓을 잡아낼 수 없었으니.
“…으잉?”
“설마, 제가 진짜로 그런 약을 만들어서 아저씨한테 투여할 거라고 생각하셨어요? 그럴 리 없잖아요. 싫어하시는 거 뻔히 아는데. 그냥 이참에 정신 좀 차리란 거짓말이죠. 아, 마법사 학회에서 제공했다는 건 사실인데 무시했어요.”
“…으엉?”
에? 뭐라꼬?
“…그. 그럼 그 약은?”
“평범하게 새로 개발한 고속재생제인데요. 부작용으로 어마어마한 고통과 감각 둔화, 영구적인 세포 수명 단축이 있어서 재생능력자나 아저씨 정도밖에 못 쓰지만.”
우에?
그럼 내 그 기억은?
정말로 그냥 악몽이라고? 에? 정말로?
“아, 물론 그런 약을 못 만드는 건 아닌데, 다시 말하지만, 제가 아저씨가 진짜로 싫어하는 일을 할 리는 없잖아요.”
“아니 잠깐. 만들 수 있다는 건, 만든 적이 있긴….”
“예, 약 들어갑니다.”
푹.
그런 소리가 들릴 법한 감각과 함께, 찐득한 무언가가 목을 타고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검게 물드는 의식 너머로 마지막 생각을 하였으니.
꿈…. 맞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