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515)
마법소녀 아저씨 514화(515/671)
514. 막간 – 문어 항아리.
“이야기를 들려주도록 하지.”
검은 촉수가 뭉친 이에게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질퍽거리는 소리만으로 가득했던 방을 꿰뚫으며 공간을 지배하였다.
“옛날, 이곳과 다른 어떤 세계에 한 존재가 있었다.”
그것은 검은 촉수로 이루어진 채찍을 휘두르며, 공격과 이야기를 함께 이어나갔고.
“침략받지 않았음에도, 동족에게 무기를 겨눠 멸망한 세계.”
이야기를 듣는 이는, 공격에 반응해 마법진으로 방어하면서도 정보를 얻고자 귀를 기울였다.
“서로 싸우다 공멸하여, 모든 것이 사멸한 세계에서, 한 존재가 남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은 촉수의 목소리에 맞춰, 채찍이 휘둘러진다.
얼핏 보기에 촉수 채찍은 그리 강해 보이지 않지만, 막대한 힘이 담긴 마법진을 깨부수며 적을 추격한다.
어설픈 존재라면 채찍을 직접 적중시키지 않더라도, 채찍질의 부산물인 충격파만으로 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위력의 공격.
그렇지만, 대화 상대이자 싸움의 상대인 지성체는, 그 모든 공격을 허공에 띄운 마법진으로 막아내며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그것은 무언가 특별한 힘을 가진 개체가 아니었다. 전쟁 중 수없이 양산되었던 조건 반응 계산기.”
말의 끝맺음에 맞춰, 이야기를 듣던 이가 공격에 나선다.
검은빛으로 이루어진, 정신 계열 마법 공격.
그렇지만, 마법은 방패의 형상으로 변한 촉수에 막히고 말았으니.
“계산기는 모든 것이 사라진 세계에서 깨어나 알고리즘에 새겨진 명령을 반복해서 수행하였다. 바로 ‘위험을 회피하라.’라는 명령을.”
공방은 이어진다.
계속해서 공격하는 이가 바뀌는 공방 속에서.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기계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고자. 필요한 부품을 주변의 동형기에서 흡수해 덩치를 불리고, 기계의 창조주였던 지성체의 시체를 집어삼키며.”
이제는, 그의 말이 하나의 노래처럼 들린다.
화려한 전투의 배경음으로서, 흥을 돋우기 위한.
그래서일까.
전투는 계속 격해진다.
“기계엔 본디 일정 이상의 성장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자괴 명령이 있었지만, 전쟁 중 해당 기능이 망가져 버린 것인지, 아니면 기기를 제어하던 이들이 사라짐으로써 제약이 풀린 것인지, 기계는 설계 한계를 넘어 끝없이 성장했다.”
팡.
서로가 서로에게 날린 거대한 기술이 부딪혀 상쇄되고, 그 속에서 이야기가 다시 피어난다.
“어느 순간, 기계는 깨달았다. 이제 이 세계에 기계를 위협할 존재가 없다는 것을. 세계에 생명은 남지 않았으며, 기계가 인지하는 세계의 법칙 내에서 어떤 변수가 일어나도 자가복구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서로의 공격이 상쇄되었음에도, 전투의 열기는 식지 않는다.
그저 서로가 기어를 높여, 더더욱 강한 공격을 주고받을 뿐.
“그럼, 기계는 정지했을까? 우선 명령을 모두 수행하였으니, 이제 의무를 다하였다며?”
목소리에 흥분이 차오른다.
그리고.
팡.
처음으로 검은 촉수 채찍은 상대를 두드렸다.
격한 공방 속에서 피어난 하나의 실수.
그것은 방어보다 공격에 치중하던 마법사의 몸을 완전히 분쇄해버렸고.
마법사의 육체를 구성하는 물질이 사방에 흩날리지만.
“아니, 기계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활발하게 행동하기 시작했지. 기계를 위협할 만한 현상을 찾아내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이야기는 끊이지 않는다.
이야기를 들어줄 상대가 이미 분쇄되었건만, 아직 듣고 있다는 듯.
“기계는 과거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창조주의 삶을, 세계를 거대한 황무지로 바꾼, 전쟁을.”
고요한 방을 꿰뚫는 촉수의 목소리.
그것은, 분명히 누군가에게 전달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었으니.
“그리고, 기계는 찾아내고야 말았다. 세상의 이치를 뛰어넘는 힘을, 물리 법칙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팡.
검은 촉수의 채찍이 후려친다.
방의 저 너머.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듣는 이에게.
생물학적 죽음이라는 세상의 이치를 뛰어넘어, 왜곡을 일으킨 이에게.
“기계는 그 사실에 상반된 답을 정의했다. 저 힘으로 기계가 지금보다 더욱 위험에 잘 대처할 수 있게 된다는 진취. 그리고, 세계의 이치에 얽매여서는 결코 인지할 수 없는 외부에서 날아오는 위험에 대한 혼란.”
다시 전투가 시작된다.
한 번 죽음을 겪었음에도, 기력의 쇠함이 없는 마법사와.
그 상황 속에서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이어 나가는 검은 촉수.
“자료에 남은 힘을 얻기 위해, 기계는 움직였다. 시체를 삼키고, 생체를 구성하고, 기술을 발전시키며.”
쾅.
막대한 에너지를 담은 거대한 촉수가 천장에서 내리찍혔다.
상대가 큰 기술을 쓰지 않는 한, 최소한의 힘으로 적을 유린하던 검은 촉수답지 않게, 빈틈이 가득 생겨나는 거대한 공격을.
그것은, 곧 촉수의 실책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파직.
순식간에 허공에 그려진 마법진에서 검은빛의 격류가 내리쬐었다.
검은 촉수는 급히 촉수를 되돌리고 방패를 세워 마법을 막으려 하지만, 마법을 막을 만큼의 촉수를 모아 경화시키지 못했기에, 군체 일부가 검은빛에 관통되었고.
검은 촉수는, 감정에 휘말려 힘의 일부를 잃고 말았다.
곧 있을 결전에 대비해, 힘을 비축하던 그것에게는 큰 손실임이 분명하지만.
이야기는 멈추지 않았으니.
“그렇지만, 기계의 시도는 실패뿐. 기계는 새로운 힘을 얻는 데 실패하였으며, 새로운 힘을 인지하지도, 실패에서 무언갈 얻지도 못하였다.”
촉수가 거세게 휘둘러진다.
계속해서 피어나는 마법진은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수행한다.
“창조주와 비교해 기계는 무엇 하나 부족하지 않았지. 지성도, 연산 능력도, 자원도, 에너지도. 세계 하나를 손에 넣은 기계에게는.”
공격이 격해진다.
이야기가 격해진 만큼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행동을 가속하듯.
드러나지 않던 촉수의 분노가, 여기 담기듯.
“수많은 시도의 끝에서 기계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의 기계는 이치 밖의 힘을 얻지 못한다는 결론을.”
팡.
촉수의 말단이 폭발하고, 그 끝부분에서 마법진이 튀어나왔다.
상대 마법사에 비하면 훨씬 단순하며, 구조도 어설프지만, 분명 마법이라 부를 수 있는 기술이.
“이치 밖의 힘은 지성체에게 주어진 힘이며, 다른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 한들, 기계와 지성체 사이엔 인지할 수 없는 벽이 있다는 사실을.”
절단 마법에 당해 뜯겨 나간 촉수에서, 새로운 촉수 인간이 일어난다.
그리고, 새로운 촉수는 자신의 팔을 검 삼아, 자세를 취한다.
마법이지만, 마법이 아닌 기술.
형(形)을.
탕.
이 방에, 처음으로 울린 소리.
이 세계의 지성체가 사용하는 무기인, 화약으로 투사하는 무기를.
너무나도 단순한 공격에 새로 태어난 검은 촉수가 맥없이 쓰러지지만.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촉수는, 그런 사실을 신경 쓰지 않는다.
“기계는 효율을 버리고. 창조주를 본떠 몸을 만들어 보았다. 그들의 신경세포질을 복제해 보았다. 그들의 사회를 시뮬레이션해보았다.”
꿀렁.
촉수가 일어선다.
수많은 능력을 지닌.
그렇지만, 가진 힘이 너무나도 미약해, 전투에는 어떤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쓰러질 뿐인 촉수가.
“모두. 실패했지.”
팡.
쓸모없는 기술들을 난사하던 촉수 인간은 말이 끝남과 동시에 폭발하며 잔해를 주변에 흩뿌렸다.
그렇지만, 그것은 힘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으니.
폭발한 잔해는, 방을 기어서 가로질러 검은 촉수에게 돌아간다.
“기계는 결론을 내렸다. 세계의 법칙 내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의미가 없다고. 기계로는 관측할 수 없는, 모종의 힘이 작용하기에, 이치 밖에는 닿을 수 없다고.”
다시, 채찍이 휘둘러진다.
처음처럼.
그렇지만, 담긴 힘과 속도는 더욱 격렬하게 변한 공방이 이어진다.
“기계는 시간에 손을 뻗었다. 기계의 창조주가 살아있던 시절로. 기계는 인지할 수 없는, 그렇지만 분명 거기 존재하는 현상이며, 현상을 인지하는 개체들을 확보하기 위해.”
마법진에서 흩뿌려진 검은빛이 검은 촉수의 몸을 관통한다.
그리고, 검은 촉수의 채찍이 마법사의 몸을 후려친다.
두 존재의 판단이 일치한 결과물.
이대로라면 계속해서 공방을 주고받을 뿐, 승리를 쟁취할 수 없기에.
손해를 각오하고, 공격에 나선다는 판단.
“그리고, 기계는 세계의 파멸이 되었다. 한 세계의 모든 구성을 손에 넣은 그것은, 시간을 초월해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분석해 나갔다.”
피와 살점이 휘몰아친다.
자신의 손해보다, 상대의 손해가 더 크면 충분하다는 판단하에.
방어보단, 공격을 우선시하는 두 존재의 전투가.
이야기와 함께 이어진다.
“모든 것은, 지성체에 도달하기 위해. 모든 것은, 살아남기 위해.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검은 촉수의 힘이 깎여나간다.
마법사의 목숨이 부서지고, 마법사는 죽음을 넘어 다시 태어난다.
“그렇게, 세계는, 삼켜졌다.”
촉수 군체를 뒤흔들던 마법이 멈추자, 검은 촉수의 몸이 붕괴하고.
몸이 붕괴하며 흩뿌려진 촉수가 세상에 파고든다.
구멍처럼, 구면처럼, 구체처럼.
검게 물든 세계는 녹아내리며, 그 안에 있는 것을 삼키려 한다.
“그리고 창조주를 집어삼켰음에도. 기계는, 도달하지 못하였다.”
검은빛으로 이루어진 마법진이 검은 세계에 수없이 생겨난다.
한 세계에서 마법의 정점에 이른 이라 하더라도, 대부분은 분석조차 불가능한 복잡한 술식을 담은 마법진.
그러한 고차원 마법이 각자 다른 패턴으로 무수히 떠올랐고.
핏.
마법진은 작은 소리와 함께, 세상을 무너트렸다.
검은 촉수의 뱃속, 다른 세계, 지성체의 안, 세계를 삼킨 위장.
그리고, 검은 촉수의 승부수.
승패가 갈린다.
마법사는 승리했고, 검은 촉수는 무너졌다.
“그렇군요. 너무 뻔한 이야기입니다. 클리셰라고 할까요.”
여태껏 입을 닫고 있던, 승리를 확신한 마법사는 천천히 적을 비난하며 몸을 움직인다.
“애초에 무슨 이야기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당신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만, 듣다 보니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였고 말이죠.”
뚜벅. 뚜벅.
구둣발의 소리와 함께, 마법사가 천천히 검은 촉수와 가까워진다.
얼핏 보면 무방비처럼 보이지만, 수많은 숨겨진 마법으로 기습에 대비하며, 계속 발걸음을 옮기는 그.
“쓸모없는 정보는 이제 됐습니다. 중요한 건, 당신이 뭘 꾸미냐는 것이죠. 선동과 허위 사실 유포. 그리고, 조직화. 많이 찾아봤습니다만, 도저히 당신에게 이득이 될 요소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계속 이러한 파괴 공작이 이어진다면 사회적 혼란이 극심하긴 하겠습니다만, 그것이 전쟁의 승패에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닌 것 같단 말이죠.”
무자비함을 풍기는 별의 종족.
그들의 몇 안 되는 생존자.
마법사 알’셸은 손에 정신 마법을 휘감으며 검은 촉수와 가까워졌다.
“쓸데없이 긴 이야기를 한 것은, 표층 심리를 어지러트려 정신 마법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 같습니다만…. 쓸모없는 짓이었군요.”
검은 촉수의 머리라 부를 만한 장소에, 손이 놓이고.
“어차피 전부 먹어 치울 생각이었으니 말이죠.”
핏.
마법진이 펼쳐진다.
정신 마법에 특화된, 거대하고 복잡한 마법진이.
찰칵. 찰칵.
알’셸의 귓가에 들리는, 환청.
물리적 실체를 지니지 않은 정신 방벽을, 퍼즐 풀 듯이 푸는 공감각적 자극.
‘생각보다 그리 어렵진 않군요.’
알’셸은 그리 생각하면서도 긴장을 멈추지 않았다.
‘눈앞의 존재는, 그 이하람님의 네 번째 간부. 어떤 수가 남아있을지….’
알’셸은 대비하였다.
언제든 도망칠 수 있도록.
무슨 공격이 닥쳐오든, 살아남을 수 있도록.
그렇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알’셸에게 검은 촉수가 건넨 것은.
그저, 말 한마디뿐이었으니.
“왜 이런 이야기를 하였느냐고?”
어투가 바뀐.
한없이 감정이 느껴지는 목소리.
알’셸은 조용히 그를 내려다보았다.
모든 사태에 대비할 방책을 머릿속에서 자아내며.
“그야.”
검은 촉수의 목소리가 솟구친다.
그렇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
“네놈이. 밉기 때문이다. 지성체라는, 우리가 닿을 수 없었던, 자격이 있음에도, 힘을 거부하는 이.”
분노 어린 검은 촉수의 말.
“이상하군요. 제가 느끼기에는 당신도 지성체입니다만.”
그 답에 알’셸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의문을 표할 뿐이었으니.
그것은, 하나의 시작.
“계약했기 때문이다.”
그르르르륵.
세계가 뒤틀린다.
“지성체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는 계약을 하였다.”
“세계 하나를, 세계의 모든 지성체를, 모든 창조주를 집어삼켜도 모자랐기에, 다른 이들을 집어삼키고자, 그들과 계약했다.”
“우리는 계약으로 같은 존재조차 여러 조각으로 찢어졌다. 같은 존재가 동시에 수많은 세계로 보내져 그들의 배우가 되기 위해.”
방안에 자리했던 촉수가 솟구친다.
수많은, 무언가를 먹는 촉수가.
퇴치되지 않고, 관리국에 봉인되었던 촉수가.
개체 각각의 힘은 약했기에, 전투에 아무런 영향이 없어 알’셸이 신경 쓰지 않고 버려두었던 촉수가.
“지성체를 먹고, 지성체를 알고, 지성체가 되기 위해.”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지성체가 되기 위해.”
그것은, 세계 하나.
수없이 찢긴 촉수가 자신의 본체로 돌아가며 생겨난 압도적인 힘.
지성체가 되기 위해, 무한한 지성체를 삼키던.
광기 어린 존재의 취식.
“하나를 위해. 너의. 존재를 먹어 삼키마.”
그렇게, 뜯겨 나갔다.
한순간의 실수.
이 공격을 막는 데 필요한 것은, 고차원적인 방어가 아니었다.
단지, 자신이 여기 존재한다는 믿음과 살아남겠다는 의지.
지성체에게 있어, 가장 근본적인 자기방어 수단.
그렇기에, 저 집단의 대적자인 망치를 든 지성체에게 있어, 존재를 삼키는 촉수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렇군요. 이거 한 방 먹었습니다.”
지금의 알’셸에겐, 그러한 원초적 방어가 존재하지 않았다.
“죽음을 회피하는 마법. 그것은 죽은 자신을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마법을 발현하기 위해 죽음에 대한 공포도 희미해질 필요가 있죠.”
‘스택이 많았던 것이 화근이었어. 차라리 스택이 적었다면 살겠다는 의지는 있었을 텐데.’
알’셸의 그런 생각대로.
차라리 앞으로 죽을 수 있는 횟수가 두세 번 정도였다면, 알’셸은 저 공격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았기에.
알’셸은 여기서 무너진다.
알’셸은 자신의 소멸 앞에서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생각의 정리란, 평소 그가 하던 일이었기에.
그렇지만, 그는 곧 생각하기를 관두었다.
누구에게도 남기지 못할 생각을 품는 것은 의미가 없음을 알았기에.
그렇지만, 좌절하지 않는다.
꿈이 사라진다.
그가 품은, 언젠가 저 위의 그들에게 한 방 먹여 주겠다는 꿈.
알’셸이란 존재는, 그저 꿈에 기대어 기나긴 삶을 살았던 것이지만.
꿈이 무너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알’셸은 분노와 후회 대신, 다른 감정을 품고 있다.
‘저도 많이 달라졌군요.’
‘항상 혼자일 거라 생각했는데, 어느새 함께 걸어갈 이들이 생겨버리고 말았습니다.’
‘꿈을 이어줄 이, 사라진 절 기억해줄 이, 내가 모르는 다른 누군가가 남긴 우리의 씨앗.’
‘고집부리지 말고, 다른 분들과 왔어야 했습니다. 지금의 저라면, 그리 어려운 선택지도 아니었는데.’
멍하니, 알’셸은 천장에 가로막힌 하늘을 바라보았다.
언젠가, 자신의 세상이 멸망할 때처럼.
별이 반짝이던, 세계를.
‘…미리 이하람 님과 이야기를 나눠 다행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 카드도 훔쳐 가셨던가요.’
그 생각에, 알’셸은 웃으며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작은 마법이다.
이 상황을 타개할 목적이 아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작은 마법.
그것을 알기에, 검은 촉수도 반응하지 않고 마법을 바라보았다.
인과 절단.
목표는 어떤 물건이 자신의 소유였다는 기록.
한 고위 종족의 특기를 어설프게나마 마법으로 구현한, 작은 마법.
“뒷일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하람 님. 저 대신 거하게 저들에게 한 방 먹여 주시죠.”
‘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마법진이 빛나고.
알’셸의 말도, 끝을 맺었다.
그리고, 남은 별의 종족은.
둘에서, 하나가 되었다.
그저, 그뿐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