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523)
마법소녀 아저씨 523화(523/671)
523. 선혈의 각본.
빠득. 빠득.
시일이 다가올수록 초조해져서 애꿎은 금속 막대나 물어뜯고 있다.
차라리 아무 소식이 없다면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며 대기할 텐데.
이상한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니 아무래도 불안이 생겨난다.
지금 눈앞에 자리한, 존재 자체가 신성모독적인 인물처럼 말이다.
“제가 장담합니다. 저 망치 골초 돌대가리가 무조건 배신자입니다.”
“한 번만 더 그딴 식으로 지껄이면 몸에 난 구멍 열 개 전부에 불붙인 담배를 쑤셔 박아 버린다.”
진심이다. 매직 위버 새꺄.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솟구쳐 분노를 담아 그리 외쳤지만.
매직 위버 놈은 그런 내 협박에도 불구하고, 손가락을 꼽으며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으니.
뭔가가 이상한 듯, 계속 손가락을 접었다 펴길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구멍은 아홉 개입니다. 드디어 손가락 숫자만큼도 못 셀 만큼 지적 능력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겼군요.”
“나머지 하나는 내가 담배로 사람 뚫는 마술을 보여 주마. 버러지야.”
농담 안 하고 진심이다.
마력 두른 젓가락으로 탱크도 뚫는데 담배로 사람 못 뚫을 것 같냐.
“그로써 인체에 생겨난 상처의 형태가 관통상이라면, 그건 구멍 둘이니, 결과적으로 열하나 아닙니까?”
“뭔 개소리야. 그럼 터널도 구멍이 둘….”
…음?
어라 잠깐만.
음?
음…. 그러니까 구멍이란….
흐으으으음?
그러니까 담배로 구멍을 막아야 하니 담배가 열한 개 필요하고.
그러면 구멍 열한 개….
아니, 그래도 구멍 하나잖아? 음?
아니 내가 처음부터 구멍 숫자를 잘못 센 건가?
그렇게 고민에 빠진 나는 손가락을 굽히기 시작했고.
흐으으음.
그렇게 내 손가락이 몇 번 접혔다가 펴지길 반복했을 때쯤.
“위상수학적으로 원통 형태는 구멍 하나입니다. 그러니 멍청한 소리는 그만두시죠. 매직 위버 님도 쓸데없이 이하람을 자극하는 발언은 삼가시길 부탁드립니다.”
라이브러리안은 안쓰러운 사람을 보는 눈으로 날 바라보았고, 그러한 시선을 느낀 나는 조용히 손가락을 책상 아래로 내렸다.
물론, 여전히 속으로는 구멍의 숫자를 세며 반복하고 있었지만.
그런 내 행동과 관계없이, 이 자리의 이야기는 이어졌으니.
“자. 본론으로 돌아가죠. 매직 위버 님. 당신은 저희가 배신자를 찾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시고 저희와 접촉했습니다. 그렇지만, 솔직한 심정으론 저희가 그걸 들킬 만큼 어리석게 행동하진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
그 말에, 매직 위버는 고개를 꺾으며 라이브러리안을 바라보았다.
기계의 몸을 지녀 무기질적인 남성 라이브러리안의 눈과 분명 사람의 몸임에도 라이브러리안만큼이나 인간미 없는 안경알 너머에 자리한 눈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자면, 저희가 배신자를 찾는 것을 배신자에게 들켰고, 당신이 그 끄나풀일 가능성도 존재….”
“아. 그건 아닐 거다.”
라이브러리안의 추측에 내가 끼어들었다.
내 행동이 예상외였던 것일까.
말을 이어가던 라이브러리안은 놀란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고.
상황을 지켜보던 옥시모론도 한껏 치켜뜬 눈으로 날 바라보았으니.
그 속에서, 나는 내가 생각한 것을 말로 변환시켰다.
“저놈이 나한테 함께 배신자 찾고 싶다고 머리를 숙였어.”
“…그게 증거가 됩니까?”
“저도 그것만 가지고는 저분을 믿기 힘든데요.”
그런 내 보증에, 라이브러리안과 옥시모론은 각자 의견을 던졌지만.
나는 내 생각에 확신이 있다.
“그거야 쟤랑 나 사이가 어떤 사이인지 몰라서 그러지. 쟨 나한테 머리를 숙일 바에야 차라리 죽여달라고 할 녀석이야. 그런 녀석이 내게 머리를 숙였다면, 자기 자신보다 중요한 것 때문에 그랬다고 생각하거든. 그래, 예를 들면….”
어떤 게 좋을까.
잠깐 문장과 단어를 고르기 위해 십여 초 정도 뜸을 들였고.
“…그래. 인류라거나, 신념이라거나, 마법 학회라거나, 관리국 그 자체라거나. 뭐 그런 것.”
한때 우리가 목숨보다 위에 두었던 것 말이지. 어쩌면, 지금도.
그래, 나도 매직 위버를 좋아하진 않는다.
악연도 인연이라곤 하지만, 수십 년간 광견병 똥개마냥 물어뜯는 인간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긴 힘들다.
그렇지만, 그 또한 옛 시대의 영웅.
야밤에 동료 머리통에 화염구를 날리고, 그 보답으로 나는 볼링공을 무릎에 투척해 주는 사이라 하더라도.
더 큰 가치 앞에서는 등을 맞붙이고 싸울 수 있는, 전우라는 존재다.
그렇기에, 나는 그러한 기억과 개인적인 직감을 엮어 그를 옹호하는 문장을 자아내었지만.
“…소름이 돋는군요. 나이를 드실 만큼 드신 주제에 그런 말을 입에 담으실 줄이야. 외견이 외견인 만큼 부끄러움을 모르나 봅니다. 면상육갑이라 하더니 딱 그 꼴이로군요.”
정작 내게 도움받은 매직 위버는 세상에서 가장 흉측한 혐오체를 본 것처럼 뭐라 이루 말할 수 없는 끔찍한 표정을 지으며 날 매도했다.
그나저나 면상육갑?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면상에다 육갑이란 단어가 붙었으니 욕임이 분명하다.
“오냐 담배 한 보루를 모조리 써서 네놈을 꽃꽂이해주마.”
양손 양발을 모두 써도 구멍의 숫자를 세지 못하게 해주마.
“담배 한 보루가 몇 개비인지는 아시는지요?”
“백 이십 개비다!”
한 다스 곱하기 십 해서!
“…옥시모론 님”
“예.”
“떨어트려 주시길.”
“라이브러리안 말 듣지 마 옥시모론! 오늘 이 녀석에게 누가 위고 누가 아랜지….”
“예. 예. 담배 한 보루 숫자도 틀리셨으니 아저씨가 아래예요. 담배 안 피는 저도 아는 걸 말이죠.”
그 말에 생각이 정지했다.
…어라?
음?
그리고, 그 빈틈을 옥시모론은 놓치지 않았으니.
푸식.
목덜미에 무언가가 박히는 통증과 함께, 바람의 느낌이 느껴졌으니.
목에 박힌 것은, 플라스틱 막대 형태의 간이 약물 주입기.
“…너….”
나는 빠르게 약물이 주입되어 구멍 난 목을 매만졌고, 또 이상한 약을 주사했다고 뭐라고 하려는 찰나.
“진정제예요. 즉발성.”
그딴 게 통할 것 같….
그리 생각하고, 화를 내려 했지만.
어쩐지, 정신이 민감하다.
화를 내는 자신과 그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꼴사나워하는 자신.
시간 감각이 늘어지고, 피부 감각이 민감해져 나를 감싸 안는 옥시모론의 열기에 취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거친 숨소리의 리듬에도.
이건 진정제라기보다는.
오히려….
“마약이군요. 다운 계통.”
“효능만 따온 거예요. 그게 제 능력이니까.”
“흠. 그런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이걸로 제가 위인 건 확실해졌습니다! 크림슨★해머.”
“너-어.”
말을 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꼬였다.
리듬감이 망가진 느낌.
그리고, 화를 내며 생기는 몸의 진동이 쓸데없이 세세하게 느껴져 감각이 이상하다.
으어어.
“매직 위버 님도 다시 말씀드리지만, 자극하는 건 그만두시죠.”
“알겠습니다. 자…. 그럼, 어떻게 알았느냐 여쭤보셨던가요.”
잘 모르겠지만, 어찌어찌 서로 간에 신뢰가 생긴 모양이다.
그래, 아무렴. 좋은 게 좋은 거지.
“배신자의 존재를 명확하게 자각한 건, 저기 저 멍청이를 떠본 뒤입니다. 혹시나 하고 배신자라는 단어를 입에 담으니, 얼굴색이 바뀌며 절 노려보지 뭡니까.”
…유도신문이잖아.
“뭐, 나름대로 확신을 가지고 물어본 거긴 합니다. 제네바 지부. 마법 학회에서 있었던 공적 사건 이후 의심스러운 게 생겨나서 계속 여러 뒷조사를 하고 있었죠.”
“…이하람의 대적자가 강림한 사건 말이군요. 그 건에 대해서는 수상한 점을 찾지 못했습니다만.”
“하하. 그런가요? 하긴, 기록만 보아서는 사망자 없는 사필귀정의 이야기죠. 다만, 사건을 직접 겪었던 저는 수상한 점을 인지했고, 거기서부터 시작된 생각의 흐름으로 그물을 짜냈을 뿐입니다. 그리고, 당신들이 걸렸죠.”
매직 위버는, 안경을 고치며 빠르게 말을 이었다.
“관리국 정보부라 한들 저희 흔적은 찾지 못했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라이브러리안은 가벼운 분위기로 말을 내뱉는 매직 위버가 의심스러운 듯 목소리를 낮추었지만.
“흠. 그런가요?”
매직 위버는 그 상황에서도 제 잘난 맛을 감추지 않고 웃었고.
딱.
손을 올려 손가락을 튕겼다.
푸른 마법진이 사방에서 솟아난다.
수십 시간에 걸쳐 자수로 새겼다 해도 믿을 만큼 세밀하고 미려한 마법진.
예술의 영역에 들어선 마법진이 수십 개 공중에 떠올랐고.
“그럼, 이건 눈치채셨는지요? 이 방에 들어올 때부터 제가 전개했죠.”
매직 위버는 양 손가락을 맞닿게 한 뒤 굽혀 고리를 만드는, 완전히 악당이나 할 법한 손동작과 함께 그에 어울리는 웃음을 피웠으니.
“S급 영웅. 라이브러리안. 자기 기술에 자부심이 있는 것은 훌륭하지만, 그걸 뛰어넘는 인물도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항시 인지하고 계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발목을 잡히기 마련이죠. 제가 누굽니까? 방직사입니다. 세계 최고의 재능이죠.”
“난-. 알고 있었는데.”
기고만장한 것도 정도껏 해야지.
옥시모론의 마약…. 아니 진정제 탓인지 그다지 화가 올라오지 않은 나였지만, 아니꼽다는 감정 정도는 피어났고.
그렇기에, 허공에 떠오른 마법진 하나를 손가락으로 찔렀다.
펑.
풍선 터지듯 마법진이 무너지고, 허공에 새겨진 선의 예술은 푸른 입자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으니.
“….”
매직 위버는 찰흙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날 쏘아본 후, 라이브러리안에게 다시 얼굴을 돌렸다.
“자. 제 완벽함을 보셨으니, 정보를 나누실 준비가 되어 계신지요. 한배를 탄 몸이니, 정보라면 기쁘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매직 위버가 손을 내밀었다.
라이브러리안이 붙잡으라는 듯, 악수의 모양으로.
“손을 잡아 주신다면, 말입니다.”
펑.
그 와중에, 난 또 다른 마법진을 찔러 폭파시켰지만 말이다.
조금 전 마법진이 터진 주제에 완벽이라고 지껄이는 게 아니꼬웠으니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라이브러리안도 조용히 손을 뻗어 악수하였다.
아마, 쓸 수 있는 정보는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뭐, 잘 풀려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개인적 감정이야 어찌 되었건, 매직 위버는 제 호언장담만큼 뛰어난 마법사임이 분명하니까.
그렇지만.
펑.
또 다른 마법진이 터져 무너진다.
내가 이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 듯 매직 위버가 나를 무시하는 것은 짜증 나지만 말이다.
“자. 그럼 제가 모은 정보는 나중에 따로 보내도록 하겠습….”
펑.
“…이 협력이 후회되지….”
펑.
“…제가 머리를 숙인 만큼의 가치….”
펑.
펑.
펑펑.
하다 보니 즐거워졌다.
이걸 터트리며 생겨나는 소리도, 늘어진 감각상에서는 악기를 두드리는 노래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죽인다. 죽일 거다…. 언젠간 반드시 죽여 버릴 것이다….”
어디선가, 원한이 서린 저주가 들려온 것 같지만.
아마 약물로 인한 환청이리라.
* * *
“…이하람 님이시죠? 제게 그들을 알려 준 것은.”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다음 날 아침, 날 찾아온 것은 옛 부하 이반.
방문을 여니 소비에트산 군인이 문을 가로막고 날 기다리고 있는 장면은 생각보다 위압감이 느껴졌다.
“시치미 떼셔도 소용없습니다. 이하람 님이 배신자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저 또한 인지하고 있으니까요.”
…뭔데 이거.
왜 이틀 만에 두 놈이나 날 찾아와서 이러는 거야?
내 인생에 마가 끼었나?
아니, 생각해보니 마는 진작 끼었지.
그러면, 내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는 뜻.
즉.
라이브러리안, 옥시모론.
아무래도 너희 보안은 시골집 문짝보다 못한 모양이다.
이 꼬락서니로 배신자 찾는 게 가능하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