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524)
마법소녀 아저씨 522화(524/671)
522. 막간 – 꾸떼따
두통이 인다.
지금 이 회의에 참여한 이들의 발언도, 관리국이 현재 처한 상황도.
그렇다고 한들, 그러한 감정을 밖으로 내보이진 않는다.
책상 위, 공간을 낭비하듯 놓인 작은 명패가 날 제어하고 있으니.
관리국 한국 지부 지부장. 박현석.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저 문장에 나 또한 동의한다.
지부장이라는 자리에 앉기 전에도 동료와 친구들에게 냉정하고 차분하다고 들어온 나지만, 지부장이 된 이후에는 나 자신이 생각해도 더욱 냉철해진 것 같다고 생각한다.
단, 하나 동의하지 않는 것이 있다.
저 문구를 사용하는 이들 중 일부는 자리에 맞지 않는 이들을 앉혀놓아도 시간이 지나면 자리에 어울리는 인물이 될 거라 주장하지만.
나는 해당 내용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은,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올라가기까지 행했던 행동과 마주쳤던 사건으로 만들어진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긴 힘은,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라는 권한을 만나 발현되기 때문에, 사람이 자리에 어울리게 되는 것이다.
힘을 지닌 사람에게 부족한 마지막 조각을 채워 주는 것, 그것이 자리라는 이름의 권한이라고.
사람에게 큰 권한이 있다 한들, 그에 어울리는 능력이 없다면, 자리는 곧 사람을 내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회의장에도 그러한 인물들이 많이 존재한다.
무작정 소리치며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는 이.
이야기를 따라가지 못해 입을 다물고 있는 이.
자기 자신의 의지가 아닌, 집단의 거수기로서 행동하는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이들이, 회의의 가치를 낮추고 있다.
물론, 같은 행동을 보이지만, 올바른 이들 또한 존재한다.
확실한 신념과 비전을 갖추고, 타인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고자 목소리를 높이는 이.
상황을 관망하며 미래를 짜내는 신중한 이.
집단의 선출된 대표라는 자각을 지니고 있지만, 그들의 의향만이 아닌 대국을 볼 줄 아는 이.
다만, 때에 따라 마지막 인물상만은 각자 평하는 의견이 갈릴지도 모르겠다.
집단의 대표로서 나왔다면, 당연히 집단의 의사를 대변해야 한다는 의견도 타당할지 모르니.
그렇지만, 이 장소는 관리국이다.
인류 전체라는 거대한 집단이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
그러니 나는 저런 인물들을 좋게 평가하지 못할 뿐.
특히, 나 또한 인류를 위해 다수의 인간을 버린 경험이 있으니 말이다.
아니, 나뿐 아니라 여기 있는 이들 대부분은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관리국은 인류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다수나 소수가 지닌 권리를 간섭할 수 있는 조직.
그것을 이해한 이들이 여기 있다.
이것만큼은 개인에게 능력과 권한이 있건 없건 관계없는 이야기.
그러한 권한이 지금 이러한 현실을 만든 것이기도 하지만.
대의의 이름 아래 저지른 추악한 일들이, 사람들에게 드러났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집단의 이득이 되는 선택이라 한들, 사람 개개인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정의란 바라보는 방향과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다.
그리고 우리의 어두운 행동 일부는, 명백하게 다수의 정의에서 벗어나 있다.
“광역 정신 지배만이 답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사람들은 현실에 닥친 위기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설령 후일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 하더라도 우선 눈앞의 위기를 넘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강제로 사람들을 전쟁터로 밀어 넣자는 이야기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저희 평가가 바닥을 기고 있는데, 설령 이번 일을 잘 넘긴다 한들 관리국과 영웅에 남을 부정적 평가는 어떻게 해결한단 말입니까. 대체 누가 그걸 책임질 수 있단 말인지.”
양측 모두 옳은 말이다.
지금 당장 눈앞에 닥친 위기가 극도로 위험한 것도.
사람들을 강제 동원해 눈앞의 위기를 넘긴다고 하더라도, 관리국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면 장기적 관점에서 인류가 멸망하리라는 것도.
관리국 지휘부는 다음 전쟁에서 각 국가의 협력이 없다면 승산이 절망적이라는 답을 내놓고 있고.
여러 수단을 동원해 이번 전쟁을 어찌어찌 넘긴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로 관리국이 몰락함으로써 각 국가가 지금과 같은 거대한 협력체계를 잃는다면, 장기적으로 수많은 혼란이 발생하여 인류가 파멸할 것이라는 예측도 함께 내놓았다.
지금 어떻게든 거의 모든 이야기를 거의 피해 없이 수행하는 것은 관리국이라는 초국가적인 권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령, 타국의 정치인으로 위장한 이야기의 적이 있더라도.
관리국은 영웅이라는 이름하에 해당 정치인을 죽이고, 사후 발생하는 문제를 처리하고 있다.
이야기 진행이라는 명분으로 행해지는, 초법적인 면책 특권.
물론, 이후 권한을 악용한 것이 알려지면 영웅에게 막대한 처벌이 가해지겠지만, 실행 직전까지 영웅의 말을 의심하거나 방해하는 것을 금지할 수 있는 거대한 권한.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피해 없이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예!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재산을 몰수하든 교수형을 하든 마음대로 하시죠! 아니, 시민들의 울분 처리용으로 포대에 담아서 던져준 다음 맞아 죽는 것도 괜찮겠군요!”
아무래도, 그는 진심인 것 같다.
우리가 처한 당장의 위기를 넘길 수 있다면, 자기 개인을 바칠 수 있다는 광폭한 의견.
“하, 사람 하나의 목숨으로 해결될 리 없잖습니까. 스스로가 지닌 가치를 너무 고평가하시는 것 아닌지? 그 정도의 방법으로는 시민들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 없습니다.”
반대편 또한 비꼬는 것 같지만, 잘 생각해 보면 타당한 의견.
본인이 해결책을 내놓지 않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고 한 소리를 들을 것 같은 대화법이지만.
저런 사람도 필요한 법이다.
반대하는 존재는, 있는 것만으로도 타인의 시선을 넓혀주니.
“그럼 그냥 방위대원이 계속 죽게 놔두잔 말입니까? 니므롯이 선언한 전쟁 개전일까지 채 일주일도 남지 않았건만, 각 전선의 소모는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그 해결 수단으로 내놓은 정신 지배는 미래를 생각해선 택해선 안 될 답이란 이야기지 않습니까.”
첫 둘 말고도, 다른 이들도 끼어들어 목소리를 높인다.
“그럼 다른 방법이 있는지요? 우선 무작정 다음 전쟁에서 이겨달라고 기도라도 하자는 말씀이신지?”
“조금 더 시민들을 설득….”
“시간이 좀 더 있다면 저도 그리 말했을 겁니다! 일주일, 아니. 닷새! 지금 당장 광역 정신 지배를 수행하고 물자를 이송해도 빠듯한 시간이죠!”
“…결사 측에 좀 더 지원을 요청하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그들 또한 인류의 적이지만, 지금은 같은 적을 공유하고 있으니.”
개입할 타이밍인가.
“그들은 이미 지금 내놓은 것이 전력이라며 선을 그었습니다.”
입을 열어 정보를 전달했다.
지금 낄 생각은 없었지만, 비효율적인 탐색전을 하길 바라진 않는다.
“덧붙여, 그들의 대행자와 직접 대화해 본 결과, 해당 발언이 거짓은 아닐 거라 판단했습니다.”
“무슨 근거로 그리 판단하셨는지 여쭤보아도 되겠습니까?”
“제 감입니다.”
내가 입에 담고도 쓴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문장이었다.
청문회에서 입에 담기라도 했다간 자질을 의심받을 법한 문장.
그렇지만,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였는지, 저 주제를 더는 꺼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해당 내용에 목소리를 높이고 싶은 사람들은 존재하지만, 이 자리를 지배하는 납득이라는 분위기를 뚫지 못했다.
그런 내 발언 뒤에도, 강압적인 수단의 동원과 유화책 등 수많은 의견이 길게 오고 갔고.
관리국의 권한 다수를 내어놓는 대가로 각 국가와 다시 협상해 보자는 의견에 대해.
‘무슨 수를 쓰든 인류를 살아남아야 한다.’ ‘택한 미래가 어둡다 확신하여도, 갈 수 있는 길이라면 걸어 보아야 한다.’ 는 내 신념에 따라.
내가 개인적인 찬성 의사를 내뱉으려는 찰나.
쾅.
거대한 충격으로 회의장의 문이 박살 나듯 열리는 소리와 함께.
“자! 바쁘신 와중에 죄송합니다만! 실례하겠습니다!”
말의 내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미안함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회의장을 뒤흔들었다.
내게 익숙한 그 목소리에는 힘이 담겨있었기에.
직전까지 목소리로 가득했던 회의장은 한순간에 조용해졌고.
저벅거리는 부츠 소리와 함께, 망치를 든 푸른 마법소녀가 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내었으니.
그것만이라면, 중요한 회의에 갑자기 들어온 그를 향해 정신을 되찾은 의원들이 타박을 날리겠지만.
자리에 걸맞은 능력을 지닌 이도.
아무것도 아닌 채 자리에 앉아 있기만 한 이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았다.
최선두에 자리한, 망치를 어깨에 짊어진 푸른 마법소녀.
뒤를 따르는 흰 갑주의 기계 기사.
날카로운 메스를 손에서 돌리고 있는, 방독면의 의사.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흘러내린 안경을 고치는, 마법진의 대가.
최근 소련 지부에서 두각을 보이는, 방위대원의 간부.
총구를 들어 올린 방위대원 집단.
그들이 들어온 길에는 회의장을 지키던 방위대원 혹은 관리국 직원들이 기절한 채 널브러져 있었다.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그들은 적막한 회의장을 군홧발 소리와 함께 일직선으로 가로질렀고.
이 집단의 리더로 보이는, 푸른 마법소녀는 단상에 도착한 후.
비틀린 웃음을 지으며 단상 위에 서서 입을 열었으니.
“아. 아. 빌어먹을 정도로 능력이 어중간하신 윗대가리 여러분, 모두 안녕하셨는지요.”
마이크를 타고 울리는 증폭된 소리.
본래도 큰 목소리.
그 두 목소리가 계속해 중첩되어 귀를 뒤흔들고, 이는 기묘한 위기감을 회의장에 조성하였다.
“아. 아. 당황하셨겠죠. 무슨 일인가 하고 생각도 하셨겠지요. 특히 이 자리에는 제 얼굴을 알고 계시는 분들도 많으니 말입니다.”
그래, 내가 아는 그는 이런 일을 행할 남자가 아니다. 그리고, 저렇게 말로 타인을 비꼴 만한 성격도 아니었고.
그런데도, 단상 위에서 비틀린 웃음을 짓는 그는 분명 내가 아는 그.
“그런데 말입니다. 저희끼리 의논해본 결과, 지금이 아니면 도저히 답이 안 보인다는 결론에 도달했기에, 이렇게 실례하게 되었습니다.”
목소리에 악의가 담겨 있다.
전 영웅인 나뿐만 아니라 평범한 일반인들 또한 목소리에 담긴 감정을 알아차릴 만큼 짙은 악의가.
이 상황을 즐기기라도 하는 듯, 단상에 망치를 내려놓은 채 손잡이를 쓰다듬는 푸른 마법소녀는 표정이 창백해진 회의 참가자들을 거친 웃음과 함께 둘러보았고.
마침내 나와 눈이 맞았다.
그 깊음을 알 수 없을 만큼의 검음이 중앙에 자리한 붉은 눈동자.
그것과 시선이 마주친 순간.
검음에 잠식된 푸른 마법소녀는 극도로 뒤틀린 웃음을 보인 뒤, 다음 이를 향해 시선을 돌렸고.
표정은 사라진 상태였다.
마치, 내 환각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렇게 그가 둘러보길 40여 초.
악의로 만들어진 기묘한 침묵이 지배하는 장소에서.
“자. 그럼 저희가 어째서 이런 중무장을 하고 나타났느냐 하면….”
본래의 성격과 어울리는 가벼운 말투로 새로이 그가 입을 연 순간.
“…쿠데타….”
의석 어딘가에서, 조그만 단어가 흘러나왔다.
그 소리는 자그마했지만, 이 자리에 자리한 모든 이들의 귀에 들렸다고 믿을 만큼 명확한 소리였고.
“…예?”
그 단어에 단상 위에 자리한 마법소녀는 당황한 듯 소리를 높였지만.
“쿠데타다!”
“옛 영웅 녀석들. 상황파악도 못 하고 이런 위급할 때…!”
“정보부는 뭘 하고 있었던 건가!”
모두가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입 밖으로 낼 용기가 없었던 이야기들이 터져 나온다.
혼자라면 힘들지만.
우군이 있다면 그 역치가 지극히 낮아지는, 하나 된 용기의 힘으로.
아득히 높은 힘을 가진 타인을 규탄한다.
그리고, 다수의 목소리를 통해 규탄의 대상이 된 내 친우는.
“…흠. 이게 아닌데.”
정말로 일이 이상하게 풀렸다고 생각하는 듯, 평소처럼 얼빠진 얼굴을 한 채 턱을 쓰다듬고 있었으니.
“그러니까 제가 이건 관두자고 하지 않았습니까.”
“상관없지 않나요. 어차피 혼란이 일어나는 건 똑같았을 텐데.”
“멍청한 크림슨★해머 녀석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 자체가 내 인생의 수치지만! …이번 행동은 적절했다고 본다.”
“이 수습할 수 없는 혼란 상황만 제외한다면 말이죠.”
그 뒤로, 막대한 힘을 가진 이들이 조용히 말을 나눈다.
타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쿠데타라 비난받고 있음에도, 이 상황에 별다른 생각이 없는 듯.
이 자리에 있는 모두를 홀로 몰살할 힘을 가진 이들.
이하람.
옥시모론.
라이브러리안.
매직 위버.
네 영웅은 대화에서 서로를 향한 친분이 따뜻이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온기의 파편조차 느낄 수 없는 싸늘한 눈초리로 의회장에 자리한 이들을 바라보았으니.
나는 조용히 침을 삼키고.
냉정히 그들을 관찰하였다.
지금부터 일어날 일을, 조금도 놓치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