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53)
마법소녀 아저씨 53화(53/671)
53. 뜨뜻한 해물탕에 소주 한잔(1)
빠드득. 빠득.
열기로 붉게 변한 갑각류의 껍질이 입안에서 바스러지자, 껍질 안에 숨겨진 맛이 입안에 흘러들어왔다.
국물이 배어들어 얼큰한 느낌이 드는 육즙. 거기에 더해 흰색 살도 다른 해산물의 맛이 섞여들어 깊은 맛을 느끼게 해주었다.
“게는 살을 발라 먹는 거다.”
빠득. 빠드득.
“신경 꺼. 이 정도가 아니면 씹는 맛도 제대로 못 느낀다고.”
덜 익은 살점이나, 끈적거리는 촉수 같이 질겅거리는 느낌은 그대로 느껴지지만.
인생은 불공평해.
인생 한탄은 제쳐두고, 플라스틱 식탁 위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냄비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고추장을 듬뿍 머금은 해물탕.
냄비가 넘칠 만큼 쌓인 해산물.
역시 이런 해산물 대잔치는 해안가가 아니면 힘들지.
이어서 새우를 입에 담고, 가져온 소련산 증류주를 입에 털었다.
매운맛이 배인 육즙과 따끔거리는 알코올이 목 너머로 흘러 들어가는 감촉.
평소라면 전혀 느낄 수 없는, 강렬한 맛에 대한 자극이 목 너머를 감싸 안았다.
“캬하. 그래 이 맛이지.”
뜨뜻 짭짤한 자극에 알코올이라면 뭐가 두려우랴.
여기에 담배도 있으면 어딘가에 출현해도 될법한 멋진 중년의 모습이겠지만, 금연 중이다 보니 그런 구름과자는 내 품에서 사라진 게 몇 년 전 이야기.
요즘도 니코틴은 계속 땅기지만.
“…어차피 취하지도 않는 몸이니, 그냥 싼 소주를 마시면 되지 않을까 한다만?”
“억울하면 내 몸에 따져. 이 정도 아니면 약발도 안 받는다고.”
내가 술을 병째로 입에 쑤셔 넣는 것이 그리 특이한 것일까.
“그나저나 의외로군.”
“뭐가 말이냐.”
현석이는 젓가락으로 조갯살을 뜯어내며 자신의 수저에 올렸다.
이어 국물을 퍼 올린 후 소주와 함께 단숨에 들이키는 모습.
“크윽. 좀 더 비싼 집일 줄 알았더니, 이런 장소로 이끈 게 의외란 뜻이다.”
“애초에 뜨뜻한 거나 먹으러 가자고 했잖아. 나도 스테이크라던가, 고급 중국집이라던가 좋아한다고.”
두꺼운 고기도 괜찮고, 중국집의 기름진 음식도 좋아한다.
지금은 다른 이유로 그러지.
그리고 이 집도 싼 건 아닐 텐데.
냄비 밖으로 해산물이 흘러넘치는 해산물 집이 얼마나 있다고.
거대한 게는 껍질째 내 입안으로 사라져버리긴 했다만.
“이런 집은 혼자서 오기 좀 그렇잖냐? 이 외모로는 외식도 힘들어.”
혼자 먹는 거야 얼굴에 철판을 까면 된다지만.
어린 여자아이의 몰골로 술 가져오라고 깽판을 치면서 뜨듯한 거 먹으라고?
단숨에 동영상 사이트에 등재되어서 인터넷 스타가 되겠구만.
내 쪽팔림은 덤이고.
“돈도 안 갚는, 얼굴에 철판 두른 영웅이 할 말은 아니군.”
음. 그렇게 나오면 나로서는 뭐라 할 말이 없는데.
뻘쭘해진 입을 술병으로 숨기며, 머릿속에서 문장을 골랐다.
시간이 지나, 투명한 술병에서 거품이 올라올 때쯤.
“나도 쪽팔림이란 감정은 있거든. 안 그래?”
“그렇군.”
말주변이 없는 박현석과의 대화였지만, 왠지 모르게 말이 술술 흘러나왔다.
“애초에 이런 건 다른 애들이랑 술잔도 기울이면서 먹어야 한다고, 내가 그럴 상대가 얼마나 있겠냐.”
“옛 영웅들이랑 같이 오면 문제없지 않은가?”
아 그 괴짜 집단도 친하긴 하지.
프로히비션이 탄산에 취해서 깽판 치는 걸 보고 있으면 나 또한 취하는 기분이 들고.
천하일검은 맥주 한 잔만 들이켜도 자기비하나 하고 있으니.
무한성주의 술주정은 마을 하나 말아먹을 것 같아서 좀 무섭지만.
그렇지만 뭔가가 다르다. 뭐라고 해야 할까.
“그놈들이랑은 하도 같이 굴러서 가족이나 형제 같은 기분이고, 넌 친구고. 이 차이?”
관계라는 게 그런 거다.
너무 익숙해진 상대에게는 오히려 이런 술자리를 하기 힘들지.
어느 정도 본심을 감추고, 그러면서도 본심을 내보일 수 있는 상대가 친한 친구가 아닐까.
“대충 알 것 같군.”
“그래. 너도 내 몰골이 되면 뼈저리게 느낄 거다. 이런 모습이 아니라서 다행인 줄 알아.”
그렇게 서로를 향한 대화가 끝나자, 우리는 해산물을 탐닉하였다.
냄비 안에 담겨있던 조개와 문어가 사라지고, 그 대신 입안은 바다생물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잠깐의 침묵.
조개가 잘 열리길래, 숟가락으로 껍질을 파괴하며 살을 채집하는 나를 향한 시선이 느껴졌다.
“뭐, 하고 싶은 말 있냐?”
빈 잔에 소주를 담고 공중에서 휘저으며 날 바라보는 박현석.
약간 얼굴이 어두운 것이 뭔가 진지한 말을 할 것 같았다.
“이제 다시 전면에 나서는 게 어떤가?”
전면이라.
나를 콕 집어서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옛 영웅들을 향한 말.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기록을 삭제한 영웅들에 관한 이야기.
무인연맹을 이끄는 천하일검을 제외하면, 옛 전쟁의 참가자들이나 관리국 상층부만 알 수준이니.
내가 굳은 얼굴로 현석이를 바라보자, 그는 견디지 못하겠는지 소수를 들이키고 말을 이어나갔다.
“관리국을 설립하기 위해 수많은 불법적, 비인륜적인 행위를 한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당시 상황상 어쩔 수 없는 일. 개인적으로는 15년간 인류를 뒤에서 지킨 것으로 죗값을 다 치렀다고 본다.”
단숨에 말을 내뱉은 현석이는 알코올로 목이 타들어 가는지 또다시 소주를 들이켰다. 내가 따라주는 것도 기다리지 못하겠는지, 자기 손으로 잔에 소주를 따르며.
“이하람. 네 이야기의 진행은 뭔가의 징조라고 본다. 아마 이제부터 이계의 침공은 더 강렬하게 몰아치겠지. 그렇다면 영웅들을 이끌 영웅이 필요해. 너희 같은….”
죗값의 청산이라. 글쎄.
우리는 15년간 과연 죗값을 갚은 걸까. 오히려 더 높이 쌓아 올린 게 아닐까.
그렇기에 다들 망가진 거다. 모두.
“그거라면 이미 내부 회의로 결론이 나왔어.”
아쉽지만 말이지.
“…내가 듣고 기뻐할 만한 대답인가?”
“평소랑 똑같아. 정보차단, 관계삭제, 인식조작. 매번 하던 거. 우리는 권력을 가지지 않고, 앞에 나서지 않는다. 멕베스 말로는 그런 거지.”
우리가 싸운 영상들은 기록에서 삭제될 것이며, 관리국 지하에 잠든 그것을 통해 이번 전쟁에서 발생한 인간관계는 초기화되리라.
“옹고집들 같으니.”
현석이는 처음으로 얼굴을 흐트러트리며 머리카락을 긁었다.
단정하게 정리된 머리가 흐트러지는 것이, 그의 복잡한 감정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옹고집이라 30년이나 이런 거 하지, 누가 하겠냐.”
“그건 그렇군.”
그는 그렇게 말하며 술병을 입으로 기울였다. 술잔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목구멍으로 쏟아지는 투명한 액체.
“내일 출근 안 할 거냐?”
“얕보지 마라. 이하람. 이 정도 술로 내가 어떻게 될 리 없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는 두 남성.
그렇게 만들어진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다음 뉴스입니다. 관리국에서… 관리… 치이이이이익. 관…. 치치이이익-
열심히 자신의 본분을 다하던 구식 텔레비전이 시끄러운 노이즈를 쏟아내었다.
고장인가.
신경 쓰이니 주인에게 말해서 빨리 꺼달라고 해야겠….
치이이이이이익. 뚝.
노이즈는 금세 멈추었고, 텔레비전은 다시 깨끗한 화면으로 돌아왔다.
텔레비전 자체가 오래되어 그리 좋은 화질은 아니지만, 거기에 나온 화면은 내 눈을 의심할 법한 무언가였다.
검은색 양 갈래머리의 소녀.
그녀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텔레비전 화면 너머에서 입을 열었다.
-지금 영웅들은 모두 부패했다.
유밀.
검은 드레스를 입고 붉은 빠루를 든 그녀.
-이번 사태를 대처한 것을 보라. 옛 영웅들이라면 지금보다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을 터.
저게 뭐야.
“현석아. 지금 내가 꿈꾸는 거냐?”
“아쉽지만 현실이다.”
꿈이라고 말해줬으면 좋았을 것을.
꿈에서 깨기 위해 네놈 차를 몰고 바다에 뛰어들 자신이 있었단 말이다.
-이것은 모두 관리국이 영웅을 너무 약하게 키웠기 때문이다.
묘하게 당찬 여성의 말투로 떠벌리는 그녀는 도저히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뭐지? 정말로 뭐지?
내가 저런 걸 지시했나?
내가 모르는 이중인격이라도 있나?
내 또 다른 인격이 지시한 건가?
-영웅이란 고난을 겪고, 선택해나가며 성장하는 것. 지금 영웅들은 온실 속 화초처럼…. 지지직. 지직.
또다시 흘러나오는 노이즈.
할 말을 잃은 내가 멍하니 화면을 쳐다보자, 곧 노이즈는 사라지고 다시 말끔한 화면이 흘러나왔다.
-조금 전 방송사고에 대해….
뭐지 저건?
“현석아. 꿈 맞지?”
“현실이다. 블랙 머라우더는 저번 전쟁 이후 수시로 방송전파를 납치하면서 저렇게 영상을 뿌리고 있지.”
담담하게 소주를 마시는 현석이의 모습에서 묘한 괴리감이 느껴졌다.
마치 흔한 일이라는 듯 아무런 반응 없는 그.
“내가 정신을 잃은 게 2주일 정도 아니었나?”
“정확히는 13일이었다.”
“근데 관리국이 아직도 못 잡았다고? 대체 뭘 하는 거냐?”
아니, 적어도 전파납치를 막을 수는 있지 않나?
“워낙 신출귀몰해서 방법이 없더군. 백시현 영웅이 잡겠다고 돌진했다가 방송탑 하나 부숴 먹은 기록은 올라왔다만.”
우리 멧돼지 제자 놈은 고사이를 못 참고 사고를 치셨어요? 방송탑을 날려 먹다니, 거하게 한 건 하셨네 그려.
멧돼지 제자도 사고를 치고.
믿었던 유밀도 사고를 치고.
이젠 정말 한아빈뿐이야.
“아빈이는 이상한 거 안 했지?”
“옥시모론과 동행하며 이상한 의료도구를 잔뜩 들고 시시덕거리며 달려가는 장면은 우연히 본 적이 있다만. 특별히 피해보고서가 들어온 적은 없군.”
아빈아아아아아아!
절망하여 식탁에 머리를 박는 나에게 따스한 열기가 전해졌다.
따스하게 달궈진 해물탕의 자극.
술이나 마시고 잊어버리자.
“현석아. 마시자”
비어있는 현석이의 술잔에 소주를 따른 후, 빈 밥그릇에 내 소련산 증류수를 담았다.
스테인리스 밥그릇 안에서 찰랑거리는 술이 내 손을 따라 공중으로 들어 올려졌고.
현석이 또한 내 의도를 이해하여 소주잔을 들어 올렸다.
“인류를”
쨍.
“위하여.”
어디 술에 취할 수 있는 이계침식은 없으려나.
정말 취하고 다 잊어버리고 싶다.
* * *
“너 술 강하다며.”
“한도란 게 있는 법이… 우욱….”
“토하면 죽인다.”
구체적으로 바닷물에 담가서 앞뒤로 굴려줄 거다.
나는 그리 생각하며, 덩치 큰 사내의 몸을 부축해주었다.
이 녀석이고 저 녀석이고 자기보다 한참 작은 녀석에게 부축받으면 안 쪽팔리나.
“관리국 지부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운전기사도 없냐?”
“잠시 쉬고 오라고 휴가를 보냈다.”
참 잘하셨어요. 우리 한국지부장님.
“차는 어쩔 거야? 음주운전 할 생각이면 술이 깰 때까지 심해에 처박아주마.”
“사람을 부르면 되겠지.”
“내가 운전해서 데려다주랴?”
집이 어딘진 잘 모르지만, 내비게이션 찍으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현석이의 얼굴을 돌아보자, 그는 눈을 번쩍 뜨고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 애마도 폐차시킬 속셈인가?”
이놈은 왜 내가 몰면 왜 다 부서질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내가 운전한 탑승물의 80% 정도는 폐차장으로 직행하긴 했다만 내 잘못은 그중 절반도 안 될 거다.
애당초 안전 기준이 너무 안일한 거다. 괴수에 박았다고 부서지다니.
요즘 같은 시대면 지나가던 괴인도 차로 치어서 이계로 사출할 각오가 있어야 하는데.
“놔두고 가면 사람을 부르겠다. 너 먼저 숙소로….”
“못가 새꺄.”
목소리에 감정이 담겨버렸다.
어렴풋한 공포와 까칠한 감정.
현석이는 내 목소리에서 뭔가를 읽은 것일까. 술에 취해 붉었던 얼굴색이 한순간에 본래의 피부색을 되찾았다.
“…그렇군. 실언이었다.”
몸을 곧추세우고 자세를 점검한 그는 계속 입을 열었다.
“사람을 부르겠으니 잠시 날 지켜주길 바란다.”
“그래야지.”
현석이의 몸을 부축하며 천천히 차를 향해 다리를 움직였다.
그가 술이 깬 것은 잠깐뿐이었는지, 잠깐 걸었을 뿐인데 그의 발걸음은 점차 위태위태해졌고 고개도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양복 주머니에서 꺼낸 차 키로 문을 열고, 뒷자리에 그의 몸을 내동댕이쳤다.
“야. 일어나. 사람 부르고 자.”
“그러…지….”
이미 술과 잠에 반쯤 취한 상태긴 했지만, 그 정도는 할 수 있는지 핸드폰을 꺼내 연락을 취한 박현석.
통화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눈을 감기는 했지만, 필요한 내용은 다 말한 듯싶었다.
문을 닫고 차에 몸을 기대었다.
어두운 밤.
누가 그를 노릴지 모른다.
다시 친구를 잃는 것은 사양이다.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르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신경을 집중하였다.
관리국의 직원이 올 때까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