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538)
마법소녀 아저씨 537화(538/671)
537. 네 가지 죄악.
쿵.
내 앞을 가로막은 모든 것을 갈아 내며 돌진하던 나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부딪쳤다.
계속해서 전장의 감정을 삼키느라 의식을 닫고 적진을 도륙하던 내 의식은 갑자기 일어난 충돌로 인해 다시 피어나기 시작했고.
보이지 않는 벽….
그렇게 강한 힘으로 충돌했는데 큰 충격이 돌아오지 않았어.
곧, 이 현상을 어디선가 겪은 적이 있단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두바이 지하의 투명한 벽.
당시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그 벽과 함께 나타났었던 것은….
붕.
공간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날아오는 검은 채찍.
거기 담긴 힘을 알고 있지만, 지금의 나는 그 이상의 힘을 지녔기에.
팡.
망치를 휘둘러, 채찍이 된 촉수째 적의 공격을 으스러트렸고.
이어 빠루를 휘둘러 투명한 벽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
곧바로 앞에 나타난 적을 향해 돌진했다.
무수한 검은 촉수가 뭉쳐 만들어진, 인간 형태의 괴물.
파나티시즘.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아무리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던 녀석이 이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가짜는 아니다.
온갖 감각이 뭉치고 흐트러져 엉망이 된 지금의 나도 그걸 곧바로 느낄 만큼 강렬한 대적자의 감각.
이 녀석을 무시하고 극(㘌)을 향해 돌진하고 싶지만.
검은 촉수 녀석이 그 정도로 쉬운 상대는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니.
빠르게 끝낸다.
힘을 모은다.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감정이 담긴 입자를 빨아들인다.
폭주하는 감정으로 힘이 피어나고.
모든 것을 으스러트릴 힘이 담긴 망치를 휘두른다.
마지막으로 만났던 검은 촉수라면 충분히 쓰러트릴 만큼의 힘을.
공간을 파괴하고, 잔해조차 남기지 않고 쓸어 버릴 힘을.
쾅.
내 공격이 적을 무너트리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지만, 현실은 달랐으니.
붕. 붕.
조금 전 내 공격을 막은, 수많은 검은 채찍이 공간에 흩날린다.
막대한 힘을 담은 수많은 검은 촉수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휘둘러진다.
세계가 검게 물들었다고 믿을 정도의 밀도.
그 검은 궤적은 자신의 아군조차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짓뭉갰고.
폭풍처럼 휘둘러지는 검은 촉수의 공간에 남은 것은 나와 검은 촉수뿐.
이해했다.
검은 촉수는 내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보다 훨씬 강해졌다.
두바이에서 손실했던 촉수들을 되찾은 데 더해, 내가 모르는 무언가 더 강해질 수단을 손에 넣었다.
완전한 상태.
거기에 도달했다는 확신이 있어 여기에 나타났으리라.
쿵. 쿵. 콰득. 콰득.
망치를, 빠루를 휘두른다.
날아드는 촉수를 짓뭉개며, 검은 촉수의 군체, 인간 형상을 지닌 적의 본체를 향해.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간다.
검은 어둠에 비유할 정도의 밀도를 지닌 촉수 채찍의 폭풍이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그것을 포착하며 뚫고 들어갈 힘이 있었으니.
그렇지만, 한순간에 돌파할 만큼 힘의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조금의 시간이 지난, 전투의 사이.
“다양성. 변화. 개방. 의심.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가?”
갑작스레 들려온 검은 촉수의 말.
혼탁한 의식이 조금 깨어난다.
적의 말을 귀에 담도록.
“생각해 본 적 없나? 존재, 감정, 관계, 정보, 수명, 지식. 이런 개념을 먹는 적이 하급이며, 어떤 존재를 완전히 말살하는 개념이 아닌, 얼핏 들으면 별것 아닌 개념을 먹는 넷이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것인지.”
나 또한 그 말에 의문을 품은 적이 있었기에, 망치를 휘두르며 적의 말에 귀 기울였다.
“그것은, 우리가 상대하는 것이 개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검은 촉수의 말에 의문이 인다.
그렇지만, 그 의문은 곧 쏟아지는 다른 감정에 묻혀 사라진다.
망치와 촉수의 충돌은, 빠루와 촉수의 충돌은 멈추지 않는다.
“집단, 국가, 세계. 그 모든 것을 무너트리는 네 가지 개념.”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그렇지만, 내가 쌓아 올린 전투 경험은, 몸을 계속해서 움직이면서도 그 모든 것을 귀담으려 노력한다.
“하나의 개체가 계약을 통해 수없이 분해된 결과, 이레귤러도 생겼지. 나나, 이 세계에 강림한 비틀린 세 번째처럼. 그렇지만, 우리의 우선 목적은 변하지 않았다.”
검은 촉수가 자신의 정체를 입에 담는 것 같지만.
내 대적자와 거의 교류가 없던 나는 저 말로 아무런 정보를 얻어 낼 수 없었기에.
망치를 휘두른다.
“우리는 우리에게 없는 것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먹어 치웠다. 그것이 우리의 존재 이유였으며, 우리의 식욕의 근원.”
검은 촉수는 내가 궁금하게 여기던 것을 입에 담은 것 같지만.
그보다 중요한, 그 행동에 자리한 가장 근본적인 근원이 무엇인지 유추할 정보가 없었기에.
빠루를 휘두른다.
“적은 네가 아니다. 우리의 적, 식재료는, 우리를 제외한 세상 전체.”
검은 촉수가 입을 벌린다.
그렇지만 그것은 삼키기 위한 입이 아니었다.
말을 쏟아 내기 위한 입.
“집단에 속한 개체가 죽더라도, 개체가 모인 집단이란 괴물은 개의치 않고 생존을 찾아 움직이지. 그렇기에 우리는 개체가 아닌, 집단을 상대하는 자.”
검은 촉수는 나를 바라본다.
그렇지만, 동시에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
저것이 바라보는 보는 것은 정확히 어디일까.
“다양성이 사라진, 모든 이가 같은 집단이 올바른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진리로 향하는 길은 여럿 있건만, 하나만을 고집하는 집단의 말로가 어찌 될 거라 생각하나? 아니, 차라리 그 길이 진리로 향하는 길이라면 낫겠지. 만약, 그것이 파멸로 향하는 길임에도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첫 번째의 이야기.
잘못된 판단으로 패배할 뻔한 전투가 떠오른다.
회색의 바다. 무너지는 사람들의 인격이.
“변화가 사라진, 유지만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이 시간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설령 그것이 그 시대에 맞는 하나의 유토피아더라도, 결국 외부의 상황은 바뀌는 법. 변화 없는 안주란 그저 죽어감의 다른 말이다. 아니, 애당초 유토피아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 악성에서 눈을 돌린다면?”
두 번째의 이야기.
얼마나 오랫동안 지냈는지도 알 수 없는 과거의 오두막이 떠오른다.
“개방하지 않는, 외부의 의견을 듣지 않는 집단의 말로는 어찌 될 거라 생각하나? 다양성과 변화. 그것은 스스로 집단 스스로 이뤄 낼 수 있지만, 결국 재료가 같다면 언제나 같은 결과에 도달할 뿐, 개방이란 외부의 원소를 새로이 집단으로 들여, 더 많은 결과를 추구하는 과정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원소가 있다 한들 그것을 받아들이는 다양성과 그것을 추구하는 변화가 없다면?”
세 번째의 이야기.
과거를 돌아보며, 그에 해당하는 저릿한 무언가를 느낀다.
“의심.”
검은 촉수가 미소 짓는다.
“의심이 사라진, 모두가 결정을 옳다고 믿는 집단의 말로는 어떨 것 같나? 유토피아란 없다고 하였지. 철회하마. 유토피아는 존재한다. 모두가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 사회. 집단의 소속 인원의 행복감과 단결은 충족되고 모두는 올바른 일을 위해 힘을 쏟는다. 의심이란 없다. 완벽히 옳은, 최고로 효율적인 방식이니까.”
검은 촉수가 움직임이 멎었다.
말을 너무 떠들어서인지, 아니면 내 속도에 따라가지 못한 것인지.
검은 촉수가 망치에 얻어맞아 터져가며 날아간다.
나는 그렇게 날아가는 촉수를 쫓으며 자세를 가다듬었고.
“언젠가 자신들이 완전히 잘못된 일을 하고 있다고 깨달을 때까지.”
순식간에 재생한 검은 촉수가 거리를 벌리고 양손을 뻗었다.
자신이 만들어 낸 무언가를 자랑하기라도 하듯.
그 말과 움직임에 나 또한 움직임을 멈추었다.
전장의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피와 오물로 얼룩진, 비참한 대지.
적도 아군도, 시체가 되어 굴러다니는.
부패되어 저주받은 땅.
“너희는 사과만 하면 되었다. 머리만 숙이면 되었다. 그걸로 세계는 만족했을 것이다.”
왠지 모르게 화가 치솟아, 땅을 밟고 돌진했다.
쿵.
촉수와 망치가 충돌했다.
“집단의 가치는 낮아지겠지, 그렇지만 너희의 방식은 그것에 큰 타격을 입진 않았을 것이다. 실책은 잊히고, 공로는 빛나게 만들 수 있겠지. 그것이 너희들의 방식이고, 개념을 먹는 우리가 사라지더라도, 너희는 답을 찾았을 것이다.”
검은 입자를 두르며 더욱 강해진 망치로 상대를 짓이겨도.
검은 촉수는 입을 연다.
“힘을 보여 주어 너희들을 강제로 따르게 하였어도 되었다. 너의 스승이 그랬듯이, 압도적인 무력은 수많은 사람의 인식을 바꾸고 새로운 개념을 세상에 전파한다. 그렇지만, 너희는 그런 방법을 배제했지.”
붉은 빠루가 날카로운 노루발로 살점을 뜯어내도.
검은 촉수는 계속 말을 잇는다.
“새로운 흠집이 두려웠나? 모두가 소리 높여 너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무서웠나? 고결한 정의를 짊어 자로서, 불명예는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나?”
망치로 얼굴 부분을 짓이겼지만.
여전히 말은 이어진다.
“의심이란, 무언가에 대해 믿지 못하는 부정적인 감정이지만, 의심이 있기에 하나의 생각에 대해 다각적인 의견이 나오며, 한 의견을 고찰하여 장단점을 이야기할 수 있지.”
검은 촉수는, 입을 멈추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는 공격하고 있다.
전투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너희는, 그것을 충분히 수행하고 이 자리에 섰는가? 관리국.”
눈이 뜨인다.
이 전쟁을 준비할 때까지 긴 시간이 있었다.
그동안 무엇을 준비했지?
그동안 무엇을 시도했지?
왜 좀 더 강경한 시도를 하지 않았지?
왜 우리는 그저 소리 높여 결사 항전을 주장했지?
왜 이성적으로 이계침식을 분석하지 않았지?
왜.
“돌격하라! 돌격!”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자.
거기엔 입이 찢어져라 외치고 있는 검은 촉수 하나가 사람의 목소리를 내뱉고 있었으니.
“돌격!”
“돌격!”
검게 물든 지면에서 더 많은 촉수가 피어났다.
뿌리가 연결된 식물 군체가 새로운 싹을 피워내듯, 파나티시즘과 연결된 수많은 촉수가 솟아오르고.
땅에서 피어난 검은 촉수는 각자 다른 인간의 목소리로, 돌격을 외친다.
“광신에 홀려 망가진 집단을 끝내기에는, 말 한마디면 충분하지.”
이 전장의 진실을 깨달았다.
하나의 목소리에 모두의 사고가 유도되었다.
누군가 이 망할 촉수보다 빨리 외쳤어야 했다.
이계침식이 펼쳐졌으니 조심하라고.
저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여러 방법이 존재한다고.
절대 질 수 없는 전쟁이 되었으니, 무의미하게 피를 흩뿌리기보다, 좀 더 신중하게 나아가자고.
그렇지만 우리는 무얼 했었지?
모두가 앞을 향해 달렸다.
최전선에 있는 영웅도.
후방에서 화력 지원을 하던 방위대원이나 군인도.
항상 냉정해야 할 지휘부도.
관리국과 계통이 다른 결사나 마스코트들도.
그저, 돌격이라는 말 한마디에 앞으로 달렸다.
의심하지 않고, 그것이 올바른 답이라 믿으며.
나 자신조차.
“이 빌어 처먹을 촉수가…!”
“파나티시즘이다.”
쾅.
촉수와 망치가 부딪친다.
검은 촉수 인간의 촉수가 망치에 짓이겨져 흩날리고, 그 뒤를 이어 가볍게 휘두른 빠루가 촉수를 발라낸다.
진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적이 무슨 짓을 하건, 적이 얼마나 강하건.
지금의 나는 촉수보다 강하며.
지금 이 전장에 흩뿌려진 수많은 감정이 내게 흡수되고 있다.
의심.
적은 그러한 개념을 먹는다고 했다.
어쩌면, 내가 반드시 이기리라 생각하는 것 또한 의심이 사라져서 나온 결과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이렇게 됨으로써 적의 영향에서 벗어났기에, 이 생각은 확실한 것일지도.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 존재한다.
이 녀석은 단기간에 쓰러져 줄 만큼 쉬운 존재도 아니며, 지금도 극(㘌)과 아군은 혈투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
그 초조함에.
아그작.
입을 벌려 어두운 입자를 씹었다.
능력이 아닌, 입으로.
조금이라도 더 많이, 빨리 흡수하기 위해.
지금도 저 녀석은 의심을 먹고 있으리라.
그리고 나 또한 수많은 감정을 먹고, 강해지고 있다.
시야가 뿌옇게 흐려진다.
한 번 아름답게 되었던 세계가, 다시 격자 모자이크 누더기로 돌아가려 한다.
빠득.
이를 악물고 의식을 되돌린다.
시선이 되돌아온다.
그리고, 적을 마주 보았다.
길을 가로막는, 검은 촉수 인간을.
개념의 포식자를.
같은 포식자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