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542)
마법소녀 아저씨 541화(542/671)
541. 대단원의 진면목.
“왔구나.”
이젠 익숙함마저 느껴지는 질척한 극(㘌)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녀와 마주했다.
그녀 앞까지 오느라 정말 긴 시간이 걸렸다는 느낌과 함께.
“…블랙 머라우더?”
지친 기색이 섞인, 당황하는 얼티메이트의 목소리가 들려오지만.
쿵. 쿵. 쿵.
미샤, 천하일검, 라이브러리안, 칼라베라, 옥시모론.
무한성주와 황왕을 제외하면, 현재 남은 S급 전원과.
겸사겸사 따라오기라도 한 듯, 덤으로 껴있는 매직 위버.
이 상황을 위해 짜고 친 것처럼 내 뒤로 거의 동시에 도착한 이들은 내 검은 모습에도 별다른 감상을 내비치지 않은 채 극을 노려보았다.
과거 세계멸망급 적들과 싸우기 위해 전원이 모였던 때의 긴장감이 다시금 느껴지는 상황 속에서.
극(㘌)은 자신에게 쏠린 살의에 아랑곳하지 않고 과장된 몸짓으로 입을 열어 나갔으니.
“이미 기적이 내린 세계에 씨앗이 둘. 피어난 싹이 하나. 썩은 싹이 둘. 이것은 내가 못 보았던 장면이었다.”
우득. 우드득.
여기저기서 피를 흘리는 극(㘌)은 재주 좋게도 손가락 관절 소리를 사방에 울리며 입을 계속 열었으니.
“풍요롭구나. 풍요로워. 이 세계가 언제까지고 이어져, 계속해서 싹을 피웠으면 하는 바람이 생겨날 정도로 풍요로운 세계였었다.”
쾅.
극(㘌)이 땅을 즈려밟아 솟아오르는 돌 사이에서, 극(㘌)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말을 이어 나갔으니.
“현재의 아라면, 그리 말했겠지. 미래를 바라보며 만족했겠지. 그렇지만 지금 여기의 아는 과거의 아. 세계는 멸망했었다. 세계가 풍요롭건 아니건, 나와는 관계없었다. 나는 그저, 과거를 불러올 뿐.”
불길하다.
무언가가 뒤틀리고 있다.
그럼에도, 뛰어들 수 없다.
지금 극(㘌)에게 뛰어들었다간, 반드시 패배할 것 같은 직감이 뇌리에 감돌고 있기에.
“아와 계약을 맺은 둘 또한 소멸했다. 이것은 갈림길. 계약자의 완전한 죽음. 이것으로 맺어진 계약은 말소되었으니.”
비틀린다.
왜곡된다.
부정된다.
세계는 절대자에게 수정된다.
“바라보는 기도자들은 이 전장에 참견하지 못한다. 멸망을 유예한 두 존재의 계약은 말소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멸망을 구현할 뿐.”
극(㘌)이 웃는다.
조각난 얼굴 파편을 흩뿌리며.
양손을 벌리고, 관객을 맞이하는 지휘자처럼.
하늘을 올려다보며.
【전장은 세계이다】
“고로, 세계는 전장이다.”
세계를 둘러싼 안개는 극(㘌)의 말에 격렬히 떨며 세계를 감싸 안았고.
번쩍.
빛이 내렸다. 정면으로 봤다면 실명할지도 모르는 강한 빛이.
사람이라면 자연스레 눈을 돌릴 만큼 강렬한 광원.
그렇지만, 지금의 나는 밝은 빛을 뚫고 그 과정을 볼 수 있었고.
어두운 복도에서 밝은 방의 문을 열 때 빛이 피어나듯, 저 너머에 수많은 의지를 간직한 빛기둥이 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찰나이자 영원을 지나.
디트로이트에 있던, 빛기둥이 극(㘌)의 뒤편에 자리했다.
그 빛기둥을 배경으로, 극은 끝없이 웃으며 하늘을 향해 고함쳤다.
“보고 있겠지! 관객! 너희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 풍요로운 세계의 종말을! 넘쳐나는 희망의 끝을! 아에게 남겨진 악성을!”
그 말에 호응하듯, 빛기둥 너머에 자리해 있던 거대한 의지들은 불만을 품은 것처럼 느껴지는 일렁임과 함께 빠져나오려 하지만.
그러한 움직임은 빛기둥과 세계를 가르는 경계 사이에서 일렁이기만 할 뿐, 강한 의지는 밖으로 흘러나오지 못했고.
수많은 의지 중 유일하게 극(㘌)과 존재 방식이 비슷하게 느껴지는 검은 기운만이 경계를 넘어 극(㘌)에게 흘러들었다.
극(㘌)의 존재감이 불어난다.
잘려 나갔던 에너지가 회복되고, 회복되지 않은 부상들이 왼쪽 눈의 구멍을 제외하고 복구되기 시작했다.
“소모전은 끝났었다.”
극(㘌)이 우리를 바라본다.
양손을 펼치고, 허리를 굽힌 채.
“지루하고, 인기 없고, 허망한 소모전은 그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제 죽고 죽일 차례였다.”
살의가 피어오른다.
우리 전원을 뛰어넘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 사이에 끼어든 것만으로도 심장마비를 일으킬 짙은 살의.
“아는 극(㘌). 극을 써 내려가는 각본가이자, 흥미를 돋우는 연출가.”
비틀린다.
웃음이, 세계가.
“이제. 종막.”
쾅.
극(㘌)이 땅을 박차고 달려든다.
우리 또한 움직인다.
모두가 생각한 방식, 극(㘌)이 빈틈을 파고들 상황을 주지 않는 난타전.
가볍지만, 나름대로 힘이 담긴 공격을 극(㘌)이 반응하지 못할 속도로 날린다.
확실한 필승법.
“하하. 그 방법은, 이미 막혔었다.”
그렇지만, 필승법이 사라졌다.
모든 공격을 얻어맞으며 돌진하는 극(㘌)에게.
피가 흘러내리고, 살이 뜯겨나가며, 뼈가 부러져 형상이 뒤틀리지만.
곧 그녀는 빠르게 몸을 회복하며 손을 흔든다.
붙잡힌 순간 우리조차 살아남는다는 보장이 없는 죽음의 손을.
첫 표적은, 이 자리에서 가장 전투 능력이 약한 이.
옥시모론.
후방에 대기하고 있던 그녀지만.
극(㘌)은 무수히 쏟아지는 공격 속에서 빈틈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고, 피하지 못할 공격은 얻어맞음과 동시에 재생하며 우리 사이를 파고들었다.
그렇게 진형을 돌파한 극(㘌)은 옥시모론에게 손을 뻗었다.
“잘 가라. 기적이 되었을 가능성이 사라진, 썩은 씨앗.”
휘릭. 우드득.
극(㘌)의 손이 뒤틀린다.
옥시모론은 자신이 도망가지 못할 것을 알아차렸는지, 회피 행동을 멈추고 무수히 많은 메스와 가죽 벨트를 내던졌지만.
“하하. 꽃이 스러지는 것은, 아름다운 법이었다.”
손이 닿는다, 뒤틀린다.
옥시모론의 머리가, 목뼈가.
절명에 이르는 과정이.
우드득.
귓가에 난폭한 소리가 들린다.
단단한 뼈를 타고 들려오는, 내면의 소리.
“…허.”
목이 꺾여 뒤틀린 시야에, 놀란 듯, 기쁜 듯, 신기한 듯, 뒤틀린 극(㘌)의 표정이 들어온다.
목이 부러진 것은 누구인가.
절명한 것은 누구인가.
그건, 바로 나.
가장 앞서 달려 선봉을 자처하는 나.
옥시모론에게 닿았을 것이 분명한 극(㘌) 손에 내가 끼어들었다.
“…흐음. 그런가. 역시, 이 전장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너였었다.”
우드득.
전장 전체에서 끌어모은 감정의 힘은 검은 입자가 되어 내 육체를 회복시키고.
나와 극(㘌)의 난투가 시작됨과 동시에 옥시모론이 거리를 벌렸다.
“과거를 개변하고, 현재를 오염시키며, 미래를 바라보는, 동족. 확정된 과거를 부정하는 자.”
우득. 우드득.
망치가 극(㘌)의 머리를 후려친다.
육체의 한계를 벗어난 충격에 머리가 그대로 소멸하지만, 극(㘌)의 머리는 곧 재생되며 나를 바라보고.
극(㘌)의 기묘한 손놀림은 휘둘러 치는 망치를 파고들어 내 몸 여기저기를 망가트린다.
팔이 뜯겨 나가고, 심장이 두드려지고, 목뼈가 부러진다.
그래도 우린 죽지 않는다.
서로를 향해 난타하며, 각자에게 주어진 힘을 끌어다 쓴다.
그렇게 내가 모든 피해를 감내하는 사이, 동료는 극(㘌)을 공격한다.
이것이 유지된다면, 훌륭한 전개가 되었을 것이다.
피와 살이 튀는 소모전.
끝이 언제일지, 언제까지 싸워야 할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무너지지 않는 한, 이 길은 안전하다.
위태로운 소모전과 다른, 난투.
아군이 용맹할수록, 내게 걸리는 부담은 줄어들고, 극(㘌)의 행동은 제약된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한 가지 문제가 존재한다.
극(㘌)의 재생.
육체에 거대한 손실이 일어나도 그녀는 죽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녀는 빈틈을 파고든다.
수많은 공격이 쏟아지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저런 활로를 찾아냈는지 의심될 만큼의 움직임으로.
다른 이에게 죽음에 이르는 손을 뻗는다.
그것은, 하나의 공포.
무수한 폭력 사이에서 웃으며 튀어나와 뒤틀린 손을 뻗는 것은, 수많은 전장을 겪은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기행.
목이 부러지고, 손발이 으깨지고, 허리가 굽혀진 상황에서.
그 뒤틀린 몸을 이용하여 공격을 뚫고 목표에 도달한다.
마치, 그 공격이 언젠가 적중할 것을 알기라도 하듯.
행동 하나하나가 정신을 갉아먹고, 피로하게 만드는 움직임.
이리 싸워선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내가 있더라도, 이리 싸우면 언젠가 누군가 희생된단 사실을 알기에.
그렇지만, 모두 물러서지 않는다.
그녀의 힘이 무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기에.
그녀의 재생이 사그라드는 것을 알아차렸기에.
나, 뇌신, 옥시모론, 라이브러리안, 퀼프.
이 다섯의 공격은, 확실하게 그녀의 몸에 부상을 남긴다.
비록 회복되긴 하지만, 우리 다섯이 남긴 공격은 적이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자그만 상처를 남긴다.
자상, 피딱지, 멍, 화상.
그리고, 깨진 도자기처럼 부슬거리는 입자를 흩뿌리는 왼눈의 상처.
그녀의 깨끗한 피부는 여기저기 상처를 발견할 수준까지 도달했고.
왼눈과 그 근처만을 잃게 하였던 공허한 상처는, 이제 넓게 퍼져 왼쪽 이마까지 뜯겨나간 상태.
그것은 승산이기에, 우리는 전투를 이어 나간다.
15분도 지나지 않은 전투.
각자 수천에 이르는 죽음의 순간.
저 너머에서 계속해서 죽어 나가는 우군의 절규.
그 모든 것을 짊어지고,
이 전투에 모든 것을 집중하며.
겉보기엔 지루한, 그렇지만 막상 전투에 임하는 우리는, 며칠에 걸쳐 싸운다고 느낄 만큼 기나긴 인지 가속을 이어가며.
그렇게 이어진 전투 속에서.
“…일검류 오의.”
누군가가 칼을 뽑았다.
이 순간을 위해 준비했다는 듯, 지친 목소리가 역력한 채.
그의 검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것을 위해.
대지에 남겨진 상흔은, 모두 이것을 위해.
그가 취한 움직임은, 이때를 위해.
“무한검(無限劍).”
“…너희 재미있구나.”
붕.
극(㘌)의 목소리 사이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린다.
한 번의 바람 가름.
한 번의 섬광.
극(㘌)은 소멸했다.
무한검에 살점조차 남기지 않은 채.
그렇지만, 모두 인지하고 있다.
그녀가 무한검에 잃은 것은 육신뿐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곧 재생될 거란 사실을.
그녀가 내 망치에 얻어맞아 육편이 될 때까지 짓이겨진다 한들, 빛기둥에서 이어진 힘이 흘러드는 한 부활할 것을 알기에.
그럼에도 천하일검이 자신의 힘을 대량 소모한 것은.
아마, 누군가를 향한 믿음이리라.
그리고, 그것은 아마.
눈이 마주친다.
나겠지.
그렇기에, 손을 뻗었다.
몸이 완전히 손실된 탓인지, 찰나의 재생 동안 행동이 멈춘 극(㘌)을 향해.
그 어떤 공격을 해도 반격할 준비를 하는 극(㘌)이 내준, 유일한.
빈틈.
입자로 검게 물든 손을 뻗는다.
검은 프릴이 달린, 푸른 마법소녀 복장의 오른팔.
블랙 머라우더를 받아들인, 지금의 내 모습을.
극(㘌)에게 향한다.
처음부터, 위태로운 줄타기나 소모전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물론 그걸로 끝난다면 그런 전투방식으로 충분했지만, 지금 이 상황에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
극(㘌)을 먹어 치운다.
세 번째, 거짓된 구세주 때처럼.
모자란 힘은, 적을 뜯어 얻는다.
무한한 힘이라고 해도, 화신체의 육체가 무한한 것은 아니다.
프로히비션이 극(㘌)의 왼쪽 눈을 뜯어냈듯.
나 또한 적을 뜯어 육체를 소멸, 부정한다.
내 의지에 따라 무수히 많은 검은 입자가 오른손에 깃든다.
한계를 뛰어넘은 가속.
모든 정황을 미리 읽는 극(㘌)의 반응 속도를 돌파하는, 한계에 도달한 속도로.
우득.
극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씨익.
극(㘌)이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 기쁜 듯한 표정으로.
마치, 이걸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뒤틀린 웃음이, 내게 속삭인다.
“무한을 짊어진 유한. 부디, 너의 마음에 들기를 빌겠다.”
적의 힘이 내게 밀려온다.
그녀가 짊어진, 겪어 온, 품은.
기억과 감정이.
내게 몰려들었고.
나는 망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