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552)
마법소녀 아저씨 551화(552/671)
551. O급 기록(1) – 카터.
‘이 세계는 살얼음판처럼 아슬아슬한 균형 위에 놓여 있습니다.’
저 문장은 얼마 전 관리국의 한 높으신 분이 꺼낸 말 중 하나였다.
관리국의 평판이 최악으로 치닫자 소통을 차단한 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와중, 갑자기 관리국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닌 개인적인 의견이라며 방송에 출연한 그는 큰 관심을 모았지만.
저런 서두로 시작된 그의 열정적인 연설은 처음엔 주의를 끌었고, 나름의 호응도 있었으나.
어느 순간 해당 발언을 소스로 만들어진 합성물이 동영상 사이트에서 인기를 끌며 그는 그저 웃음거리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사람들의 조롱 대상이 되자 그의 말은 그 누구도 듣지 않게 되었고, 남은 것은 그저 웃음거리로써 사용되는 한 명의 사람뿐.
나 또한 그렇게 높으신 분의 말을 믿지 않았으며, 결국 그렇게 그의 말은 소모되어 사라졌다.
그렇지만, 지금은 후회하고 있다.
그의 말을 믿지 않았음을.
그의 말이 진실이었음을.
관리국이 비록 수많은 잘못을 저질러 왔지만,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내 이름은 카터.
이 음울한 회색 도시에 거주하는 평범한 직장인.
그렇지만, 이 도시가 본래 이리 음울한 회색빛이었던 것은 아니다.
비록 어제 또한 똑같은 회색으로 이루어진 삭막하고 지루한 도시였지만, 오늘처럼 음울하지도 않았으며 나름의 생동감도 있던 도시였다.
변화 없이 반복되는 일상으로 인해 지루하긴 해도 수많은 사람이 움직이는 살아있는 도시였건만, 지금 이 도시는 죽어 있다.
회색빛으로 말라붙어, 정체되어.
그런 도시에서 돌아다니는 것은, 이형의 괴물과 검은 그림자.
그리고, 자의식 과잉일지도 모르지만, 최후의 생존자일. 나 하나.
딸깍.
어딘가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이 죽은 도시에서 들려올 리 없는, 새로운 소리가.
그에 입을 틀어막고 골목으로 숨어 양 무릎을 부여잡으며 웅크렸다.
조금의 숨도 새어 나오지 않도록, 조금의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도록, 조금이라도 눈에 띄지 않도록.
그저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공포에 찌든 뇌가 이 모든 것의 시작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그래. 이 모든 것의 시작은….
* * *
오늘도 똑같은 하루가 시작된다.
뜨거운 커피와 반쯤 탄 토스트를 입에 쑤셔 박으며 시청한 아침 뉴스는 여전히 관리국의 비판이 흘러나오고 있었으며, 창문은 오늘도 날씨가 맑긴 하다는 듯 태양 빛을 안간힘을 다해 들여보내 주고 있다.
…꼭 내년에는 이사해야지.
집을 고를 때는 이런 문제를 생각하지 못했다.
화장실 변기에 조금 금이 가 있고, 현관문이 기울어져 특별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면 문이 잠기지 않는 데다가, 냉장고를 놓을 자리의 바닥에 이상한 패임이 존재하며, 벽지에는 곰팡이로 추정되는 검은 얼룩이 있었고, 올라오는 계단이 낡아 끼익거리는 문제가 있긴 했지만, 그건 월세를 생각해 보면 충분히 참아 줄 수 있는 범주였다.
그렇기에 큰마음 먹고 계약한 집이건만, 햇빛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처음 봤을 때 그늘이 있어 그런 걱정이 조금 있었지만, 창밖을 내다본 결과 건너편 빌딩과 충분히 거리가 있어 큰 문제는 없을 거로 생각하고 확인하지 않은 내가 바보였다.
내가 알 수 없는 기묘한 배치 문제인지, 아니면 빌딩 외에도 빛을 가리는 무언가가 있는 것인지.
침실과 거실에 자리한 창문에서는 태양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그 탓인지 거주한 지 일 년 반이 지난 지금은 집 전체에서 왠지 모를 곰팡내가 풀풀 피어오르고 있다.
이번 주말에는 청소해야겠어.
그렇게 반년 동안 매번 새로이 다짐했건만, 한 번도 실현한 적 없는 다짐을 다시 되뇌며 아침 식사를 입안에 쑤셔 넣었고.
그러잖아도 지독한 곰팡내가 더욱 풍기는 옷장에서 보풀이 잔뜩 인 양복을 꺼내 갈아입으며 집을 나왔다.
물론, 금속으로 만들어져 쓸데없이 무겁고 단단한 현관문의 왼쪽 구석을 발로 차 밀어 넣음으로써 문을 제대로 닫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곧 무너질 것이 분명한 끼익거리는 계단을 내려와, 모든 면에서 처참한 집단 거주용 빌딩의 유일한 장점인 주차장으로 향해, 남들이 보기에는 곧 폐차장으로 직행해야 하지만, 나 자신은 나름대로 예정을 품은 마이카에 올라탔다.
퍽퍽한 시트에 앉자 일과를 상쾌히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설치한 시트러스 방향제의 향기가 짙게 피어났고, 그 향을 느끼며 키를 돌렸다.
조용한 주차장에 가각거리는 기계 소리가 몇 번이고 울려 퍼졌다.
그렇게 키를 돌린 것이 네 번.
마침내 시동이 걸렸음을 알려주는 굉음과 진동이 시작되었고.
오늘은 운이 좋군.
시동을 거는 것이 열 번까지 가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며, 주차장을 나와 출근길로 나아갔다.
집이 있는 장소는 그리 유복한 구역이 아닌지라 차량을 보유한 사람의 숫자도 적어 교통체증 없이 쾌적하게 운전할 수 있었지만.
대로에 나온 순간, 평소와 같은 지루함이 시작되었다.
지루하기 그지없는 천편일률적인 자동차 디자인에서 나름대로 개성을 뽐내기 위해서인지 여러 색과 무늬, 그리고 액세서리를 붙여 다르게 보이려 노력하고 있지만.
결국, 교통 정체에 묶인 다 같은 성냥갑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은 채, 눈에 띄고자 광택 처리한 표면 도장은 타인을 향해 빛을 반사해 눈을 찡그리게 만들고, 차체 틈 사이로 스며든 매연의 열기와 악취는 기분 나쁨과 함께 두통을 유발한다.
미지근한 온도로 달궈진 몸은 초조하게 칠이 벗겨진 핸들을 손가락으로 툭툭이며 녹색 불을 기다렸고.
평소처럼 내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할 때쯤 신호등의 색이 녹색 불로 바뀌었기에, 정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속도를 높이고 앞으로 나아간다.
언제나처럼 평범하다.
언제나처럼.
정면의 자동차가 다가온다.
교차로 한복판에 멈춰선, 앞 차량.
끼이이이익.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점검을 받아본 지가 너무도 오래된 마이카의 브레이크는 제 할 일을 다하지 못했고.
쾅.
머리가 흔들린다.
목이 아프다.
뇌가 일렁인다.
에어백은….
당연히 펴지지 않았다.
날 살려준 것은, 안전벨트뿐.
…안전벨트는 끊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다 망가져 가는 자동차에서 유일하게 날 살려준 오래된 끈에게 감사를 표하며.
“이 부모박이 새끼야! 눈깔을 어디 두고 다니냐!”
곧바로 문을 열고 밖을 향해 분노와 함께 몸을 던졌다.
이건 분명 상대방의 잘못이다.
이 사고에 내 잘못은 티끌만큼도 없으니, 보험사를 통해 막대한 금액을 뜯어낼 수 있다.
저 고물 자동차도 새로 바꾸고, 이 아픈 목을 핑계로 얼마간 일을 쉬는 것도 가능할지도.
그런 행복한 상상을 하며, 사고를 일으켰음에도 튀어나오지 않는 상대의 차량에 손을 올렸지만.
“음…?”
곧바로 이상을 눈치채었다.
멋이라곤 전혀 없는 회색 자동차에 탄 남자는, 창문에 달라붙은 내게 시선을 돌리기는커녕,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아니, 시선의 방향은 중요치 않다.
회색 자동차 안에서, 회색 옷을 입은 채, 회색 피부의, 회색 머리의, 회색 눈동자를 가진 남자.
부위별로 약간 본래의 색이 남아 있어, 존재 자체가 탈색된 것 같은 남자는 강한 위화감을 발생시켰고.
그 위화감을 지우고자.
“이봐! 그레이 씨! 나오라고!”
억지로 짜낸 고함과 함께.
쾅.
강하게 자동차 천장을 내리쳤지만, 돌아오는 것은 차가 울리는 소리뿐.
자동차 안에 앉은 기묘한 남자는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거 안 되겠….”
위화감을 지우고자, 허리를 펴며 내뱉은 혼잣말.
그렇지만, 그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더 큰 위화감을 깨닫고 말았다.
주변이 조용하다.
이 장소는 항상 교통 정체가 일어나는 십자 교차로의 한복판.
교통사고가 발생했다고는 하나, 당연히 있어야 할 여러 소음이 들리지 않아, 주변을 바라보았다.
회색. 회색. 회색.
세상이 회색으로 물들어있다.
모든 것이 탈색된 장소.
수많은 자동차가 사고를 피해 나아가고, 그중 내 옆에 자리한 자동차의 운전자는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날 째려보고 있지만.
그 뒤틀린 표정조차 사진의 한 장면처럼 굳어버린 채 날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멈추었다.
뭐야. 뭐냐고.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고민은, 한순간.
여기 있어선 안 돼.
곧바로 발을 움직인다.
이 도시의 가장 높은 빌딩을 향해.
몇 년, 아니 어쩌면 십여 년 동안 해본 적이 없는 전력 질주로.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대고, 숨은 턱 아래까지 차오르지만.
교차하며 땅에서 떨어지는 발은, 휘둘러지는 손은 멈추지 않는다.
과거의 기억.
전쟁의 기억.
경험과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
이제는 평화의 저편에 감추어진, 잊고 싶은 악몽.
그것이 날 뒤쫓아오기에, 달렸다.
두근거리는 심장과 부푼 폐는 이제 가슴을 뚫고 나올 것처럼 날 압박하지만.
그저, 달렸다.
본능과 경험 모두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장소로.
모든 것이 멈춘, 회색빛 세계를.
달려도 달려도 이어지는, 기현상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발걸음이 멈추었다.
발이 느려지자 혈류가 느려지고, 때마침 활기가 사라진 빌딩 사이로 불어온 차가운 바람이 날 휘감자 머리가 식기 시작했다.
이건, 꿈이 아닐까.
터벅. 터벅.
천천히, 걷는다.
도시에서 가장 높은, 검은 빌딩을 향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래, 꿈인 게 분명하다.
모든 이를 굳혀 버리는 회색은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안에서 나만 온전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니까.
나는 평범한 사람이니까.
그러니, 이건 꿈이다.
터벅. 터벅.
그러니, 검은 빌딩을 보자.
분명, 검은 빌딩도 회색으로 변해 있을 것이다.
언제까지고 우리를 지켜주던 관리국의 검은 빌딩도 회색이라면, 분명 꿈이겠지.
곰팡내에 찌든 나쁜 집 안 공기가 악몽을 꾸게 한 것이 틀림없다.
자. 그러니, 올려다보자.
언제까지고 서 있을, 검은 탑을.
봐. 검은 탑도 회색….
쾅.
거대한 소리와 함께 불길이 인다.
검게 물든 탑에서, 붉은 화염이 솟구친다.
회색빛 세계에서 유일하게 홀로 검게 서 있는 탑.
그리고, 그 검은 탑 주변에 자리한 수많은 검은 점들.
썩어버린 시체에 몰린 파리처럼, 무수한 검은 점이 빌딩 주변을 회전하며 움직인다.
“하…하….”
꿈이야. 꿈이어야 해.
쾅.
폭발.
무너진다.
검은 탑이.
언제까지고 서 있으리라 믿었던, 관리국의 검은 탑이.
과거 희망의 상징이었으며.
이젠 혐오의 대상이 된, 탑이.
회색의 도시에서, 붉은 화염에 휩싸여 쓰러진다.
타박.
뒷걸음질 친다.
타박.
다시 한 발짝. 뒤로.
탑에서 멀어진다.
탑에서 멀어져야 한다.
몸을 반전시킨다.
달린다.
달린다.
그저, 달린다.
탑에서 멀어지기 위해.
회색에서 벗어나기 위해.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
* * *
관리국 빌딩이 함락되고, 반나절.
도망치며 몇 가지 사실을 알았다.
적의 종류는 두 종류.
괴인이라 불리는, 지성을 가진 이계인들.
이건 이해할 수 있다.
과거엔 몇 번 본 적도 있으니, 저들이 우리 세계를 침공해 왔다는 사실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이 있다.
평범한 사람과 똑 닮았지만, 몸의 반절가량이 검은 안개와 같은 무언가에 잠식당한 이들.
그들은 비정하거나 웃음기가 가득한 얼굴로 도시를 돌아다니며 영웅들을 사냥하고 있다.
이 멈춰버린 회색 도시에서, 원색은 눈에 띈다.
그게 활발히 움직이고 있기까지 하다면 더더욱.
그렇게, 회색에 잡아먹히지 않은 는 색색의 영웅들은, 검게 물든 인간에게 하나씩 쓰러진다.
그리고, 영웅을 쓰러트린 검은 인간은 그들을 포획해 어딘가로 사라진다.
저것은, 영웅이 죽은 것일까.
아니면, 영웅들은 살아있지만, 어딘가 사용처가 있는 것일까.
혹시, 저 검은 인간들은 잡혀가 개조된 영웅의 말로가 아닐까.
그런 망상이 혼재된 공포 속에서,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달리면 붙잡힌다.
눈에 띄면, 그들이 찾아온다.
그러니 숨죽이고, 숨죽인다.
지금의 나처럼.
숨을 참은 채, 무릎을 붙잡고, 골목 구석 그림자에 처박힌 나처럼.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숨결도, 두근거림도 잦아들었다.
다시…. 움직일까.
그 생각에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툭.
미지근한 무언가가 목덜미에 떨어졌다.
놀라진 않았다.
이 골목길을 이루는 건물이 노후하기라도 했는지, 내가 그늘에 숨은 내내 머리에 자잘한 물방울이 떨어졌기에, 이미 익숙해진 뒤.
그렇지만, 이번 물방울은 조금 묵직했기에.
나도 모르게 목 뒷덜미를 흩어 그 정체를 보게 되었고.
목에 떨어진 물은,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녹색 점액임을 알게 되었다.
딸깍.
소리를 향해 고개를 들어 올린다.
딸깍.
빌딩 사이의 여섯 다리.
쭉 뻗은 사람의 손.
여덟 개의 붉은 겹눈.
입에서 흘러나오는 녹색 액체.
그림자가 떨어진다.
녹색 비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