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554)
마법소녀 아저씨 553화(554/671)
553. O급 기록(3) – 얼티메이트.
공적 지정이 내려진 직후 사태를 파악한 관리국은 날 여기로 보냈다.
시베리아 전선에 자리한 대장벽. 그중에서도 적의 가장 거대한 군세가 진격하는 장소로.
군세가 대장벽을 돌파할 경우 인구 밀집 지대에 적이 곧바로 파고들 가능성이 생기는 중요한 거점.
그러한 대장벽 앞에서 나는, 긴 시간 버티고 있다.
대장벽에서 쏘아지는 수많은 지원사격과 함께.
나 홀로 대장벽 앞에서, 수많은 군세를 앞에 둔 채 가로막고 있다.
죽었던 이가 부활 혹은 복제된 것으로 추정되는, 검게 오염된 존재들.
목격 기록이 다수 존재하는, 이름 있는 괴인의 집단.
양측이 혼합된 적의 군세.
병력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다.
얼마 전에 있었던 전쟁. 니므롯의 군대와 비교하면 적은 숫자의 병력.
그렇지만, 병력의 질이 다르다.
수가 적을지언정, 적 하나하나가 일반병이라 생각하기 힘든 강자.
병사 하나하나가 일당백이라 할 악몽의 군세.
그런 군세를 상대로.
나는 버티고 있다.
대장벽에 그 누구도 접근시키지 않고, 대치하며.
적 또한 이런 상황에 속이 타는지, 날 우회하고 대장벽에 있는 방위대와 영웅들을 공격하려 하지만.
나는 그런 우회를 용납하지 않았고, 오히려 침투에 정신이 팔린 적 들을 무력화시켰다.
그렇기에 이어지는, 내가 생각해도 반쯤 기적이라 할 만한 대치 상황.
그런 아슬아슬한 대치 상황이 이어진 지 얼마나 지났을까.
적의 군세가 웅성거리고.
“아아…. 정말 뭐 하느라 이리 오래 걸리는 거죠?”
뭔가 나른한 듯한, 그러면서도 심지가 느껴지는 목소리와 함께 적들 사이에서 그녀가 나타났다.
다른 이들처럼 몸이 검게 물들었지만 검은 수녀복 탓인지 그 변화가 크게 눈에 띄지 않는, 플라티나 블론드 머리 색의 그녀는 괴인과 죽은 자의 군세를 가르며 나타났고.
“…음. 아. 그렇군요. 하긴. 저러면 좀 힘든 상대긴 하네요.”
한눈에 이 군대의 수장임을 알 수 있는 그녀는 붉은 안광을 빛내며 나를 힐끗 쳐다본 후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신가요? 이름 모를 영웅. 꽤 강하신 것 같은데, 서로를 위해 길을 내어주시는 건 어떨까요?”
말투 자체는 정중하지만, 그 내용과 목소리는 그리 정중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비켜 줄 이유는 없….”
그리 함성을 지르며, 모두의 용기를 북돋으려는 찰나.
‘얼티메이트! 피하게!’
뇌리에 텔레파시가 내리박혔다.
텔레파시임에도 불구하고, 당황과 공포가 강하게 느껴지는 이미지.
‘갑자기 무슨 소리지?’
‘길게 설명할 시간은 없다! 눈앞에 있는 건 영웅명 성녀. 과거 최강이었던 영웅 중 하나다!’
…최강?
그에 성녀를 바라보자, 성녀는 시야를 내게 고정한 채, 입만을 비틀어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갔으니.
“‘비켜 줄 이유가 없다.’라. 울보 꼬마가 시켜서 저도 이런 일을 하고 있긴 하지만, 되도록 서로 피해가 없으면 좋겠거든요. 저는 여길 점령해야 하니 여러분이 자진해서 사라져 주시면 좋고, 여러분은 어차피 이기지 못할 싸움에서 전력을 보존해서 좋고. 이게 바로 윈윈이죠.”
성녀라는 이름의 전 영웅은 한 손을 허리에, 한 손을 허공에 휘젓는다는 전혀 성녀라는 이름답지 않은 가벼운 움직임을 하며, 수긍할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최강이라.
힘의 보유량도 그렇고, 내가 보기엔 그리 강해 보이지 않는데.
‘그녀의 강함은 외부에서 드러나는 게 아니….’
날 설득하려는 텔레파시와.
“…성녀님. 명령은 인정사정 봐주지 말고, 빠르게 점령하….”
성녀에게 다가간 한 괴인의 목소리가 겹친 순간.
쾅.
폭음이 울려 왔다.
성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주먹을 뻗었고, 얻어맞은 괴인은 말을 다 잇지 못한 채 허공을 날았다.
“여기의 총책임자는 저예요.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참견은 관둬 줬으면 하는군요.”
“…알겠습니다.”
그런 폭력이었음에도 힘 조절을 했다는 듯, 얻어맞았던 괴인이 빠르게 돌아와 그리 답했다.
그 광경에 나조차도 식은땀을 흘리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순간.
“자. 그럼 그쪽 이야기도 다 끝난 것 같네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제가 옛 각성자. 성녀라는 이야기도 들으신 것 같고. 어떻게 하시겠어요?”
성녀는 다시 웃으며 나에게 질문을 던졌으니.
“…텔레파시를 읽었나?”
“물론이죠. 그보다. 빨리 답을 주셨으면 하는데요.”
답이라. 정해져 있지 않던가.
여기는 대장벽.
여기가 뚫리면 저 군세가 그대로 인류의 안전지역으로 쏟아진다.
성녀가 최강이라 불렸다는 정보가 조금 거슬리지만,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 승산이 있다.
“거절한….”
“그러실 것 같았어요.”
코앞에서 들려오는 소리.
뭐야.
반응할 시간도 없었다.
우득.
유효타.
한순간에 파고든 성녀가 다짜고짜 심장을 강타했다.
“컥….”
심장 박동이 순간 멈추고 의식이 멀어진다.
그에 곧바로 자체 고속치유를 발현하고, 허공에 발판을 생성해 자세를 바로잡으려 하지만.
“쫄쫄이라고 못 잡는 건 아니죠.”
휙.
당겨진다.
내 타이즈 소매를 붙잡아 이끈 성녀의 손에 의해.
두득. 두득. 우드드득.
재생 속도보다 빠르게 온몸이 구타당한다.
몸 여기저기가 으깨지지만, 어디가 얻어맞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막대한 통각 신호는 그 발원지가 어딘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고 있었으니.
…이게 한 손만 쓰는 거라고?
성녀가 휘두르는 것은 오른손.
왼손으로 내 손목을 붙잡아 고정한 채, 온몸을 구타하고 있다.
“저는 믿지 않지만, 혹시 믿는 종교가 있으신가요? 그럼 기도하시는 게 좋겠네요. 이만한 실력 차이. 기적이라도 없다면, 빠져나오긴 불가능할 테니까요. 뭐, 단단하니 죽진 않으실 것 같지만.”
연타가 이어진다.
통증에 익숙해지고, 염동력을 이용해 공격 일부를 막게 되자. 공격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었다.
첫 충격에서 느꼈던 것과 달리 성녀의 주먹은 압도적으로 빠르진 않다. 물론 빠르긴 하지만, 뇌신과 비교하면 훨씬 느리고 숫자도 적다.
그렇지만, 주먹 하나하나에 담긴 힘이 뇌신을 아득히 웃돈다.
염동력 장벽이 있건 말건 성녀의 주먹은 방어 대부분을 관통하며 들이닥치며, 그렇게 도달한 주먹은 강화된 육체는 별것 아니라는 듯 근육을 꿰뚫고 장기를 뒤흔든다.
그래도, 일격에 죽진 않는다.
내가 잠시 공황에 빠졌을 뿐이다.
성녀의 공격은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인지 가속, 육체 강화, 미래 예지 등 할 수 있는 것을 총동원하면.
성녀는 최강이 아니다.
그녀보다 아득히 강한 이들을 몇이고 보았다.
그녀보다 아득히 강한 이들과 함께 싸웠다.
그녀보다 아득히 강한 이들 사이에서 살아남았다.
그렇기에.
“육체 변형.”
신체가 작아진다.
그에 손목을 구속하던 성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어라?”
성녀가 당황하는 사이.
“받아라!”
허공에 발판을 생성하며, 내 온 힘이 담긴 공격을 날렸다.
신체 강화, 뇌신화, 일격 집중, 복수, 원플러스원, 추진, 질량 증가, 관통, 중첩, 변성, 폭증, 가속, 연속화, 기타 등등.
이것이 아마 마지막 기회.
성녀가 날 놓친 것은, 내 능력을 정확히 모르기에.
신체 변형이 아닌 다른 능력이라 하더라도 한번 방심을 거둔 성녀에게 통한다는 보장이 없다.
그러니,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일격을 여기에.
“그레이트! 붐! 펀치이이이이!”
누군가는 유치하다고 할, 그렇지만 모두에게 용기를 주는 함성을 담아.
우드드드득.
이런 기습에 가까운 공격임에도, 성녀는 내 움직임에 반응해 양팔을 올려 교차했다.
그렇지만, 성녀는 육체 강도가 상당히 약한 것인지, 아니면 방어에 연관된 능력이 없는 것인지, 양팔을 올려 공격을 방어했음에도 내 주먹에 무참히 팔이 뜯겨나갔고.
우득.
타인의 머리통이 터지는 감각과 함께, 성녀가 땅을 나뒹굴었다.
…기분 나쁜 감촉이다.
사람을 죽이는 감촉.
복제인지 부활인지 알 수 없다고는 하나, 옛 영웅이었던 이를 저리 무참히 죽여버렸다는 찝찝함.
그래도,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감정이 있었다.
이겼다.
지킬 수 있다.
성녀를 제외하면 나 홀로 틀어막을 수 있는 군세.
그러니, 여긴 이제 안전하다.
성녀 같은 강자가 또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그녀가 한 군단을 이끄는 수장이니 많지는 않으….
“아득히 높은 하늘에서 세계를 관조하는 아도나에게 비나옵니다.”
소리가 들려온다.
“성흔을 내려받은 이가 기원하노니. 여기 기적을. 저에게 축복을.”
무언가, 시작된다.
“정의로 향할, 힘을 내놓으소서.”
머리가 박살 난 성녀가 일어선다.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입으로 기도하며.
그리고, 성녀는 빛과 함께.
“놀라게 해 죄송합니다. 개인적으로 기도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요.”
온전한 모습으로 복귀해 나를 바라보았으니.
“흠. 신성력 패스는 문제없군요. 하는 짓이 하는 짓이라 아도나가 기도에 반응하지 않을 가능성도 생각했었는데 말이죠.”
“…뭐지?”
태평한 성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눈앞에 벌어진 일에 대해 정보를 얻기 위해.
교전 수칙을 지켜.
승리로 향하기 위해.
“음? 아. 요즘 각성자들은 모르나요? 신의 기적이랍니다. 신성력. 제가 성녀인 이유죠. 아. 다만, 신을 믿진 않아요. 그런 존재가 있을 리 없잖아요? 세상은 비참하고 끔찍하죠. 절대적인 선이 존재한다면 그럴 리 없을 정도로요. 그럼 제 힘은 뭐냐고 할 수 있는데. 아도나 같은 존재는 이름만 신인, 무언가랍니다. 그러니 믿음을 바칠 대상은 아니죠.”
그런 내 질문에, 성녀는 내가 물어보지 않은 것까지 줄줄이 대답하며 말을 이었고.
나는 바싹 마른 입술을 핥으며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부활은 몇 번까지 가능한 걸까.
성녀는 생각보다 빠르지 않다. 일격의 위력을 줄이고, 힘의 효율을 중시하며 계속 공격을 가한다면….
“아. 깊게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이미 끝났어요.”
고민하는 내게 성녀는 양손을 펼치며 다가왔다.
적의 없이, 공격하려는 기색 없이.
천천히, 가볍게.
그 기묘한 광경에 나는 다음 공격을 가하기 위해 힘을 모았고.
“제 공격에 얼마나 맞으셨죠? 수백? 수천? 차라리 시작하자마자 온 힘을 다해 아까 그 공격을 꽂아 넣으셨으면 승산이 있었는데 말이죠.”
무슨 소리지.
의문이 일지만, 그런 의문에 넘어가지 않는다.
이 공격은 반드시 맞는다. 이 공격은 반드시 성녀를 파괴한다.
성녀는 양팔을 벌린 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니까.
그렇기에, 주먹을 뻗었고.
“재생.”
성녀의 목소리와 동시에.
“아…?”
통증이 일었다.
무수히 많은 통증이.
그리고, 그 통증과 함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어디선가 날아온 주먹에 얻어맞아, 또다시 얻어맞아.
온몸을 파고드는, 성녀의 주먹에.
그렇지만, 성녀는 걷고 있을 뿐.
주먹에 얻어맞아 허공으로 떠오르는 나를 지나쳐,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고 있을 뿐.
내게 손을 뻗지도, 무언가를 하고 있지도 않건만, 내게 수많은 공격이 쏟아진다.
“재생. 재생. 재생.”
성녀가 읊조린다.
그리고, 나를 지나쳐 대장벽을 향해 다가간다.
그렇게 대장벽 앞에 선 성녀는, 입을 열었으니.
“신성력의 활용이란, 곧 믿음이 가미된 기적입니다. 즉, 논리적으로 생각해선 안 되는 힘이란 소리죠.”
성녀가 주먹을 치켜들었다.
일반적인 이계의 힘과는 다른, 빛나는 힘을 손에 담으며.
“지금 당신이 당하고 있는 것은, 당신이 당했던 공격의 재현. 공격 자체를 회복시키고 있는 거랍니다.”
내가 쏟아지는 공격에 정신을 못 차리던 와중 성녀는 내게 등을 내보이며, 신성력이라 밝힌 힘을 담은 빛나는 주먹을 흔들었으니.
“그리고 이건, 제가 내질렀던 모든 주먹의 체현이죠.”
붕.
성녀가 손을 흔들었다.
툭.
성녀의 손이 성벽에 맞닿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고.
“빛이 있으라.”
———.
수많은 소리가 겹친,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소리.
귀를 막는다 한들 고막을 터져버릴 것 같은 거대한 폭음을 지나.
솟구쳤던 흙먼지가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씻겨나가고.
거기엔 무너진 대장벽의 잔해만이 남아있었다.
“자. 그럼, 나중에 다시 뵙죠.”
그 말을 마지막으로, 성녀는 대장벽을 넘었고.
나는 의식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