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556)
마법소녀 아저씨 555화(556/671)
555. O급 기록(5) – 황왕
이 세계의 지성체가 황왕이라 부르는 그것은 이계 전체를 기준으로도 희귀한 존재이다.
의지란 자신의 실존, 주체를 자각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러한 믿음이 거짓이건, 진실이건, 성립되지 않는 것이건, 전혀 다른 자신을 자신이라 믿는 것이건.
그 믿음이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그리고, 의지란 현실을 바꿔 자신의 주장을 세상에 내보이고자 하는 힘을 말하건만, 황왕이란 존재는 그것에서 크게 어긋나 있다.
자신이란 개념을 소거하고, 타인의 주체를 빌려 움직이는 현상.
지성체라는 범주에 들어가는지조차 의문인, 현상, 그것, 황왕은.
누군가의 지혜에 의해, 세상에 존재치 않는 허구를 몸에 두름으로써 집단과 세계와 바다에서 구분되고 현상은 고정되어 개체가 되었다.
힘, 현상, 유일성.
그 모든 관점에서 그것은 동족이 될 자격을 갖춘 존재건만.
그것은 공허하기에, 신념이 없다.
그것은 공허하기에, 믿음이 없다.
영원을 견딜 버팀목, 꺾이지 않는 기둥이 없는 존재이기에.
피어나지 않는, 죽은 씨앗.
그렇기에 그것은 왜곡을 두르며.
왜곡은 시선을 이끈다.
그렇기에 그것은 방관자가 되었다.
그것이 그것 나름의 세계를 지키는 방법.
강력한 힘을 지녔으나, 움직일수록 더욱 강한 힘을 불러오는, 모순적인 존재이기에.
그러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목을 맴으로써, 연극의 막을 열며.
얼굴 없는 왕. 어떤 작가의 허구의 산물로 태어난 존재는 자신을 속박하던 모순에서 벗어나,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렇게 무대를 내려온 배우로 이루어진 황왕의 군체가 나타나고.
그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목매단 왕이 내려다보는 일상을 지키기 위해, 무대를 내려왔던 배우들이, 다시 무대 위로 올랐다.
황왕의 무대 위에서 멈추었던 관리국의 보호 기기들이 움직인다.
멈추었던 플라즈마 대공 포화나 현실과 간섭하는 개념 병기들이 황왕의 엑스트라들에게 조작되어 허공에 불을 뿜었고.
빌딩 상층부가 함락되어 가동이 멈추었던 보호 역장도 빌딩 상부로 집중되며 푸른빛을 내었다.
그렇게 수많은 방어 기제가 작동했지만, 운석은 멈추지 않는다.
그저 종말을 유예했을 뿐.
절대적인 힘을 멈추게 하기엔, 상식에서 벗어난 악몽을 멈추기에는 너무나도 힘이 모자라다.
하나의 행성을 멸하는 힘.
비록, 문을 연 이가 피해에 제한을 걸었지만, 피해 제한이 없었다면 멸망을 불러올 거대한 운석은.
저 세계의 지성체가 쌓아 올린 모든 지혜보다 강대했기에.
그것을 막을 방법은, 그들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단, 그것은 지성체로서. 집단으로서의 이야기.
개체가 존재한다.
집단보다 거대한 개체.
집단에 속하였으나, 자신을 제외한 집단과 싸워 이길 수 있는 개체.
세계를 상대로 승리할 수 있는, 집단보다 강한 개체.
비록, 그런 개체 중 모든 이가 저 운석을 막을 순 없지만.
여기, 빌딩 위에 자리한 그것은.
손을 들었다.
군체가 움직인다.
칼을 빼 들며, 주먹을 움켜쥐며, 뇌수를 불태우며, 손을 흔들며, 곤봉을 쥐어 잡으며, 기도하며, 허공을 박차며, 기계를 소환하며.
허공으로 솟구친다.
그들의 첫 공격으로, 거대한 금빛 검이 수직으로 떨어져 내렸다.
허상처럼 세계에 녹아든 검은 하늘에서 떨어져 운석을 나누었고.
금빛 마법진은 흩어지려는 운석을 끌어모았다.
그 마법으로, 기껏 깨져 나간 운석이 다시 하나가 되었지만.
한 번 파괴된 운석은 속도 대부분을 소실한 채 한곳에 자리했고.
무인의 검이 휘둘러진다.
너무나도 정밀하고, 빠르기에.
운석이 잘려 나갔지만, 그 형상은 남긴 채, 형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강인한 주먹과 개념 단위의 파쇄가 내렸다.
한 번 조각난, 잘려 나간, 분해된 조각을 흩뿌리는 주먹.
그리고, 그 조각 하나하나에 부여된, 명령이란 이름의 초능력.
그로써 세계를 멸할 운석은 가루가 되어 흩어졌고.
세상의 위험은 사라졌다.
목매단 왕이 바라보는 한, 일상은 지켜질 것이기에.
그것은 그런 것이기에.
그러한 무대이기에.
그러한 규칙이기에.
그렇지만,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운석의 추락으로부터 살아난 빌딩의 옥상에 입과 눈으로 이루어진, 검은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파(破)가 걸어 나온다.
당연한 이치를, 규칙을 무대를 의지로써 부정하며.
공허 건너에서 건너온 파(破)는 귀찮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았고.
시선이, 세계가, 질서가, 긍정이 요동친다.
본체의 강림, 그것은 거대한 왜곡을 부르지만.
그 누구도 그에 반응하지 않고 시선을 내리쬔다.
누군가는 파(破)와 마찰을 빚고 싶지 않기에.
누군가는 이 혼란한 이야기의 결말을 보고 싶기에.
그렇게 빌딩 위에 내려선 파(破)는 주변을 둘러보았으니.
곧, 파(破)는 지면을 밟으며 입을 열었다.
“굳어라.”
쾅.
걸음 하나에, 관리국 빌딩 전체가 진동한다.
그렇지만, 빌딩이 무너지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파(破)는 그저 걸었다.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걸음을.
짓밟기 위해.
한 발짝. 두 발짝. 세 발짝.
그리고, 열한 발짝.
겉으로 보기에는 특별한 것 없는 걸음이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평범하지 않았으니.
거대한 힘과 의지. 그리고, 악의.
과거 한낱 지성체였던 때의 악의와 달리, 언젠가 올 푸른 바다를 아는 존재의 악의는.
평범한 지성체가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첫걸음에, 그들은 벌레를 보았다.
수많은 다리를 단 회색의 벌레는, 피부 위를 기어가다 거죽을 물어뜯고 그 사이로 파고들었으니.
막대한 가려움과 공포는, 이성을 마비시키고 전의를 상실케 하였다.
누군가는 공포심에 피부를 긁으며 굳어 버렸고.
누군가는 입으로 파고들며 잇몸을 간지럽히는 벌레에 이를 악물었고.
누군가는 안구로 파고드는 벌레에 공황하며 안구를 찌르며 자해하기 직전 행동이 차단되었다.
그렇게, 걸러진다.
그들은 가치 없는 회색이 되었다.
두 걸음에, 그들은 나가떨어졌다.
벌레라는 공포를 견딘 이들도, 물리적으로 퍼져나가는 힘에 자세가 무너지고, 무너진 틈 사이로 파고드는 벌레의 공포를 이기지 못했다.
세 걸음에, 그들은 짓뭉개졌다.
내리찍는 힘,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두 번째를 견딘 이들에게 있어, 휘몰아치는 힘은 견딜 수 있는 범주였고, 벌레의 공포는 의지로 다잡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혐오는 어떠한가.
온몸이 짓누름으로써, 몸 안으로 파고든 벌레가 으깨지는 감각은.
피부 안에서, 입안에서, 안구에서 으깨진 채, 꿈틀거리며, 미지근한, 끈적한, 비릿한, 쓴, 가려운, 구역질 나는 감각이 퍼져 나가는 것은.
전혀 다른 감정이기에.
걸러졌다.
네 걸음에, 그들은 땅을 기었다.
힘없는 이는 일어서지 못한 채.
지면에 누운 이들 위로 수많은 벌레가 몰려든다.
으깨진 채, 진물을 흘리는 채.
짓누르는 힘을 피하고자, 사람의 배 밑으로, 사람의 안으로, 사람의 위로.
고치를 만들 듯 둘러싸, 꿈틀거리며, 토해 낸다.
혐오는, 곧 공포가 되어.
회색에 동화된다.
과한 걸음이다.
이미 대다수가 무력화되었다.
그렇지만, 파(破)에게 있어 그것은 꿈틀거리는 벌레를 짓밟는 것과 같기에,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다섯 걸음에, 그들은 느껴나간다.
이제 그들에게 내리쬐는 힘은 의미가 없다.
무엇을 하든 견딜 수 있는 이에게.
악의는 속삭인다.
과거의 기억을, 그들 각자가 마음에 품은 환청을.
아는 이의 얼굴 달린 벌레는, 귓가에 파고들며, 무수히 많은 목소리로, 자신만이 아는 이야기를 고한다.
그것은 분노의 이야기.
수치스럽거나, 거북하거나.
파괴의 열망에 사로잡혀 이성을 흔들 소리.
그렇기에, 그들은 살아남았다.
힘이 솟구치기에.
여섯 걸음에, 벌레는 파고든다.
벌레의 목소리는 외치기 시작한다.
벌레로 이루어진 사람의 얼굴은, 눈앞에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잃어왔던 것을, 견디지 못하는 마음을.
피어난 균열에, 벌레는 파고든다.
일곱 걸음에, 마음이 깨어진다.
감추어두었던 것이 드러나고.
외면하였던 것이 속삭인다.
그것은 그 누구도 단련하지 못한 채 거부하는 것.
지성체가 가진 원초적인 공포.
언젠가 올 푸른 바다의 심연이자, 지성체의 두려움.
망각 저편에 던져두었던 상실을 접하고, 마음이 꺾여 나간다.
여덟 걸음에. 그들은 이해한다.
기억은 떠오르고, 감정은 피어나며, 벌레는 노래하며 물어뜯는다.
하나가 떠오를 때마다, 벌레는 살점을 뜯는다.
상실의 고통을 체감하라며.
망각 속에 잊어버렸던 과거를 고통으로 회상하라며.
그것은 그들의 죄.
그것은 그들의 악몽.
아홉 걸음에. 폭풍이 휘몰아친다.
견뎌 오던 힘은 의지가 꺾임에 이제 견딜 수 없게 되어.
그저 힘에 몸을 맡긴다.
몸이 기물에 처박히지만, 걸음을 견뎌 낸 몸은, 상해를 입지 않고.
그들은 피어나는 고통을 곱씹어, 기억을 재생하며.
눈물을 흘린다.
폭풍의 비가 되도록.
열 걸음에. 그들은 토해 낸다.
숨겨 왔던 것을, 마음속에 담아둔 것을, 자신도 모르는, 걸어 잠갔던 비밀을.
고해소에서 죄를 고하는 죄인과 같이, 이성 없이 벌레 소리처럼 떠들어대고.
그것은 벌레와 노래와 함께, 합창이 되어 메아리친다.
열한 걸음에. 그들은 상실한다.
모든 감정을, 기운을, 상실을.
표면에 피어난 것들을 벌레가 거둬가며, 수확을 축하한다.
농사의 끝에 땅을 남기듯, 그러한 것이 피어나는 근본은 남아 있지만.
다시 씨가 뿌려지고 싹이 트기 전에는, 그저 땅에 불과할 뿐.
그렇게, 껍데기만이 남은 이는.
삶을 후회하며, 회색에 잠들었다.
모든 것이 끝나.
견딜 수 있는 이는 없었고.
벌레는 실존치 않는 것이었기에.
그들은 스스로 만들어 낸 벌레라는 허상을 통해 자기 자신을 잡아먹으며 전의를 상실했으며.
변방 관리국 지부 하나는, 회색이 되었다.
파(破)는 아무런 감정 없이,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평범한 걸음이나 마찬가지인, 단순한 움직임으로 굳어버린, 발아래의 무지렁이들을.
짓밟혀 동화된 이들을.
그리고, 파(破)는 올려다보았다.
이 자리에 남은 유일한 적을.
황왕이라는 이름의 이레귤러를.
“나는 세계를 멸망시킬 생각이 없는데.”
파(破)가 말한다. 그것이 우리와 맺은 계약을.
그 특이성으로 인해 동족과 맺은 약조를.
그것이 발생시키는 왜곡을 눈감아 주는 대가로써, 방관자로 남을 것을.
“아니, 이것은 세계가 멸망하는 과정이다.”
그에, 그것의 한 개체는 답한다.
이것이 멸망이라고, 하나의 세계가 끝나는 것이라고.
“지배가 바뀔 뿐이야.”
“하나의 관점으로 수렴된, 집착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우리는 멸망했다고 판단한다.”
‘말장난.’
파(破)는 그리 생각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너희는 이걸로 만족하냐고.
우리는 이걸로 만족하냐고.
그에 우리는 되돌린다.
아무 말 없이 바라봄으로써.
다수가 발언을 긍정한다.
“하. 직접적 간섭은 어려우니, 간접적 간섭이라 이건가?”
파(破)는 살아있을 때처럼, 아직도 지성체인 것처럼 머리를 긁었다.
아직 남아 있는 잔재가 파(破)를 잠시 과거로 되돌렸고.
“네 예언은 빗나간 지 오래거든?”
파(破)는 고한다.
과거에 보았던 예언을.
검은 세계를, 흰 세계를.
“우리의 예언은 빗나갔다. 그렇지만, 너는 그것을 자기 실현하려 하고 있다. 예언이 그러하듯.”
그것은 그 말과 함께 파(破)에게 가까워졌다.
이제 싸울 뿐이라는 듯, 할 말은 더는 없다는 듯.
“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에 파(破)는 웃었다.
“그래. 뭐. 만나서 반가웠고.”
쾅.
세계가 요동친다.
발판이라는 개념을 밟고, 공중으로 뛰어오른 파(破).
파(破)의 움직임은 가장 가까이 있는 그것에게 닿았으니.
우드드득.
의지를 담아 검게 물든 파(破)의 팔이 휘둘러진다.
그리고, 주먹 한 방에 무대에서 내려온 배우가 흩어진다.
무대를 내려온 배우는 힘을 잃고 사그라져 세계에 녹아든다.
그리고, 파(破)는 다시 도약한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그렇게 반복하길 열둘.
그제야 그것은 눈치채었다.
자신의 일부가 소멸했음을.
공격을 인지하는 찰나 동안 열둘이 사라졌음을.
그리고, 파괴로 인한 기색도 여파도, 존재치 않음을.
물리적 개념을 벗어난, 원하는 현상만을 일으키는, 내면으로 수렴하여 완성된 파(破)의 파괴를.
파(破)가 적의 파괴만을 원했기에, 세계 하나를 멸할 힘은 온전히 무대를 내려온 배우의 파괴에 집중되었고, 바람 하나 일으키지 않았다.
상상 이상으로 강하군.
그 찰나의 생각이 끝나자.
검은 선은.
너무나도 빨라 세상에 묻은 얼룩처럼 남은 파(破)의 검은 잔상은.
하나 남은, 황왕이라는 개체를 성립시킬 수 있는 마지막 주요 인격 앞에 도달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언어를 지껄이는, 광인에게.
“잘 가라.”
그런 존재에게 파(破)는 작별 인사를 하였고, 그에 그것은 답했다.
“우리는 우리의 소임을 다했다. 그러하니, 기쁘게 작별하도록 하지.”
존재치 않는 언어가 아닌, 사람의 언어로 답한 뒤.
기쁘게 웃으며, 팔을 벌리고.
고개를 숙이며.
“막을. 내리노라.”
우득.
파(破)가 마지막 개체의 명치를 꿰뚫었다.
그리하여, 그것이 소멸하고.
파(破)의 손에는 그것의 몸에서 꺼낸 불씨가 들렸으니.
모든 것이 끝나 손에 들린 불씨를 파(破)는 바라보았고.
곧, 고개를 기울여 의문을 표했다.
불씨가 예상과 달랐기에.
잔불과 함께 타올랐을 불씨는, 잔불 하나 흔들리지 않은 채 회색으로 침묵하고 있었고.
그것을 바라본 파(破)는 지상으로 내렸다.
빌딩을 뚫고, 지면을 무시하며.
천천히 대지를 파고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방해를 수직으로 관통한 파(破)는 목표로 한 장소에 도착했다.
그곳은,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가치 있는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은 채, 먼지와 잔해만이 남은 공동.
이곳은 관리국의 심장이다.
변방 관리국 지부 지하에 지어진.
그 누구도 중요 장소라고 생각하지 않게 만들어진 장소.
수많은 것들이 잠겨 숨겨지고, 움직이며, 가동하던 장소.
극(㘌)이 한 번 탈취했지만, 여전히 많은 것들이 남아 있던 장소는.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은 채 텅 비어 있었다.
“하. 이것들.”
그 광경을 바라본 파(破)는 귀찮아졌다는 감정과 함께 또다시 옛 지성체 시절처럼 머리를 긁었지만.
그 입가엔 웃음이 깃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