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559)
마법소녀 아저씨 558화(559/671)
558. O급 기록(8) – 약속의 땅.
인류는 패배했다.
지금의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이 문장 하나면 충분하다.
이질적인 방식과 내용으로 발령된 공적 지정으로부터 일주일.
이건 거의 모든 관리국 지부가 함락당하는 데 걸린 기간이기도 하다.
우리라면 이계에 맞서 세계를 지켜 낼 수 있다는 생각과 자부심이 단순한 오만이라는 듯, 세계는 순식간에 이계의 손에 집어삼켜졌다.
‘아직 지지 않았다. 상위권 영웅 상당수는 아직 건재하며, 세계를 지키는 관리국 메인 시스템도 아직 적의 손에 떨어지지 않았다.’
아직 가동하고 있는 관리국 내부망은 그리 열심히 주장하고 있지만.
아무리 보아도 저것은 남은 이들이 전의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한 거짓이자 프로파간다로 보인다.
회색으로 변하지 않게 하기 위한.
그저, 그것만을 위한 프로파간다.
현실은 어떠한가.
손실을 감수한다면 세계를 지킬 수 있으리라 주장한 관리국은 적의 군세 앞에 순식간에 무너졌고.
관리국의 힘이 없어도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던 각국의 군대는 이계의 이질성 앞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력화되었다.
이게 우리에게 남은 정상적인 선택지는 하나뿐.
이상할 정도로 관대하신 침략자에게 정복당하는 것.
침략자의 관대함이 언제까지 갈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사람이라는 자원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 살려둔 것 아니냐는 냉소적인 생각이 계속 들 정도니까.
이런 부정적인 생각은 그만두자.
현재 세계 상황보다도 더 아이러니한 것이 지금 나의 상태니.
“난 왜 회색으로 변하지 않았지?”
차갑고 허무한 현실을 달래고자, 입 밖으로 혼잣말을 내뱉어보았다.
이런 무의미한 생각이라도 내뱉어 공기를 떨게 만들지 않은 채 마음속에 그저 품고 있으면, 나도 이 도시처럼 얼어붙을 것 같았으니.
무언가 세계가 달라지는 것을 바라며, 그리 내뱉었지만.
세계는 변하지 않는다.
도시는 얼어붙은 그대로이며, 함락당해 멈춰 버린 관리국 빌딩도 회색의 차가움을 계속 내비친다.
그 속에서, 나는 살아 움직인다.
다른 영웅도, 방위대원도.
모두 회색으로 변해 굳어 버린 상황 속에서.
절망이 깃든 표정으로 멈춰 버린 회색 속에서.
어째서인지 나는 아직 어두운 검은 양복의 색을 지니고 있다.
전의도 없고, 싸울 힘도 없으면서.
아직 색을 가지고 있다.
이 의문조차도, 너무나도 무수히 반복하여 색이 바랜 생각일 뿐.
처음에는 내 이런 상황에 무언가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자 고독감과 절망감만이 몰려왔다.
부정적인 감정을 지우고자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 했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내가 지닌 것은 관리국 한국지부 지부장이라는 더없이 높은 직함이자 권한임에도 말이다.
…내게 어울리지 않는 자리지만.
지금은 죽어 버린, 내 친구의 폭로로 인해 내 실각은 결정된 지 오래.
그런데도 아직 내게 지부장이라는 직함과 권한이 남아있는 것은, 관리국의 혼란 덕분이다.
그렇기에 이 상황에 무언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여, 아직 손에 남은 강력한 권한과 함께 관리국을 뒤져 보았지만, 세상은 그리 편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내게 남은 것은 무력감뿐.
그 결론에 도달한 시점에서, 나는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길 바랐다.
빌딩 여기저기, 도심 곳곳에 남은 회색 사람들처럼.
그들과 함께 굳어 버리고 싶었다.
그렇지만, 난 아직 남아있다.
굳지 않고 남아 멍하니 관리국 빌딩을 돌아다니고 있다.
…여긴 막혔군.
길이나 계단이 무너져 통과할 수 없게 된 것도 지금처럼 몇 번이고 반복되었던 일.
그렇지만 나는 계속 걸었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라는 것은 이미 짐작하고 있지만, 그래도 무언가 달라지리라 기대하며.
수많은 회색과 회색을 걸었다.
그렇게, 정처 없이 회색의 길을 걸은 지 얼마나 지났을까.
막힌 길을 계속 돌던 끝에 나는 유리 벽으로 이루어져, 도시 전체를 볼 수 있을 만큼 시야가 탁 트인 넓은 복도로 나왔고.
멍하니 눈앞에 넓게 펼쳐진 회색 도시를 바라보았다.
최전선과 거리가 있던 덕에 곧바로 회색이 되지 않아 피난 갈 시간이 있었지만, 결국 피난 전에 침공이 시작되어 모두 굳어 버린 수도.
도망치려는 민간인과 그들을 제어하는 공권력이 모두 다 함께 회색이 되어 굳어있다.
첫날, 이 광경을 처음 보았을 때와 똑같이.
그렇지만, 달라진 점이 있었다.
첫날엔 모든 것이 굳어 버린 회색 도시 위를 색색의 영웅들과 괴인, 그리고 검은 망자들이 뛰어다니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저 회색뿐.
도시가 완전히 함락되었다고 판단한 것인지, 계속해서 그 풍경을 바라보아도 움직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이 차이는 내게 새로운 목적을 불러일으켰으니.
…나가볼까.
계속해서 빌딩 안에 있던 내게 떠오른 생각.
내가 가진 권한을 유용하게 쓰기 위해서는 관리국 빌딩에 있어야 한다. 그런 생각으로 남아있었지만….
“…핑계는 좋구나. 박현석.”
그냥 두려웠던 거지.
이 상황 속에서도, 밖으로 나가 안전을 잃어버리는 것이.
회색이 되고 싶다는 것도 자포자기성 한탄일 뿐이었어.
결국, 나는 아직 내 이야기를 끝내고 싶지 않았다.
무언가를 남기고 죽어 버린 친구, 동료, 전우들처럼.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내겐 그럴 힘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자각한 일주일.
지부장이라.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높은 자리, 높은 권한.
…무엇 하나 쓸모가 없었군.
그것을 노리고 달려온 삶이 잘못되었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뒤를 이은 후배들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고 자부한다.
그렇지만 결국 이 꼴이다.
아무런 힘도 없는, 전 영웅.
아무것도 손에 남지 않은, 멍청이.
그러니, 밖으로 나가자.
내 지위를 버리고, 지부장 박현석이 아닌, 인간 박현석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동훈이가 그랬던 것처럼.
무언가 아직 할 수 있는 일을.
그리 고뇌하고, 고뇌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로비에 도착했다.
평시에는 이용자로 항상 붐볐고.
지금은 얼어붙은 피난민과 통제 인원으로 붐비는 로비.
어떻게든 빌딩 밖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돌처럼 단단히 얼어붙은 그들이 길을 가로막아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다른 길을 찾아야겠어.
그리 생각하며 사람의 벽을 빙 돈 지 얼마나 지났을까.
사람이 적은 장소를 찾다 보니 결국 나는 벽으로 로비와 나뉜 업무 구역에 오게 되었다.
관리국의 평판이 험악해진 뒤 투명 방탄벽을 설치해 그 너머로 대면 업무를 보던 로비 업무 구역.
오랜만에 그 광경을 보니, 입가에 절로 쓴웃음이 피어났다.
나도 시작은 여기서부터였지.
아예 말단 사무직부터 시작한 건 아니긴 하지만, 꽤 낮은 단계부터 커리어를 쌓아 올렸다.
그렇게 거쳐 간 업무 중 이런 장소의 관리직도 있었고.
그렇게 옛 추억에 사로잡히며 길을 찾아가던 와중, 시야에 들어온 어떤 이질감이 날 사로잡았다.
…아직 작동하는 컴퓨터?
컴퓨터가 작동하는 일 자체는 신기한 게 아니다.
직전까지 회색으로 멈춰있다 하더라도, 내 손이 닿으면 언제 그랬다는 듯 움직이기 시작하니까.
그렇지만, 내 손이 닿지 않았음에도 작동하고 있는 컴퓨터를 본 것은 지금이 처음.
혹시 나 말고 누군가 생존자가 있는 건가?
그리 생각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렇지만, 역시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나는 천천히 책상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정보를 얻기 위해 컴퓨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만약 생존자가 있다면, 이 컴퓨터에 그와 관련된 단서를 남기지 않았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품고.
그렇지만, 관리자 비밀번호를 사용해 해제한 컴퓨터 화면은 그런 기대를 배신하였으니.
추적자가 있을 가능성을 두려워한 것일까, 아니면 컴퓨터가 켜져 있던 것이 내 현 상황처럼 무언가 우연이 겹친 것일 뿐일까.
모니터에는 본래라면 켜져 있어야 할 업무 프로그램조차 실행되지 않은 채, 아무것도 남지 않은 텅 빈 바탕화면만이 나를 마주하였다.
이것마저 아무 의미가 없었나.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그럼. 대체.
난. 왜.
그리 생각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며 키보드 위에 쓰러지려던 순간.
화면이 노이즈에 휩싸이고, 조금 전까지 출력되던 바탕화면 또한 노이즈에 잡아먹혀 사라지고 말았다.
…또 무언가 이상 현상인가.
그리 생각했지만.
곧 노이즈는 확실한 실체를 보여주며,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화면만큼 소리 또한 노이즈 투성이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것은 확실히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이성이 담긴 목소리였으니.
“살아—은. 전의를 —지 않은 이들 에게 전-다.”
노이즈가 잔뜩 섞인, 그렇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
“싸울 힘— 남아—. —직 포—지 못하는 자이—.”
처음에는 이 모니터에만 이런 이상 현상이 일어나는 줄 알았지만, 곧 내 생각이 틀렸음을 알았다.
“아직 회—로 변하— 않았다— —은 싸울 의지가 있—.”
조용한 빌딩 내부에 계속해서 똑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기에, 곧 이 현상이 이 모니터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인지했다.
“이 방 듣—. 모든 —. 아직— 싸— 믿— 이 장소—.”
혹시나 하는 생각에 빌딩 밖으로 고개를 돌려보자, 분명 얼어있었던 도시의 각종 전광판에서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현 시간—. 모든 관리국— 공간—장치 이동 좌표— 허가— 고정.”
움직이는 이 없는, 차가운 도시에 메아리치는 노이즈 가득한 방송.
이 특수한 방송을 들을 수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무한—의 마지— 유산.”
노이즈 가득한 화면에, 어떤 건물이 떠오른다.
회색의 빌딩.
그렇지만, 그것은 이계에 의해 회색으로 변한 것이 아니었다.
치장 없이 남은, 콘크리트의 색이 그대로 드러나는 건축물.
니므롯 사태의 마지막 전장을 배경으로 올곧이 선 탑은, 아직 자신의 회색을 지키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마지막 전쟁에서 수많은 인명을 구한 무한성주의 유산.
회색의 탑은 노인의 괴팍함을 상징하는 것처럼 노이즈 잔뜩 긴 화면에서 계속해서 일그러졌고.
곧, 더 진해진 노이즈와 함께 모습을 감추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아있던 짙은 노이즈도 사라지고, 모니터 화면은 본래대로 돌아왔지만.
나는 이미 자리를 뜬 뒤였다.
분명, 이 지부의 공간 이동 장치는 지하 3층에 있었지.
난 생각했었다.
이제 다 끝났다고.
그렇지만, 무한성주의 탑이 내게 말을 걸어 온다.
자신은 아직 쓰러지지 않았다고.
콘크리트 덩어리로 이루어진, 한낱 무기물이지만.
아직 싸울 의지가 남아있다고.
그 괴팍한 영감탱이가 이 정도까지 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나도 마땅히 할 일을 해야 할 것이다.
설령, 싸울 힘이 있건 없건.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으니까.
그래.
인류는 패배했다.
그렇지만, 아직 우리는 끝나지 않았다.
인류가 짐을 떠넘긴, 정의를 강요받은 우리는.
아직 꺾이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 * *
모든 것이 어그러진 마법소녀는 골목에서 마스코트를 만났다.
끝없는 반복 속에서 다시 태어난 존재는 인간을 품었다.
존재하지 않았을 어두운 반쪽은 자유로이 나아갔다.
접한 세계를 보고 절망한 과학자는 최후를 정하였다.
빛없는 어둠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움직였다.
여러 색 속에서 홀로 남은 팀원은 속죄를 준비하였다.
남은 이 없는 최후의 전승은 과거의 수치를 마주하였다.
해골을 뒤집어쓴 죽음의 소통자는 대화를 준비했다.
자연을 벗 삼던 은둔자는 모습을 드러내었다.
항아리에 담긴 이질성은 최후의 수단을 준비했다.
사람의 잔재는 전뇌의 바다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원을 품은 뒤틀린 죄악은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
녹슨 칼날은 무저갱의 깊음을 마주하였다.
검은 번개는 품에 검은 희망을 안은 채 나아갔다.
죽음을 품은 불은 떨어지는 별을 바라보았다.
부정을 모르는 안개는 긍정하며 분노를 품었다.
별을 보며 구원받은 아이는 희망을 품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발길을 옮긴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바쳐 만들어낸, 결코 무너지지 않을 콘크리트 탑으로.
각자가 마음속에 품은 것이 올발랐다고 증명하기 위해.
멈춰 움직이지 않는 세상을 향해 목 놓아 울부짖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