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561)
마법소녀 아저씨 560화(561/671)
560. O급 기록(10) – 저 너머
인류가 역사를 통해 쌓아 올렸으며, 우리가 경험과 고찰을 반복해 열심히 갈고 닦은 지금까지의 전략 전술은 이 전쟁에서 쓸모가 없다.
이계를 상대할 때 그들이 가진 이질성으로 인해 평범한 전략 전술이 잘 적용되지 않아 그러한 지식은 그리 쓸모가 없다고 오해당하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가장 기본이 되는 망치와 모루부터 시작해 그보다 더 기초적인 관점, 개별적인 전투에서의 전투력 우위나 전체적인 소모, 병력 기동과 같은 요소들 또한 그리 달라지지 않은 채 열심히 이용되고 있다.
특히나 전투 중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지휘 개체가 없는 전투는 평범한 전투 양상으로 흘러가기에 평범히 지휘가 필요하며.
지휘 개체 혹은 강대한 적이 있으며, 그것을 패퇴시키는 것이 승리 조건인, 옛 일기토와 같은 기괴한 전장이 흔히 보인다고 하더라도.
승리 조건이 적의 섬멸이 아닐 뿐, 적 수장을 해치우는 동안 전선이 무너지지 않은 채 적의 물량을 막아내는 것은 여전히 필요한 요소이기에, 과거로부터 내려온 전략 전술은 여전히 유효하다.
전차보다 거대하고 기동성이 좋은 괴수나, 보병이 전차를 격파하는 등, 소규모 전투에서는 상식 밖의 사태가 일어나지만, 큰 틀에서의 전략 전술은 여전히 필요한 것이 현실.
전쟁의 결과로서 강대한 힘을 가진 영웅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영웅의 승리를 위해 굳건히 전선을 지키는 역할 또한 중요한 법.
그렇다면, 지금 이 전쟁은 어떤가.
적의 병력 움직임은 어떠한가.
돌진할 때 다 함께 들이박아 충격을 상승시킨다는 짐승 집단 수준의 전술조차 없는, 무질서한 혼돈.
병력의 연계도, 큰 대전략도 없는, 무차별 테러와 같은 공격.
원시시대에나 볼 법한 이런 전술은, 본래라면 병력 집중을 통한 각개 격파를 통해 무참히 섬멸되는 것이 정상적인 흐름이어야 하겠지만.
이번엔 다르다.
병력 운용을 통해 집중된 아군 병력이 개별적으로 전투를 벌이는 적 개체를 집중 타격하고 있지만.
적은 개체 하나하나가 집중된 병력의 힘을 뛰어넘을 만큼 압도적인 힘을 보이고 있다.
병력 운용의 이론을 따져보면 각 군 전체의 힘이 동등하다면, 넓게 퍼진 군보다는 개별적인 전투에 힘을 집중하는 군대가 강한 것이 당연한 상식이겠지만.
이 전쟁에서는 물리적 한계로 그것이 불가능함을 증명하고 있다.
인간 하나를 상대로, 총을 든 이 몇 명이 사격할 수 있을까.
인간 하나를 상대로, 전차 몇 대가 붙을 수 있을까.
병력 수백이 한 명에게 공격을 집중한다 한들, 한 번에 싸울 수 있는 이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으며, 유효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숫자도 한정된다.
이런 요소가 전략 전술에 없는 것은 아니다. 상대가 숫적으로 우위라면, 적의 병력 동시 가용 숫자를 낮출 수 있는 지형을 고르라는 격언도 있으니까.
그렇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없이 그런 이론을 실현한다.
평지더라도, 절벽이더라도.
다른 외부적 요소 없이, 오롯이 자신의 힘만으로.
그런 군세.
그런 적이 죽음의 공포도 없이, 망설임도 없이 날아온다.
그저, 우리를 섬멸하기 위해.
퇴각이라는 선택지조차 회색으로 봉한 채, 짓밟기 위해.
심지어, 확실하게 우리를 처리하기 위해서인지.
존속에 사정을 두는 괴인들이 아닌, 그저 학살을 수행하는 망자들만으로 이루어진 군세가.
돌 골렘과 탱크, 근접계 영웅으로 이루어진 장벽을 뛰어넘거나 단독 돌파하며, 홀로 탑 안으로 침입해 주변 병력을 몰살시키는 강자들이.
탑 안에서 차량보다도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강자들이.
이런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배운 적도 없고, 겪은 적도 없다.
이런 전쟁을 지휘해야 하는 방법은 모른다.
그렇지만.
“23-HZ-52 부대. 위층으로 지원 바랍니다.”
“23-HZ-52. 확인했습니다.”
담담히, 그들을 사지로 보낸다.
해당 병력으로는 승산이 보이지 않는, 반응이 끊긴 위층으로.
전 A급 영웅. 레드 웨더. 기상 조작계 초능력자가 있는 장소로.
아마, 그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위층에서 수많은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을 테니까.
그리고, 자료를 통해 해당 부대 또한 그들을 막을 만큼의 전투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층을 오르리라.
시간을 주면 한없이 강해지는 레드 웨더를 막기 위해, 승리가 아닌 단순한 시간 벌이를 위해.
담담히, 부대를 호출하며, 병력을 회전시킨다.
그것이 우리의 역할.
사람 하나, 사람 하나를 말로 보며, 전투를 이끌어간다.
그 어느 때보다도 조용한 이들을.
되물음조차, 지원 요청조차 들려오지 않는, 조용한 통신으로.
적 손실 보고가 하나 올라올 때, 아군 손실 수백이 올라오는 상황판을 바라보며.
조금이라도 승산을 높이기 위해.
조금이라도 오랫동안 전선을 유지하기 위해.
그것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지휘부 전체에 어두운 절망이 감돌기 시작한다.
이미 각오하고 온 이들인 만큼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진 않지만.
작은 한숨, 짜증 섞인 움직임, 속삭이는 기도 소리, 날카롭게 변한 목소리가 지휘부 전체를 지배한다.
알고 있다.
본래부터 없었던 승산이 점차 멀어지고 있음을.
그저 우리는 버티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숭고한 희생을 위해 모인 이들을, 잠깐의 시간을 위해 갈아버리고 있다는 것을.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정보를 취합해보면 이 전쟁에 희망은 없다.
본래라면, 전선의 승산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라도 이 정도로 암울한 분위기는 지휘부에 감돌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믿기 때문이다.
적 군세를 돌파한 영웅들이 적의 지휘부를 떨어트릴 것을, 얼마나 전선의 상황이 암울하더라도, 아직 빛을 되찾을 기회가 있음을.
그렇기에 아무리 암울한 상황이어도, 우리는 고함친다.
마지막까지, 단 일 초라도 저 앞에서 싸우는 영웅들의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그렇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그런 이들이 없다.
적의 수장은 아직도 누군지 알 수 없고.
지휘관으로 보이는 성녀, 이름 없는 마법사, 천마조차 아직 우리의 손길이 닿지 않는 장소에서 상황을 관망하고 있다.
이 전선이 이미 멸망을 향해 가고 있건만, 이 싸움에서 승리한다 한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각자 소속은 다를지라도 아직 살아남은 뛰어난 인물들.
당연히 이 사실은 눈치챘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그 절망을 타인에게 내뱉지 않은 채.
“12-AB-32. 자리를 유지해주시길 바랍니다.”
“12-AB-32. 알았다. 행운을.”
타인을 죽음으로 몰아간다.
그 자리에서 죽으라는 말을 내뱉으며.
그렇게, 음울함이 채워져 가는.
토론 하나 없는 검은 지휘부에.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찾았다.”
음침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에,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를 높인 이에게 도달했다.
문을 열고 도착한 이.
너무 심각한 타격을 받아 검은 힘으로도 재생할 수 없었는지, 상반신 절반이 뜯겨나가고, 내장 대신 검은 점액을 땅에 질척이는 존재는.
남은 손에 부러진 검을 손에 들고 우리를 바라보았다.
지휘부 방위선이 돌파당했다.
그것을 타박하는 이는 없었다.
비록 전방에 병력을 돌리느라 압도적으로 강한 영웅들을 배치하진 못했다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마지막 방어를 위해 나름 강자들을 배치하여 만든 방어선.
그들이 노력한 결과가, 저 엉망이 된 망자임을 다들 눈치챘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 지휘부에 남은 이들 중 저 망자를 어떻게 할 만한 이가 없다는 사실도.
“…끝인가.”
누군가의 목소리.
우리의 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휘부가 기능 정지를 한다 한들, 남은 이들은 계속 싸울 것이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전투에선 우리 지휘부의 힘이 크게 떨어지니까.
그렇기에 우리의 몰살은 두렵지 않다.
그렇지만, 우리 뒤에 자리한 것.
저 너머에 자리한, 관리국 메인 시스템과 심장부에서 옮겨온 수많은 위험 물품, 이미 부작용을 무시하고 가동하고 있는 몇몇 물품들이 가동 정지한다면, 분명. 우리는.
끝이리라.
그렇기에.
철컥.
다들 권총을 손에 들었다.
자살이 아닌, 마지막 싸움을 위해.
승산은 없다.
아무리 약해졌다 한들, 방위선을 돌파하고 온 옛 영웅이다.
그렇지만, 여기 남은 이들은.
각오를 끝마쳤음이 분명하기에.
포기하지 않고, 적을 겨누었다.
“…하… 하하… 그래야지.”
망가진 망자가 웃는다.
어이가 없어 웃는 것인지, 정말로 만족스러운지는.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다.
그렇게, 적이 날아든다.
우리는 반응조차 불가능한 속도로.
검은 그림자만이, 시야에 남은 뒤.
빠직.
푸른 광선이 튀었다.
검은 그림자는 푸른 광선에 꿰뚫리며, 쓰러져 입자가 되었다.
그렇게, 정적이 감돌았다.
모두가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몇 초.
“…플라즈마 집중기?”
누군가가 이 상황을 이해하고 입을 열었다.
“그건 분명 에너지 부족으로 사용 불….”
그리고, 또 다른 이가 그를 거드는 추가 정보를 내뱉었고.
그를 통해, 지식이 되살아났다.
이 장소에 설치했던, AO소장의 마지막 방위선.
그렇지만, 에너지 부족으로 사용할 수 없었던 물건.
거기까지 생각이 도달하자.
나를 포함한 몇몇 이들은 곧바로 상황판을 바라보았다.
상황판 한구석, 현재 가용할 수 있는 에너지 총량을.
분명, 한계까지 쥐어짜 아슬아슬하게 생산과 소모를 맞추긴 하였지만, 일부 작전을 위해 조금씩 조금씩 늘리다보니 생산량보다 소모량이 많아져 하부를 맴돌던 그것을.
빨갛게 위험 신호를 알리던 에너지 바가 천천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블랙 아웃 위험 구간에서 벗어남을 알리는, 노란색으로 변하며.
“드디어….”
누군가의 탄성이 터져 나오지만.
다수의 인원은 영문도 모른 채 이 상황을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
그렇지만,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희망을.
기다렸던 것을.
시간에 맞췄다.
히든 카드가 기동하기 시작했다.
혹여 정보가 새어 나갈까 싶어, 지휘부 일부 외에는 다른 아군에게조차 숨긴 작전의 시작점.
쿵.
빌딩이 크게 흔들림과 동시에.
점차 바닥을 향해 떨어지던 에너지 총량이 빠르게 치솟기 시작했다.
이론상으로만 존재한다고 여겨졌던, 완전판 상전이 엔진이 가동함으로써.
층이 하나씩 점거당하며 끊어졌던 연결도 복구되었고, 가용 연산량도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회색 속에 잠들었던, 전 세계의 통신기기가 이 장소로 연결됨으로써.
침묵했던 골렘들이 다시 일어서기 시작하고, 침묵했던 방어 기기들도 다시 반응을 시작했다.
이 장소에 적의 모든 시선이 집중된 동안, 세계를 누비며 이 카드를 준비한 이의 움직임으로.
그리고, 그렇게 모인 에너지가 탑 저편에 모이며.
하나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웅성거림이 퍼져간다.
누군가는 그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와 싸운 적이 있을 것이다.
O급 괴물. 푸른 거신.
전 세계의 정보망을 탈취하고 정신 지배를 성공시킨.
통신망의 밑바닥에서 잠자던 이.
그리고, 노이즈 잔뜩 섞인 방송을 통해 이 장소에 다른 모두를 불러 모은 인물이자, 우리에게 이 작전을 제안한 이.
“나의 이름은 보이드 러너.”
푸른 거신이 목소리를 높인다.
그리고, 손을 뻗는다.
과거와 달리 관리국의 빌딩이 아닌, 몰려오는 검은 이들을 향해 거체를 흔들며, 검은 망자들을 저 멀리 날려버리며.
“너희를 막을, 한낱 인간이다.”
아직, 우린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