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566)
마법소녀 아저씨 565화(566/671)
565. O급 기록(15) – 녹슨 정의
흉흉한 기운이 도는군.
그런 생각과 함께 손에 든 단검을 바라본다.
손의 연장선이라 해야 할 정도로, 긴 시간 함께해 온 녹슨 단검.
본래도 그리 상태가 좋은 단검은 아니었건만….
오히려, 이 단검이 이 정도로 버틴 게 신기하지 않던가,
무엇 하나 없는 특별한 단검.
신의 힘으로 벼린 것도, 누군가의 축복을 받은 것도 아닌.
지독하게 저주받은 것도, 초월자의 악성이 담긴 것도 아닌.
그런 평범한 단검이 기나긴 세월 동안 부러지지 않은 채 살아남았다.
나처럼 말이다.
살을 자르는 본래의 용도 외에도 험하게 사용되어 이는 잔뜩 나간.
날의 흠집 사이엔 피와 살이 스며들어 기묘한 무늬를 형성한 단검.
그리고 그 사이로 계속 번져 나가는 녹은 덤이지.
익숙한 단검의 형상이야.
다만,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
익숙했던 단검의 특징을 모두 덮어 버린, 붉은 자국.
방금 생명체를 찌른 것처럼 생생히 남아 선혈의 색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붉은 핏자국은 아무리 닦아도 단검에서 떨어지질 않는다.
본디 단검을 자주 손질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신경 쓰여 몇 번이나 지우려 했던 붉은 핏자국은.
얼마 전 전투로부터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단검 위에 선명히 남아있다.
…초월자의 피.
끝없이 세상을 떠돈 끝에 결국 초월자를 찌른, 저편에 손이 닿은 흔적으로써 남은 핏자국.
검사해 본 결과 특별한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그렇다 한들 꺼림칙한 기운이 가시는 것은 아니다.
그럼 다른 것을 들고 오면 될 일.
이것 말고도 단검은 여럿 있다.
별의 심장으로 벼려 낸.
그림자를 단조하여 어둠에 섞인.
찌른 상대를 저주하는.
그런데도, 나는 이것을 선택했다.
이 전투에 사용할 무기로써.
구원자이자 은인을 찌를 무기로써.
가장 손에 익은 단검을.
그런 단검을 바라보았다.
* * *
모습을 드러낸 잠수함에 치인 그가 당황이 명백히 겉으로 드러난 표정과 함께 하늘로 솟구친다.
그것은 아마, 초월자의 시야로도 이 상황을 미리 보지 못했음에 당황한 것이리라.
어떻게 이런 물건이 여기 도달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의문.
계속해서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었건만, 어떻게 이런 거대한 것을 찾지 못하였는가.
그것은, 이 잠수함이 신의 시체로 건조되었기 때문이겠지.
그레이 이터의 갑각.
한때 신이었던 존재의 부산물.
그것이 효과를 발휘할지는 우리도 알 수 없었다.
정보가 부족한 우리는 그들의 정확한 특성을 모른다.
그들의 시야가 신과 연관된 일은 정확히 관측하지 못한다고 한들, 신의 시체에도 그러한 효과가 남아있을지는 확신하지 못했기에, 이것은 일종의 도박이었다.
애당초 노틸러스는 이런 일에 사용하기 위해 만든 잠수함도 아니다.
그저 당시 확보할 수 있는 재료 중 가장 높은 가치를 지녔었기에 건조에 사용한 재료일 뿐.
그렇지만, 도박은 성공했다.
이하람 님은 이 상황을 미리 보지 못하셨다.
그렇지만, 이것이 이하람 님에 대한 확실한 유효타는 아니다.
당황은 찰나일 뿐.
이하람 님이 손을 들어 올린다.
검은 악의를 주먹에 둘러, 잠수함 노틸러스를 깨부수고자.
그렇기에.
“…죄송합니다.”
모습을 드러낸다.
찌르기 위해.
도려내기 위해.
파괴를 멈추도록.
그들의 시선에서 벗어날 자격을 지닌, 씨앗으로서.
내지른다.
그리고.
캉.
단검이 튕겨 나간다.
기습에 반응해 빠르게 몸을 회전시킨 이하람 님에 의해.
검은 주먹도 아닌, 그저 흩날린 옷자락에 의해.
“퀼프.”
그렇게 기습을 막아 낸 이하람 님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아직, 적의는 느껴지지 않는다.
나 따위를 적이라 인지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잠시 고민했지만.
“맹약을. 지켜라.”
이유는 곧 알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는 기회이다.
맹약을 지키지 않은 우리가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
그 제안에, 손가락에 낀 반지를 바라보았다.
단검보다도 더욱 소중히 여겨 흠집 하나 없는, 너트로 만든 반지.
맹약의 상징이자.
인간의 상징.
“분명, 저희는 맹세했습니다.”
“….”
그가 바라본다.
그가 기다린다.
노틸러스에서 쏟아지기 시작한 영웅과 괴인보다 나 하나가 내뱉는 답이 중요하신 것처럼.
그저 기다린다.
그저 바라본다.
내 대답을 듣기 위해서라면, 적의 출격을 막는 중요한 몇 초가 그리 아깝지 않으신 것처럼.
그가 이 늙은 쥐 수인에게 무엇을 바라시는지, 왜 나를 고평가를 하시는지 알 수 없다.
중요한 점은.
이 알 수 없는 상황을 유용하게 써야겠다는 생각뿐.
“무슨 일이 있다 한들, 이하람 님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을.”
“….”
천천히, 또 천천히.
그렇지만 시간을 끈다고 느껴지지 않을 속도로.
“그렇지만, 제 눈앞에 계신 분은.”
한마디 한마디 단어를 골라.
“제가 맹세한 이하람 님이 아닌 것 같습니다.”
진심을 전한다.
지금 이 행동이 잘못되어 있음을.
결사 인원 중 일부가 맹약에 따르지 않은 이유를.
“그래?”
그런 내 말에, 이하람 님은 살짝 기울인 채 나를 바라보던 고개를 똑바로 들어 올리셨고.
“그럼, 필요 없지.”
그대로 주먹을 날렸다.
아득히 빠른, 나조차 인지가 가까스로 가능한 속도로.
그리고 나는.
죽음을 마주한다.
수많은 세계를, 가능성을.
주먹에 서린 검은 악의는 지금까지 겪은 모든 것과 다르다.
통증도, 무력감도 아니다.
상실감.
나 자신을 구성하는 무언가가 완전히 잘려 나가는 감각.
이 세상에 내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감각.
설령 공격에 적중한 가능성의 세계가 사라지더라도, 이 감각에 사로잡히면 육체의 상실과 관계없이 나 자신이 소멸할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게 만드는 감각.
그런 뒤틀린 상실감을 이를 악물고 의지와 함께 이겨 낸다.
아직 여기서 쓰러질 순 없으니.
아직 노틸러스에서 아군이 나오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기에.
나는 축축한 땅굴 속에서, 무수히 이어진 길들을 바라본다.
빛없는 어둠 너머에서 나의 끝이 그려진 가능성이 피어난다.
주먹에 꿰뚫린, 피했지만 스친 것만으로도 소멸한, 막으려다가 무기째 사라지는, 첫 공격을 피했지만 이어지는 연타에 사라지는.
그런 나 자신의 죽음을 직접 느끼며, 땅굴을 무너트린다.
미래가 사라진 길을 지우고, 이어진 또 다른 어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 힘을 얻은 이후 처음 겪는 현상을 마주하였다.
분명 안전했을 터인 미래가, 뒤틀리며 소멸하는 것을.
몇 없던 가능성의 땅굴마저도, 분명 안전했을 터인 미래도, 악의에 사로잡혀 닫혀가는 것을.
나의 공허한 세계조차 짓밟는, 악의의 부정함을.
그렇지만, 아직 길은 있다.
미미한 가능성, 수많은 죽음으로 쌓아 올린 가능성 하나.
그 땅굴 속으로 몸을 던진다.
수많은 땅굴이 무너지고, 다음으로 이어진 길이 열린다.
주먹을 피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주먹도.
같은 일을 반복하며.
피하고, 또 피해낸다.
점차 땅굴의 수가 적어진다.
모든 세계의 가능성이 닫혀간다.
무한한 죽음과 상실을 넘어.
이제 손으로 셀 만큼의 숫자만이 남은 땅굴 속에서.
빈틈을 보았다.
찰나의 찰나.
단검을 휘두를 수 있는 시간.
적의 어깨에 단검을 내지르고, 공격을 피할 수 있는 미래.
그것을 택하며, 파고든다.
확정된 미래로, 나아간다.
다른 모든 것을 버리고 택한 미래를 따라 단검을 휘두른다.
그런 내 행동에, 이하람 님이 반응해 따라온다.
주먹을 내지르며.
나에 대한 어떠한 감정도 남지 않은 얼굴로.
피할 수 있는 공격을 가해온다.
그 순간.
무언가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무언가가 다르다.
약자로 태어난 본능이 소리친다. 도망칠 때라고.
불길한 감각이야.
그렇지만, 억누르고 찌른다.
적의 어깨를, 은인의 어깨를.
캉.
이건…. 모르는 손맛이로군.
찌른 단검의 파편이 빛을 반사하며 허공을 춤춘다.
이하람 님의 육체를 뚫지 못한 채, 날이 부러진 단검.
손이 짧아진다.
뻗어나갔던 굴이 무너진다.
내가 택했던 미래는, 검은 어둠에 휩싸여 뒤틀린다.
검음이 다가온다.
붉은 안광과 함께.
피할 수 없는 주먹이.
도망칠 굴이 보이지 않는다.
나아갈 굴은 이제 없다.
그렇게 가치를 잃은 세계는, 수축하며 줄어든다.
동족의 미래도, 엮인 친우도.
새로이 생겨난 만남도.
모두 사라지고.
검은 굴속의 새끼 쥐.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온 나 하나만이 남는다.
검은 굴속에 웅크렸을 때처럼.
시작의 날처럼, 세상에 홀로 남아.
다가오는 어둠을 바라보며.
그날처럼, 손을 휘두른다.
끊어진 단검을, 땅을 파듯이.
본능에 새겨진 휘두름으로.
그렇지만.
짧다.
내 삶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휘둘렀다고 생각한 단검이지만.
이대로라면, 주먹에 휘감긴 어둠이 내게 닿는 것이 빠르다.
그런 인지 속에서.
기억할 과거가 검은 굴에 파묻혀, 반복되어 돌아보는 지금 속에서.
나아갈 미래를 잃고, 돌아갈 굴이 무너져버린 막다른 갱도에서.
무한하게 늘어진 인지, 이 현재의 찰나 속에서.
‘내 피로 벼려진 단검이야.’
속삭임이 들린다.
‘그리 쉽게 끊길 리 없지.’
여성 같기도, 남성 같기도 한.
‘가라, 씨앗. 미래를 열어.’
언젠가 들었던 목소리.
손이 뻗어간다.
가벼워졌던 손의 무게가 조금 다시 무거워진다.
내 심장 소리에 맞춰 붉게 빛나며 맥동하는 단검은.
그렇게, 사라졌던 조금의 거리를 뛰어넘어 은인의 몸에 닿는다.
푹.
감촉이 손을 타고 올라온다.
익숙한 감촉에 반응하여, 반사적으로 손이 움직인다.
살과 근육을 자르고 뼈를 드러내 복구할 수 없게 만드는.
상처를 헤집는 암살자의 기술이.
익은 손가락을 따라 움직인다.
그리고, 그렇게 모든 것을 행한 자국에서.
붉은빛이 피어난다.
그날처럼 붉은빛이.
따뜻한 피가 솟구치고.
그럼에도 멈추지 않은 주먹에 깃든 검음이 내 몸에 닿는다.
주먹은 복부를 꿰뚫고, 내장 전체를 헤집는다.
통증은 없다.
긴 세월 동안 말라붙은 몸은, 이제 시체와 같다는 듯.
삶에 있어 마땅히 존재해야 할, 죽음의 통증조차 전달하지 못한다.
세상이 수축한다.
좁게, 더 좁게.
그런 시야 속에서.
홀로 남은 굴속에서.
대수롭지 않게 어깨에 생겨난 상처를 어루만지는 이하람 님 너머.
노틸러스에서 내리는 이들이 시선에 들어온다.
결사 동료들.
경악에 찬 얼굴로, 황급히 달려오는 동료들.
그리고.
슬픈 얼굴을 한 여성 영웅.
방독면에 가려져 전체 얼굴을 볼 순 없지만, 그걸 눈치 못 챌 정도로 내 눈썰미가 나쁘진 않다.
그녀가 왜 그리 슬픈 얼굴을 하고 달려오는지는 모르겠구나.
우린 적 아니던가.
그녀와 나 사이의 인연은, 이 늙은 몸뚱이를 조금 고쳐준 정도.
어두운 굴을 헤집고 들어온, 동료들만큼의 친분은 없을 텐데 말이지.
그리 생각하며, 바라보았다.
짙은 피를.
막대한 힘이 깃든 피를.
그런가.
이 마른 몸에도 이만큼의 피가 남아있었나.
그래도, 이것으론 모자라다.
내 피로는.
그렇지만, 다른 피가 있다.
은인, 구원자의 피.
내가 헤집은 상처에서 뿜어진 피.
각각의 피로는 모자라다.
그렇지만, 양쪽의 피가 있다면.
“…이하람 님.”
핏자국이 남은 얼굴에 서린 싸늘한 눈초리가 나를 바라본다.
“늙은이는, 먼저 가겠습니다.”
굴이 무너진다.
어두운, 그저 깊기만 한 굴이.
그렇지만, 이제 춥지는 않다.
어딘가에 존재할 낙원에 도달하기 위해 파고, 또 파던 굴은.
원하던 장소에 닿았으니.
하늘은 그날처럼.
그날의 달처럼.
희게 빛나고 있다.
흩뿌려진 붉음을 제물로 삼아.
그렇지만.
그때와 달리 세상은 따뜻하다.
피가 아닌.
그날의 따뜻했던 피가 아닌.
다른 것으로.
언젠가부터, 몸을 따뜻하게 만드는 피를 찾지 않게 만들었던.
타인의 온기는.
인연의 빛남은.
분명, 그리….
나쁘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