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57)
마법소녀 아저씨 57화(57/671)
57. 옷이 화려해서 무슨 소용이야? 돈을 벌어줘 뭘 해줘?(2)
정말 난 뭘 하고 있는 걸까.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밝은 빛이 사방에서 흘러나오는 장소.
시끌벅적하고 밝은 쇼핑몰.
사회가 재건되었다는 증거인. 풍족한 물자가 흐르는 건물.
평일 아침이라 그런 걸까, 쇼핑몰은 한산한 편이었다. 물론 몇몇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지만, 대부분은 장을 보러 온 주부나 오늘이 쉬는 날인지 쇼핑하러 온 사람들.
즉, 내가 있는 장소는 여성이 옷을 사러 오는 장소라기보다는 지역별로 하나쯤은 있는 거대쇼핑몰.
물론 여러 옷가게가 입주해있긴 하지만, 여성들이 좋아하는 예쁜 옷이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영웅으로서 받은 돈도 꽤 될 텐데, 더 비싼 장소로 가서 쇼핑해도 되지 않나.
여자 옷을 파는 곳이 어딘진 모르겠지만, 한아빈이라면 알고 있을 터.
아니, 오히려 그런 장소로 가지 않아서 다행인가.
이런 대중적인 쇼핑몰에서도 분위기를 견디지 못해 이렇게 소파에 늘어져 있는데, 그런 장소를 끌려다녔다가는 수치심에 죽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동네 슈퍼나 중소형마트면 충분하다고….
그리 생각하자 몸이 더욱 늘어졌다.
어째서 이런 장소의 소파는 딱딱한 걸까.
멍하니 있는 상황에서 고개가 아래로 내려가자, 가게의 유리 벽에 반사된 빛이 눈을 찔러왔다.
그것을 피해 제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척 봐도 몸을 조일 것 같은 분홍빛 원피스를 들고, 서로에게 맞춰보며 시끄럽게 떠드는 두 여성.
“이건 어때요?”
“허리가 조여서 불편할 것 같아.”
“평소에 입는 마법소녀 복장이 더 불편하지 않나요?”
군복 비슷한 회색 옷에, 군청색 코트, 하얀색 망토였던가. 전체적으로 보면 연미복 풍 옷에 망토를 두른 괴상한 복장.
아마 그것도 백시현의 기묘한 패션 감각에서 나온 거겠지.
지금 입은 옷도 처참한 수준이니.
펑퍼짐해서 어깨선이 팔뚝까지 내려오는 티셔츠.
헐렁헐렁한 탓인지, 허벅지가 부풀어 오른 검은 바지.
흘러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일까. 티셔츠 위에 두른 허리띠.
물론, 끝단이 다 찢겨나간 티셔츠를 바지 안에 집어넣는 정상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다.
덕분에 티셔츠의 끝단은 치마처럼 펄럭거리며 내 시선을 끌었다.
저것만 봐도 무슨 거적때기를 입은 이상한 사람이 아닌가.
내가 저거랑 동급이라고?
아무리 대충 입고 다니는 나라지만 시현이와 비교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어 내 옷차림을 내려다보았다.
맞춤 제작한 화이트 셔츠와 면바지, 겉에 입는 얇은 회색 코트.
마법소녀의 옷 일부분인 튼튼한 갈색 가죽 부츠.
크게 이상한 부분은 없다.
현석이가 옷 좀 제대로 입고 다니라고 자기 돈으로 맞춰준 옷이니 문제없겠지.
하도 오래 입고 다닌 덕분에 코트에 보풀이 생기고, 색도 검정에서 회색으로 변하긴 했지만.
…빈티지라고 우기면 되지 않을까.
역시 물빨래를 한 것이 문제였나.
그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있자, 시현이가 아빈이의 손에 잡혀 끌려갔다.
양손에 대량의 옷을 들고, 시현이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구속한 후 탈의실을 향해 끌고 가는 모습은 뭐라 말하지 못할 만큼 인상적이었다.
시현이는 자신이 옷 갈아입히기 인형이 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팔다리를 흔들며 버둥거렸지만, 지금 그녀는 마법소녀로 변신한 것이 아닌 평범한 여성.
변신하지 않으면 아빈이가 힘이 더 강한지, 버둥거리던 그녀는 아빈이에게 붙들려 시야에서 사라졌다.
옷 상하면 어쩌려고 저러나.
두 제자가 그렇게 소란을 피우는 동안에도 내 몸은 점차 딱딱한 소파와 일체화되기 시작했다.
지구의 중력에 따라, 번쩍이는 빛을 피해, 조금이라도 푹신한 장소를 찾고자, 아래로 흘러내리는 내 몸.
집에 가고 싶다.
“언니들이 놔두고 가서 심심하니?”
옷가게 주인인가.
평범하게 차려입은 여성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조금 크면 알게 될걸? 옷을 고르는 게 지루해 보여도 꽤 즐겁단다.”
난 이 나이 먹고도 모르겠다만.
옷은 튼튼하고 몸에 잘 맞으면 되는 거 아닌가.
“누나들 아닙니다.”
“그럼? 설마 엄마라도 되니?”
쟤들이 그럴 나이로 보이시나.
아줌마들이 하는 말은 과격하네.
“제가 보호잡니다. 이래 보여도 꽤 나이가 많아서 말이죠.”
“….”
옷가게 주인의 얼굴이 뒤틀리며 미소가 무너져내렸다.
절대 상정하지 못한 답을 들었기 때문일까.
“요즘 애들은 조숙하구나, 아줌마 놀리면 못써.”
가까스로 영업용 미소를 복구하고 다시 말을 걸어온 주인이었지만, 억지로 표정을 고친 것이 티 나게 눈에 띄었다.
일그러진 주름, 미세하게 찌그러진 눈 모양.
“저 녀석 둘 나이 합친 것보다 제가 더 나이가 많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하던 일 하시길.”
내가 그 말을 끝으로 눈을 감자, 그녀는 어떻게든 자신을 납득시켰는지 나에게서 멀어졌다.
역시 이런 것은 불편하다.
내 외형만 보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행동들.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길.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밝은 장소.
그 모든 것이.
적어도 얼굴이라도 마주치지 않으면 상관없을 텐데.
둘은 언제 돌아오려나.
눈을 감고 두 아이를 기다린 지 얼마나 지났을까.
“선배님. 오래 기다리셨죠?”
“그다지.”
들려오는 아빈이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그러자 예상치 못한 광경이 눈에 비추어졌다. 제자의 달라진 모습.
아빈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아빈아 이거 숨 막….”
“조용히 해. 숨이 막히기는 무슨. 네 노끈이 더 꽉 조여진 상태였어.”
탁.
아빈이는 징징거리는 백시현의 등을 후려치며 그리 입을 열었다.
“선배님. 애 옷 어때요”
“나쁘지 않네.”
짧은 말.
말주변이 모자라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백시현은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변했으니까.
처음 가져갔던 여성스러운 옷은 아니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약간 중성미가 풍기는 옷이라 해야 할까.
위쪽 부분은 목까지 가리는 흰색 블라우스에, 포인트를 준듯한 금색 액세서리.
아래는 통이 넓은 허리까지 올라오는 검은 주름진 치마.
“시현이가 본판은 나쁘지 않아서요. 거기다가 단색으로 몸을 가리는 게 잘 어울려요. 좀 중성적인 차림도 괜찮고요. 긴 머리랑 겹쳐져서 독특하게 보이니까요.”
“그럼 바지가 낫지 않아? 이건 너무 펄럭거리는데.”
“마법소녀일 때 잔뜩 입잖아? 평소엔 이런 게 더 나을 거야.”
인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한아빈의 말처럼, 옷차림도 꽤 중요한 요소라고.
백시현 또한 입으로는 불평을 말하고 있지만, 거울 앞에 서서 치마 선을 정리하는 것을 보아하니,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걸로 시현이도 옷에 좀 관심을 가지면 좋으련만.
적어도 공룡 옷이나 거적때기를 입고 돌아다니지 않을 정도로.
“한아빈. 네 옷은? 아까 갈 때랑 똑같다만.”
“제 옷은 이제부터 사러 가야죠.”
…이제부터 또 고른다고?
여기서 몇 시간을 굴렀는데?
아빈이는 당황하는 나를 내버려 두고, 카운터의 아줌마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계산이요.”
“어휴, 많이 사셨네요.”
“결과물이 좋으니까요. 저기 보세요. 확 달라졌잖아요.”
옷가게 주인은 옷이 많이 팔렸기 때문일까, 싱글벙글 웃으며 아빈이와 대화를 나누었다.
저 옷에는 액세서리가 어울리니 간단한 브로치는 어떤지.
예쁘게 잘 꾸몄다는 말의 주고받음.
계산하는 것도 시간이 필요한 걸까.
저 말에 무슨 의미가 있지?
“스승님. 이 옷 어때요? 싸울 때 불편할 것 같은데.”
시현이는 저 대화에 끼어들기 어려운지, 내 옆에 앉아 입을 열었다.
“어차피 변신하면 옷은 자동으로 변경되잖아.”
“그래도, 변신하지 않는 시간도 있잖아요? 평소에 이러면 그럴 때 불편하지 않을까….”
아마 네가 아까 입고 있던 옷이 더 불편할 거다.
아까 그 무식하게 펑퍼짐한 바지로 뛸 수는 있겠냐.
그리 말해주고 싶지만, 그리 말해서는 안 될 노릇.
“친근한 영웅이 되고 싶다며? 그럼 그 옷차림은 나쁘지 않은 선택일 거다.”
“제가 친근한 영웅이 되고 싶단 이야기는 아니었는걸요.”
이거나, 저거나.
“그게 아니라 쳐도 외모를 관리하는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란 뜻이다. 미디어에 노출되면 외모가 괜찮다는 것도 가산점이 될 테니까.”
“음. 이 옷이랑, 제가 입고 다녔던 옷이랑 그렇게 차이가 나나요?”
“엄청나게 차이 나지.”
아마 첫인상에서부터 큰 차이가 생길 거다.
거적때기를 입은 영웅이랑, 깔끔하게 차려입은 영웅이랑 비교한다면.
그나저나 첫인상과 친근함이라.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세계를 뒤흔들, 거대한 돌로 사용할법한.
“계산 끝났어요! 가죠!”
그런 내 생각도, 한아빈의 등장으로 잠시 끊겼다.
괜찮다. 이 쇼핑몰을 계속 돌 거라면 생각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한아빈에게서 짐을 들어달라는 부탁을 받고, 작은 종이봉투 하나를 손에 들었다.
나한테 짐을 모두 들릴 만큼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닌지. 한아빈과 백시현은 종이봉투 두 개를 각각 손에 쥔 상황.
집에 돌아갈 때 어쩌려고 이렇게 많이 산 건지.
천천히 한아빈의 뒤를 따라 발을 옮기며, 생각을 이어나갔다.
블랙 머라우더 혼자서 사회를 뒤흔들 수는 없다.
설령 거대한 힘을 휘두른다고 하더라도, 민간인에게 피해가 가게 해서는 안 되니까.
그렇다면 집단을 이루는 것은 어떠한가.
괴인 결사를 사용하여, 사회 전체를 공격하는 것은.
그것도 기각이다.
결사를 이용해 사회를 공격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사회를 뒤흔들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강대한 하나의 집단에 맞서 영웅이 뭉치겠지.
결사를 위험에 빠트리며 행동하는 것 치고는 이득이 없으리라.
그렇다면. 균열은?
블랙 머라우더를 이용해서 관리국에 균열을 일으키는 것은?
요점은 사회를 흔드는 것이다.
관리국을 흔들며 그 파장이 이어나가도록.
데인저 라이플처럼, 현 사회에 대한 불만이 있는 자들을 모아 관리국이라는 거대한 조직에 맞서도록.
관리국에 불만을 가진 국가와 영웅을 모아, 거대한 조직을 만들자. 인류의 적이 아닌, 인류 내부에서 생겨난 반목조직.
관리국이 인류 보존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찍어누를 수 없고, 견제하기도 힘든 조직을.
악이 아닌, 관리국의 정의와 충돌하는 새로운 정의를.
하지만, 지금의 블랙 머라우더로는 그것을 행할 수 없다.
그것의 현재 평가는 단순한 미친 광인이니까.
또 다른 정의를 등에 지고 고난을 행하는 자가 아닌, 미쳐 날뛰는 짐승. 우상으로는 부적합한 존재.
그것은 내가 행한 일의 결과.
후회하진 않는다. 나는 그것밖에 할 수 없으니까.
그렇다면 유밀을 이용하자.
유밀이 다른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도록.
그녀의 외모와 말을 사용하여 다른 이를 설득하도록.
그녀는 그런 밝은 면의 일을 행해주면 충분하다.
나는 본래 걷던 어두운 길을 걸을 것이다. 어두운 밤을 내달리며, 검은 입자에 몸을 숨긴 것처럼.
누군가를 협박하고, 방해자를 말살하며, 조직의 크기를 불리리라.
이것으로 좋다.
정의와 정의의 충돌.
어떤 정의가 이기더라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그걸로 일어난 사회의 혼란이니까.
새로운 정의와 충돌하면 관리국은 거기에 신경을 쏟을 것이다.
그렇다면 영웅들도 관리국의 지원에 모든 것을 기댈 수는 없겠지.
지금처럼 약간 강한 이야기의 적이 나온다고 지원을 요청할 순 없을 것이다.
그렇게 정해졌다면, 유밀과 의논해서 상세한 전략을 짜나가자.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하고 고개를 들었다.
오늘 옷을 고르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색다른 자극은 나에게 새로운 생각을 불러일으켰으니.
그렇게 만족감을 채우고 주변을 둘러보자 불길한 예감이 솟아올랐다.
어느새 주변의 가게가 여성복매장에서 학생복매장으로 변해있었다.
작은 체구의 아이들을 위한 옷.
뭔가 불길하다.
“한아빈. 너 옷 고르러 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잘 생각해보니 제 옷보다는 선배님의 옷이 더 중요할 것 같아서요.”
…잠깐?
“그 나는 옷도 있고. 이거 봐. 잘 빼입었잖아?”
“어떻게 봐도 다 낡아서 도저히 입을 수 없는 옷인걸요. 관리를 어떻게 하신 거예요?”
했을 리가.
옷이란 건 세탁기에 넣고 돌리면 되는 거 아니었나?
운호도 그걸로 충분하다고 했던 것 같은데?
“나는 별 상관없으니까. 아빈이 너부터….”
“안 돼요. 오늘은 시현이랑 선배님 때문에 나온 거니까요. 제 옷은 못 사도 선배님 옷은 맞춰야죠.”
내 옷을 맞춘다고?
불길한 생각에 시현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옷 자체로는 중성적이지만 약간 여자답게 생긴 옷.
주변 가게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학생, 아동복 매장이라 그런지 남녀 옷이 섞여 있지만, 대체로 여성용이라는 분위기가 강하게 풍겼다.
분홍색, 붉은색, 흰색. 치마.
“여자…. 옷은 아니지?”
“최대한 어울리게 골라볼게요.”
그건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지 않니?
툭.
손에서 종이봉투가 떨어졌다.
빠르게 몸을 돌리고, 땅을 박찼다.
“선배님!”
“스승님?!”
도망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