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586)
마법소녀 아저씨 584화(586/671)
584. 기록 – 욕망, 기술, 조정.
청주.
그러한 이름을 가진 저 도시는 어느 지성체 국가의 거주 콜로니.
세계가 이계에 잠식된 이후, 뭉치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게 된 지성체는 이러한 군락을 중심으로 집단을 다시금 성장시켰다.
한때 자신들의 탈것에 치여 죽는 것과 기묘한 울음소리로 유명한 짐승이, 역으로 자신들의 탈것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남은 금속 잔해와 시체를 씹어먹는 세계가 된 이후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도시에서 이변이 시작되었다.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이변.
조금씩, 조금씩 시간이 지날수록 도시가 점차 차가워져 간다.
물리적인 추위, 온도가 떨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차가워지는 것은.
도시에 흐르는 분위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각자가 내뱉는 말.
사회를 이루는 것들이 차가워지기 시작했지만, 그 누구도 그러한 변화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 집단에서 콜로니의 그러한 변화는 너무나도 당연했기에.
사람이 모여 집단을 형성하고 지성체의 수가 많아짐에 따라, 서로는 서로에 대해 잘 모르게 되어 간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알지 못하는, 일정 이상의 관계가 없는 이들에게 무관심과 차가움을 되돌린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란 지성체가 쌓아 올린 문화와 사회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이에게 따스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 차가움 속에서도 그런 사회적 교감을 하겠지만.
지성체 대다수는 그러한 행동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 선택이 나쁜 것은 아니다.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생기는 깊은 관계를 싫어하는 이 또한 있기 마련이며, 그러한 관계가 만들어 내는 문제 또한 존재하기 때문.
그렇기에, 그들 집단에서 만들어지는 이러한 변화에 대해 말을 꺼내는 이는 존재할지언정, 크게 문제 삼는 이는 얼마 되지 않았다.
과거 인류 멸망의 위기 속에서 잠시나마 다시 피어난 끈끈한 관계성은, 도시라는 거주지를 좀 더 밀집되게 만들며 빠르게 사라졌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다시 말하지만, 그들의 성향상 이러한 변화는 당연했기에.
청주뿐만 아니라, 다른 지성체들의 도시에서도 일어나는 일이었기에.
모든 이들이 그러하기에.
그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청주가 다른 도시보다 조금 더 차가워지는 것을.
세상의 변화 이후 이러한 것까지 수치로 만드는 통계가 있었지만.
이러한 변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기관도.
그것을 분석하는 날카로운 존재도.
알고리즘을 통해 이질성을 판별하는 논리 회로도.
청주의 이질성을 허용 오차 이내라고 넘겨 버리고 말았다.
우발적 사건이 줄어들고, 고의성이 다분한 사건이 증가하는 것을.
청주의 거주민과 타지 간에 연락이 줄어드는 것을.
거주민들 행동이 점차 딱딱해져 가는 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기에.
그것은 거대한 참사가 되었다.
시작은 작은 촉수였다.
감정을 자신의 힘으로 바꾸는, 작은 붉은 촉수.
본래 해당 촉수는 그리 강한 힘을 가지지 않는다.
지성체가 존재하는 한 어디서든 감정은 존재하기에, 그 촉수는 항상 먹을 것이 존재하지만.
반대로, 지성체에게서 감정이 상실되는 것은 주변이 빠르게 이상을 눈치챌 수 있기에.
성장이 빠르지만, 그만큼 들킬 위험성이 큰 촉수는.
수많은 시도에서 평균적으로 그리 압도적인 피해를 만들진 못하였다.
그렇지만, 이번 시도는 달랐다.
촉수가 처음으로 포식을 시작한 지점은, 교도소라는 이름의 장소.
집단의 규범을 어긴 이들을 지정된 장소에 밀집하여 몰아넣은 곳.
보편적인 거주지보다 지성체의 밀도가 높은 곳에 자리한 촉수는 빠르게 성장하였고, 곧 포식당한 지성체들은 감정이 옅어졌다.
본래라면 이 상황에서 촉수를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해당 장소를 관리하는 관리자들은.
‘요즘은 재소자 놈들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서 좋군.’
같은 대화를 내뱉으며 이상 현상 보고 의무를 다하지 않았고.
더는 성장을 막을 수 없게 되었다.
본래라면 성장하는 속도가 빨라 문제일 뿐, 발견 이후에는 성장 속도보다 강한 공격을 가하면 처리되도록 이야기가 짜인 촉수는.
성장함에 따라 덩치와 힘이 커져 더 넓은 장소에서 더 많은 감정을 흡수할 수 있게 되었고.
더 많은 감정을 흡수함에 따라,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한 촉수는, 군체의 두뇌가 전달한 의지에 따라 계획을 바꾸었다.
빠르게 흡수하고 빠르게 성장하는 계획에서. 넓은 장소에서 조금씩 다량의 감정을 흡수하도록.
그 누구도 감정을 흡수당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게.
그렇게, 촉수는 조용히 도시 아래에 자리 잡았다.
긴 시간 동안,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채.
붉은색이었던 피부가 검게 변하고.
크다 한들 촉수라 부를 수 있는 덩치가, 탑이나 기둥이라 불러야 할 정도로 성장하는.
긴 시간 동안.
그리고, 어느 화창한 아침.
동물조차 소리 높이지 않고.
관심 없이 말라죽은 꽃이 비명을 내지르며.
그제야 외부에서도 도시의 이상을 인지하고.
유일하게 따스함을 지닌 태양만이 빛으로 도시를 달구던 날.
쿵.
거대한 진동과 함께.
도시 중심에서 그것이 솟아올랐다.
거대한 덩치로 이미 탑이라 불러야 마땅한 검은 촉수.
이 이상 도시에서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하자, 한순간에 섭취 영역을 늘리기 시작한 촉수는.
이 순간까지 숨겨두었던 자신의 모든 힘을 개방하기 시작했다.
청주시를 넘어, 더 넓은 장소로.
청주가 자리한 국가를, 대륙을, 행성을. 모든 것을 빨아들이며.
이제는 멈출 수 없게 된 수레바퀴를 굴리며.
촉수 군체의 이상을 위해,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그렇게 도시는 멸망하기 시작한다.
감정을 집어삼키는 촉수는 지성체의 피와 살 따위엔 아무런 관심이 없지만.
거대한 기둥이 덩치를 키우며 뿌리를 뻗고 대지를 뒤집어엎는 것은 지성체들의 목숨을 빼앗아 가기 충분한 사건이었다.
그래도, 촉수는 인간의 생사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기에.
아니, 오히려 살아주는 것이 촉수에게 있어 이득이기에, 적극적인 살육 행각은 벌이지 않았지만.
거대한 이계의 힘을 품은 촉수는, 이미 충분한 세계의 뒤틀림.
뒤틀림은 시선을 부르고, 시선은 뒤틀림을 부른다.
이계의 힘에 취한 이들은 뒤틀림이 생겨난 장소로 모이고, 그들은 인간의 생사, 피와 살에 아주 관심이 많기에.
흩뿌려진 죽음과 이계의 힘.
그 속에서 피어나는, 집어 삼켜진 탓에 공포가 사라진 살육은.
구멍을 열었다.
이계와 연결된, 지성체의 적이 쏟아지는 문을.
시작되는 것은 더 많은 살육.
너무나도 쉽게 도시가 무너진다.
도시의 이상을 알아차린 이들이 진입을 시도하지만.
구멍이 열린 이상 이미 도시는 전쟁터나 마찬가지였고.
서로의 방어선을 뚫기 위한 지루한 공방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아침에 시작된 전투는.
밝게 빛날 뿐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해가 지평선으로 추락하고, 빛없는 달, 신월이 떠오를 때도 이어졌다.
열린 구멍에서 쏟아지는 적들을 도시 밖으로 내보내지 않기 위한 지성체들의 작전은 성공했고.
마침내 길이 열린 자리에, 그가 천천히 걸어왔다.
이 무대의 주인공.
푸른 옷과 두꺼운 부츠.
거대한 망치를 어깨에 짊어진 채.
건들거리며 걷는 이.
촉수의 대적자인 마법소녀.
반나절이 지나, 그가 마침내 촉수 앞에 도달했다.
쏟아지는 이계의 군세와 감정을 먹는 촉수가 자신의 뿌리를 잘라 만들어낸 촉수 병사들을 뚫고.
그의 모습은 평온했다.
밤 산책을 하듯 건들거리며, 특별히 얼굴을 찌푸리지도 않은 채.
그저 기계적으로 앞을 가로막는 촉수와 괴수들을 으깨버린다.
한 발짝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며.
촉수는 생각한다.
저것은 이제 위협적이지 않다고.
군체로부터 전달받은 정보에 따르면, 다른 세계에서 몇 번이고 자신이 승리했던 적이다.
단, 그만큼의 패배 또한 존재하지만, 지금의 촉수는 모든 기록을 따져보더라도 이 이상 성장한 기록이 없는 거대한 개체.
더 작을 때도 승리했던 만큼, 이만큼 성장한 시점에서 패배는 없다.
더욱이, 이번 적은 감정을 기반으로 한 에너지 생성형.
감정을 먹는 촉수인 만큼, 더더욱 패배는 없다.
그렇지만, 저것은 대적자.
뿌리 병사만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했건만, 여기까지 도달한 존재.
어떤 상황에서도 대적자는 대적자인 이유가 있는 법.
그렇기에 촉수는 바라보았다.
자신들의 대적자를.
건들거리며, 망치를 휘두르며, 촉수를 향해 걸어오는 존재를.
촉수는 이미 승리를 말단 촉수에 넣었다고 확신하지만, 촉수는 방심하지 않았다.
이미 행성 전체에 뿌리를 뻗을 준비를 마친 감정 흡수.
그 막대한 흡수 능력을 대적자 한 명에게 집중하였다.
대적자의 힘의 원천인 감정을 빼앗아 혹시 모를 반격을 차단하고자.
획득하는 총 에너지는 더 적더라도, 자신을 퇴치할 가능성이 있는 적을 완전히 무너트리기 위해, 온 힘을 집중했다.
그리고.
촉수는 이해한다.
자신의 패배를.
대적자에게 감춰진 끝없는 분노를.
아무리 빨아들여도 변화가 없는, 무저갱을.
계산이 틀렸다.
저건, 말도 안 되는 존재다.
그렇게 계산을 끝낸 촉수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젠 성장이 중요한 게 아니다.
승리를 단언할 수 없으니, 패배하더라도 본체의 일부를 남겨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그 판단에, 촉수는 뿌리를 들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직접 공격을 회피하기 위해, 뿌리를 흔들어 적을 내려치기 위해.
그렇지만, 이미 늦었다.
촉수의 대적자인 마법소녀는 이미 감정을 먹는 촉수를 자신의 공격 사거리 내에 포착했고.
서서히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피와 살로 붉게 물든 망치를.
그 안에 담긴 힘으로 붉게 달아오른 망치를.
촉수는 판단한다.
회피는 늦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저 공격이 강하다고 해도, 지금 삼키고 있는 감정으로 인한 재생에 더해, 이 정도로 성장한 자신을 한 번에 소멸시킬 순 없다.
그렇지만, 만에 하나의 가능성.
저 끝없는 무저갱의 분노가.
자신을 완전 소멸시킬 가능성.
그렇다면 막을 것을.
온 힘을 다해 막을 것을.
그렇게 판단이 끝나.
각자가 행동한다.
감정을 먹는 촉수는 근육과 힘을 모아 예상 공격 부위를 방어하고, 뿌리를 들어 올렸다.
마법소녀는 그저 망치를 흔들었다.
평범하게, 무심하게, 굳은 얼굴로.
그리고.
쾅.
뻗어나가는 막대한 에너지와 함께.
촉수는 소멸한다.
방어건, 재생이건.
마법소녀의 망치 앞에선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않은 채.
쌓아 올린 거대한 힘조차도, 그저 스러졌다.
그렇게,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감정을 먹는 촉수는 소멸했다.
남은 것은 충돌에 마땅히 따라오는 파괴와.
촉수를 소멸시키고도 다하지 않은 에너지.
그것은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도시를 파괴했다.
파괴 범위가 그리 넓진 않으며, 이미 도시가 지옥도가 되었다곤 하나.
극소수의 생존자가 휘말릴 공격이.
그것은, 실수일까.
아니면, 거대한 촉수를 퇴치함에 있어, 힘의 세밀한 조작은 불가능했던 것일까.
그도 아니라면.
어쩌면, 파괴가 일어남을 알고도 행한 것이 아니었을까.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는, 무한한 분노가 낳은 파괴.
자기 자신조차 인지하지 못한.
결국, 모두 추측일 뿐이다.
만약, 도시가 이렇게 되지 않은 채 평범히 사람들이 있었다면, 그는 저러한 행동을 하지 않았을 테니까.
이것은 그저, 그런 상황일 뿐이다.
지금의 나는 답을 알 수 없다.
그리고, 지금은 더 중요한, 보아야 할 것이 있다.
감정을 먹는 촉수가 튀어나온 도시 중심부로부터 조금 떨어진 지점.
어둠만이 자리한 도시에서 모든 광경을 바라보던 검은 이.
“…역시. 어렵겠군.”
그가 말한다.
정확히 말하면, 그 일부인 존재.
아무도 모르게 어둠 속을 파고든, 뱀 크기의 검은 촉수.
“…한 번 있던 일은 두 번 있을 수 있다고 하지만….”
검은 촉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입을 다물었다.
사실상의 총책임자-두뇌로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짜내고 있다.
자신과 근원이 동일한 존재를 쓰러트리기 위한 카드를.
자신을 제외한 셋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방법을.
그리고, 모든 생각을 끝마쳤는지.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조용히 어둠 속으로 사라지려는 찰나.
“…무언가 문제라도?”
검은 촉수는 조용히 자신의 안에 있는 존재에게 말을 걸었다.
천천히 자신을 호출한 기계에게.
그리고, 기계가 알려주는 방향을 향해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조금 전 전투의 여파로 완전히 무너진 도시 한구석.
그 어떤 온정 어린 시선도 닿지 않는 장소에서.
“…이 아이입니까?”
검은 촉수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건물 잔해에 깔린 채, 죽어가고 있는 아이를.
동시에, 촉수가 아닌 잡아먹힌 인격으로서의 그는 주변을 파악했다.
잔해 안쪽에 성체가 둘. 부모인가.
주변에 다른 생존자는 있지만, 이쪽을 향해 어떠한 유의미한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시야가 닿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신음을 귓가에 담고, 명확하게 아이의 상태를 파악하지만.
그들 사이에서 아이를 구하려는 움직임은 존재하지 않는다.
연민이라는 감정이 잡아먹혔기에.
공동체를 살려야 한다는 도덕심과 인간으로서의 양심은 남아있지만.
감정이 사라진 싸늘한 이성은, 죽어 가는 아이를 구하는 것을 낭비라 인식하고 있다.
그렇기에 아이는 곧 죽을 것이다.
‘안타깝군.’
계약이 있기에 우리에게 들려오는 그의 속마음.
‘구해 주고 싶지만, 구해 줄 이유가 없다.’
촉수를 이루는 인격은 여전히 자신의 중요 가치를 설파하지만.
지금의 그는 군체의 두뇌.
지휘관으로서 힘을 낭비하거나 변수를 만들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렇지만, 그는 모른다.
“잘 못 들었습니다?”
기계의 생각을.
기계의 이질성을.
인간의 측면을 지니고 있기에,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사고방식을.
“…감정을 너무 드셔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건 연민이라고 하는 감정이죠. 휘말리실 필요 없습니다.”
‘…연…민….’
기계의 작은 속삭임.
그저 먹기만 하던 것을 지성이 알려줌으로써, 무의미한 포식이 아닌 정돈된 의미가 되어 간다.
“예. 의미 없는 감정이죠. 필요하지만 다스려야 하는….”
‘…바…람….’
“소원입니까? …뭐 보나 마나 살려달라는….”
‘되고… 싶어….’
“…예?”
‘…저 하늘의… 붉은… 반짝임… 밝은… 따뜻한….’
“….”
기계의 말에, 검은 촉수는 올려다보았다.
아이의 시선이 향하는 장소를.
기계가 바라보는 장소를.
감정을 먹는 촉수를 처리하고, 공중에서 붉은 부스터를 뿜으며 주변을 살펴보는 마법소녀를.
모든 것이 어둠에 휩싸인 하늘에서 부스터의 불보다도 붉은 안광을 희번덕거리며 둘러보는, 미치광이를.
‘특이한 소원이군.’
감상은 그것뿐.
그렇게 검은 촉수는 아이에 관한 생각을 완전히 끊고, 중요하다고 여기는 다른 생각을 이어나간다.
이 자리에 기계와 자신이 있음으로써 생기는 위험성.
극도로 힘을 숨기고 있으니 저 마법소녀에게 들킬 리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 있을 가능성을 생각하면 눈에 띄기 전에 도망쳐야 한다.
그렇지만, 그 차가운 생각은.
“…잘모드러씀다?”
기계가 검은 촉수에게 내던진 명령으로 완전히 끊어졌다.
‘…소원…들어줄래….’
어떻게 말입니까?
그런 생각이 검은 촉수의 머리에 맴돌았지만, 입 밖으로 나온 것은, 전혀 다른 말.
“…어째서죠.”
그보다 더욱 깊은 의문.
그것은 인간과 촉수가 결합함으로써 생겨난 순수한 의문.
수많은 소원을, 개념을, 요소를 차별없이 먹어 왔다.
그런데, 이 아이가 무엇이 다르기에 특별취급한단 말인가.
‘되고… 싶어. 나. 지성체….’
“…쯧.”
공명하고 말았나.
검은 촉수는 빠르게 답을 얻었다.
군체의 가장 근본적인 소원.
그것만이라면 공명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상황은 감정을 먹는 촉수가 나온 단계.
집단이 아닌, 개체로서 지성체를 이루는 요소는 대부분 삼킨 상황.
비록 그것은 정보와 개념일 뿐, 그러한 요소가 있더라도 지성체를 이루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너무 많은 걸 알려주었나. 쓸데없는 걸 배워버렸어.’
새로이 두뇌가 된 검은 촉수는, 무의미하게 쌓이기만 하던 정보와 개념이 각각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세부적으로 알려주고 말았다.
설계도조차 모른 채, 아무렇게나 재료를 쌓으면 완성에 도달할 것이라 믿은 존재에게 어설프게나마 설계도를 그려 주고 말았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감정입니다. 분명, 잘못된 선택으로 향하는 길이죠.”
검은 촉수가 설득에 나서지만.
‘…되고…싶어….’
기계는 조용히 똑같은 의지를 표출했다.
“…알겠습니다.”
그것으로, 이야기는 끝이었다.
검은 촉수에게는 더 하고 싶은 말이, 생각이 존재하지만.
그 또한 군체의 일부. 수장인 기계에게 이 이상의 설득은 의미 없음을 빠르게 이해했다.
그렇기에, 검은 촉수는 아이의 입을 향해 손을 뻗었고.
뚝.
짙은 한 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검디검은, 공허를 응축한 듯한 검은 물방울이.
죽어 가는 아이의 입에 떨어져 내린 검은 물방울.
아이에겐 그런 물방울을 삼킬 힘조차 남지 않았지만.
그건, 상관없다.
이것은 물이 아니기에.
아이는 받아들여 간다.
수많은 개념과 정보가 무질서하게 섞인 혼탁함을.
한없이 지성체에 가깝지만, 지성체가 아니기에 생겨난 불쾌함을.
모든 재료가 손에 있건만, 완성하지 못한 미완성품을.
기계가 아이를 삼키고.
아이는 기계를 삼킨다.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아이의 소원은 아이가 되고 싶은 것이기에.
아이가 사라진다면 소원을 이뤄주는 것에 그 어떤 의미도 없기에.
그렇게 섞여 간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 그럼 어떻게 될까.’
검은 촉수는 생각한다.
어떤 결과에 도달할 것인지를.
촉수가 지성체를 집어삼킨 적은 여럿 있었다.
촉수를 지성체에 한없이 가깝게 카피한 적은 여럿 있었다.
그렇지만, 기계가 지성체의 안에 깃든 것은 이번이 처음.
그 결과에 흥미로워하면서도.
‘다행이군.’
검은 촉수의 인간으로서의 측면은, 아이가 살아남에 기뻐했다.
어떤 형태라 한들, 살아난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으니.
그렇기에, 군체의 수장인 기계가 위험한 선택을 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기뻐하였다.
그런 감정이 끝난 후, 검은 촉수는 천천히 잔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이를, 기계를 구하기 위해.
상황이 어떻게 흐르건, 이대로 잔해에 깔려 아이와 기계가 죽는다면 농담거리도 되지 않기에.
그렇게 잔해에 손이 닿은 순간.
“….”
검은 촉수는 움직임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떨어져 내리는 붉은 별을 향해.
이 장소로 들이닥치는 마법소녀를.
생명 반응을 알아채고, 날아오는 존재를.
“….”
그렇기에, 검은 촉수는 어둠에 녹아들었다.
이 기묘한 우연에 감탄하며.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긴 시간을 기대하며.
‘10년. 아니…. 그보다 조금 더.’
조용히 어둠에 잠겼다.
그렇게 검은 촉수가 사라진 뒤.
“여긴가?”
“맞아용.”
마법소녀와 마스코트는 착지의 충격을 최소화하며 땅을 내려온 뒤, 주변을 둘러보았고.
“읏쌰.”
곧바로 살아있는 아이를 발견한 마법소녀는, 아이를 깔아뭉갠 무거운 잔해를 가볍게 들어 올려 허공으로 내던졌다.
자칫 잘못하면 2차 피해를 일으킬 수 있는, 무신경한 행동이었지만.
“하람 님. 주변도 신경 쓰셔야죵.”
마법소녀의 어깨에 앉은 마스코트가 마법을 통해 내던져진 돌을 살포시 지면에 내려놓은 덕에 그런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고.
“…괜찮니?”
그렇게 마법소녀는 손을 뻗었다.
건물의 잔해에 깔렸음에도, 기적적으로 살아있는 아이를 향해.
그것은 이야기의 시작.
무한을 끝낼 만남.
무한히 잘못된 연산을 반복하던 기계가, 인간이 되는 이야기.
“…미안하다.”
처음 마법소녀가 내뱉은 말은.
그때의 아이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웃어주었다.
아이의 판단은.
기계의 정보는.
양측 모두 이런 상황에서는 그리 움직여야 한다고 동의했기에.
아직 완전히 융합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제 둘은 하나였기에.
그것이 가장 올바른 판단이었다고 확신하며.
웃었다.
그것이, 더더욱 마법소녀를 망가트렸다는 사실을 모른 채.
* * *
그로부터 긴 시간이 지나고.
과거의 아픔을 씻으려는 듯, 복구를 끝내고 부활한 청주.
그 도시의 뒷골목에서.
불멸에 가까운 광기를 자신의 안에 품은 분홍빛 마법소녀는 그것을 발견했다.
해당 개체가 자신의 자랑이라 자부하던 풍성한 분홍빛 털은 이제 흔적으로밖에 남지 않은.
썩어들어가는, 검은 오물을 남기며 기어가는 존재를.
“…겨우… 찾았다.”
평소의 그녀를 아는 사람이라면 의문을 느낄 것이다.
정말 내가 아는 그녀와 같은 사람인 것이 맞냐고.
그리 생각할 만큼, 섬뜩함과 복수심이 서린 목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그다지 화를 내지 않고, 많은 이들에게 친절했던 그녀는.
그것은 진정한 자신이 아니라는 듯, 막대한 복수심을 내비치며 발아래의 살덩이를 내려다보았다.
창조주에게 반역을 꿈꾸던, 비틀린 존재를.
과거 자신의 본능을 억누를 만큼 선함을 꿈꾸었지만.
한 존재의 죽음을 마주하고 본능에 집어삼켜진, 고깃덩이를.
한때 선함을 품었던 악의는, 잘못된 길을 걸었고, 이젠 모든 것을 빼앗겨 어두운 골목을 기어 다닌다.
“…꺼극. 극 끄걱….”
제대로 된 말조차 하지 못한 채.
죽지 못하기에, 살아가며.
막대한 고통과 함께.
아니, 아니다.
그것이 저 고깃덩어리에 남은 마지막 본능일 뿐이다.
죽지 않는 것.
죽지 않은 채. 언젠가. 언젠가.
‘언젠가. 다시 볼 수 있기를.’
그것만이 고깃덩어리를 삶에 붙잡고 있다.
모든 것을 잃어도, 다른 것을 잊어도, 그것만은 잊지 않은 채.
“….”
그것을 바라보는, 분홍빛 마법소녀의 얼굴이 뒤틀린다.
본래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목소리였건만, 그녀에게는 들린 듯.
“…뭔가요.”
얼굴이 뒤틀리고, 또 뒤틀린다.
긴 시간 응어리진 분노와 함께.
“…사연 따윈 아무래도 좋아요.”
붉디붉은 화살을.
본래의 그녀가 손에 넣을 힘이 아니었던 뒤틀림을.
“…어떤 사연이 있어도, 당신이 저지른 짓은 정당화되지 않아요. 나에게도, 모두에게도.”
그리고, 손을 휘두른다.
붉은 피를.
손에 쥔 원망을.
푹.
핏빛 화살이 내리박힌다.
악의로 이루어진 고깃덩이.
그 옆에 존재하는 지면에.
“왜!”
마법소녀의 날카로운 고함이 뒷골목을 울린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내리찍지 못한 자신?
한때 시안이라는 이름이었던 고깃덩어리가 행한 일?
그것은 알 수 없다.
그녀는 지성체.
계속해서 나아가고, 발전하고, 세상을 바꾸길 원하는 자.
이미 지성을 버린 채, 소망만을 품은 고깃덩어리와는 다르기에.
우리는 그들을 읽지 못한다.
뚝. 뚝.
분홍빛 마법소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어떤 의미가 담겼는지 알 수 없는, 투명한 물이.
“…우…러?”
그런 그녀를 향해, 고깃덩어리가 기어간다.
지성 없는 울음소리와 함께.
이제야 마법소녀의 존재를 알아차린 듯.
천천히, 천천히.
과거 시안이었던 존재가 자신의 살더미 안에 마법소녀를 삼켰듯.
살점의 본능에 따라, 집어삼켜 힘을 얻고 폭력을 행사하기 위해.
철퍽.
악의로 이루어진 고깃덩어리가 마법소녀를 어루만졌다.
삼키기 위해.
그리고, 그녀를 향해.
“…새…리…?.”
언젠가의, 이제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게 된 마법소녀의 이름을.
“따녀…와…써.”
철퍽.
허물어진다.
무너진다.
불멸을 내버리며.
자신이 삼켜왔던 모든 것과 함께.
자신의 파트너에게 넘겨주며.
자신이 없더라도, 파트너는 움직일 수 있도록.
그렇게 살더미는.
마지막으로 썩어가는 악취를 내뱉으며, 허물어졌다.
이것은, 그런 이야기다.
누구도 써 내려가지 않았던, 세상의 변질, 뒤틀림의 끝맺음.
이렇게 세상은 조금 더 정상으로 바뀌어 간다.
어두운 뒷골목에서, 조용히.
모두에게 상처만을 남긴 채.
누구 하나 행복해지지 못한 채.
완전한 끝맺음 없이.
개운한 기억 없이.
한 마법소녀와.
한 마스코트의.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