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588)
마법소녀 아저씨 586화(588/671)
586. 세계 – (∞)
“….”
고요한 장소를 깨트리지 않고자 침묵을 지키며 의자에 앉았다.
약간 곰팡내 나는, 턱 하고 앉으면 먼지가 피어오르는 소파에.
불 꺼진, 막 내린, 관객 없는, 먼지 쌓인 무대 위의 소파에.
본체의 파괴로 인해 다른 나 자신조차 잠시 사라진 장소에서.
“야호!”
침묵을 완전히 깨트리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밝은 목소리가 울린다.
여왕도, 다른 나 자신도 아닌, 그저 밝고 밝은 여성의 목소리.
어쩐지 굉장히 오랜만에 들은 것 같은 그 목소리는.
반가웠지만, 동시에 두통을 불러일으키는 목소리였으니.
대체 뭐라고 답해야 할까.
끝의 시점으로 몇 초를 고민할 만큼, 길게 고민했지만.
“…와서 앉아라.”
결국, 입 밖으로 나온 것은 이런 퉁명스러운 말 한마디.
그렇지만, 오랜만에 나답다고 나 자신이 느낀 말.
전혀 되찾을 생각이 없었건만, 이렇게 되찾아 버린, 나다운 말.
“스승님!”
“…왜.”
“의자가 없어요!”
뭔 헛소리야.
원하면 너한테 딱 맞는 의자….
아. 그건 나 자신만 적용인가?
생각해보면 여기 있던 여왕도 의자는 없었던 것 같고.
그렇기에,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한 순간.
꿀렁.
명백하게 기묘한 소리와 함께.
“…음?”
“와!”
지면에서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검은 촉수가 솟아나 의자를 만들었다.
문제는 그 의자가 굉장히 위험해 보인다는 점.
의자가 다 완성된 지금도 기이하게 계속 꿈틀거리고, 광택이 번쩍이는 피부로 보아하니 높은 확률로 끈적일 것 같은 검은 촉수 의자는, 어딜 어떻게 봐도 누가 앉을 만한 물건이 아니다.
그렇기에.
“망치라도 소환….”
“얍.”
철퍽.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백시현이 의자에 앉았다.
끈적거린다는 추측이 사실로 증명되는 듯한 부적절한 소리와 함께.
“….”
“왜 그러세요?”
…뭐 아무렴 어떠랴.
저 촉수 의자가 대체 어디서 튀어나왔는진 나조차도 모르겠지만, 백시현은 크게 불만이 없는 것 같고, 촉수 의자도 특이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촉수 의자 따위가 아니니까.
“…자. 그럼. 한마디 해볼까.”
“넵! 부탁드릴게요!”
그래? 그럼.
“생각이 있는 거냐.”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어…. 음.
그렇게 나오면 내가 더 난감한데.
이제 알았는데, 저 어린애 같은 어투나 행동은 날 속이거나 하려는 게 아니고, 본래 성격인 것 같다.
끝이 되었으니 저런 정보도 알려면 알 수 있었겠지만, 굳이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었으니.
가정 교육의 문제인지, 기계와 융합한 부작용인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저것을 알아차림으로 인해 내 죄악감은 더 커졌단 사실이다.
난 몸만 큰 어린애한테 구해질 정도였단 말인가….
이 생각의 흐름에선, 분명 백시현을 향한 사과가 나와야 하겠지만.
내 이성도 그러라고 하고 있지만.
“전부다. 전부.”
“으으으음?”
난 차오르는 성질머리를 견디지 못하고 소리를 높이고 말았다.
“성공률이 낮은 위험한 작전을 짠 것, 마지막에 내게 날아온 것, 굳이 토벌에 참여한 것. 전부 말이다.”
솔직하게 따져보자.
한아빈이 그 상태로 시간만 끌었어도 난 높은 확률로 패배했다.
한아빈이 계속 쏟아내는 시안의 마법소녀는 비록 시안 때와 달리 사망 시 곧바로 해방된다고는 하나, 그 수가 꽤 있는 편이고.
나는 그때 내가 선언한 이계침식에 짓눌리던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일단 분노에 눈이 돌아간 내가 눈앞에 있는 놈들을 전부 때려잡고자 이계침식을 내뱉었지만, 그건 나에게도 강하게 적용되는 이계침식.
그러니, 시간이 지나면 내 이계침식이 날 찍어 눌렀을 것이다.
그걸 견디지 못하고 이계침식을 해제하면 다시 일어난 옛 영웅들에게 내가 맞아 죽었을 거고.
다음은 말할 것도 없다.
어차피 놔두면 소멸할 건데 뭐 하러 위험을 감수한단 말인가.
애초에 난 죽지 않으니 별 의미도 없다. 백시현도 그걸 알고 있고.
재구축 과정에서 인격이 달라지거나, 기억이 날아가긴 할 가능성이 크지만, 그건 내 사정이니.
그다음도 마찬가지다.
백시현은 이제 자기가 원하던 자유를 손에 넣은 참이다. 그런 녀석이 굳이 목숨을 걸고 이런 토벌에 참여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냥 이계로 도망친 다음, 잘 먹고 잘살면 된다.
지금의 백시현에겐 이계에서 살아남을 충분한 힘이 있고, 백시현의 힘은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테니 자기 앞가림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그런 기나긴 의미가 담긴 질문이었지만.
“에헤헤.”
백시현은 멋쩍게 웃을 뿐이었으니.
“웃어?”
지금 스승 말이 장난으로 들리냐?
“기뻐서요!”
“뭔 뚱딴지같은 답이야.”
애초에 질문도 아니었어.
“그 상태의 스승님이 그 정도로 절 걱정해 주신 거잖아요?”
“….”
제기랄.
뭐라 할 말이 없었기에,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어째 얼굴도 좀 뜨거운 것 같고.
그렇게 잠깐 침묵이 감돌고.
“음…. 일단 아까 질문에 대한 답은…. 그냥! 이에요!”
침묵을 깬 백시현의 말에.
“…그냥?”
나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예. 그냥이요. 빠지는 것도 좀 그렇고, 스승님도 구하고 싶고, 친구나 아는 사람 죽는 것도 그렇고.”
“….”
그래.
특별한 이유 따윈 필요 없다.
당장 나조차도 주변 사람들을 위해 여기까지 온 것 아니었던가.
비록 중간에 길이 뒤틀리긴 하였지만, 분명 처음은 그런 이유였다.
“…후우.”
이상한 데서 날 닮았군.
차라리 부귀영화를 탐하지 그랬니, 시현아.
조금만 더 욕심을 부렸다면 이런 결말은 아니었을 텐데.
“…그래도, 네가 이럴 필요는 없었잖냐.”
천천히 진심이 나와 버렸다.
이게 마지막임을 알고 있기에.
모두 내 잘못임을 인정했기에.
되돌릴 수 없는 아픔을 알기에.
나는 더욱 고개를 숙였고.
그 속에서.
탁. 타닥.
백시현은 천천히 내게 걸어왔고.
고개를 숙여, 제자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내 앞에 섰다.
그렇게 십여 초.
“스승님, 잠깐 손 좀.”
어떻게 생각해도 그건 존댓말이 아닌 것 같구나, 시현아.
그런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그리 말해서는 안 될 상황임을 알기에, 조용히 손을 들었다.
그렇게 앞으로 내민 내 손에, 따뜻한 백시현의 손이 겹쳐졌고.
“이거. 드릴게요.”
차갑고 딱딱한 것이 느껴진다.
시현이의 손에 가려져서 아직 무엇인지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내 감각은 손안의 물건이 무엇인지 곧바로 인지할 수 있었으니.
내 잇자국이 새겨진, 기이할 정도로 단단한 은빛 막대.
“바로 생각나는 것만 해도, 뇌신, 옥시모론 언니라거나, 라이브러리안 아저씨라거나, 린슈아라거나, 저 대신 올 사람은 많았죠.”
“….”
“그렇지만, 다들 제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노틸러스에서 저한테 이걸 건네주셨거든요.”
“….”
‘아, 그때 뇌신 언니랑은 노틸러스에 없었던가?’
뒤이은 혼잣말로 백시현이 웃지만.
아마, 나머지 녀석들이 그 자리에 있었어도 결과는 똑같았을 것이다.
나를 알고 있기에.
어쩌면, 내가 숨겼던, 나도 모르던, 원망에 사로잡힌 나를 눈치채고 있었기에 그들은 직감에 맡겼으리라.
일이 극도로 틀어졌을 때.
마지막의 마지막에 날 설득할 수 있는 것은, 이 기이할 정도로 밝은, 죄 없는 아이밖에 없다고.
끝처럼 무한한 길을 홀로 걸었음에도, 계속해서 인간성을 갈구하고, 결국 기적에 손이 닿은 아이.
내가 걸어온 길이 뒤틀렸기에.
나를 대신한 아이.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말 한마디뿐.
그렇기에.
고개를 들어.
“…아….”
그 누구도 없이, 텅 빈 무대를 바라보았다.
* * *
하늘을 올려다본다.
푸른 바다가.
언젠가 올 바다가 온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시선을 내민 내 동족들이 날 바라본다.
평소와 조금 다른 표정으로.
모든 것이 끝으로 향하는 상황.
모든 것이 몰락하는 종막을, 평소와 달리 즐기지 않고.
해피엔딩을 바라는 표정으로.
평소와 다르게, 조용히.
언제나처럼, 기적을 기대하며.
그래. 내 제자의 마지막 소망은, 너희들한테도 닿았나 보다.
내 동족에게 깃든 빛은 작다.
나와 다르게, 받은 것이 없으니.
그렇지만, 우리가 누구던가.
무한 속에서 유한한 싹을, 기적을 기다리는 자.
티끌만 한, 라이브러리안 식으로 말해보면 광자만 한 씨앗이라도.
무한을 걸은 우리에게 있어선 무엇보다 거대한 것이니.
앞으로의 모든 것이 바뀐다.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와 똑같이 무한을 걸었지만, 인간성을 잃지 않은 아이 하나의 희생을 기점으로.
그렇지만.
그것은 더 큰 세계의 이야기.
우리의 작은 세계는 모든 것을 잠식당해 잃어 간다.
비록 인류는 살아남았지만, 지구는 박살 나서 사라진 지 오래고, 세계의 균형은 막대한 뒤틀림에 잠식당해 이제는 복구할 수 없다.
바다가 온 것이 그 증거.
이 세계는 망각으로 사라진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언젠가 올 바다에 의하여.
그렇다면, 포기해야 하는가.
인류만이라도 살아남으라고, 아직 마열차가 남아있으니 거기 태워 모두를 이계로 보내야 하는가.
“…그딴 걸 허락할 것 같냐.”
조용히 가슴에 손을 올린다.
그리고, 두근거림을 느낀다.
내 심장 소리가 아닌, 내 안에 깃든, 작은 파트너의 고동을.
그래. 이조차 잊어버리고 말았다.
아니, 잊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잊었다.
파트너의 목소리를, 호된 질책을.
파트너를 되살려 언젠가 다시 만나야 한다는 것만을 기억한 채.
파트너가 되살아나면, 분명 나를 향한 혐오를 내비칠 일을 하였다.
그것이 우리 동족들의 뒤틀림.
결과를 위해 과정을, 거기서 생겨나는 것들을 외면하고 말았다.
이해할 수 없다는, 잃어버렸다는, 되찾을 수 없다는 핑계로.
백시현이 만들어낸 특수한 기적에 의해 동족 모두가 잃은 것을 잠시나마 되찾았지만.
여기서 싹을 틔울지, 백시현의 말대로 영원이라는 시간 동안 다시 잃어버리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는 밝은 미래를 소망한다.
“나는 이하람.”
아무것도 아닌, 구원을 바라며 방구석에서 훌쩍이던 아이.
“나는 블랙 머라우더.”
타오르는 분노와 원망에 집어 삼켜진, 보답을 바라던 각성자.
“나는 파(破).”
정의라 믿던 것을 위하여, 언제까지고 걷길 바라던 끝.
“나는 크림슨★해머.”
노이즈 섞인 사각 상자 너머에 자리한, 빛나는 별.
나는 영웅이 아니다.
나는 모든 역경과 고난, 어둠을 뛰어넘어.
“모두에게 꿈과 희망을 이끄는.”
모두에게 밝은 빛을 보여주는.
“마법소녀.”
그러니까.
마법소녀는 혼자가 아니니까.
이 행동에
분명 차가워야 할.
건네받은 금속 막대가 따뜻해진 것처럼 느껴졌다.
이것이 내 망가진 죄악감이 만들어진 착각이더라도.
상관없다.
지금, 이 따스함에 몸을 맡기며.
“저. 끝없이 긴 시간을 여행하는, 그릇된 존재가 바라옵니다.”
소리높여 노래한다.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분명 똑같은 목소리건만, 내 목소리라고 생각할 수 없는 어조로.
“여기, 모두의 삶이 흔들리고, 기억은 망각에 파묻히며, 세상은 고통만이 가득하나니.”
조용히 죄를 고해 나간다.
죄를 씻기 위해서가 아닌.
“이것은 모두 제 탓이옵니다.”
이제 이 이상 모두가 무언가를 잃지 않게 하도록.
“모두를 그 어떤 이도 구원할 수 없게 만든 이는 저일지니.”
누가 이 기원을 듣는 걸까.
왜 나는 기원의 노래를 택한 걸까.
“이것은 모두 제 탓이옵니다.”
어쩌면 믿는 것일지도 모른다.
선한 신의 존재를.
“그러므로 간절히 소망하오니.”
아니, 조금 다르다.
내 위에는 그 누구도 없다.
그렇지만, 존재하는 것은 있다.
“저를 위해 노래를 들어주소서.”
세계.
끝과 그 대칭점에 서 있는 신.
힘이 허락하는 한 세계를 마음대로 뜯어고치지만,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하지 못한다.
“제가 아닌 모두를 위해 노래에 답해 주소서.”
그렇다면, 우리는 여전히 세계에 속한 작은 존재.
그런 것이 아닐까.
“선한 이들이 고통받지 않도록.”
그렇기에, 믿음을 담아, 희망을 담아, 소리를 높인다.
세계를 향해.
“악한 이들이 더한 악에 유혹당하지 않도록.”
그리고, 노래가 끝을 향할 때.
깨닫는다.
“이미 큰 죄를 짊어진.”
노래를 듣는 것은 세계가 아닌.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앞으로 더 큰 죄를 짊어질 죄인이 바라옵니다.”
세계는 나이며, 내가 세계임을.
하나의 작은 지성체가 무한한 세계를 품어 낳듯.
지성체에서 시작해 끝이 된 우리 또한 세계를 품을 수 있다고.
“아무것도 아닌, 그렇지만 그 무엇보다도 큰 소원을.”
막대한 힘을 가져도, 모든 규칙에서 벗어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세계의 일부분으로 남아있다는 것을.
비록 바다로부터 멀어져 다른 이들과 끊기더라도.
“외칠 장소를 잃은 이들이 자신의 분노를 내비칠 땅을.”
우리는 말로써,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일부라는 것을.
그렇기에 나는 소통한다.
“살아있어 다행이라며 실소를 남길 수 있는 내일을.”
모두에게 닿는 언어로.
글로.
말로.
노래로.
우리는 세계를 바꾼다.
고뇌하며. 괘념하며.
걱정하며. 간직하며.
번민하며. 반목하며.
우려하며. 염려하며.
시름하며. 심려하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니 바라건대.”
유리창 너머의 그들처럼.
꿈과 희망을.
밝은 내일을.
제가 마법소녀로 남기 위해.
저의 속죄가 아닌.
다른 이들을 위해.
“여기 해피 엔딩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