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603)
마법소녀 아저씨 외전 1화(603/671)
001. 케이스(1) – 파괴의 마신
“마왕님! 다시 생각해 주십시오!”
신하들이 타당한 충언을 계속 내게 들려주지만.
이젠 돌이킬 수 없다.
마신을 소환하기 위한 마법진은, 막대한 마력과 제물을 흡수한 채 검게 맥동하고 있다.
내 제어를 따르고 있긴 하지만, 멈추는 것은 불가능하며. 강제로 멈추려 한다면, 남는 것은 파멸뿐.
그렇기에, 나는 이를 악물고 마법을 이어 나갔다.
“마신은 위험합니다! 부디!”
시끄럽다.
나도 이미 알고 있단 말이다.
마왕군 본대를 몇 번이고 물리친 빛의 군세가 국경을 넘어 몰려드는 상황이며, 우리 마족에게 남은 병력이 한 줌뿐이라고 한들, 마신이 위험하다는 것 정도는.
“지금이라면 늦지 않았습니다!”
그럼 어쩌란 말이냐.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반박한다.
피에 취해 백성들을 학살하는, 빛의 군세란 놈들에게 항복하라고?
이미 사절마저도 목을 잘라, 소금에 절여 돌려주는 놈들한테?
작은 분쟁으로 끝날 사건을, 이런 총력전으로 만든 광신도들에게?
마왕성에 앉아 서류만 보는 너희들은 알지 못하겠지.
저들의 광기를.
빛의 정의라는 명목의 심판을.
포로조차 만들지 않고, 마족의 씨를 말리고자 밀려오는 물결을.
우리가 선하지 않으며, 이 전쟁의 발단이 된 사건이 우리 잘못이란 사실은 잘 알고 있다.
그렇더라도, 그리 잘못되었더냐?
국경을 넘어 우리의 영토에서 사냥하는 인간종 사냥꾼의 빈정거림에, 화를 참지 못한 늑인종이 손톱자국을 낸 것이, 이렇게까지 커질 일이었더냐?
국가적 사과와 함께, 사건을 일으킨 늑인종 본인이 자신의 팔을 잘라 사과했음에도, 더 큰 사과를 요구하여 반발한 것이 그리 잘못이었더냐?
사건이 일어난 숲의 소유권을 요구하며 들이닥친 인간종 사냥꾼들 포로로 잡아 돌려보낸 것이, 그리 잘못이었더냐?
숲에 불을 지르고 마을을 공격한 인간종 군대를 물리친 것이, 그리도 잘못이었더냐?
설령 이후 이어진 모든 것이 우리의 잘못이라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이 우리가 멸망할 만큼의 죗값이더냐.
피의 맛이 입 안에 퍼져 나간다.
깨진 이빨의 잔해, 혀 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무거운 마력의 유동.
그 모든 흐름 속에서.
분노를 담아, 절규한다.
마신의 이름을.
죽어나간 백성의, 원한을.
정의를 외치는 적에게, 동등한 수준의 파괴를.
귓가에 울리는 것은, 모든 것이 뭉친 웅얼거림.
눈에 비치는 것은, 모든 것을 삼키는 어둠의 마법진.
피부에 닿는 것은, 막대한 마력으로 인한 따끔거림.
가지고 있는 모든 감각이 거대한 마법 하나로 집중되고.
긴 시간이 지나, 그 모든 것이 회색으로 흐려져 뭉치고 늘어질 때쯤.
끼익.
문이 열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허억.”
마법의 발현이 성공하고, 더 이상의 제어가 필요하지 않음에.
모든 것이 끊어졌다.
감각이 돌아온다.
이제 남은 것은 소환된 마신을 알현하는 것뿐.
그렇기에 준비했다.
“퉷.”
입 안에 남은 이 조각을 뱉어내고, 흐트러진 몸가짐을 정리하며.
예상해두었던 수많은 시나리오를 다시 머릿속으로 정리하던 와중.
휘몰아치는 마력과 먼지의 폭풍으로 시야가 가려진 어둠 속에서.
“망할. 또 소환이네. 여긴 어디야.”
어린, 가벼운 목소리가 들리고.
“스러져라.”
조금 전과 같은 목소리건만, 힘과 위압이 서린 목소리와 동시에.
스르륵.
시야가 밝아졌다.
제어되지 않은 마력과 그로 인해 휘몰아치던 잔해는 조용히 땅에 내려앉아 침묵하였다.
그리고, 먼지 없이 밝게 개방된 시야 속에서 소란이 피어났다.
“…저게, 마신?”
“분홍 피부….”
“마신이라기보단….”
마법진 중앙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존재를 본 신하들의 반응.
그들의 말대로, 소환된 마신의 겉모습은 전승과 전혀 달랐다.
여섯 손과 세 개의 눈. 검은 피부를 가진 거대한 존재.
그것이 파괴의 마신 전승.
그렇지만 눈앞의 존재는 그와 전혀 다르다.
양손검보다 작은 키.
하늘의 색을 기조로 한 옷.
인간종 유체의 외모.
전승과 일치하는 점이 전혀 없는 그 독특한 모습에 신하들이 당황하는 것은 당연한 일.
차라리 우리 마족의 피부색과 외모를 하고 있다면, 조금 납득하는 이라도 있겠건만, 피부색과 외모조차 인간종의 그것이니.
그렇지만.
“…괴물….”
“…저것이… 마신….”
힘 있는 존재. 군단장의 반응은 전혀 다르다.
그들의 눈에는 나와 똑같은 것이 비치고 있을 것이다.
단련된 강철과 같은 은빛 머리칼.
핏빛 눈과 그 중앙에 자리한 아득한 심연.
그리고, 막대한 파괴의 힘을.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다.
누가 무어라 하든, 저 존재는 마신임이 분명.
“뭐여. 이번엔 판타지야?”
왼눈을 감은 채, 반대쪽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마신.
마신은 자신을 소환한 우리에 대해서도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은 채, 그런 행동만을 반복했다.
마치, 우리가 주변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혹은 마신에게 우리는 무가치한 존재임을 알리듯.
분노가 피어난다.
나는 마왕.
빛의 군세로 인해 멸망의 기로에 몰려, 금지된 마신을 소환했다지만.
마의 정점이자, 힘으로 왕좌를 찬탈한 나를 이토록 무시하는 것은, 힘이 곧 자신을 증명하는 마의 혈족에게 너무나 굴욕적인 일.
그렇기에 다가간다.
소란을 뚫고, 백성의 시선을 뚫고.
분노를 품고, 마신을 향해.
“엉?”
이제야 마신은 나를 인지한 듯, 빤히 날 바라보았다.
뒤틀린 붉은색 사이에서 쏘아지는 어두운 심연으로.
마신임을 증명하는 위압감으로.
피가 속삭인다.
분노가, 호승심이 피어난다.
마왕으로서, 힘으로 권리를 얻은 자로서, 눈앞의 존재에게 자신의 힘을 보여주라고.
질 것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싸우지도 않고 무릎 꿇는 것은, 마의 혈족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자를 두려워하며 그저 머리를 조아리는 것은 혈족이 아니기에.
“싸우게?”
그런 내 투지를 알아차린 마신은 웃으며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오는 싸움은 막지 않는다는 듯, 비릿하고 잔혹한 웃음과 함께.
그런 마신을 향해. 나는.
“마신을 뵙나이다.”
무릎 꿇었다.
고개를 조아렸다.
피어오르는 투쟁심과 혈기를 집어삼키며.
가라앉은 백성들의 숨죽임과 함께.
이 행동으로, 나는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겁쟁이, 왕에 적합하지 않은 자.
마를 더럽힌, 명예 없는 왕.
내 이 선택으로 마의 역사가 이어진다 한들, 내 이름은 불명예의 상징이 되겠지.
“흐음.”
마신이 천천히 나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진다.
나에게 말을 걸지도, 공격하지도 않으며.
‘겁쟁이….’
‘마왕군이 패배하던 이유가….’
‘마왕의 자격….’
신하들이 내뱉는 수많은 속삭임이 귓가에 내려앉는다.
고요하기에, 더더욱 살 사이로 파고드는 차가움으로.
그 속에서.
“차라리 싸우지?”
마신은 천천히 내게 속삭인다.
너도 백성들의 저런 반응을 이미 예상했던 것 아니냐며.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목소리에 어울리지 않는 비릿한 끈적임과 함께.
“…그럴 순 없습니다.”
“왜?”
키득거리는 웃음이 들려온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한, 잔혹한 웃음이.
“…제가 더 약하기 때문입니다.”
“하하하하.”
웃음소리가 퍼져 나간다.
힘이 담긴 웃음소리.
웃음만으로, 약한 이들을 짓눌러 버릴 위압으로.
그 무거운 웃음은 백성들의 속삭임마저 집어삼켰고.
쓱.
턱에 내려앉은 마신의 손가락에 의해, 시선이 들린다.
“거짓말하지 말고.”
눈이 맞닿는다.
마신이 고개를 숙여, 들어 올려진 내 눈에 시선을 맞추었다.
아득한 심연이, 메아리치는 공허가 나를 두드린다.
감각이 사라진다.
무릎 꿇은 돌바닥의 단단함도, 몸을 두드리던 바람의 간지러움도, 공허를 채우던 백성들의 비탄도.
모두 마신의 공허에 잡아먹힌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나와 내게 맞닿은 마신뿐.
모든 것을 잃고 시간의 흐름조차 느낄 수 없는, 완전한 무아에서.
“싸울 생각이 없다는 것치곤, 투쟁심이 넘쳐 흐르잖냐.”
마신은 내게 속삭인다.
그 가느다란 목소리로, 날 놀리듯.
“너희 종족의 관점은 잘 알았어. 힘은 자신을 증명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싸운다.
약자는 약자의 힘으로, 강자를 향해 선언한다.
강자는 약자의 힘을 받아넘기며, 약자를 이해한다.
“그렇다면, 검을 겨눠야지. 설령, 상대가 나라 해도.”
그것이, 마의 법칙.
각자가 지닌 힘의 증명 없이, 마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할 수 없습니다.”
나는 계속 고개를 조아리며 선언한다.
“왜?”
비웃음이 퍼진다.
온 세상에.
온 감각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허가, 마신의 비웃음으로 가득 차오른다.
그 속에서. 나는.
“…그 행동이 마신님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 없이, 진실만을 담아 말한다.
설령, 이 진실한 말이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할지라도.
눈앞의 존재에게 거짓을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음을 이해하며.
“싸움 정도라면 괜찮은데? 네 목숨은 보장 못 하지만.”
끼릭. 끼릭. 끼릭.
마신의 눈이 회전한다.
아니, 어쩌면 회전하는 것은 세상과 나 자신.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없기에, 진실은 알 수 없다.
“…마신은 마의 혈족이 아니며, 변덕스럽다고 전승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저희 마의 법과 명예를 따르시는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기에, 복종하겠습니다.”
“뭘 위해서?”
“백성들을 위해. 설령, 제 명예가 더럽혀지더라도.”
“백성은 약한 존재야. 강한 네가 신경 쓸 것은 아닐 텐데?”
마신의 속삭임.
이것은 유혹이다.
힘은 곧 모든 것.
힘이 자리를 결정하는 사회.
완전한 강자존.
그것이 타 종족의 마에 대한 평가.
그 시선은 올바르다.
마족의 역사란 강자가 약자의 자리를 강탈하는 힘의 발자취.
그렇지만.
“힘에는 의무가 따릅니다.”
“매번 무시되는 말이네.”
마신의 말은, 정곡을 찔렀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마족의 법과 명예 중에서도, 가장 자주 무시되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 문장을 존중합니다.”
“흐으음.”
마신의 목 울림과 함께, 회전하는 세계가 더욱 가까이 다가온다.
붉은 원에 휩싸인 공허한 시선이, 조금 더 가까이.
그 검은 공허가 나를 비춘다. 거울처럼, 나 자신을.
가까이 맞닿아, 상이 비칠 리 없는, 나약한 나 자신을.
끝없이 회전하는 세계 속에서.
“거짓말은 아니네.”
스윽.
마신이 멀어진다.
그리고, 모든 것이 돌아온다.
잃어버렸던 감각이, 잊어버렸던 기억이.
아득한 빈자리를, 넘쳐흐르는 정보로 다시금 채워 나간다.
그렇게 돌아온 세계에서.
“자. 너희 마족에게 말하노니.”
팡.
목소리가 퍼져 나간다.
널리, 널리.
양손을 들어 올린 채 비틀린 미소를 짓는 마신이 말을 이어 나갔다.
“나는 마신이 아니다.”
놀랄 수밖에 없는 선언이 울려 퍼졌지만, 놀라는 이는 없었다.
마족 모두가 마신이 아닌, 무언가에게 짓눌려 버렸기에.
퍼져 나간 목소리는 위압감으로 모두를 무릎 꿇게 했다.
“나는 파(破). 너희가 원하던 마신을 뛰어넘는 악의 존재.”
파(破).
이 세계의 언어가 아님이 분명한 하나의 단어에서, 수많은 의미가 느껴져 온다.
순수한 파괴, 망가진 것, 불변의 존재, 되돌아갈 수 없는 길.
그 넓은 개념 자체를 의미하는 자.
불안과 공포가 수없이 피어난다.
우리는 대체 무엇을 불러내고 만 것인가.
세계를 멸하는 마신보다도 위험한 존재.
“우리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우리는, 선택을 중요하게 여기노라.”
그 목소리에는, 디저트와도 같은 달콤함이 묻어난다.
너무나도 달아, 무서울 정도의 달콤함이.
“그러니, 살아남고 싶은 존재들에게 묻노니.”
이만큼 강대한 존재가 내미는 도움의 손길은, 더없이 달콤했기에.
“살아남을 수 있다면, 내게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느냐고.”
그 달콤함은 말에 숨겨진, 어두운 쓴맛을 잡아먹고 말았다.
요구하는 것은, 전부.
정말로, 모든 것을 바칠 각오를 다지고 마신을 불렀다.
자신의 영혼, 백성의 피, 이어질 세계의 원망마저도 각오했다.
그렇지만, 눈앞의 존재는.
무한한 공허에 자리한 존재는.
과연, 그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저 존재가 말하는, 모든 것이란.
정말,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모든 것이 아닐까.
저 뒤틀린, 꺼림칙한 미소는.
우리가 손을 대선 안 되는 무언가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고뇌는.
“바치겠습니다!”
“바칩니다!”
“파(破)에게, 모든 것을!”
이미 늦고 말았다. 압도적인 힘 앞에, 내 백성들이 무릎 꿇었다.
마족의 본성을 따라.
눈앞의 달콤함에 넘어가.
돌이킬 수 없는 계약을.
수많은 백성이 파(破)에게 모든 것을 바치겠노라 선언하고.
마신, 아니 파(破)라고 자칭한 정체 모를 존재는, 그에 만족한 듯 팔짱을 낀 채 끄덕이더니.
“자, 너는 어쩔거냐. 마왕.”
갑자기 고개를 돌려 내게 말을 걸었다.
남은 것은 나뿐이라는 듯.
외치지 않은 것은 나뿐이라는 듯.
쓴웃음이 피어난다.
무슨 잣대로 마신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겠다는 것이냐.
무슨 생각으로 이런 존재를 소환하고 무릎을 꿇은 것이냐.
내 얕은 생각이, 동족을 파멸로 밀어 넣었다.
눈앞의 존재가 거짓이 아니라면, 마족은 살아남을 것이다.
그렇지만, 살아남은 뒤에는?
모든 것을 강탈당한 뒤에는, 무엇이 남지?
그것은 정말로 살아가는 것인가?
이미 모든 백성은 파(破)와 계약을 맺었다.
남은 것은 나 하나뿐.
그렇다면, 해야 할 것은 뻔하다.
“오.”
일어선다.
자그마한 놀란 기색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파(破)를 내려다보았다.
몸이 무겁다.
당장이라도 다시 몸을 땅에 붙이고 싶다.
그렇지만, 일어서, 선언한다.
“약속해 주시길.”
“뭘?”
모든 것을 삼킬 것처럼 찢어진 입이 나를 향한다.
공허한 눈으로, 비틀린 입으로.
“모든 약속이 지켜진 뒤에도, 저희의 삶이 이어지게 해 주실 것을.”
“그런 조건을 걸 처지인가?”
불쾌하다는 의미가 자리한 어투.
그렇지만, 파(破)의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저, 나를 바라보며 웃는다.
“그럼, 저를 죽여 주시길. 이미 다른 모든 백성은 그대, 파(破)에게 충성을 맹세하였습니다. 남은 것은 저 하나뿐. 저를 없앰으로써, 마족은 그대를 따를 것입니다.”
“하하하하.”
파(破)가 웃는다.
얼굴이 전혀 변하지 않는 채, 목소리로만.
그 뒤틀림 속에서.
어쩌면, 내 삶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억압 속에서.
“나 파(破)는 맹세한다. 그대들, 마족의 역사는 끊어지지 않고 미래로 전해질 것을.”
뚝.
모든 것이 끊어졌다.
위압감도, 세계를 덮던 웃음도.
남은 것은, 식은땀과 함께 일어나는 주변 백성들뿐.
그런 갑작스러운 변화에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이제 네 차례다. 마왕.”
파(破)는 다시 말을 걸어왔다.
“남은 것은, 너 하나뿐.”
조금 전까지의 위압감 없는, 장난스러운 웃음과 함께.
그에 나는 입을 열었다.
“마의 주인. 파(破)에게 모든 것을 바치겠나이다.”
새로운 주인에게.
마신을 뛰어넘는, 무언가에게.
지금부터 이어질, 새로운 시작을.
그에 파(破)는 만족스럽다는 듯, 두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고.
잠깐의 침묵을 지나.
곧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첫 번째 명령이다.”
파(破)의 말이 온 마족에게 닿는다.
마법도, 기적도 아닌. 이해할 수 없는 힘으로써.
“팔굽혀펴기 백 회. 실시.”
“…네?”
무수한 의문이 울려퍼진다.
“‘네?’는 뭔 ‘네?’야. 지럴 말고 팔굽혀펴기 백 회 실시.”
이해하지 못할 명령은 아니다.
그렇지만, 예상이 닿았던 명령 또한 아니다.
그렇기에, 나를 포함한 온 마족이 의문을 표하는 사이.
“아. 너무 광범위해서 그런가? 싸울 힘 있는 애들만, 그러니까 군인이나 앞으로 싸울 생각 있는 애들만. 나머지는 뭐 볼일 보시고.”
의문 서린 웅성거림만이 감돈다.
대체 그런 단순한 행동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음에.
그렇지만, 그 누구도 그것을 물을 생각을 하지 못했고.
하는 수 없이, 내가 나서 질문을 올렸다.
“파(破)… 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육체 단련이라면, 이미 충….”
쾅.
거대한 소리와 함께, 세계가, 시야가 회전한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생각이 우선 떠올랐고.
뒤이어, 강한 통증이 솟아오른다.
어딘가가 강한 충격을 받은 듯한.
그렇지만, 너무나도 강렬해, 어느 부위인지조차 알 수 없는 통증이.
두 번째 소리가 일고 나서야, 무슨 일인지 알아차렸다.
걷어차였다.
파(破)의 발길질에.
몸 전체가,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개인적인 자랑이었던, 수십 겹의 물리 무효 보호 마법은 날아오는 발길질을 알아차릴 시간조차 벌지 못하였다.
“쯧. 마왕이란 놈이 이리 비리비리해서야. 알 만하다.”
목소리가 들렸다.
분명 저 멀리 있었건만, 한순간에 내 옆에 나타나, 부러진 내 팔을 흔드는 파(破)의 목소리가.
“강한 힘은 강한 육체에 깃든다.”
파(破)는 그리 말하며 내 팔을 내던졌다.
내가 내동댕이쳐진 부러진 팔의 통증에 신음하기도 전에, 내 팔은 부러진 적 없다는 듯 멀쩡하게 내 행동에 반응했고.
“기본이 안 된 너희를 다시 단련시켜 주마. 인간이고 엘프고 드워프고 나발이고 찍어 누를 정도로.”
파(破)는 선언했다.
명백하게 즐거움이 가득한 웃는 얼굴로.
“그러니, 지금 당장 팔굽혀펴기 백 회 실시. 마법 같은 거 쓰면 나한테 뒤질 줄 알고.”
* * *
“본체 어디갔지?”
“소환되었다.”
“파(破)로서?”
“아니, 이번에도 끝과 관련 없는, 순전한 우연이다.”
“저번에 나도 무슨 근본 없는 악마 소환진에 덤으로 소환되더니만, 그거 어떻게 못 하나.”
“우리의 존재 방식에 따른 문제.”
“우리가 이레귤러라 생긴 버그?”
“…오래 걸리진 않겠군.”
“뭔 소리…. …근육을 단련한 마족이 근육으로 세계 평화를 이루는 미친 이야기는 누가 생각한 거?”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겠지.”
“…본체도 싫어하는데?”
“자업자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