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612)
마법소녀 아저씨 외전 9화(612/671)
009. 케이스(8) – 코티디아누스.
내가 누구냐 하면…. 음, 뭐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누가 4030위가 뭐 하는 사람인지 기억할 필요가 있나 이 말이다.
지성체 시절의 인연은 날 기억해줄지도 모르지만, 그 세계도 한참 전에 망했으니 날 알아주는 이가 한 명도 없는 것은 뭐 평범한 일.
사실 이 정도로 순위가 낮아지면 매우 낮은 확률로 일어나는 사고로 인한 소환도 없다고 봐야 한다.
강령술사는 소환 사고가 극히 드물게 일어난다고 주장했는데, 그 극히 드문 확률도 무한한 세계에서 어마어마하게 긴 시간 동안 표본이 쌓이다 보면 생각보다는 자주 일어나는 사고가 되어버리고 마니까.
그러다 보니 백인회 소속 상위권은 각자가 최소 10회 이상의 소환 경험이 있을 지경.
문제는 그 아래 순위 인원들.
우리를 소환하는 소환 사고가 일어나기 위해선 우리와 비슷한 이미지를 가진 소환 목표가 필요한데, 소환 사고는 소환 이미지가 겹치는 우리 중에서 더 큰 힘을 가진 녀석을 끌고 갈 확률이 높다.
자, 그럼 어떻게 되겠는가.
당장 백인회 사이에서도 개성과 성질이 겹치는 양반들이 수두룩한데, 그 아래는 어쩌겠는가.
어지간히 특이한 속성의 소환대상을 원하는 존재는 무척 희귀할 텐데, 그와 동시에 더럽게 확률이 낮은 소환 사고가 일어나야 한다.
이런 상황이니 하위권자는 사실상 소환 사고는 꿈도 못 꾸게 된다.
사실, 소환 사고에 걸리고 안 걸리고도 취향 차이가 크다.
우리 중 누군가는 자기 마음대로 소환되어 세계에 묶이는 소환 사고가 최대한 없었으면 하고, 누군가는 뒤틀림이란 제약 없이 한 세계를 필멸자처럼 영위할 수 있는 소환 사고를 소망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내 취향을 말하자면 후자에 속한다. 소환 사고가 일어나 아무런 제약 없이 지성체 시절처럼 세계를 노니는 것을 꿈꾸는 케이스.
뭐, 소환 사고가 아니더라도 다른 세계에 갈 수는 있다.
군체인 파(破)의 특성상 뒤틀림도 적고, 좀 여유 있는 신이 담당하고 있는 세계라면 며칠에서 몇 달 정도는 프리패스가 가능하니까.
누군가는 그런 제약이 있더라도 끝으로서 다른 세계에 관광하러 갈 수 있는 게 어디냐 할 수 있겠지만, 관광과 소환은 크게 다르다.
해외에 비자 받아서 정당하게 장기체류하는 것과 무비자 입국 내지는 밀입국이 다르듯이 말이다.
본체부터 시작해서 그런 것도 좋다고 나다니는 내가 아닌 내가 많지만, 나로서는 그 짓을 해봤자 잠깐은 좋을지라도 게임 체험판만 하고 본편은 못 하는 찜찜함이 남기에 차라리 안 가느니만 못한 행동.
자, 그럼 밖으로 나다니는 것도 싫고, 소환도 안 되는 나처럼 할 일없는 나들은 뭘 하느냐.
뭘 하겠는가.
“싸우자! 골방 죽돌이 새꺄!”
당연히 대난투지.
싸움이야! 다들 모여!
“오늘이야말로 네놈을 조지고 앞자리를 3으로 바꾸겠다!”
당당히 4천에서 3천 번대로 올라갈 것이다!
당당히 외치며 3989위의 개인실 문짝을 박살 내며 쳐들어가자.
“….”
흔들의자에 앉아 열심히 책을 읽고 있던 3989위는 오늘도 나에게 냉랭한 시선을 보낸 뒤.
“문. 고쳐.”
나에게 싸늘한 말을 내뱉었다.
“어차피 또 박살 날 텐데 굳이 고칠 이유가?”
대충 99%는 내가 박살 내고 1%는 이유 없는 대난투에 휘말려서 집이 통째로 날아갈 것이다.
내 그런 말에 3989위는 한심하단 의지가 가득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며 입을 열었으니.
“몇 번이나 말했지만, 집이란 그냥 몸을 누이는 장소가 아니야. 외부와 내부를 나눔으로써 자신과 타인을 가르는 경계이며, 그리함으로써 세상에 홀로 남는 휴식의 장소이고, 잡념 없이 생각을 다듬는 장소지.”
“나도 몇 번이나 너한테 말한 것 같은데 이런 짓에 힘을 낭비하니까 네가 약한 거 아냐?”
이 군체 세계에서 우리에게 기본 제공되는 것은 몸뚱어리와 의자뿐.
다만, 본인이 원한다면 힘을 소모하여 무언가를 실체화하는 게 가능하다. 3989위처럼 집을 만든다거나, 다른 사람이 보고 온 책의 기록을 전달받아 책을 실체화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책이나 유희용 잡동사니 정도라면 나도 종종 하지만, 집이나 연구실을 차리는 경우 대부분 얼마 안 있어 개박살이 날 텐데 뭐 하러 그런 쓸모없는 짓에 힘을 소모하겠는가.
그럴 시간에 다른 녀석한테 시비 털어서 싸우고, 싸우고, 싸우는 게 더 이득이다.
아마 3989위도 곧 나와 싸우긴 할 것이다. 본인은 저렇게 집과 연구실 타령을 하고 있지만, 결국 우리 대부분에게 깃든 전투광의 본성을 내버리지 못하니까.
그렇기에, 평소처럼 이 녀석을 밖으로 끌고 가, 저놈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집 겸 연구실을 파괴하지 않도록 하려 했으나.
“….”
3989위는 집 문을 부신 나에게 분노를 내뿜는 평소와 달리, 의자에 앉아 찬찬히 날 바라보았다.
“왜?”
“넌 언제 무너질까 싶어서.”
애틋하게, 처량하게, 천천히 나에게 내뱉는 말.
탁.
내가 아닌 그녀는 책을 덮은 뒤, 자유로워진 양손을 배에 올린 채 안락의자를 끼익거리며 입을 열었다.
“이미 하위권자 중 다수가 자신의 인격을 포기했지. 우리라고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은 없어.”
천천히, 또 천천히.
“애초에 그럴 수밖에 없지. 몇몇 특수한 예외를 제외하면 하위권자 다수는 힘이 약한. 즉, 의지가 약한 존재. 그런 이들이 영원을 견뎌 내는 건 어려운 일이야.”
마치 미래를 보고 왔다는 듯이, 확실하고, 느긋하게
“그들은 자연스레 인간성을 포기했고, 아무것도 아닌 그저 파(破)의 힘으로 변했어. 앞으로 그런 존재의 수는 점차 늘어나겠지. 두 번째를 넘은 녀석들은 우리보다 훨씬 긴 시간을 이겨 내겠지만, 그 아래는 어떨까.”
일어나는 일에 대해, 냉정하게.
“첫 번째는 너랑 나도 넘었는데?”
저 기나긴 장문을 그저 듣고만 있을 수는 없었기에, 반박했다.
우리 모두에게 새겨진 풍경, 그 누구도 없이 홀로 걷는, 그저 빛을 찾아 걸어 다닐 뿐인 차가운 눈밭이 되살아나기 전에.
“각 단계 사이에 큰 격차가 있는 건 잘 알지 않아? 무수히 많은 우리 중에서 첫 번째를 넘은 것이 약 5천. 두 번째를 넘은 것은 약 1천. 세 번째를 넘은 것이 약 백. 네 번째를 넘은 건 열 명뿐.”
끼익.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나 나를 스쳐 가며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최종적으로 우리는 약 수백에서 백으로 압축될 거야. 영원을 견딜 수 있는, 광기만이 남은 이들로.”
부서진 문을 지남과 동시에.
딱.
손가락을 울려, 집과 책 모든 것을 힘으로 회수하며.
평소와 전혀 다른 분위기와 행동을 내보이며.
저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
고개를 끄덕였다가는 저 말이 사실이 될 것 같았기에.
“야! 어디가! 싸워야지!”
분노 어린 감정으로 진실미가 새겨진 불안을 지우며 소리 질렀다.
싸우자고, 언제나처럼.
망치와 마법이 맞붙는.
파삭.
시야가 흐려진다.
다리가 무너진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서. 그녀는 나를 향해 삿대질하며 붉은 광선을 뿜었다.
“작별이야. 4030위.”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3989위가 나를 향해 손가락을 흔드는 것조차, 몰랐다.
그녀가 나보다 강하단 사실은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 정도로 실력 차가 나진 않았을 것이다.
“…계속 힘을…. 숨긴 거냐…. 3989위….”
날아간 눈가부터 바스러지기 시작하는 몸을 가까스로 유지시키며, 그리 소리 질렀다.
겨우 몸을 유지하는 나에게 그녀는 손가락을 겨누며 가까워졌고.
“지금의 나는 1531위야.”
겨눠진 손가락을, 이마에 누른 채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내 집이 날아간 난장판이 있었어. 거기서 수십을 박살 내니 미친 듯이 순위가 폭등했지.”
“…그럼…. 힘을 숨긴 거나 마찬가지….”
“전력을 다한 적이 없다고 해둘게. 4030위.”
바스락. 바스락.
유지되던 몸이 무너진다.
입가가 사라졌다.
의지로 말을 내뱉을 순 있지만, 거기에 힘을 소모했다간 몸을 유지할 힘이 없어 자아가 사라진다. 몇 시간이 지나 몸이 재생될 때까지.
그렇게 입이 사라진 내게, 전 3989위는 계속 입을 열었다.
“오래 사귄 정도 있으니, 일단은 너에게 충고해줄게.”
“나이자 내가 아닌 우리는 각자에게 맞는 성장 방법이 있어. 수많은 성장 방법은 다른 끝에겐 없는 우리의 강점이자, 개성을 지키는 용도.”
딱.
손가락 튕김과 함께, 사라졌던 집이자 연구실이 다시 나타났다.
내가 입장하며 박살 냈던 문은 이미 고쳐져 있다.
“네가 의미 없다고 판단한 이 행동으로 나는 너보다 아득히 강해졌어. 나 자신을 영원에 잃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의지를 다짐으로써.”
툭. 툭. 툭.
그녀가 손가락으로 몇 번이고 내 이마를 두드린다.
멈추지 않고, 같은 박자로.
“너는 싸움만이 자신에게 남은 것이라고 하였지. 그게 정말 네가 바라던 거야? 자아를 지킬 유일하게 남은 것이 전투뿐인 게 아니고?”
그녀의 말이 아프게 파고든다.
몸을 지배하는 그 어떤 고통보다도, 잔인하게. 자신이 소실되는 감각보다도 절실하게.
“믿음과 신념 없이, 그저 존재하기만 하는 힘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어. 심지어 동족인 끝조차 자신을 이루는 신념과 믿음이 존재하지.”
파직.
말을 건네는 그녀의 손가락 끝에, 힘이 모인다.
이것은 그녀가 내게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당장 그녀는 내가 반응도 하지 못하는 속도로 레이저를 불러오지 않았던가.
“이게 무슨 말인지 깨닫지 못하면, 넌 곧 무너지겠지.”
키이잉.
마력이 완전히 모인 것을 증명하며,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휘몰아치는 힘이 안정되었다.
“내 조언을 받아들여 다시 만날 수 있길. 4030위.”
핑.
실이 당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붉은 섬광이 일고.
나는 자아를 잃었다.
* * *
나의 군체 세계는 우리 중 일부에게 있어 너무 폭력적이다.
안경을 쓴 채 항상 책을 들고 다니는 4위처럼 연구나 명상에 집중하고 사생활을 중시하는 내성적인 이들이 소수 존재하지만, 나의 대부분은 그런 우리를 집 밖으로 끌고 나와 싸우길 원하는 이들뿐.
오죽하면 내가 상대에게 맞대결을 신청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오는 불똥을 털어내다 보니 753위에 올랐겠는가.
대충 견적을 잡아보면 200위까지는 넉넉하게 이길 것 같지만, 순위가 높아 봐야 돌아오는 것이라곤 계속되는 전투와 소환밖에 없다.
확실하게 백인회에 들어갈 수 있다면 조금 노력해 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아직 힘을 길러야 할 단계.
아무튼,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내 예상은 현실이 되었다.
1만 위 이하는 모두 자아를 버리고, 힘으로 통합되었다.
현재 자아를 유지하는 나이자 내가 아닌 우리는 약 9,000.
그나마 이 혼란 속에서 다행인 점이라면 수가 줄어드는 속도와 최종적인 종착점이 내 예상보다 한참 여유롭다는 점.
우리가 끝인 이상 시간의 흐름이 거의 무의미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다고 정확하게 말은 못 하겠지만.
대략 하나의 세계가 백 번 정도 초기화될 시간이 흘렀음에도 9,000이 유지된다는 시점에서 우리의 자아는 생각보다 강인한 것 같다.
아니면, 그냥 다들 너무 단순한 짐승 수준이라서 가능한 걸지도.
잠깐 흥분할 수 있는 취미, 고기, 어쩌다 한 번 떠나는 여행과 소환, 매일 일어나는 싸움으로 유지되는 자아라니.
단순한 것도 정도가 있지, 사실 우리의 본질은 지성체보다는 짐승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요즘 자주 들고 있다.
아니면, 본질이 정체와 큰 연관이 있어서 그런 것이려나.
아마 최종적으로는 5천 정도에서 안정화하지 않을까.
나는 그리 생각하며, 언제나처럼 안락의자에 앉아 책을 읽었다.
오랫동안 의지해온 안락의자가 내는 끼익거리는 소리는 긴 시간이 지나도 내게 평온을 안겨 준다.
수없이 많은 책을 읽음으로써, 이 책조차도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날지 거의 확실하게 유추할 수 있지만.
그것은 플롯 수준의 이야기일 뿐, 각 이야기를 구성하는 문장과 단어, 사건의 흐름에선 책을 쓴 작가의 개성이 묻어난다.
무한한 지성체가 만들어 내는 무한한 세계.
비슷할지언정, 같지 않은 서술.
거기에 미소를 지으며 책장을 넘긴 순간.
쾅.
아득히 먼 옛날에 들었던 것 같은 소리가 집을 울렸다.
“싸우자! 골방 죽돌이 새꺄!”
“….”
나는 천천히 책을 내리고, 박살 난 문이 있는 자리를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낚싯대를 어깨에 짊어진 내가 아닌 내가 있었다.
낚싯대라니. 저런 무기를 쓰는 녀석은 우리 중에선 본 적이 없다.
아마 저 녀석도 살아생전 저런 무기를 쓴 것은 아니겠지.
그는 변했다.
변하지 않는 끝이지만, 우린 변할 수 있다.
그것이 우리이기에.
단순함이 넘치는, 광인들이기에.
그에 미소 지으며 책을 내리고, 손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지금의 너는 몇 위야?”
오랜 친우이자, 새로이 사귄 친구에게.
“820위다!”
쾅.
격돌했다.
집이, 책이 충격으로 바스러진다.
그렇지만, 이걸로 충분했다.
나 또한 싸움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기에.
그저, 싸울 핑계가 필요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