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613)
마법소녀 아저씨 외전 10화(613/671)
010. 케이스(9) – 안식.
너무나도 평범한 방이었다.
소환 사고가 일어났다고 인지할 수 없는, 너무나도 평범한 방. 나조차 당황할 너무나 평범한 세계.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파악하기 위해 도착하자마자 끝의 시야를 떠야만 할 수준의 세계.
눈을 통해 파악한 것은, 이 세계가 너무나 평화롭다는 사실이었다.
구멍도 뚫리지 않았고, 이능이라 할 만한 힘도 거의 없는 세계.
정말 드문 확률로 태어나는 초능력자나 심령 현상, 예언 정도는 있지만, 그조차도 세상을 바꾸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
무슨 일이 있어야 이런 세계에서 날 소환한 거지.
그런 의문을 가지고 처음으로 소환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거기에는, 아이가 있었다.
이제 갓 초등학교에 입학할 법한 어린 아이.
“….”
“….”
그런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상황에 당황한 듯 입을 벌리고 멍하니 날 바라보았고.
“….”
나도 딱히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무덤덤하게 날 소환한 아이를 바라보았다.
정확하게는, 뭐 어째야 할지 감이 안 잡혀서긴 하지만.
까고 말해 내가 뭐 아이를 본 경험이 얼마나 있겠는가.
린슈아 있고…. 클로에…. 음. 이건 아니다.
아무튼, 아무리 생각해도 눈앞의 아이가 소환자인 건 확실했기에, 조용히 아이가 뭐라 말할지 기다리길 약 30초.
“수….”
아, 수호신이나 수호천사 같은 케이스인가.
하긴, 저 나이대 여자애라면 그런 걸 잘 믿겠지.
아마 이번 소환 사고는 오컬트 의식에 우연히 불려 온 모양이다.
그럼 뭐 적당한 거 들어주고 떠나면 끝….
“수호령…. 맞죠?”
…음. 앞에 두 글자는 맞았는데.
왜 거기서 귀신으로 급격히 생각을 꼴아박았는지 모르겠구나.
뭐, 수호천사건 수호령이건 아무래도 좋다.
그런 오해를 풀 시간에 빨리 아이다운 허접한 소원 하나 들어주고 돌아가는게 이득이다.
이게 처음이라면 좀 놀라겠지만, 이미 몇 번 겪은 일이기도 하고.
저번에는 타로점 치던 십대 여자애한테 떨어져서 연애 상담을 들어주다 도저히 더는 못 듣겠어서 대충 여자애가 좋아한다는 남자애 앞에 던져주고 간 적도 있으니까.
“어, 그래. 네 기도 듣고 온 수호령이시다. 넌 뭘 원하냐.”
퍼뜩 계약 성사하고 돌아가자고.
연애 상담만 아니면 좋겠네.
당장 내가 연애 말아먹은 대표 주자인데 연애는 뭔 연애야.
“제가 내일 처음 학교에 가는데요….”
응. 응. 그래그래.
“그래서…. 학교 친구를 사귀고 싶은데….”
친구라.
어디 보자 내일 학교에 따라가서 대충 삘 오는 애랑 짝지어 주면 해결되겠구만.
걱정 마라. 대충 짝지어 주는 것처럼 보여도 끝의 시야로 평생 절친으로 남을 놈을 뽑아 줄 테니까.
“요즘 애들은 다 수호령이 하나씩 있다고 하더라구요….”
…뭔가 이상한데.
1인 1수호령? 아니, 여기 그런 세계관 아니잖아.
“잠깐. 입 다물….”
“부디, 제 수호령이 되어주세요!”
아. 조졌다.
* * *
애한테 붙잡힌 수호령 생활은 생각보다 느긋하게 흘러갔다.
일단 몸을 유령처럼 만드는 유체화 정도는 나도 할 줄 아니, 혹시나 누군가가 나를 인식하는 상황을 방지하고자 인지 저하 걸고 아이 주변을 둥둥 떠다니며 수호령비스무리한 짓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놈의 1인 1수호령은 아이가 어디선가 구한 오컬트 잡지에 써진 특집 기사였다.
그 망할 비과학적인 기사를 쓴 놈은 내 저주를 받아 교통사고를 당해 전치 2주를 낙찰받았다.
자업자득이지. 오라질 놈.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뭐라고 부르면 돼요?”
“마음대로.”
나는 그리 대충 대답하며, 가까이 다가오는 불운을 쏘아보았다.
저리 꺼져 망할 놈아.
그에, 불운은 놀라 도망쳤고.
“수호령 언니…. 면 될까요?”
“…그거 말고. 그리고 일단은 나 남자다.”
언니는 무슨 놈의 언니야.
남자 새끼면 머리를 쥐어박을 텐데, 여자애라 그러지도 못하고.
“에? 이렇게 귀여운 남자는 처음 보는데요.”
음. 남녀평등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발언이로군.
“…언니는 빼고, 아니, 여자 느낌 나는 호칭은 다 빼.”
“오빠?”
이제 알았는데, 저런 소리 들어도 기쁠 나이는 이미 한참 전에 지난 것 같다.
무언가 감정이 일기는커녕, 내가 이런 소리를 들어서 괜찮긴 한 건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
그렇기에, 최대한 머리를 굴렸고.
“아저씨가 낫겠다.”
무난한 결론이 나왔다. 내 뇌가 내린 결론이 언제나 그렇듯.
“수호령 아저씨?”
그래, 역시 이게 낫군.
“그냥 아저씨라 해도 되고.”
“예!”
그리 밝게 웃는 아이를 바라보며, 난 계속해서 허공을 떠다녔다.
약간의 초능력을 지닌 아이를 노리는 괴상망측한 것들을 쫓아내며.
* * *
“…흥.”
날 소환한 혜림이가 침대 위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울고 있다.
좋게 말하면 그렇다는 거고, 실제로는 눈물 콧물 다 흘리는 바람에 콧물이나 훌쩍이고 있지만.
내 탓은 아니다.
그냥 쟤가 친구랑 대판 싸워서, 저 혼자 질질 짜는 것일 뿐.
친구 쪽이 잘못했다면 기운이라도 북돋아 주겠지만, 명백하게 이쪽 잘못이니 그냥 둥둥 떠다니며 혜림이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기를 몇 분.
감정은 결국 말라붙기 마련이니, 혜림이도 눈물을 그쳤다.
그렇지만, 지금 눈앞에 없는 친구에 대한 삐진 만큼은 그대로인지, 눈물 대신 볼을 부풀리며 분노를 표현할 뿐.
저 꼴을 보아하니 대충 무슨 생각인지 알 것 같다.
자기가 잘못하긴 했지만, 그렇게 화낸 건 너무한 거 아니냐.
뭐 대충 그런 생각이겠지.
저대로 놔두면 아마 친구와의 관계도 소원해지겠지.
내일 만나 화해하더라도 나중에 저런 생각이 행동에서 드러나 다시 싸울수도 있고.
흠. 간만에 수호령다운 일이나 해볼까.
“혜림아.”
“…왜.”
“내일 니가 먼저 미안하다고 해.”
그 말에 혜림이는 나를 강하게 쏘아보았다.
조금 전까지 분노의 대상이었던 친구보다, 내가 더 밉다는 듯.
“아정이가 먼저 잘못했어!”
“정말로?”
내가 보기엔 아니었는데.
“…그…. 내 잘못이지만…. 그렇게 화낼 필요는 없었잖아!”
음. 내 예상이 확실했군.
역시 자기가 잘못했다고는 생각하기 싫겠지.
이제 진실을 퍼부어서 반성하게 만드는 선택지도 있지만, 그건 어린아이에게 너무 가혹하기도 하니…. 다른 선택지를 골라 볼까.
“아정이가 너무 화내긴 했지.”
“그래! 그러니까 나도 화낸거야!”
혜림이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상대가 있음에.
“그런데, 아정이는 뭐에 더 화가 난 걸까?”
“응?”
“혜림이 네가 잘못을 저질러서 화가 난 걸까. 아니면, 네가 미안하다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아서 화가 난 걸까.”
“….”
혜림이는 내 말에,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아마 친구와 싸웠던 기억을 돌아보고 있을 것이다.
처음 시작이 무엇이었는지.
뭐, 나도 강요할 생각은 없다.
선택은 아이의 몫.
나는 그저 조용히 생각에 잠긴 아이를 바라보았다.
* * *
“공부해서 뭐 해?”
“공주님 만들기 게임에서 능력치 부족하면 원하는 직업 못하지? 그런 능력치 올리는 게 공부다. 정 싫으면 안 해도 되는데 나중에 능력치 부족하다고 징징 짜진 말고.”
“학교 가기 싫어.”
“난 분명 방학 숙제부터 미리 해놓으라고 했다.”
“아정이랑 다른 반이야….”
“진짜 친구는 좀 멀어지더라도 계속 친구니까 너희 둘은 괜찮을 거다.”
“그렇게 졸랐는데 엄마가 인형 안 사줬어. 짠돌이.”
“저번주에 하나 샀으니까. 부모님도 안 사주시겠다곤 안 안했어. 좀만 기다리면 네 생일이니까 그때 사주신다고 약속했지.”
“더 좋은 게 나올지도 몰라.”
“그럼, 별로 안 좋은 인형은 필요없어지겠네? 그럼 굳이 살 필요도 없는 게 아닐까?”
“달리기…. 싫어.”
“운동하면 근육이 생기고, 근육은 모든 걸 해결한단다.”
“야채…. 싫어.”
“귀여워지고 싶다면 먹고 아니면 말고.”
“고기도…. 싫어. 과자….”
“안돼.”
“이거 봐! 수호령을 강화하는….”
“….”
* * *
오랜 시간 혜림이에게 수호령으로 붙어 있었다.
평소에도 나는 세계를 유랑하거나 소환되다 보니, 긴 시간 의장 자리를 비우거나 끝으로서 행동하지 않는 것은 별 문제가 아니다.
그렇지만, 한 세계, 한 장소에 이리 오랫동안 붙어있던 것은 끝이 되고 난 이후 처음.
그렇기에, 이거 괜찮나 싶어 조금 조바심을 낸 순간.
“…아저씨?”
이제는 중학생이 된 혜림이의 목소리가 내게 도달해왔다.
“왜 그러냐.”
나는 천천히 혜림이에게 고개를 돌렸고.
“아저씨는…. 왜 항상 안절부절못하고 계세요?”
혜림이가 핵심을 찔러왔다.
내 조바심이 혜림이에게까지 느껴진 것일까.
아니면, 세상을 얼마 살지 않은 아이가 보기에도 내가 그리 이상해 보이는 것일까.
지금 혜림이는 친구들과 즐겁게 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시간상 그리 늦진 않았지만,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내린 상황.
수많은 도시의 빛에 의해 별이 가려진 밤하늘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기라면 괜찮지 않을까.
끝의 시선도, 뒤틀림도 없는 세계라면 조금 정도는.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뭣 때문에요?”
여전히 어린이같은 질문이구나 혜림아.
“자신이 믿는 것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죽은 뒤에도요?”
그래, 이 아이는 아직도 내가 유령이라 믿고 있지.
“지금 보면 알잖냐. 죽고 난 뒤가 더 심했어. 지금은 너한테 달라붙어서 좀 쉬고 있지만….”
“그렇게 노력하셨다면, 이제 좀 쉬셔도 되지 않을까요?”
그 말에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래. 여긴 평화롭고, 논리를 무너트리는 규칙 외의 오류도 없지.
끝도, 바다도, 이능도 거의 찾을 수 없는 말이 되는 세계.
하늘을 올려다본 별이 정말로 별답게 희망에 빛나는 세계.
앞으로 살아갈 영원을 생각하면, 이런 짧은 안식 정도는 누려도 괜찮지 않을까.
쉬지 않고 달려온 끝에 도달한 이 장소에.
혜림이도 나를 따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빛으로 검음이 흐려져, 보라빛으로 보이는 세계를.
현(現)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뒤틀리지 않은 세계에서, 필멸자로서 살아가는 것은.
분명, 나쁘지 않은….
정말로 평화로운….
쿵.
지성체에겐 닿지 않는 소리.
세상이 떨린다.
구멍이 열린다.
논리의 완전함을 만들어 주던 공리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되고.
속삭이는 이계의 힘이 뜯긴 틈 사이로 스며들어 세계에서 이능은 평범한 일이 되어간다.
오차 없이 자신의 규칙으로 나아가던 세계는, 수많은 시선을 받고 규칙을 부정당한다.
끝의 낙인을 받은 이들이 군세가 되어 쏟아져 내려오고, 끝의 손길에 수많은 이들이 힘에 눈을 뜬다.
수많은 이야기가 시작된다.
끝의 계획 아래에서.
기적을 이루기 위해.
씨앗을 찾기 위해.
“…아저씨?”
이제는 나를 그리 부르는 것도 익숙해진, 아이의 목소리.
쿵.
그 아이 옆에서, 나는 오랜만에 망치를 들고 실체화했다.
나 혼자 이 침략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침공은, 내 기원이 되었던 세계가 당했던 끝 수백, 수천이 연합한 대규모 침략.
백인회를 불러 강대한 힘을 불러오면 저들을 쫓아내는 것 자체는 가능하겠지만.
이것은 침략 초기 단계.
아직 뒤틀림이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힘을 지닌 끝의 본체가 나타났다간 초반부터 화신체가 우르르 쏟아지고, 내 의지에 의해 세계가 망가지는 결과만이 남으리라.
그러니, 내가 이 세계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살아남거라.”
어느새 나보다 커진 아이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그녀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손바닥을 넘어 아이에게 넘긴 것은, 파(破)의 의지가 담긴 향취.
이것이 혜림이를 강하게 해주거나 하진 못한다.
그렇지만, 끝의 군세는 끝의 향취가 남은 아이를 건드리려 하지 않을 것이고, 끝들 또한 어지간히 저 아이가 이야기에서 중요한 요소가 아닌 한 간섭하는 것을 신중히 고려할 것이다.
그리고, 만에 하나 혜림이가 자신의 의지로 이야기를 자아낼 각오를 하였다면, 저것은 작은 선물이 될 것이다.
게임으로 따지자면, 5만 원짜리 스타터팩 정도.
세계를 망가트리지 않고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일.
“…아저….”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돌아보지 않고 날아오른다.
순식간에 붉게 달아오른 망치와 함께, 땅을 박차고.
하늘을 향해.
지금 나는 끝이자 끝이 아니다.
끝의 힘을 빌려오지 않은, 의회에 안건을 상정하지도 않은.
그냥 강한 하나의 개체.
극도로 힘을 제약한다.
뒤틀림이 퍼져나가 이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도록.
나로 인해 더 많은 시선이 집중되고, 구멍이 열리지 않도록.
하늘을 내달리며, 붉게 물든 망치를 손에 쥐었다.
내가 이 세계에 해줄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첫 도미노를 막는다.
내가 직접 겪은 우리 세계의 역사가 있어 이후 이 세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잘 알고 있다.
우리 세계의 경우 첫 공격 자체는 각성자들의 힘을 빌려 잘 막아내었지만, 그것은 시작일 뿐.
각성자가 이야기의 대처에 실패하거나, 이야기와 관련 없이 출현한 이계의 존재들에 의해 바다와 하늘이 봉쇄되고, 각 국가의 연결과 물류가 단절되며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간다.
그리고 그 혼란은, 수십 년이 지나도 사회를 좀먹는다.
무수히 많은 시체를 쌓음으로써.
나는 그것을 막으려 한다.
계속해서 하늘로 오른다. 더 높이, 더 높이.
이 세계의 몇몇 카메라가 그렇게 붉은 기운을 두르고 의지의 발판으로 하늘을 주파하는 날 포착한 것 같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이 세계에 내가 어찌 기록되건, 내가 논란의 대상자로 남건.
그러한 미래는 지금, 현재의 나에게 중요한 일이 아니기에.
그저 솟구친다.
이 세계가 우리 세계의 악몽을 반복하지 않도록.
부모가 굶어 죽고, 사람끼리 반목하고, 아이의 배에 칼이 찔리는 일이 없도록.
적어도, 날 부른 아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 사회가 버틸 수 있도록.
어느새 나는 푸른 구체 전체를 시야에 넣었다.
언제나처럼, 푸른 행성.
비록 대륙과 바다의 형태가 내가 알던 세계와 전혀 다르지만.
과거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게 하는 푸른 구체.
푸른 원을 시야에 담고 의지로 발판을 형성하며, 자세를 잡았다.
망치를 등 뒤로 돌리며, 온 힘을 담고.
순간 어떤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런 짓은 의미 없다며 부정하고, 몇번을 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던 행동에 대한 이미지가.
그렇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그것은 희망을 담은 것이었다.
자신을 격려하는 것이었다.
세상을 향해 외치는 것이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게 옳은 행동이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지금만큼은. 앞으로 이어질 지옥을 걸어갈 이들에게, 한마디를.
“빛이.”
붉게 달아올라 주변 공간을 심연속으로 일그러트리기 시작한 망치를 휘두른다.
뒤틀림을 막고자 끝의 힘을 최대한 억제한 나로서는, 휘두르기 버거울 정도의 질량을 가진 물체를.
그렇지만, 멈추지 않는다.
안식. 마침내 내린 이 평온함이, 안주할 수 있는 계약이 무너지고, 육체가 스러지더라도.
내가 나인 이유를, 아직도 품은 정의를 증명하며.
그저 휘두른다.
앞으로 온 힘을.
딸깍.
휘둘러진 망치의 앞이 열리고.
나 또한 입을 열었다.
【의지는 힘으로 화할지니】
무수히 많은 힘이 내 의지를 받아 가며 행성에 흩뿌려진다.
나도 알고 있다, 이 기술에 어울리는 것은 이런 이계침식이 아니란 것쯤은.
그래도, 괜찮다.
이것은 저 아래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이계침식.
살아갈 의지를, 힘으로 바꿔 나아갈 이들을 위한, 영원토록 세계에 새기는 낙서.
“있으라.”
내 말에 맞춰 무수히 많은 에너지가 쏟아진다.
이야기와 관련 없는, 사회 기반을 무너트리고 사람들을 계속될 고통으로 몰아갈 이계의 존재들이, 하나씩 하나씩 힘에 꿰뚫려 구워지고, 뭉개진다.
그리고, 나는 사라진다.
자신의 계획이 어그러진 데 분노한 수많은 끝의 시선을 모으기 직전에, 뒤틀림이 피어나기 직전에.
나 자신을 부정한다.
강력한 기술의 여파로 자괴하는 몸을 복구시키지 않고, 흐름에 따라 무너지게 놓아두며.
나 자신을 수복하려는 생존본능을 의지로 부정하며.
천천히 세계에서 사라졌다.
다시 그 눈밭을 걷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