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agical Girl RAW novel - Chapter (629)
마법소녀 아저씨 외전 26화(629/671)
026. 결사(16) – 복제와 파편
눈을 뜨면, 커피 향이 맴돌았다.
“일어나셨습니까.”
곧바로 들려온 것은, 문어의 질척한 목소리.
소리를 낸 것도, 움직임을 보인 것도 아닌데 곧바로 반응한 걸 보니, 계속 날 주시하고 있던 모양이다.
“….”
대답하기 싫다.
다시 자자.
그렇게 다시 눈을 감은 순간.
“일어나신 거 다 알고 있습니다.”
“50년만.”
“그거면 크림슨 나이트의 계획이 끝난 뒤겠군요.”
흥. 문어 주제에.
“그래서, 왜 니가 내 병실에 있는데?”
지금 여기는, 아마 결사의 병원 중 하나. 창문이 없는 것을 보면, 지하에 있는 것이거나, 어딘가의 비밀 방이겠지.
주변 공기가 텁텁한 것을 보니 아마도 전자 같다. 그렇지 않아도 공기가 나쁜데, 주변에 문어까지 있으니, 기분이 더욱 나빠진다.
그리고, 기분이 나쁜 것은, 문어도 마찬가지인 모양.
“그야, 제가 알려드린 계획을 다 망가트리신 분에게 불평하기 위해서 아니겠습니까?”
문어는 자기 커피잔에 담긴 커피만큼이나 피부색을 짙은 색으로 그러데이션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분명 제가 그들의 사이에 숨어들어 정보를 모아오라고 했었죠.”
“했었지.”
“그리고, 관리국이 주목하지 않게 조심스럽게 움직이라고도 했었죠.”
“했었던가?”
“무심코 평소처럼 폭력을 행사하셔서 유밀 님의 평가가 낮아지는 것도 삼가달라 했습니다.”
“했었을지도.”
“그런데 왜 세 다 어기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왜 단순 돌격 멧돼지가 사라졌는데 더 심한 문제가 생기는 거냐고!’
아, 그 아저씨가 멧돼지라는 점은 나도 동의.
아무튼, 너무 욕만 먹어서 짜증 나니 이제 반격하자.
“그래도 정보는 얻어 왔는데.”
“어디 들어나 보죠.”
문어의 목소리는 내 정보에 전혀 기대하지 않는 기색이지만, 아마 내 말을 들으면 놀라겠지.
“그들은 초월자의 살점을 사용한 음모를 꾸미고 있어. 탱크 안에 있던 건 살점의 일부. 이번 사건은 그걸 파괴하느라 힘의 제어가 실패했기 때문이야. 아, 살점은 파괴했어.”
툭. 탕. 탕. 탕.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어의 손에 들렸던 커피 잔이 땅을 구른다.
커피 잔이 단단한 덕에 깨지진 않았지만, 안에 든 것을 흩뿌린 채.
딱.
문어의 손가락이 튕기고, 바닥을 더럽혔던 커피는 원형으로 뭉쳐 세면대 안으로 사라졌다.
그 직후.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조금 전 있었던 일을 지우고 싶었는지, 말을 듣고 굳어 버렸던 적이 없는 것처럼 문어가 말을 걸어왔다.
평정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다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저러면 역효과 아닐까.
자존심 빼면 건어물이나 다름없는 문어니 어쩔 수 없겠지만.
“금속 탱크 안에 있던 건, 그 아저씨의 살점이었어.”
“그렇…. 군요.”
문어는 발을 옮겨 방 한구석에 있는 꺼진 텔레비전을 바라보았다. 이 방에 창문이 없는 만큼, 그게 창문 대용이기라도 한 것처럼.
이상하게 형식을 따진단 말이지, 저 문어는.
어쨌든 여러 가지로 문어의 계획이 어긋났지만, 살점 하나는 부쉈다.
문어가 직접 말한 건 아니지만, 아마 내심 그것만으로도 최악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저건 문어의 사정이고, 내 문제는 따로 있지만.
그리 생각하며, 상태가 좋지 않은 내 팔을 바라보았다.
약간 저릿한 느낌이 드는 팔.
팔을 들어 올려 손을 쥐었다 펴길 반복하며 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일반적인 움직임에는 특별히 문제가 없고, 외견상으로도 특별한 문제는 발견할 수 없다.
그렇지만, 내 팔은 겉보기와 달리 정상이 아니다.
생물학적으로는 아무 문제도 없겠지만, 그보다 더 깊은 영역에서 무언가가 망가져 있다.
일정 이상의 의지를 표출하는 것도 차단되어 있고, 반응도 느리다.
아마, 아버지의 망치를 사용해서 손에 과부하가 걸린 거겠지.
영구적인 문제는 아니고, 몇 달 동안 놔두면 해결되겠지만, 그동안 다시 망치를 소환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고, 과한 전투도 어려울….
눈앞에 흰색 무언가가 나타났다.
“뭐야. 너.”
시야에 이상한 존재가 있다.
나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머리를 묶거나 하지 않은 생머리에, 피부와 눈을 포함해 전체적으로 백색, 아니 탁한 은색에 가까운 색감.
그리고, 그 몸을 둘러싸든 붙잡아 조이고 있는, 검은빛으로 빛나는 기묘한 문양이 잔뜩 흐르고 있는 탁한 흰색의 바디슈츠.
…아니, 아니다.
바디슈츠라기에는, 피부와 슈츠의 경계면이 보이지 않는다.
저건, 저게 저것의 몸 그 자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몸을 가리듯 두른 흰색 망토.
그 망토조차, 천이라기보단 얇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형태.
거대한 은색 금속을 녹인 뒤 주조하면 저런 형태가 되지 않을까 싶은 존재.
그런 존재가, 나의 감지를 뚫고 내 침대 옆에 서 있다.
언제, 어떻게.
아무리 결사 안이라서 긴장을 풀었다지만, 정체도 모를 존재가 내 옆에 도달할 때까지 눈치채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마치, 이동 과정 자체가 점프한 것 같은….
그렇지만, 순간이동이나 전이 같은 개념도 아니다.
그거라면 미약하게나마 직전에 도착한다는 의지가 감지되기 마련.
말 그대로, 내 옆에 갑자기 나타났다고 봐야 할 이동.
그런 존재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피해야 한다.
그리 생각했음에도, 내 몸은 그에 반응하지 않았다.
강제력이나, 눈앞의 이질적인 존재가 무언가를 행한 것은 아니다.
그저, 내 의식이 생각에 맞게 반응하지 못했을 뿐.
그 이유는 단순하다.
시야에 존재하는 저것이, 내게 무엇을 하려고 한다는 실감이 없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무엇을 하려고 든다는 의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의 내게 가장 주요한 외부 인식 감각은, 지성체가 발하는 의지다.
물론, 시각, 청각, 촉각 같은 오감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아버지의 영역에 조금이나마 발을 걸쳐서 그런지, 가장 크게 반응하는 것은 타인이 발하는 의지.
그런데, 눈앞의 존재에게서는 존재하는 의지, 무언가를 하려는 의지 자체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의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강에 잠긴 돌처럼, 자신 주변 물의 흐름은 바꾸지만 큰 강의 흐름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듯, 극히 미미한 의지.
이 희미한 의지가 정말 눈앞의 존재에게서 발산되고 있는걸까. 아니면 내 인지상의 오차일까.
그렇기에, 나는 눈앞의 존재가 실존하여 무엇을 하려고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오감으로는 분명 눈앞에 실존하지만, 의지를 탐지하는 감각이 눈앞의 존재 실존에 대해 혼란하였기에.
감각의 혼란이 진정된 것은.
툭.
그것이 내 손을 붙잡고 들어 올린 직후의 감각.
차갑다.
생명체의 따뜻함이 아닌, 금속이 맞닿는 차가운 감촉.
직접적인 감각의 접촉을 느끼고서야 손을 뿌리치고 멀어지려 했지만.
“망치 사용의 대가. 격을 넘어서는 힘의 반발. 괴사. 뒤틀림. 부정. 오염. 역행. 회화.”
들어 올린 내 팔을 빤히 바라보는 그것의 말에, 움직임이 굳었다.
아직 문어조차 눈치채지 못한, 팔에 남은 거대한 상흔을 꿰뚫어 본 눈앞의 존재에.
그리고, 그 잠깐의 망설임은.
“복원. 치료. 반송.”
갑작스럽게 불어난 거대한 의지에 집어삼켜졌다.
하나의 개체가 보여주는 의지라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한 그것은, 폭발하듯 불어나 나를 포함한 모든 것을 집어삼켰고.
곧바로, 사라졌다.
눈앞에 남은 것은, 다시 실존이 의심되는 개체 하나뿐.
“나. 간다.”
“….”
팔이 치료되었다.
완전히 망가지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본래 상태로 돌아올 때까지 몇 개월은 걸릴 것이라 예상한 팔이, 한순간에 복원되었다.
뭐야 이거.
놀라 이상한 점이 있는 것 아닌가 하며, 손을 눈앞에서 계속해서 흔들며 이상한 점을 찾아보았지만, 평소의 손 그대로였고.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손이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아마 옥시모론이 와도 치료에 긴 시간이 걸릴 팔을 곧바로 복원한 저 존재의 정체.
그렇기에, 그 존재를 향해 고개를 들며 외쳤다.
“야. 너….”
그렇지만, 내 말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었다.
…없어?
나타날 때와 똑같이, 은빛의 무표정한 그것은 이미 사라진 뒤.
“…?”
꿈인가?
아니면, 환상?
아니면 아비가 맨날 겪었다는 자기들 편한 대로 나왔다 사라지는 초월자 놈들?
“야. 문어. 너도 봤….”
“예. 프라그멘툼이라고 합니다.”
“누군지 안다고?!”
정말 뭐야 이거.
“음. 정말 결사에 관심이 없으셨군요. 새로 13석에 오른, 간부….”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
결사 13석?
저런 이해할 수 없는 지성체가 현실에 실존해?
“저놈 정체가 뭔데?”
“프라그멘툼입니다.”
염-병.
문어 녀석 자기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는지 눈을 돌리고 이상한 소리나 하고 있다.
“지랄 말고. 화신체가 현세에 내려와 놓곤 기억상실증에 걸려서 멍청해진 것 같은 수준의 개체가 눈앞에서 춤추고 있는데. 프 뭐시기입니다 하나면 통할 거 같아?”
이름은 왜 또 그리 어려운데.
내가 그리 말하며, 문어에 대한 적의를 잔뜩 드러냈지만.
“프라그멘툼입니다.”
문어는 어떻게든 시치미를 떼겠다는 듯, 같은 말만 반복할 뿐.
아, 이건 죽어도 안 알려 주겠다는 거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이렇게 나온 이상 아마 쳐 죽여도 안 알려주겠지.
“…믿어도 되겠지?”
“저도 개인적으로는 믿음이 가지 않지만, 린슈아 님이 인증하셨으니 괜찮을 겁니다.”
“아, 그럼 됐고.”
그럼 내가 할 말이 없지.
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순식간에 내 팔을 치유한 건 조금 생각이 필요할 것 같다.
이번이 특이 케이스? 아니면, 매번 가능한 건가.
후자라면, 망치를 사용하는 데 생기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다.
필요할 때마다 결사 신세를 진다는 문제가 생기는 문제가 남긴 하지만, 몇 달 동안 최대 전투력이 급감하는 문제는 해결된다는 뜻.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마구잡이로 사용할 물건은 아니지만.
사용 후 페널티는 제거할 수 있지만, 사용에 따르는 자격증명이라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으니까.
그래도.
“한번 물어봐야겠어.”
“뭘 말입니까?”
“조금 전까지 내 팔에 약간 문제가 있었는데, 저 녀석이 치료해 줬거든. 그래서 매번 가능한지에 물어보려고.”
실제로는 약간의 문제가 아니지만, 문어에게 필요 이상의 정보를 주고 싶진 않다.
그렇기에, 대충 그리 둘러댔다.
아마, 문어는 내 거짓말을 눈치챌 수도.
“관두시는 게 좋습니다.”
그렇지만, 문어의 반응은 내 예상과 전혀 달랐다.
내 거짓말은 눈치채지 못했는지, 잔뜩 찌푸린 얼굴로, 두통이 일기라도 했는지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왜?”
“프라그멘툼의 사고방식과 언어 능력은 저희와 너무나도 다릅니다. 설명하려면 꽤 길어지겠지만, 아무튼, 대화를 통해 정확한 정보를 얻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죠.”
잠깐 대화를 나눈 걸로는 그런 느낌을 못 느꼈는데.
뭐, 문어가 그렇다면 그럴 것 같긴 하지만.
아마 문어는 나 이상으로 프 뭐시기에 대한 고뇌를 안고 있는 것 같으니까.
나중에 만나면 다시 물어봐야겠다.
나랑 닮았으면서도 작은 외모에 관한 질문이 필요하기도 하고.
일단 이번에는 팔을 고친 걸로 만족해야지.
자. 그럼….
“다음은 어디야?”
팔도 고쳤으니, 하나 더 부수러 가야지.
그런 내 말에, 문어는 피부를 검게 변화시킨 뒤 쓰레기를 본 것 같은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억울하면 자기가 갔어야지.